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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의 서재

신주희의 서재 작가

책의 재미를 느낀 때는 언제부터였나요?

 

비행기가 이륙하는 짧은 순간, 실감해요. 지상에서 확실하게 멀어지고 있구나, 하고. 여행에 대한 기대보다는 일상으로부터 완벽하게 분리되고 있다는 묘한 안도감이 좋았습니다. 언젠가 책을 들었을 때, 나는 이것과 비슷한 기분이 된 적이 있어요. 언제인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도 중요한 시험 결과를 기다리던 초조한 오후였을 거예요. 애인과 이별한 밤이었을 것이고, 아무것도 완성하지 못한 무기력한 새벽이었을 거예요. 무엇인가 참을 수 없고, 안달복달했던 어느 날, 무심코 책을 폈습니다. 그러고는 곧 고민스러운 시간들과 멀찌감치 떨어져 걷기 시작했어요. 철학서나 에세이들은 전나무가 빽빽한 오솔길이었고, 소설이나 역사서 같은 책은 사나운 파도가 내려다 보이는 절벽 어디였죠. 저는 매번 다른 모습으로 책 속을 걸었어요. 걸으면서 스스로를 미워하고 파괴하려 했던 미련한 계획들을 조금씩 수정해갔습니다. 책이 신기했습니다. 시간들을 가뿐하게 뛰어넘는 그 힘에 놀랐습니다. 되돌아보니, 책이 가장 강력하게 제 매력을 발휘했던 순간은 내 인생에 비바람이 부는 순간 순간이었죠.

 

독서는 왜 중요하다고 생각하시나요?

 

독서는 우리가 옳다고 믿는 것, 그렇다고 배워온 것, 배워서 잊어버릴 수 없는 것들을 확인하는 기회를 줍니다. 그리고 그보다 조금 더 진지한 독서는 불변의 가치라고 여겼던 것들과 어깨를 부딪치며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향으로 몸을 트는 여유를 갖는 거죠.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삶을 충분히 만끽하기 위해 모험과 같은 독서를 시도를 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자신이 몸 담고 있는 분야에 대한 책은 좀 심심한 여행에 속하죠. 현미경처럼 미세하게, 혹은 망원경처럼 먼 시선으로 관심 분야를 접근해보면 어떨까요? 여기에 전혀 상관없는 분야의 책을 접목해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일 수 있어요. 책을 통해 할 수 있는 가장 불편하고 가장 난해한 경험을 해보시기를. 저는 확신해요. 책을 읽는다는 것은 모든 익숙한 것에 거리를 갖는 일이라는 걸요. 그리하여 규정되어진 모든 잣대로부터 아는 만큼 자유로워지는 거죠.


요즘 작가님의 관심사는 무엇이며 그 관심사와 관계하여 읽을 계획인 책이 있나요?

 

거창하게 말해서 나는 예술의 카테고리 안에서 뭔가를 이루고 싶어하는 사람이에요. 많은 예술가들이 스스로를 절벽에 세워두고 작업을 합니다. 그들에게는 예술이 목숨 정도는 걸어야 하는 중요한 가치이기 때문이죠. 그렇게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가벼운 몸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해요. 아무것도 잃을 것이 없는 상태가 되는 것. 빈 손으로 바닥까지 깊이 내려가 보는 것. 아무것에도 억매이지 않고 무너져보는 것. 그게 소설이든, 예술이든. 뭐든요. 그런 일련의 과정을 묶은 소설집이 가을에 나옵니다. 제목은 『모서리의 탄생』이에요. 예술이 탄생하는 어떤 지점 같은 것에 대한 생각이 담긴 제목이죠.

 

이런 관심사와 관련하여 여러 책을 읽었지만, 최근의 것을 꼽자면 페르난도 페소아의 『불안의 서』예요. 지금의 저보다 7년을 더 살다간 페소아는 사후에 이름을 알려 지금은 포르투갈 현대문학에서 가장 중요한 작가로 손꼽힙니다. 모호하고 낯선 그의 단상들을 읽으며 나는 다름아닌 오늘날 예술가들의 불안한 내면을 생생하게 들여다 본 기분이 됐습니다.

 

“그 누구도 내가 누구인지 말해주지 않으리라, 내가 누구였는지 아는 사람도 없으리라. 나는 알려지지 않은 어느 미지의 산에서 미지의 계곡으로 내려왔다.” 불안의 서』205쪽

 

예술가의 숙명같은 것, 통제 불가능한 강박같은 것, 분열과 꿈 같은 것을 손끝으로 더듬는 것 같아 오랫동안 마음에 남았던 책입니다.

 

책을 좋아하는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나요?

 

책을 경험하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어떤 책이 좋고 어떤 책이 나쁘다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책과 연결해서 어떤 경험이 가능한가, 하는 것에 집중하라고. 가능하다면 꼭 그렇게 해 보시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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