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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신촌블루스 엄인호 "블루스는 끊기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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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를 '엉터리 기타리스트'라 부르지만, 지울 수 없는 유수한 명곡들이 그의 손끝에서 태어났으며, 많은 후배 역시 그의 뒤를 따르며 의지를 이어받고 있다. (2023.01.27)

모든 문화의 융성에는 먼저 터를 잡고 싹을 틔운 방랑자가 존재한다. 지금의 붐비는 번화가 신촌이 있기 전, 그리고 대한민국에 블루스 음악이 꽃 피우기 전인 1986년으로 시간을 잠시 돌려보자. 한 라이브 클럽에서 박인수, 이정선, 엄인호를 축으로 탄생한 모임 '신촌블루스'의 출격은 새로운 흐름을 예고했다. 당시 잘 알려지지 않은 블루스를 대중가요에 선구적으로 도입하여 큰 반향을 일으킨 그들은 '봄비', '아쉬움', '골목길' 등 수많은 히트곡과 전설적인 뮤지션을 여럿 배출하여 오늘날 가요계에 심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 기나긴 역사의 배후와 한국 블루스 명맥 최전선에 지금까지 밴드를 굳건히 지켜온 거장 엄인호가 있다. 스스로를 '엉터리 기타리스트'라 부르지만, 지울 수 없는 유수한 명곡들이 그의 손끝에서 태어났으며, 많은 후배 역시 그의 뒤를 따르며 의지를 이어받고 있다. 서울 합정역 인근의 카페에서 여전히 남다른 아우라의 그를 만나 진솔하고도 유쾌한 이야기를 나눴다. 한차례 오가는 담소에도 가요사의 윤곽이, 그리고 블루스 음악인의 긍지와 철학이 조금씩 배어나왔다.



한국 블루스의 시작은 신촌블루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아이디어는 밴드의 주축이 되었던 엄인호와 이정선의 결합이라 할 수 있는데, 돌아보면 둘의 지향이 달랐던 것으로 알고 있다.

내 블루스는 대중적인 가요 블루스다. (이)정선이 형의 표현인 '뽕 블루스'와는 조금 다른 개념이다. 나와 다르게 정선이 형은 그 전에 포크 그룹인 해바라기에서 활동을 했으니까. 1970년대에 풍선이라는 밴드에서 만나 같이 활동하고 서로 곡을 주고받는 과정에서 교감을 하게 되지 않았나 싶다.

신촌블루스가 만들어지기 전 이정선, 이광조와 함께 풍선이라는 3인조 밴드에서 활동했다. 풍선의 이름으로는 앨범 몇 장을 냈나.

한 장밖에 없다. 멤버였던 이광조가 이미 지구레코드와 단독 계약을 한 상태였고, 그때 매니저에 의해 <이정선과 풍선>이라는 이름으로 나간 1집이 끝이다. 물론 나는 큰 불만은 없다. 당시 정선이 형은 이미 <해바라기>로 널리 알려져 있었는데, 어떻게 보면 같이 해준다는 게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그리고 그때 합을 딱 맞춰보니 함께라면 뭔가 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더라. 다른 기타리스트에 비해 이정선은 굉장히 전문적인 스타일이다. 내가 대학가 디제이 출신으로 서울에 올라와 세션을 하며 여러 포크 가수를 많이 만났지만, 전부 기타 치는 걸 보면 순 아마추어에 불과했으니까. 근데 정선이 형은 달랐다. 그래서 '아, 이 사람에게 배워야겠다'고 마음먹었던 것 같다.

예를 들어 어떤 게 있었을까.

