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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이승윤 "제 인생관을 소리로 담아내었습니다"

이즘 특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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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소 한산하고 여유로운 월요일 저녁의 홍대 거리와 묘하게 어울리는 이승윤은 어려운 질문에도 능글맞게, 가벼운 물음에는 또 진중하게 화답하며 본인의 뚜렷한 주관과 음악에 대한 묵은 궁금증을 해소해주었다. (2023.02.16)

오랜 무명 가수 생활을 딛고 유명 가수로 탈바꿈한 이승윤에게 <싱어게인> 우승은 한 챕터의 끝이 아닌 새로운 출발에 가깝다. 2023년 서울가요대상에서 <올해의 발견상>을 거머쥐며 전한 "물 들어올 때 노를 젓기보다는 물이 새지 않도록 배를 수리하며 지냈다"는 수상 소감처럼, 그는 자신을 둘러싼 급격한 상황 변화에 흔들리지 않고 굳건하게 자신을 담금질하여 2집 <꿈의 거처>와 함께 돌아왔다.

녹진한 삶을 언어에 풀어내는 문장가이자 사회의 단면을 꼬집는 사상가로서의 면모는 여전히 탄탄하다. 환희와 절망이 엉킨 삶을 해학적으로 짚어낸 <폐허가 된다 해도>처럼 그에게는 깊은 철학과 함께 밝은 유머도 빛나고 있었다. 다소 한산하고 여유로운 월요일 저녁의 홍대 거리와 묘하게 어울리는 이승윤은 어려운 질문에도 능글맞게, 가벼운 물음에는 또 진중하게 화답하며 본인의 뚜렷한 주관과 음악에 대한 묵은 궁금증을 해소해주었다.



정규 2집 <꿈의 거처>로 돌아왔다. 전작과 비교했을 때 전체적으로 음악이 '슬림'해졌다는 인상이 강하다.

태생이 맥시멀리스트인지라 음악적으로 늘 풍부한 소리를 지향한다. 다만 <폐허가 된다 해도>는 데드라인이 촉박했기 때문에 소리의 정돈이 다소 아쉬울 수밖에 없었다. 사운드가 잘 어우러질 수 있도록 배치하고, 고민할 시간이 충분했던 <꿈의 거처>가 더 완성도 높고 정갈한 소리를 들려주기에 그런 감상을 낳는 것 같다.

대중에게 친숙하게 다가가려는 측면에서도 '슬림'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가사 역시 무게감을 던 느낌인데 이런 의도는 없었는지.

솔직하게 말하면 더 많은 사람에게 들려주기 위해 작품을 만들지는 않고 오히려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해 내 취향을 녹여내는 데 집중했다. 신보에는 기존에 비축해둔 곡과 최근에 쓴 곡들이 섞여 있다. 이전에 만든 곡들은 좋은 문장이 되도록 오랜 퇴고를 거친 편이지만, 너무 현학적인 가사에 얽매이는 건 아닌가 싶어 새로운 트랙들은 날 것으로, 떠오르는 감정에 집중했다. 그런 이유로 얼마 전에 만든 '비싼 숙취'나 '야생마'가 더 직관적으로 다가오는 것 같다.

자기 생각을 온전히 가사에 녹여내기 위해 심혈을 기울이는 것 같다. 음악을 구성하는 요소 중 언어를 특히 날카롭게 다듬는 이유가 무엇인가.

원래부터 말에 잘 휘둘리는 사람이기도 했지만, 성장기에 난립했던 캐치프레이즈와 슬로건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당시에는 멋진 말을 들으면 무조건 수용했지만, 그 문장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난 사람들을 배격하는 행태에 어느 순간 괴리감을 느꼈다. 당연히 어떤 문장이 주는 교훈이 있고 행동 지침으로서도 의미가 있겠지만, 모든 사람이 그 뜻에 따라야 한다는 게 굉장히 폭력적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2번 트랙인 '말로장생'에 이에 대한 반성의 의미를 담기도 했다.

그렇다면 이승윤의 언어에 영향을 끼친 문학가는 누구인가.

사고 측면에서는 소설가 톨킨의 『반지의 제왕』을 인상 깊게 읽었다. 존재하지 않는 3분 내외의 시공간을 만들어내는 음악가의 입장에서 수천 년의 장대한 서사를 만들어낸 『반지의 제왕』의 장대한 상상력에 매료될 수밖에 없었다.

날카로운 텍스트에 피로해진 이승윤이 언어를 제거한 연주곡을 발표하는 날이 오지 않을까, 하는 상상도 해봤다.

언젠가 이루고 싶은 꿈이다. 가능하다면 47분 정도 길이의 연주곡을 내고 싶다.(웃음)



전작 <폐허가 된다 해도>는 이즘을 비롯한 여러 매체에서 굉장한 호평을 받았다. 평단의 반응이나 자기 음악에 대한 평가를 주의 깊게 보는 편인가.

어릴 때 들었던 CD 속에 늘 평론지가 꽂혀 있었기 때문에 비슷한 글들을 자주 읽어왔다. 평론은 '꿈보다 해몽'이라는 말처럼 창작물을 해석하여 더 많은 이야깃거리를 만들고, 그 의미를 더 빛나게 만들어준다고 생각한다. 평단에서 좋은 음악으로 봐주시는 데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특히 삶에 절망하는 인간의 고뇌, 그런데도 희망을 잃지 않는 음악인의 환희를 함께 녹여낸 음반의 독특한 정서가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내 인생관을 소리로 담는다. 늘 삶의 필연과 당위에 대해 들으며 자랐지만 다들 알다시피 이 세계는 모순으로 가득하다. 그럴수록 점차 함부로 말할 수 없는 영역이 많아졌고, 나에게 있어서 음악은 이 뒤죽박죽인 세상을 표현하는 좋은 매개체다. 그렇게 인생의 딜레마를 끊임없이 고민하며 이런저런 질문과 답을 노래 안에 산발적으로 흩어놓았다.

