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과 그곳에서 꿈꾸고 욕망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초상
우리는 늘 집으로 돌아가고, 집에서 꿈을 꾸고 욕망을 키우고 자신의 이야기를 만들기 시작합니다. 집은 자신에게 깃든 사람들의 은밀한 욕망과 이야기를 투명하게 되비춥니다.
글ㆍ사진 이동진
2017.0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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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위즈덤하우스 편집부 정지연입니다.

 

오늘은 ‘집’이라는 공간을 테마로 중국 현대 작가들의 단편소설을 엮은 기획 선집, 『집과 투명』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먼저 중국 소설에 대해 여러분은 어떤 인상을 가지고 계신지 물어보고 싶습니다.


저는 예를 들자면, 다이 허우잉의 『사람아 아, 사람아』위화의 『허삼관 매혈기』 정도에 머물러 있는 것 같습니다. 문화대혁명 전후의 근대 도농 이야기들, 좀 더 현대와 가까워져도 그 혁명의 탯줄에 어쨌든 이어져 있는 듯한 이야기들 말입니다.

 

이 중국 소설집 『집과 투명』을 처음 소개받았을 때, 저는 많이 놀랐습니다. 어디에서나 시간은 흐르고, 세대가 바뀌며, 문학이 담는 풍경과 고민과 감각도 새로워진다는 그 당연한 사실이 중국에서도 물론 벌어지고 있었다는 것을 일깨워줬습니다. 그야말로 오래된 서사 전통은 강점으로 간직한 채 동시대의 풍경과 고민과 감각으로 경신한, 중국 현대 문학의 흥미진진한 변화를 목격할 수 있었습니다.

 

『집과 투명』에는 모두 여덟 명의 작가들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문화대혁명과 포스트 혁명 세대 이후 중국에서 오늘의 새로운 문학을 이끌고 있는 1970년대, 1980년대생 젊은 작가들입니다. 중국의 신세대 소설가들은 ‘집’이라는 공간을 어떻게 바라볼까요? 그들은 어떤 삶의 풍경들에 집중하고 있을까요?

 

이제 집은 우리에게 영원히 따뜻한 안식처이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그래도 집은 여전히 우리가 타인과 세상의 시선에서 놓여나 민낯을 드러낼 수 있는 아주 사적인 공간인 것만은 틀림없습니다. 우리는 늘 집으로 돌아가고, 집에서 꿈을 꾸고 욕망을 키우고 자신의 이야기를 만들기 시작합니다. 집은 자신에게 깃든 사람들의 은밀한 욕망과 이야기를 투명하게 되비춥니다. 『집과 투명』은 그런 우리 시대의 집과 그곳에서 꿈꾸고 욕망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초상을 여덟 편의 단편소설로 예리하게 포착합니다. 때론 쓸쓸하고, 때론 아이러니하고, 때론 슬프더라도, 그러나 많이 아름다운 이야기를 여러분도 만드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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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우리는 내가 용케 스스로에게 아이로 위장해 살던 시절 테네시 녹스빌의 여름 저녁을 이야기하려 한다. 다소 잡다하게 뒤섞인 종류의 동네였던 그곳은 중하 계층이 대부분이었고 양쪽으로 한둘이 따로 툭 튀어나와 있었다. 녹스빌도 마찬가지였다. 1890년대말과 1900년대 초반에 우아한 무늬목으로 지은 중간 크기 집들에는 좁은 앞뜰과 옆 뜰, 더 널찍한 뒤뜰이 있었다. 뜰에는 나무들이 있고 현관 앞 베란다가 있었다. 나무들은 침엽수들, 포플러나무, 튤립나무, 미루나무들이었다. 한두 집에 담장이 있긴 했지만 대개 집집마다 뜰은 서로 이어져 있었고 간혹 낮은 산울타리가 있었지만 제구실을 하지는 못했다. 어른들끼리 친하게 지내는 경우는 드물었고 그다지 가난하지 않았기에 서로 친밀하게 알고지낼 일도 없었다. 하지만 모두 고개를 끄덕여 인사를 나누었으며 대수롭지 않게 짧은 대화를, 지극히 일반적이거나 지극히 특별한 일을 주제로 나누기도 했다. 옆집 이웃끼리는 우연히 마주치면 꽤 이야기를 나누는 일이 많았지만 서로 집으로 찾아가지는 않았다. 남자들은 대개 작은 회사의 회사원들이었고, 한둘은 볼잘것없는 경영인 한둘은 육체노동자, 대부분은 사무직 종사자였으며 거의 서른 살에서 마흔다섯 살 사이였다.

 

- 『천천히, 스미는』 (봄날의 책)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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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과 투명 #집 #중국 소설 #단편소설
1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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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sunhoy

2017.03.25


이슬/정현종


강물을 보세요 우리들의 피를
바람을 보세요 우리의 숨결을
흙을 보세요 우리들의 살을.


구름을 보세요 우리의 철학을
나무를 보세요 우리들의 시를
새들을 보세요 우리들의 꿈을.


아, 곤충들을 보세요 우리의 외로움을
지평선을 보세요 우리의 그리움을
꽃들의 삼매를 우리의 기쁨을.


어디로 가시나요 누구의 몸 속으로
가슴도 두근두근 누구의 숨 속으로
열리네 저 길, 저 길의 무한 -


나무는 구름을 낳고 구름은
강물을 낳고 강물은 새들을 낳고
새들은 바람을 낳고 바람은
나무를 낳고……


열리네 서늘하고 푸른 그 길
취하네 어지럽네 그 길의 휘몰이
그 숨길 그 물길 한 줄기 혈관……


그 길 크나큰 거미줄
거기 열매 열은 한 방울 이슬 -
(진공이 묘유로 가네)


태양을 삼킨 이슬 만유의
바람이 굴려 만든 이슬 만유의
번개를 구워먹은 이슬 만유의
한 방울로 모인 만유의 즙 -
천둥과 잠을 자 천둥을 밴
이슬, 해왕성 명왕성의 거울
이슬, 벌레들의 내장을 지나 새들의
목소리에 굴러 마침내
풀잎에 맺힌 이슬……

.
.

그러게요
어디에서나 시간은 흐르네요^^..


문학이 담는 풍경 속에서
서로 이어져 있었고
낮은 이야기를 만들기 시작합니다


집중하고 가까워져도 귀를 기울이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ㅋ
([허삼관 매혈기] 정말 좋은 소설입니다^^)


정답을 알 수 없기에 간직한 사람과 따뜻한 집은
천천히 스미는 세상을 일깨워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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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진

어찌어찌 하다보니 ‘신문사 기자’ 생활을 십 수년간 했고, 또 어찌어찌 하다보니 ‘영화평론가’로 불리게 됐다. 영화를 너무나 좋아했지만 한 번도 꿈꾸진 않았던 ‘영화 전문가’가 됐고, 글쓰기에 대한 절망의 끝에서 ‘글쟁이’가 됐다. 꿈이 없었다기보다는 꿈을 지탱할 만한 의지가 없었다. 그리고 이제, 삶에서 꿈이 그렇게 중요한가라고 되물으며 변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