일단 악보를 보고 그리는 법이 제일 급했다. 나는 음계를 알아도 정작 내가 쓴 곡의 악보를 못 그릴 정도로 문외한이었으니. 그래서 정선이 형이 편곡할 때 녹음실에 일부러 따라가 사보를 하곤 했다. 물론 지금까지도 화성 같은 고급적인 요소는 잘 모른다.(웃음) 그저 악보를 따라 그리면서 이 소리를 내기 위해서는 어떤 식으로 그려야 하는지를 익혔으니까. 그러다 보니 정선이 형도 블루스에 관심이 있는걸 알았다. 그 당시에 특별하게 블루스 곡을 쓴 걸 본 적이 없는데, 어느 날 한영애의 '건널 수 없는 강'(1986)을 작곡한걸 보고, 진짜 깜짝 놀랐다.

신촌블루스에서 가장 알려진 곡은 '골목길'이다. 대중적으로 엄청난 히트를 했는데.

어우, 나도 놀랄 정도였다. 비하인드 스토리를 말하자면 사실 풍선 시절에 '골목길'을 내려고 했다. 

그러면 발매보다 훨씬 오래전에 만든 곡이 아닌가? 70년대 말에 썼다는 이야기인데.

그렇다. 내가 1978년 쯤 부산에 있을 때 쓴 곡이니까. 근데 당시 제작자이자 매니저가 시큰둥하게 얘기를 하더라. 자꾸 심의에 걸렸다면서 가사를 바꾸려고 하고. 그러다 김이 확 새서 발표 생각을 접어버렸다. 나중에 알고 보니 자신의 이름으로 올려서 저작권을 타려는 의도였다. 풍선이 해체하면서 설악산 나이트클럽에 일하고 있는데, 요즘 방미라는 여자 가수가 '골목길'을 부른다는 소식을 들은 거다. 작사, 작곡은 내 이름이 아닌 옛날 매니저 이름으로 되어 있었고.

그러면 처음 부른 건 방미인가.

그 전인 1982년에 윤미선이라는 가수가 먼저 불렀는데, 결국에는 스스로 도중하차 했다. 이건 내 추측이지만 그 매니저가 봤을 때 말을 고분고분하게 안 따르니 차라리 방미에게 이 곡을 줘서 나이트클럽 공연을 부릴 생각이었던 것 같다. 그때는 뭐 나중에 고치면 되지, 하는 생각으로 7년 동안 이렇다 할 얘기를 안 했지만, 후에 계약을 끝내고 올라와서 정선이 형한테 전화를 했다.

게다가 편곡은 이정선이 맡았는데.

한 번 정선이 형에게 카세트에 담아 들려준 적이 있었는데, 마침 매니저가 편곡을 맡겼으니 '엄인호한테 허락을 받았나 보다'라고 생각한 거다. 이제 이름을 바꾸려 하니 (매니저가) 불편해 하더라. 돈이 들어오는 걸 그제야 내가 알았다. 저작권 협회에 찾아가 변경을 요청했고, 내가 작곡을 했다는 사실을 말해 줄 증인 두 명이 필요하다 하여, 정선이 형과 다른 한 명에게 도움을 받은 기억이 난다. 근데 그 뒤로도 집요하게 본인 가사집 같은 책에 자기 이름으로 골목길을 싣더라. 뭐, 하튼 그런 사연이 있다.



또 다른 히트곡으로는 1집의 '아쉬움'과 2집의 '바람인가 / 빗속에서'가 있다.

'바람인가'는 풍선 때 이광조와 통기타로 연주한 곡이다. 신촌블루스에 와서는 이영훈의 '빗속에서'와 두 개를 엮은 블루스 메들리를 냈다.* '아쉬움'에도 웃기는 이야기가 있는데, 부산에 있을 때 어느 날 술을 마시다 바닷가에서 내가 너무 좋아하던 여자애에게 고백을 했는데 이 친구가 거절을 한 거다. 자기가 가만히 볼 때는 내가 어떤 업소에서 일하는 팀보다도 기타를 잘 치는데, 자기 곡도 없고 무대에 올라가면 외국 곡만 부르고, 하물며 매일 술이나 먹고 방황한다는 거다.(웃음) 부끄럽기도 해서 집에 오고 나니 좀 화가 나더라. 어떻게 그렇게 얘기하는 거지. 그래서 그날 저녁에 세 곡을 연달아 썼다.

