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비문장(노안 이후 비로소 보이는 문장)
잘 모르면 멈칫해야 한다. 정확하게 모르면 침묵해야 한다. 그럴 줄 몰랐다고 혀부터 차는 일은 게으르고 잔인하다. 그럴 줄 몰랐다, 말하기 전에 물어라. 단지 묻는 것만으로 양방향 지옥문이 사라진다는 데 그러지 못할 이유가 뭔가. 다이소 매장의 물건처럼 사소하지만 긴요한 지옥 방지 팁이다.
『내 마음이 지옥일 때』, 이명수 글, 247 쪽
1.
사업하는 후배가 지나는 길이라며 사무실로 찾아왔다. 차 한잔을 시켜놓고 물었다. 페이스북에서 근황을 잘 보고 있다.. 계약도 많이 따고 사무실 내부도 바꾸고 요즘 아주 전성기인 것 같구나. 후배는 말 없이 웃었다.
인테리어 사업가답게 사무실 앞 골목길에 거대한 빌더 베어를 설치하고 사무실을 다 뜯어 고치면서 거대한 어항을 들여 놓은 사진을 페북에서 본 것이 얼마 전이었다. 이름만 대면 알만한 국내외 기업의 매장 계약을 따냈다는 소식 이후의 게시물이라 나는 후배의 건승을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커피가 다 식을 무렵 그가 꺼낸 말은 의외였다. 그동안 쌓인 회사 부채가 너무 많아 사업 몇 개 따도 빚만 더 늘어난다. 하도급 쪽에 줘야 할 공사대금을 못 주니 빛 독촉은 말도 못하게 심해지고 운전을 하다가 한강에 빠지고 싶은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아침이 오는 것이 무서워 밤을 꼬박 새우기도 한다. 그래도 용기를 내서 살아보려고 최근에 사무실 분위기를 바꿨다.
그러니까 후배는 끝도 보이지 않는 암울한 지옥 속에서 제 손으로 사무실 환경을 바꾸고 어항을 설치하는 것으로 탈출의 해법을 찾으려 했던 것이다. 그것은 단순한 기분 전환을 넘어 침체된 삶의 의지를 되살리는 후배 방식의 생명굿이었고 인정머리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인생이란 놈에게 역으로 한 방을 먹이는 조롱의 의식이었을 것이다.
더불어 그런 상황이라면 나는 어떠했을까를 상상했다. 같은 사업쟁이로서 나는 후배의 입장을 너무나 잘 이해하고 또한 비슷한 경우에 처한 적이 많다. 나갈 돈은 쌓이는데 돈은 마르고 나아질 기미는 도저히 보이지 않으며 주변의 모든 것이 나를 잡아먹을 듯 몰려오는 상황.
술도 답이 아니었던 것 같다. 사람들과 어울려 히히덕 거릴 힘도 없었고, 술 맛도 없었다. 누가 위로한다며 밥을 사준다고 해도 귀찮았고 영화나 좋아하는 TV 프로그램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기도나 명상을 하기에는 생각이 너무 많았고 운동을 하는 것도 내키지 않았다. 그저 무기력증에 빠진 좀비처럼 휘적휘적 나 만의 동굴로 들어가 숨어버리는 것, 그것이 내가 취한 유일한 지옥 탈출법이었다.
2.
그랬으니 치유시 처방전이라는 표지 설명을 읽었을 때 갸우뚱했다. 치유를 공부하고 힐링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사람으로서 시가 가진 치유적 힘과 그것의 활용예를 숱하게 목격해왔고 경험했다. 당연히 시의 치유적 능력을 의심하지 않는다.
다만 내가 그러했듯, 이런 저런 자기 지옥에 빠져있는 사람들이, 시를 읽을 의욕과 에너지를 낼 수 있을까, 라는 의문을 지울 수가 없었다.
마침 『내 마음이 지옥일 때』를 만났을 때 역시 그야말로 내 상황이 지옥에 빠져있던 즈음이라, 옳거니, 내가 한 번 마루타가 되어 보자는 실험정신도 생겼다. 그리고 읽었다. 두 번. 한 번은 야금야금, 한번은 아주 단숨에 훅.
16개의 지옥 상황이 등장하고, 각 지옥 상황의 본질을 통찰하는 작가의 소견서가 처음을 채우며 그 상황을 헤쳐나올 수 있는 82개의 시가 처방되고, 그 시에 대한 짧은 처방전이 마무리를 하는 형식이다. 심리기획자 이명수가 글 수레를 끌고 심리치유자 정혜신이 뒤에서 밀었다. ‘혜신명수’가 그들이 좋아하는 프루스트의 시 구절처럼 한 사람은 밀어붙이고 한 사람은 퍼부은 결과물이다.
