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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완의 다음으로 가는 마음] 바깥은 위험한가

제 9화. 바깥은 위험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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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여, 우리를 실제와 상상의 위험에서 보호해 주소서. 내 마음이 나의 세계를 좁히지 않게 하소서. (2023.01.25)


<채널예스>에서 격주 화요일
영화감독 박지완의 '다음으로 가는 마음'을 연재합니다.


일러스트_박은현 

바깥은 위험한가.

나는 이 질문을 근 3년 동안 나 자신에게 했던 것 같다.

그렇다면 나는 지금 안에 있는가, 바깥에 있는가.

바깥은 위험해 보였다. 코로나가 모두의 세상에 등장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바이러스는 가장 가까운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고 온기를 주고받으며 퍼지는 아주 고약한 것이었다. 그때 나는 촬영을 마친 영화를 편집하고 있었고, 조금 나아지길 기다렸지만 여전한 코로나 세상 속에서 개봉했다. 개봉할 때 으레 따라오는 행사들이 있었는데, <내가 죽던 날>은 기자 시사회만 진행되었다. 사람들이 영화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언론에서, SNS에서, 여기저기에서 말하기 시작했다. 이미 매 순간 최선을 다했다는 사실도, 그동안 이 영화로 좋았던 기억들도 그 무렵에는 잘 떠오르지 않았다. 아쉽게도 관객과 직접 만날 기회도 없었고, 마음속으로 함께 일했던 사람들을 몹시 그리워했지만, 시절이 시절인지라 만나기는 정말 조심스러웠다. 그때 그들과 만나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무언가라도 나눌 수 있었다면 정말 좋았을 거라고 지금은 생각한다.

코로나는 영원히 세상을 덮친 것처럼 보였고, 얼마간은 마음속에서 영화와 나를 분리하는 것이 매우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작업할 때 불필요하다고 생각해서 미뤄두었던 모든 불안과 긴장이 몰려들었다. 영화에 대한 어떤 이야기도 — 설령 그것이 좋은 내용이더라도 — 이상하게 마음이 힘들었다. 머릿속에서는 그동안 내가 잘못한 판단, 후회하는 지점들만 계속해서 반복되었다.

바깥은 너무 위험하니 조용히 숨어 있고 싶었다. 그래, 가만히 집에 있는 것이 나와 모두를 위한 일이다. 사회적 거리두기는 마음을 숨기기 좋은 이유가 되어주었다.

겉으로는 평온했다. 집에 머물고 싶을 때 머물 수 있는 것도 행운인 시절이었다.

게다가 어릴 때부터 침대에 누워있는 것을 좋아했다. 잠을 자고 누워서 책을 읽는 것도 좋지만 그냥 가만히 누워있는 것도 괜찮았다. 그래, 침대에서 가만히 누워있자, 가능하면 오래.

문제는 내가 그 사이 결혼을 해서 함께 사는 사람이 있었고, 나의 불안이 그 사람에게는 숨겨지지 않았다. 

나는 평소 매우 논리적으로 행동하려는 사람인 척해왔는데 불안이 끼어들면 그게 쉽지 않다. 위험하다는 마음, 그것에 대한 두려움, 무언가를 하지 말아야지 하는 조바심 같은 것들이 섞여서 그냥 가만히 있기를 동거인에게도 바랬다. 그게 가능할 리가.

나의 세계는 집인가, 방인가, 침대일까.

겨우겨우 오래 바라던 영화를 만들어 놓고, 어렵게 나의 세계를 넓히려고 애를 썼는데 지금 나는 왜 숨어있나.

보고 싶은 사람들이 많았다. 함께 일했던 스텝들과 배우들이 자주 떠올랐다. 그런데 그들은 모두 이미 다른 영화로 떠나 있었고, 바쁜 그들에게 지나간 영화의 연출자가 연락하는 일로 그들을 방해할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 그렇다. 그때 나는 좀 이상했다. 

영화를 다시 볼 마음은 잘 안 생겨서 엔딩 크레딧 작업을 위해 만들어 둔 스텝과 배우 리스트, 그리고 도와준 사람들이 적혀 있는 엑셀 표를 종종 열어보았다. 그래, 지금은 아니지만 준비가 되면 꼭 다시 만나야지, 함께 일하자고 해야지. 잠깐 나를 일으켰다 다시 눕혔다.