혹시 어떤 곡인지 물어볼 수 있을까.

1집에 수록된 '아쉬움'과 풍선 때 이광조가 부른 '이별'. 그리고 솔로 앨범 1집에 있는 '78, 가을편지'다.

'아쉬움'은 본인이 처음 보컬로 데뷔한 곡이 아닌가.

원래 '아쉬움'은 내가 아닌 정서용과 박인수 선배가 듀엣으로 부를 곡이었다. 나는 내 목소리가 하도 괴상해서 가수로서는 안 되겠다고 판단했으니까. 그리고 박인수 선배는 창하던 가락이 있어서 그런지 키가 엄청 높다. 마침 그때 내가 가이드 보컬로 카세트에 녹음해 둔 게 있었는데, 지구레코드 관계자가 내 녹음본과 정서용을 한번 들어봤더니, 좋다고 하는 거다. 그래서 그날 부랴부랴 녹음실에 가 통기타와 베이스로 만들었고, 졸지에 가수로 출세하게 됐다.

1집의 발매는 지구레코드인가.

그렇다. 솔직하게 말하면 지구레코드의 그 관계자는 맘에 들지 않았다. 뭐, 본인이 공연을 잡아준 것도 아니고, 그냥 앨범 팔 생각만 하는데다 몇 장 팔렸는지 얘기도 없고...



김현식과의 연은 언제부터 이어졌는지.

그때가 1976년일 거다. 신촌에 있을 때 아는 형이 김현식을 데려온 게 만남의 시작이었다. 현식이는 부산에서 디제이를 하며 가끔 친구들 보러 서울에 올라오는 친구였는데, 뭔가 걔한테 자꾸 끌리더라. 근데 밴드라는 게 한 번 만들기가 쉽지 않다. 연습 일정도 맞춰야 하고, 나는 또 부산에 내려가야 했으니. 그러던 와중 현식이가 서라벌레코드에 계약을 한 뒤 잠깐 붕 떠있을 때 같이 팀을 하자고 꼬드겼다.

신촌블루스에서 노래 부를 때는 동아기획 소속 아니었나.

맞다. 그 때는 현식이가 동아기획에 있을 때다. 신촌블루스도 2집부터는 동아기획에서 판을 내기 시작했는데, 김영 사장이 은근히 내가 마음이 들었던 모양이다. 예전 들국화가 '행진'으로 잘 나갈 때 문화체육관에서 공연이 많이 열렸는데, 어느 날 하루는 김영 사장이 한영애를 좀 밀어주고자 내게 공연의 밴드를 모아줄 수 있냐고 물어봤다. 그래서 나 혼자 하겠다고 했더니, 어떻게 혼자 하냐고 의아해하더라. 근데 못할 게 뭐 있나.(웃음) 무대 올라가서 '건널 수 없는 강'을 혼자 통기타 치면서 소화해 버렸고, 깜짝 놀라더라. 이후 현식이를 통해 연락을 받아 동아기획 소속이 되었다.

그러면 엄인호, 이정선, 정서용, 한영애, 박인수 이 라인업이 오리지널 멤버인가.

그렇게 1집 멤버다.

그리고 2집부터 김현식이 합류했고.

김현식이 들어오면서 동시에 또 현식이가 저녁 일을 하려고 만든 밴드 봄여름가을겨울도 합류했다. 동아기획의 김영 사장이 신촌블루스에 끼워줄 수 있는지 부탁했기에 흔쾌히 허락했다. 그때 한참 공연을 많이 다닐 때니까. 그때 들어간 곡이 '또 하나의 내가 있다면'이다.

라이브 앨범의 제작 비화가 궁금하다.