처음의 야금야금은 시 읽는 맛 때문이었다.
누군가를 죽이고 싶을 만큼 증오심이 생길 때, 뒤통수 맞았다고 느꼈을 때, 사랑하는 이와 벼랑 같은 이별을 해야 할 때, 내 존재 자체가 부정 당할 때, 버선목처럼 속을 뒤집어 보이고 싶을 만큼 억울할 때 작가는 과연 어떤 시를 처방했을까. 또한 처방전에는 이 시를 처방시로 고른 이유를 어떻게 설명했을까. 책의 첫 장을 넘기기 전에 생긴 두 개의 궁금함이다.
시는 읽는 사람마다 감상이 다르고 느낌이 다르고 그 다름으로 인해 시가 저마다의 무의식과 공명하며 놀라운 마술적 치유력을 발휘하듯이, 나는 같은 시를 사이에 두고 밤마다 이명수 작가와 대치했다. 내 방식대로 시의 처방전을 책의 공란에다 써보고, 이후 작가의 처방전과 비교해 보는 것은 나와 작가가 같은 시를 마주하고 그 야금야금한 밤에 살금살금한 교합을 치르는 행위였다. 책 읽는 속도는 더뎠지만 그 몰입 속에서 최소한 그 밤은 내 마음이 지옥이 아니었다.
이 칼럼을 위해 한 번 더 이 책을 읽을 때는 시가 아닌 다른 부분에서 멈칫거렸다. 16개의 지옥불에 대한 작가의 소견서. 그는 일상의 지옥을 잘 헤쳐나갈 강력한 팁으로, 여기가 어딘지, 내가 왜 여기 있게 됐는지를 아는 것이라 말했는데 그 알아차림을 상기시키는 작가의 칼은 애두르지 않고 지옥의 중심을 정확히 찌르고 후벼 판다.
여기에는 최근 몇 년 동안 힐링이라는 이름으로 훈계하고 긍정이라는 달콤한 솜사탕으로 어르고 달래는 뻔한 수작질이 없어서 좋다. 가부끼 연극만 주굴줄창 보다가 민 낯의 배우를 만난 기분이다. 상대가 이해가 안되는 짓을 했으면 왜 그랬는지 직접 물어보라고 하고 그러지 못할거라면 입을 다물라고 하는 식이다. 그것이 어떤 일이든 누군가에게 무릎을 꿇고 있다면 당장 그 일을 그만두라고 감히, 그러니까 감히, 단호하게 제 할 말을 해버린다.
그 소견에 모두 동의하지 않더라도, ‘감히’ 자기 처방을 하는 이에게 감염되는 카타르시스와 후련함, 정작 지옥에 빠진 사람들이 같은 기분을 느낄 수 있다면 그 자체가 어쩌면 감정선을 꿈틀하게 자극시키는 생명적 치유력이겠다는 생각도 한다.
여전히 나는 내 마음과 몸이 지옥에 빠졌을 때 책을 읽거나 시를 읽을 힘이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이 책을 통해 생각이 바뀐 것이 있다면, 지옥 속에서 시는 읽는 것이 아니라 먹는 것이라는 관점의 전환. 시는 위장을 채우는 따뜻한 밥처럼 정신의 허기를 채워주는 치유의 밥이겠다는 생각. 그러므로, 마음이 지옥일 때 이 책을 읽은 마루타로서 결론을 내린다면, 시(詩)가 마음 지옥을 빼져 나올 수 있는 가장 적합한 도구라는 작가의 주장은, 옳았다. 최소한 이 시를 먹어대던 그 밤과 새벽 동안에는. 이상 사용 소견서 끝.
치유의 밥상, 뜨개질, 그리고 시. ‘혜신명수’의 현장 치유는 이렇게 실제적이다.
세월호 엄마들의 뜨개 전시 <그리움을 만지다>
윤용인(<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저자, 노매드 대표이사)
<딴지일보> 편집장을 거쳐 현재 노매드 힐링트래블 대표를 맡고 있으며, 심리에세이 《어른의 발견》, 《심리학, 남자를 노크하다》, 《사장의 본심》, 《남편의 본심》, 여행서 <<시가 있는 여행> <발리> 등의 책을 썼다. 또한 주요 매체들에 ‘윤용인의 심리 사우나’, ‘아저씨 가라사대’, ‘남편들의 이구동성’ 등 주로 중년 남성들의 심리에 대해 이야기하는 칼럼을 써 왔다.
ldj1999
2017.05.30
운문에는 영 적응을 못하는 1인. ㅠㅠ
kh7419
2017.03.14
윤용인님의 독후감 읽는 도중에 책을 받았습니다.
야금야금, 그리고 단숨에 읽어보려합니다^^
오전에 주문했는데 저녁에 도착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