자신과 음악 사이의 끊임없는 감정 교류야말로 진정한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이 아닐까. 그렇다면 스스로는 <폐허가 된다 해도>를 어떻게 정의하는지도 궁금하다.

시궁창 같은 현실에 빈정거리면서도 말할 수 있는 희망을 담아 '빈정거리는 희망'으로 정의했다. 소위 '사이다 발언'으로 아주 멋진 말을 하면 받는 호응과 지지가 있고 감정을 더 비극적으로 꾸며낼 때 얻는 만족감도 물론 있다. 그러나 멋진 문장만 늘어놓을수록 진정성을 잃어버린 거짓말쟁이가 되는 것 같았다. '코미디여 오소서'가 희극적인 면과 비극적인 면을 번갈아 가며 이야기하듯이 현실적인 이상주의자가 되고 싶었다.

이렇게 깊은 가치관을 음악과 어떻게 연결하는지.

보통 작업은 가사로부터 출발한다. 어떤 한 문장에서 영감을 받기도 하고, 이야기를 듣고 나면 단면과 그 뒷면까지 보고 음악이라는 콘텐츠로 재구성한다. 1집에 수록된 '구름 한 점이나'를 예로 들면 '어물전 망신은 꼴뚜기가 다 시킨다'라는 속담을 듣고 화가 나서 그 격언을 비꼬아 노랫말을 지었다. 보통 초안은 거칠게 쓰고 다듬어가며 하나의 곡을 완성해간다.

전개되는 철학뿐만 아니라 '코미디여 오소서', '사형선고', '교재를 펼쳐봐'는 음악적 진행도 상당히 독특하다. 후반부 맹폭하는 편곡 스타일이 매력적인데 원래부터 이런 음악을 지향했는가.

이론을 먼저 배운 게 아닌지라 규칙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작곡하는 편이다. 물론, 혼자서만 만든 음악은 아니다. 보통 밴드 셋을 그려놓고 곡을 만들기 때문에 가까운 연주자 동료의 도움이 꼭 필요하고 그들이 있어야 완성된다. 음악 내외로는 밴드 오아시스에게 영향을 많이 받았고 6집 <Don't Believe The Truth>를 가장 좋아한다. 오아시스 곡을 따라 치며 기타 코드를 익혔고 사춘기 시절에는 그분들의 태도에도 매혹되었다.



이야기를 들어볼수록 오디션 프로그램의 퍼포먼스나 경쟁적인 요소와는 어울리는 면이 많지는 않은 것 같다. 어떤 계기로 <싱어게인>에 참여하게 되었는지.

방송 오디션은 음악을 그만두기로 결심한 시점까지 남겨둔 선택지였다. 말씀해주신 것처럼 내 음악을 들려주기에 적합한 방식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마지막까지 내키지는 않았지만, 해보지도 않고 후회하기보다는 한 번 도전이라도 해보고 장렬히 산화하자는 마음이었다.

막상 하고자 하는 음악을 연장하기 위해 선택한 프로그램에서 좋은 결과를 얻고 나니, 다해야 할 책임과 의무도 많았다. 그것들을 다하고 난 후에는 가수로서 현재 위치가 예전에 그렸던 모습과는 달라 허탈하기도 했다. 어떤 목표나 지향점 없이 긴 호흡으로 앨범 작업에 열중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어쨌든 우승 이후에 음반을 내며 본격적으로 산업의 영역 안으로 들어왔다. 음악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경쟁력을 갖춰야 하는 지금, 이승윤만의 강점은 무엇인가.

표준화된 가창력 평가 기준에는 맞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노래 잘하는 보컬이 필요한 것처럼, 그냥 자기 노래를 하는 목소리도 중요하다고 보고, 이 관점에서 내가 만든 노래는 내가 가장 잘한다고 생각한다. 감사하게도 많은 분들이 좋아해주셔서 내 음악 안에서는 내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게 강점인 것 같다.

<꿈의 거처>에 직접 쓴 소개 글을 인용하면 '삶을 공허에 전부 빼앗기기 전에 선수를 치고' 결국 살아남았다. 지금도 공허에 맞서 투쟁하고 있을 청년들에게 경험에서 비롯된 조언과 위로 한마디를 부탁한다.

현대 사회엔 분명 공허가 주는 매혹이 있다. 그 유혹에만 머무르지 않고 어떤 것이 되었든 집중하고 몰입하는 경험, 그리고 이를 통해 인생을 논하겠다는 마음가짐도 한 번씩은 의미 있지 않을까 싶다. 나 역시 이번 앨범에서 한계까지 쏟아보자는 의지로 달려왔고, 그러다 보니 정말 마지막일 수도 있겠다 생각하며 작업을 마쳤다. 이런 과정에서 얻어지는 힘겨움과 즐거움이 삶을 충만하게 만들어 줄 수도 있다. 물론 이건 철저히 개인적인 사례다.

언젠가 다시 이즘과 함께 인터뷰하게 될 날이 올 것 같다. 그때를 위해 지금, 이 순간 이승윤은 어떤 사람인지 대답해준다면.

그저 2집 앨범을 발매한 지 3일이 지난 사람이다. 아직 어떤 음악을 한다는 정의를 내리기는 어렵고, 음반 작업 이후에 음악적 정체성을 가다듬으며 계속해서 어떤 음악인으로 살아야 할지 계속해서 고민하고자 한다.



이승윤 2집 - 꿈의 거처
이승윤 2집 - 꿈의 거처
이승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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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윤 - 폐허가 된다 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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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즘

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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