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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쁘띠 마망> 딸과 엄마가 같은 나이를 공유해 만나다

셀린 시아마 감독의 신작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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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랑하고 의지하는 이라면 누가 되었든 한 번 안기는 것만으로도 모든 게 치유되는 힘이 있다. <쁘띠 마망>은 내가 사랑하는 모든 이와 나누는 포옹의 따뜻한 가치를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2021.09.23)

영화 <쁘띠 마망>의 한 장면

셀린 시아마는 한국 영화 팬들이 매 작품 신뢰를 보내는 감독 중 하나다.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2019)이 스크린 수 100개 전후의 다양성 영화로 국내에 개봉했음에도 15만 명 이상이 관람했을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다. 이에 힘입어 전작 <워터 릴리스>(2006) <톰보이>(2011) <걸후드>(2014) 성장 3부작이 연달아 소개되며 셀린 시아마는 국내에 프랑스 영화의 브랜드 격이 되었다. 

<쁘띠 마망>은 셀린 시아미의 신작이다. 8살 아이가 극을 이끌어간다는 점에서 또 한 편의 성장 드라마이지만, 성 소수자의 정체성이 중요했던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톰보이> 등 전작과는 다른 성격의 이야기를 전개한다. 동갑내기 두 소녀가 공유하는 특별한 시간에 관한 이야기랄까. 또는, 엄마가 어린 시절을 보냈던 공간에서 딸이 겪는 신비한 모험이랄까. 어찌 됐든, 셀린 시아마에게 기대하는 바와 다른 재미와 감동을 주는 작품이다. 

요양원에서 지내던 외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넬리(조세핀 산스)는 엄마를 따라 짐을 정리하려고 옛집을 찾는다. 이곳은 엄마가 어린 시절을 보냈던 곳으로 그때 썼던 일기를 외할머니가 고스란히 보관해 뒀다. 엄마는 넬리에게 일기 보여주는 걸 꺼리는데 그럴수록 넬리는 엄마의 어린 시절이 궁금해진다. 다음 날 아침 엄마는 일찌감치 집을 떠났고 넬리는 아빠와 둘만 집에 남았다. 

집에만 있기 심심해 뒷마당을 나와 숲속으로 가보니 또래 소녀가 나뭇가지를 모아 은신처를 만들고 있다. 넬리를 본 소녀는 알고 지낸 친구라도 되는 듯 경계심을 드러내지 않고 자신을 마리옹(가브리엘 산스)이라고 소개한다. 넬리의 엄마 이름도 마리옹이다. 그래서일까, 넬리는 마리옹이 남 같지 않다. 마리옹의 초대를 받아 집에 가보니 엄마의 옛집과 구조가 다르지 않다. 다리가 불편해 지팡이에 의지했던 외할머니도 30대 시절 모습으로 그곳에 있다. 

셀린 시아마는 <쁘띠 마망>의 제작 의도를 이렇게 전한다. “최근 모두가 엄청난 위기 속에 고난을 겪고 있다. 이를 위로할 이야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이 영화가 가진 마법의 힘을 탐구하고 싶었다. 어린 시절 자신의 부모를 만나는 상상은 누구든 할 수 있다. 모두가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상상을, 나의 연출로 자유롭게 표현하고 싶었다.”라고 연출의 변을 밝혔다. 

마리옹과 넬리의 관계로 반영된 엄마와 딸, 그러니까 부모와 자식이 공유하는 시간과 공간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쁘띠 마망>은 지브리 혹은 픽사 애니메이션을 셀린 시아마 버전으로 실사화한 것만 같은 인상의 작품이다. 지브리와 픽사 작품의 특징이라면 창작자들이 성인임에도 아이와 눈높이를 맞추는 것을 넘어 정말로 소년·소녀가 된 것만 같은 정서와 분위기로 극을 전개한다는 것.


영화 <쁘띠 마망> 공식 포스터

<쁘띠 마망>에는 여덟 살 딸이 여덟 살 시절의 엄마를 만난다고 해서 딱히 공간을 초월하는 설정이나 튀는 편집으로 시간을 구분하려는 의도조차 없다. 보통 <백 투 더 퓨처> 시리즈와 같은 작품은 성인이 된 이후 시간 여행을 하는 까닭에 드로리안 같은 ‘타임머신’이 필요하고, 부자(父子)가 같은 나이를 공유하되 자신의 시간대를 떠나지 않는 <프리퀀시>(2000)는 현재와 과거의 구분이 봉제선처럼 두드러진다.

성인은 보통 실현될 가능성이 희박하거나 전혀 없는 가치에 대한 기대감이 별로 없는 까닭에 현실과 상상을 구별해서 나누는 시각이 확연하다. 성인의 시각이 반영된 작품들과 다르게 <쁘띠 마망>의 아이들은 꿈과 현실, 현재와 과거, 기억과 허구 등이 모두 한통속이다. 경계선을 치지 않고 어떻게든 공유하고 이해하여 손을 잡는다. <쁘띠 마망>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이해하고 서로를 바라볼 수 있게 하는 공유의 힘으로 스크린 속 마리옹과 넬리의 관계를 넘어 관객이 이들에게 자신의 어린 시절을, 부모와 자식의 관계를 투영하여 바라볼 수 있게 한다. 

“시나리오를 쓰면서 문득 궁금해졌다. 내가 어린 시절의 엄마를 만나게 된다면 나의 엄마일까? 자매일까? 친구일까? 아니면, 동시에 이 모두일 수 있을까? 이런 질문들은 넬리와 마리옹을 각각 연기한 조세핀 산스와 가브리엘 산스를 만나면서 보다 명확해졌다. 카메라 안에서 두 사람은 엄마, 자매, 친구 등 내가 원하는 모든 모습이 되어주었다.” 내가 사랑하고 의지하는 이라면 누가 되었든 한 번 안기는 것만으로도 모든 게 치유되는 힘이 있다. <쁘띠 마망>은 내가 사랑하는 모든 이와 나누는 포옹의 따뜻한 가치를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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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허남웅(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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