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은 진실의 적이라오
세상은 그가 미쳤다고 말했다. 그는 세상이 미쳤다고 말했다. 세상은 그를 알론조라 부르고, 망상에 사로잡힌 미친 노인이라 여긴다. 그는 자신을 돈키호테라 말하고, 정의를 수호하는 기사라고 생각한다. 전자가 지극한 현실주의자라면 후자는 지독한 이상주의자다. 그들은 서로 다른 것을 보고 서로 다른 것을 믿는다. 사람들의 눈에는 별다를 것 없는 풍차이지만, 돈키호테에게는 괴수 거인이다. 그의 시선을 통과하면 허름한 여관이 영주의 성이 되고, 창녀 알돈자는 고귀한 여인 둘시네아로 다시 태어난다. 세상 사람들이 보이는 그대로를 믿을 때, 돈키호테는 자신이 꿈꾸는 바를 믿는다. 누구의 판단이 옳은가 묻는 것은 의미가 없다. 존재의 의미란 그것을 바라보는 주체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 그 사실만이 중요할 뿐.
뮤지컬 <맨오브라만차> 에는 돈키호테를 꼭 빼닮은 또 한 명의 인물이 등장한다. 소설 『돈키호테』의 작가 미겔 데 세르반테스다. 『돈키호테』를 뮤지컬로 재구성한 데일 와써맨은 세르반테스가 곧 돈키호테였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 작품은 그 자신이 돈키호테였던 세르반테스의 불굴의 영혼에 존경을 표하는 나의 방식이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와써맨은 세르반테스를 화자로 등장시켜, 그가 감옥 안에서 자신이 쓴 소설을 들려주는 이야기를 만들었다. 그 결과 <맨오브라만차> 는 극중극 형식을 빌려 세르반테스와 돈키호테, 하나 같은 두 사람의 삶을 담아내게 됐다.
세르반테스는 신성모독죄로 지하 감옥에 수감된다. ‘감히’ 교회에 세금을 징수하려 했기 때문이다. 세르반테스에게는 정의를 실현하는 일이었으나, 종교를 등에 업고 권력을 쥔 자들에게는 결코 용서받을 수 없는 죄였다. 감옥 안의 죄수들도 세르반테스를 둘러싸고 비웃는다. 어찌 교회에 대적할 생각을 할 수 있단 말인가, 그의 어리석음을 꼬집는다. 종교재판에 앞서 죄수들의 모의재판에 회부된 세르반테스는 변론을 위해 ‘돈키호테’를 공연한다. 자신을 ‘고지식한 이상주의자’라 일컫는 이들 앞에서 돈키호테의 입을 통해 이야기한다. “세상에서 가장 미친 짓은 현실에 안주하고 꿈을 포기하는 것”이라고. “현실은 진실의 적”이라고.
<맨오브라만차>를 놓칠 수 없는 이유
‘인류의 책’으로 일컬어지며 400년 동안 사랑받은 소설 『돈키호테』, 그를 기반으로 만들어져 50년 넘게 최고의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는 뮤지컬 <맨오브라만차> . 두 이야기가 변함없이 환영받는 이유는 언제나 우리 가슴을 설레게 하기 때문이다. “그 꿈, 이룰 수 없어도 / 싸움, 이길 수 없어도 / 슬픔, 견딜 수 없다 해도 / 길은 험하고 험해도” 이것이 나의 가는 길이라 말하는 돈키호테를 보면서 꿈과 희망의 의미를 되새기게 되는 까닭이다. 사람들이 미쳤다고 손가락질해도, 세상이 ‘이룰 수 없는 꿈’이라며 막아서도, 돈키호테가 모험을 멈추지 않은 이유는 그에게 꿈과 희망이 있었기 때문이다.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무릎이 꺾이면서도 꿋꿋하게 걸어가야하는 우리는, 그래서 <맨오브라만차> 를 찾는다.
이 작품을 놓칠 수 없는 이유, 너무 많다. 어느 하나 좋지 않은 넘버가 없고, 미치도록 사랑스러운 인물들이 등장하고, 경쾌한 리듬으로 원작을 재구성한데다가(2시간 50분에 이르는 상연 시간이 조금도 지루하지 않다), 심지어 오만석과 홍광호가 돈키호테를 연기한다. 거두절미하고, 뮤지컬 <맨오브라만차> 는 6월 3일까지 블루스퀘어 인터파크홀에서 상연된다. 한 번의 만남으로도 오래도록 그리워하게 될 작품이다.
임나리
그저 우리 사는 이야기면 족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