외국 밴드는 이미 오래전부터 관례적으로 라이브 앨범을 내니까 우리도 하나 만드는 게 어떤지 엔지니어들에게 물어봤다. 들국화의 라이브 앨범이 우리보다 좀 먼저 나왔는데 그건 스튜디오에서 제작한 거고, 나는 홀에서 녹음을 하고 싶었다. 그렇게 롯데 잠실 홀을 빌려 신촌블루스 라이브 앨범의 녹음을 시작했다. 근데 너무 쉽게 생각한 거다. 막상 녹음을 시작했지만 공명을 전혀 잡지 못하니 이거 원 완전히 목욕탕 사운드가 나더라. 뭐, 어쩔 수 있나. 다들 라이브 경험이 전무하니까.(웃음)

2집 이후로 이정선과 헤어지게 되었는데.

여러 가지 요인이 있겠지만, 내가 생각할 때는 밴드를 둘러싼 시각이나 개념이 달랐기 때문인 것 같다. 그 당시 밴드는 거의 밤일 출신이 많았기에 밴드를 운영해보지 않은 사람은 컨트롤을 하기 힘들다. 물론, 정선이 형도 밴드 해바라기 출신이지만 거긴 일반적인 밴드와는 형태가 조금 달랐으니까. 멤버를 뽑거나 문제가 생기면 내보내는 일을 내가 하니까 밴드가 나한테 맞춰져 있던 것도 있고, 정선이 형은 연주자가 악보대로 하길 원하는 성격이었으니 자유로운 분위기에 익숙하지 않았을 거다. 정선이 형이 떠나면서 기존 멤버도 다 사라지고, 코러스 멤버였던 정경화만 남아 있었다. 그 둘이 주축이 되어 제작한 앨범이 바로 3집(1990년)이고.

정경화는 어떻게 만나게 된건가.

정서용의 후배로 소개받았다. 1, 2집의 코러스를 부탁하기 위해 데려왔는데, 목소리를 처음 듣자마자 완전히 빠져들었다. 그래서 아예 신촌블루스를 나와 함께 하자고 이야기했다. 그 후로도 같이 공연 다니면서 곡도 많이 주고 신경도 많이 썼다.

3집 수록곡인 '이별의 종착역'에 얽힌 에피소드가 있을까.

3집을 만들면서 수록곡이 좀 부족한 상황이었다. 그래서 이은미를 끌어들여 '그댄 바람에 안개로 날리고' 한 곡을 맡기고, 또 다른 한 곡은 김현식에게 부탁했다. 당시 김현식의 건강 상태가 너무 안 좋아서 과연 가능할까 반신반의했는데 흔쾌히 하겠다고 답하더라. 막상 맞는 곡이 없어서 고민하다 손시향의 '이별의 종착역'을 내가 편곡하여 맡기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글쎄, 녹음하는 날에 술에 완전히 취해 비틀거리며 자기 아들을 데리고 나타난 거다. '너 노래할 수 있겠냐'고 물어보니 '뭐, 못할 거 있나. 근데 가사가 좀 가물가물하네'라고 하더라. 그래서 가사를 직접 적어주기까지 했다.

술에 취한 상태로 부른 곡이었나.

그렇다. 근데 막상 녹음에 들어가니 혀 꼬부라지는 소리도 전혀 안 나고, 오히려 노래를 기가 막히게 해내며 단칼에 끝내더라. 그러고 나오면서 한다는 말이, '뭐, 다시 할까?' 나도 웃으며 말했다. '아니, 아주 좋아'. 아, 그리고 뒤이어 그 말을 한 기억이 난다. '근데 이 곡 가사가 어찌 좀 찝찝하다. 나 죽으라는 노래 같은데'라고.



4집에는 어떤 곡을 소개하고 싶은지.

'내 맘속에 내리는 비.' 이 곡도 원래 김현식을 줄 예정이었다. 근데 김형철이라는 친구가 먼저 와서 자기가 불러야 된다고 강하게 설득하더라. 차일피일 고민하는 중에 이미 녹음까지 마쳤길래, 그래서 그냥 그러라고 말했다. 최근에는 권인하가 스튜디오에서 부른 버전과 <화요일은 밤이 좋아>에 출연한 김태연과 윤태화가 부른 영상도 봤다.