동거인의 권유로 알 수 없는 불안이 덮쳐올 때 나를 불안하게 하는 생각들을 적어보기 시작했다. 적고 보니 무척 간단했다. 코로나와 관련한 어떤 이야기와 왜 인간이 (지구에) 태어나 지구를 망치고 각자 힘든 인생을 살아가야 하는가까지 가는데 몇 단계가 필요치 않았다. 근거 없는 생각이 널을 뛰어 나의 마음을 꽉 쥐고 있다는 것이 보였다. 흠, 그렇구나, 나는 지금 평소와 다르구나.

나는 늘 해 오던 대로 책을 빌렸다. 도서관 입구에 있는 책 살균기에 평소보다 긴 시간 동안 책을 넣었다가 집으로 가져왔다. 전염병에 대한 책, 불안에 대한 책, 그리고 여행에 대한 책.

일단 전염병에 대한 책은 이 일이 매우 불행하고 괴로운 일이지만 인류에 처음 일어난 일은 아니라는 것, 우리가 겪는 처음일 뿐이라는 것, 인간은 전염병 앞에 매우 무력한 것처럼 보이지만 어느 때보다 인류애를 발휘하는 때라는 것을 알려주었다. 불안에 대한 책은 사실 나를 더 복잡하게 만들었다. 많은 사람들이 남들은 알아챌 수 없는 이유로 불편하고 어려운 마음을 다루며 살아가고 있었다. 나는 좀 능란하게 불안을 잘 숨기는 사람에 속하는 것 같았다. 더 읽어보는 수밖에 없다. 마지막으로 여행기를 읽었다. 전에는 여행기를 그렇게 좋아하진 않았다. 글의 편차도 너무 크고 그냥 내가 가면 되지 했던 것 같다. 그런데 이번엔 열심히 책을 고른 덕분인지, 아니면 지금 할 수 없는 일에 대한 마음 때문이었는지 즐겁게 읽었다.

그 책들을 다 읽고 나자 다시 내가 혼자 남았다.

정말 바깥은 위험한가. 나의 바깥은 어디이고 나는 왜 안과 밖을 구분하는 선을 그었으며, 그것이 계속 좁아지는 것을 그냥 두는가. 언제까지 이럴 수 있을까.

그맘때쯤 영화제에서 연락이 왔다. 외국에서 열리는 영화제의 경우 직접 갈 수 없으니 영화를 초청해 주어 감사하다는 인사 영상을 찍어 보냈다. 카메라 앞에 서서 내 영화를 볼 사람들을 상상하니 어색함에 더해 몸이 자꾸 굳었다. 국내 영화제에서는 코로나 상황에 따라서 짧게나마 관객들을 만날 수 있다고 했다.

밖으로 전혀 나갈 수 없는 마음이었는데 영화제에는 다 가겠다고 했다. 관객들의 실물을 만날 수 있다니 마음이 이상했다. 영화는 많은 사람들이 함께 만들지만, 감독인 내가 반드시 책임져야 할 부분이 있다. 만드는 과정에서 운이 좋다고 할 만한 일들도, 감사한 일도 많았는데 나는 정말 그 책임을 제대로 졌는가, 그래서 다음을 이야기할 자격이 있는가, 그걸 내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사람들을 만나면 알 수 있을까, 그래도 그냥 내 멋대로 생각하고 계속 숨을 수는 없지 않나.

단순히 내 영화를 싫어하는 사람을 만나기 싫다는 마음과는 많이 다른 것인데 잘 설명하기가 어렵다.

고백컨대 연재를 시작할 때부터 나의 이런 상태에 대해서 쓰고 싶으면서도 정말 쓰고 싶지 않았다. 근사한 것을 만드는 근사한 사람으로 포장해서 리본까지 묶어버릴 수 있으면 참 좋을 텐데, 그건 거짓말이며 에너지가 너무 많이 드는 헛된 일이다. 여전히 나는 불안하고 그걸 제법 잘 숨기면서 살고 있다.

그때의 코로나는 여전히 우리 생활 안에 머물러 있고 나는 그때보다 조금씩 바깥으로 나가고 있다. 아직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고 그걸 진짜로 근사하게 만들어보고 싶은 마음이 나의 불안보다는 기운이 센 모양이다.

신이여, 우리를 실제와 상상의 위험에서 보호해 주소서.

내 마음이 나의 세계를 좁히지 않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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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박지완(영화감독)

단편 영화 <여고생이다>, 장편 영화 <내가 죽던 날>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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