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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의 서재

이원복의 서재 교사/교수
“책이 참 귀하고 있는 책들도 다 단순했어요. 손에 집히면 읽는 식이었지요. 세계 명작 다이제스트인 학원문고가 있었어요. 그 문고판으로 『삼총사』 『장발장』 『소공녀』 『소공자』 『암굴왕』 『철가면』 『해저 2만리』 같은 책을 다 읽었지요. 중고등학교에 다니면서는 세계문학전집을 섭렵했어요. 『데미안』 『전원교향곡』 『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 『쿼바디스』 등을 다 그때 읽었어요. 앙드레 지드와 토마스 만 책을 많이 있었지요. 그때는 입시전이 오늘날만큼 치열하지 않았으니까 고2가 다 끝나가도록 소설책을 붙들고 있을 수 있었어요.”

“『몬테크리스토 백작』도 특히 기억에 남는 소설이에요. 1830~1840년대 프랑스를 잘 들여다보게 해주는 책이에요. 대학에 다니던 청년기에는 실존주의 소설들이 깊이 다가왔어요. 루이제 린저의 『생의 한가운데』 같은 소설은 젊디젊은 한때의 감수성을 더없이 자극했지요. 어딘가 지루한 소설이었는데도, 전혜린의 감수성을 제대로 만져주는 번역으로 재탄생했어요. 중고등학교 때 읽은 『전원 교향곡』과 마찬가지로 한 시절의 내 감성을 아련하게 떠올려주게 하는 책이에요.”




책, 손에 집으면 마음껏 읽을 수 있던 시절

“『먼 나라 이웃나라』 시리즈를 마감했고, 『가로세로 세계사』 시리즈에 집중하고 있는데, 지금은 캐나다와 호주, 뉴질랜드, 그러니까 잉글랜드의 엘리자베스 2세를 국가 원수로 하는 나라들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외국 서적을 많이 참조하게 됩니다. 또 집필을 위해 외국을 많이 나가는데, 책을 보기도 하지만 부지런히 돌아다니고 현지인들과 대화도 나누고 인터넷도 많이 참조하고 하지요.”

“만화를 그리고 있지만 만화를 많이 읽는 편은 아니에요. 그중에서도 허영만 화백 작품을 좋아합니다. 대단하게 일가를 이룬 만화가라고 생각해요. 1980년대에 쓴 『오! 한강』을 보면 감탄스럽습니다. 화백 본인이 전국 방방곡곡을 밟고 다니며 취재하고 극작까지 한 『식객』도 의미가 깊은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여간해서 영화관에는 잘 가지 않는데, 집에서 영화를 보는 건 좋아해요. DVD나 유료 다운로드를 받아서 봅니다. 〈러브레터〉 같은 영화는 청춘 시절의 감정을 떠올리게 해주더군요. 여성적이고 절절하고 그 마지막 반전이란! 대체로는 범죄 수사물을 좋아해요. 가령 〈양들의 침묵〉같이 심리 묘사가 치밀하고 서스펜스가 빼어난 작품이 좋습니다. 한국 최초로 70mm 영화로 상영된 〈벤허〉, 젊은 시절 찰턴 헤스턴은 정말이지 근사했지요. 근육이고 기골이고, 아주 멋있었어요. 인터미션이 있을 만큼 긴 영화였지만 지리할 틈이 없는 영화였어요. 이 영화와 더불어 〈쿼바디스〉나 〈글래디에이터〉처럼 제대로 된 시대극도 즐겨 봅니다.”

“두 가지 기준으로 책을 고르는데, 첫 번째는 소설책이에요. 소설책이 에세이나 다른 분야의 책들보다 언제나 좋았어요. 손에 집히면 읽고, 또 읽고 했지요. 또 한 가지는 눈길을 끄는 거, 관심 끄는 거, 이거 참 재미있게 생겼다 하는 책을 집어서 틈틈이 시간 날 때마다 읽어요. 요즘 신문 서평의 영향이 크게 줄어서 안타까운 일인데, 신문을 비롯해서 서평을 보고 이 책 사서 쟁여놓아야겠다고 혹하는 일도 많아요(웃음).”




재미있고 감동적인 이야기야말로 힐링의 무기

“나는 책 정리라는 걸 몰라요. 책장에 체계를 정해놓고 일일이 분류해서 차곡차곡 정리해두지 않는다는 정도가 아니라 말 그대로 그냥 여기저기 던져두고 쌓아둬요. 그러다가 때 되면 싹 모아다가 처분하고. 책장에 빈 데가 생기면 도와주시는 분이 꽂아두고 하지요. 그래서 서재에 이름을 붙인다면 난장판 정도로 하겠어요. 저렇게 읽을거리가 많다니, 쌓아두고 흐뭇해하는 거죠.”

“젊은 친구들에게 꼭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은 책이 있다면 『레미제라블』이에요. 이 책과 크게 관련이 있지는 않지만, 요즘 친구들의 불행의 우리 젊었을 때의 불행과는 달라요. 우리 때가 절대 불행이었다면 요즘 사람들이 겪고 있는 것에는 비교 불행이라는 말을 붙이고 싶어요. 우리 때는 모조리 다 가난했고 전쟁 끝나고 모조리 다 비참했어요. 요새 세상은 보고 듣고 들어오는 그 많은 걸 자신의 처지와 항상 비교하고 살게 되지요. 우리 때의 불행과 한 가지 다른 점은 우리에게는 온 세상이 블루 오션이었다면 지금은 전부 레드 오션이 되어버린 거예요. 그런 불행이 힐링시켜주겠다는 책의 몇 마디 말로 치유가 되겠어요?”

“우리 때는 긴긴 겨울밤을 뭘로 났겠어요. 톨스토이나 빅토르 위고 같은 말 많은 작가들의 기나긴 소설을 읽으면서 났지. 그때는 PC, 스마트폰, TV 같은 게 없었으니까 그런 작가들이 말이 많아질 수밖에 없었다고(웃음).”

최근 이원복 교수는 장장 30여 년을 이어온 세계의 이웃 나라들 탐사에 마침표를 찍었다. 마지막 편은 한때 세상의 정상에 서서 호령하던 스페인의 흥망성쇠를 그린 『새로 만든 먼나라 이웃나라 15: 에스파냐』 편이다. 이원복 교수가 『먼나라 이웃나라』 시리즈를 시작하던 무렵의 한국은 개발도상국이었다. 선진국들이 부럽고, 그 나라들을 들여다보고 싶었다고 했다. 이제는 한국이 선진국이다. 이원복 교수는 이제 한국이 뒤에 따라오는 나라들을 이끄는 자세를 견지할 때라고 보고 그런 나라들의 역사를 다룬 『가로세로 세계사』 시리즈에 집중하고 있다. 이 교수는 시리즈의 마침표를 거창하게 공식화하자는 뜻은 없었지만 그런 의미에서 『먼나라 이웃나라』 시리즈를 마무리 지었다고 했고, 이제 새로운 행선지로 향해가고 있다.

글/ 문은실 사진/ 이상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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