그러면 신촌블루스 이름으로는 총 4집이 끝인가.

정규 앨범은 모두 4집. 라이브 앨범은 2장. 인터넷에는 5집이라고 나온 앨범이 있는데 그건 노동민이란 친구에게 사기 비슷하게 당한 앨범이다. 실질적으로 4집 이후의 앨범은 없다. 너무 지치기도 했고, 디스크 수술 때문에 몸도 많이 안 좋아졌고. 그때 사실상 신촌블루스는 해체했다고 생각했다.

2집의 성공으로 돈은 많이 벌었는지.

어우, 하나도 안 됐다. 이 부분은 선배인 이정선 씨에게 맡겼는데, 판 팔리는 대로 인세 받으러 가기 보다는 한 번에 받는 걸로 동의했다. 근데 이렇게 대박이 터질지 알았나. 당시 한 400만 원 받았는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너무 아쉽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언급된 유명한 곡을 제외하고, 우리 후대가 꼭 들어줬으면 하는 곡이 있다면.

아무래도 엄인호 솔로 1집 <Sings The Blues>(1990)의 '세월이 한참 흐른 뒤에'가 아닐까 싶다. 앨범 녹음이 거의 끝날 무렵에 김현식이 세상을 떠났다. 원래 반주만 있는 곡이었는데, 김현식 추모 앨범에 싣기 위해 가사를 추가해 완성한 곡이다. 1집 앨범도 꼭 들어봤으면 한다. 엄인호 특유의 진한 블루스와 사이키델릭한 스타일이 담겨 있다.



디제이 시절에는 어떤 음악을 많이 들었나.

가장 많이 들었던 건 소울 음악. 미국 멤피스의 스택스(Stax) 레코드에서 나온 앨범은 달달 외우다시피 들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블루스에 가까워진 것 같다. 뭐, 오티스 레딩(Otis Redding)이 대표적이고, 부커 티 앤 더 엠지스(Booker T. & The MG's)도 그곳 출신이고. 알버트 킹(Albert King)도 자주 들었다. 그때 들었던 음악이 지금도 몸에 남아 있는지, 여전히 곡을 쓸 때 스택스 스타일을 잘 벗어나지 못하는 것 같다.

그러면 레게 터치는 어디서 나온 건가.

디제이를 하다 우연히 자메이칸 음악을 발견했다. 커버에 마리화나 잎이 그려져 있는데 궁금하지 않나. 무엇보다 그 리듬이 너무 재밌더라. 가령 밥 말리(에릭 클랩튼)의 'I shot the sheriff' 같은 곡을 들으면서 나도 모르게 '골목길'을 쓰게 된 거다. 다만 그 당시에 레게를 아는 연주자가 하나도 없었다. 그렇다고 내가 악보를 충실하게 그리는 편도 아니었고. '장끼들' 시절에 처음으로 레게를 표방해 나오긴 했지만 그건 좀 장난 같은, 재미없는 레게였다. 그래서 '골목길'로는 정통 레게를 하고 싶었는데, 레게도 디스코도 아닌 뭔가 애매모호한 결과물이 나왔다. 리드를 치면서도 '아, 이건 내가 의도한 리듬이 아닌데. 에라 모르겠다' 이런 생각이었으니. 그렇기에 지금의 묘한 하이브리드 느낌이 나오지 않았나 싶다.

요즘 가요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지금 작곡하는 친구들은 대체로 편향된 것 같다는 느낌을 받는다. 요즘에는 더군다나 트로트와 랩으로 다 가버리니. 모든 장르가 각기 공존해야 하는데 우리나라는 유행에 쏠려 다니는 문화가 있다. 그래서 최근 후배들에게 잔소리를 많이 한다. 블루스 기타 잘 치는 건 인정해도 왜 정작 멋있는 가요를 못 만드는지. 맨날 무대에 올라가면 외국곡 카피만 하는데 그건 시간 낭비다. 나도 언제부터인가 외국곡을 연주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나 자신도 가사를 잘 모르면서 연주하고, 관객도 무슨 내용인지 모른 채 기타 치는 것만 보는 게 너무 무의미하더라.

대중을 움직이는, 사람의 감정을 품을 수 있는 한글로 된 좋은 가사가 중요하다. 과거 가요를 봐라. 김수희의 '애모'의 '그대 앞에만 서면 나는 왜 작아지는가' 같은 문장은 지금 봐도 얼마나 멋있나. 기타는 좁고 세상은 넓다. 이 조그만 나라에서 아무리 잘 쳐봐야 미국 길거리만 가봐도 선수들이 널리고 널렸다. 나조차도 겁나서 기타를 못 치겠는데.(웃음)

말한 김에 미국에 많이 다녀왔다고 들었다. 혹시 재밌는 에피소드가 있을까.

LA에 유일하게 내가 자주 가는 블루스 펍이 있다. 거기에 가면 엄청 늙은 노인 분이 완전히 낡아서 이빨도 없는 하몬드 오르간을 친다. 근데 들어보면 진짜 사운드가 죽이더라. 웬 할머니가 마이크도 없이 저 끝에서부터 노래하며 걸어 나오는데 목소리가 그렇게 쩌렁쩌렁한지. 귀가 아플 정도다. 과거 선배와 전 여자 친구랑 생일에 그 술집에 놀러 갔는데, 선배가 나를 놀라게 하려고 미리 귀띔을 한 거다. 술 마시며 조용히 음악 듣고 있는데 가만 보니 내 얘기를 하고 있었고, 뒤이어 한국에서 유명한 기타리스트라 소개받으며 무대에 올라오라는 요청을 받았다. 거기서 또 빼면 안 되지 않나. 자존심이 있지.(웃음) 기타를 한 대 빌려 올라가 세션들과 함께 무대를 마쳤다. 술김에 냅다 친 거다. 두 곡인가 치고 내려가는데 직원분이 오면서 그 얘기를 하더라. 같은 블루스인데 연주가 미국적이라기보다는 굉장히 묘한 동양적 느낌이 있다고, 다음부터는 입장료 내지 말고 들어오라면서 말이다.



좋아하는 아티스트가 있다면.

버디 가이(Buddy Guy). 야성미 넘치는 원초적인 블루스를 갖고 있지만 동양 사람이 좋아할 만한 가요적인 터치가 있다. 그 외에도 프리(Free)와 레드 제플린, 플리트우드 맥 같은 1970년대 영국 블루스를 굉장히 많이 들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신중현을 뽑고 싶다. 과거 시민회관(現세종문화회관)에서 공연할 때부터 정말 많이 배웠다.

기타는 펜타 파인가, 깁슨 파인가.

나는 펜타다. 원래 블루스 하는 애들은 거의 펜타다. 옛날에는 깁슨도 많이 썼는데 하도 무거워서 허리가 아파 이제는 못 메겠더라.

지금 신촌블루스를 지키고 있는 멤버는 누군지 소개를 부탁한다.

여성 멤버인 강성희와 재니스, 남성 멤버 김상우가 보컬을 맡고 있다. 내가 생각해도 진짜 노래를 잘하는 친구들이다. 베이스는 이정민이라는 친구가 맡고 있는데 참 잘 치고, 드럼의 김준우는 나이가 어린데, 사랑과 평화에 있다가 우리 팀으로 왔다. 안정현이라는 친구도 사랑과 평화에서 키보드를 쳤던 친구다.

앞으로 신촌블루스의 이름으로 앨범이나 공연 계획이 있는지.

지금은 앨범을 제작했다가 거덜 난 상태니까.(웃음) 뭐, 공연은 언제라도 하겠지만, 재밌는 공연을 하려면 일단 앨범이 나와야 하지 않나. 그런 면에서는 맥이 좀 빠지긴 한다. 그래도 블루스는 끊기지 않을 거다.



훗날 엄인호는 당시 신인 작곡가였던 이영훈을 이문세에게 소개 시켜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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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즘

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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