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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아웃] 멀게 느껴지는 보편적 이야기 (G. 안윤 소설가)

책읽아웃 - 황정은의 야심한 책 (325회) 『남겨진 이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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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가 먼 데서부터 와서 점점 우리에게 가까워지는 것이 결국 한 사람을 알아가는 과정과도 닮아 있을 것 같아요. 옆에 있지만 멀 수 있잖아요. (2023.01.26)


나는 과거의 기억을 복원하고 싶지는 않다. 그것이 가능하다고 믿지도 않는다. 지금의 나를 있게 한 나에 관해 말하고 싶다. 의미에 관해 말하고 싶다. 사랑의 의미뿐 아니라 미움, 원망, 후회의 의미까지도. 지난날이 현재의 암시였다는 것을 나는 온몸으로 알아차리고 있다. 그 나날이 결코 잘못된 것만은 아니었다는 증거가 바로 지금의 나다. 나는 나를 다시 체험하고 싶다. 나를 줍고 싶다. 

안윤 작가가 쓴 소설 『남겨진 이름들』에서 읽었습니다. 사람의 마음에 신성과 믿음과 사랑과 헌신이 있음을 증명하는 소설 『남겨진 이름들』을 쓴 작가를 만나보겠습니다. <황정은의 야심한책>, 시작합니다.



<인터뷰 - 안윤 소설가 편>

오늘은 인간이 가진 아름다움에 관해 삶의 미지에 관해 쓰고 싶다고 말하는 소설가를 모셨습니다. 소설집 『방어가 제철』에 이어서 장편 소설 『남겨진 이름들』을 쓴 안윤 작가님입니다.

황정은 : 『남겨진 이름들』은 2021년 1월에 '제3회 박상륭상'을 수상한 소설이죠. 하지만 2년이 지나서야 2022년 12월에 출간이 되었는데요. 그 사이에 퀴어 앤솔로지(『팔꿈치를 주세요』) 작업을 하셨고, 또 단편 세 편을 모은 소설집 『방어가 제철』도 내셨고, 독립 출판으로 수필집(『수기水記』, 『물의 기록』)도 내셨습니다. 2년 동안 정말 부지런히 작업을 하신 셈인데, 『남겨진 이름들』은 어쩌다 이렇게 늦게 나왔습니까?

안윤 : 사연이 긴데... 일단은 2021년 1월 말 정도에 수상 소식이 있었는데, 시상식이 4월 예정이었어요. 그런데 그때 코로나가 심해지는 상황이어서 미뤄지다가 결국 11월에 시상식을 했거든요. 어쨌든 박상륭상 위원회에서는 출판사랑 원고를 연계하지 않고 있었고, 아마 그것을 계속 견지하실 걸로 생각이 되고, 그래서 제가 투고를 해야 되는 상황이거나 먼저 출판사에서 연락을 주셔야 되는 상황이었는데, 연락이 없었어요.(웃음) 그래서 시상식도 기다리면서 천천히 하다 보니까 그 해 말에 계약을 하게 되고, 그런 상황들이 있었어요.

황정은 : 『남겨진 이름들』은 2016년부터 쓰기 시작을 하셔서 '박상륭상' 공모에 응모를 하신 거잖아요. 그러면 2019년 무렵에는 어떻게든 마무리를 해서 투고를 하신 것일 텐데, 그 기간이 3~4년 정도 쓰신 거잖아요. 어떤 마음으로 쓰셨어요?

안윤 : 2016년에 다니던 회사 그만두고 뭔가를 준비했어요. TMI일 수는 있겠지만 사회 복지사 자격증을 땄는데, 그때도 이미 나이가 적지 않았어요. 그래서 새로운 직장의 길로 가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었는데, 2016년 그때쯤이었어요. 이력서도 넣고 하면서 지냈었는데, 그 여름이 굉장히 더웠어요. 집에서 땀을 삐질삐질 흘리고 있다가 나와서 카페에 앉아 있는데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내 현재, 미래가 불안한데 이런 걸 내가 정말 많이 겪었지 않나?' 

그런 시기들을 생각하면서 거슬러 올라가다 보니까, 2006년에 제가 키르기스스탄을 갔었는데 그때도 굉장히 불안하고 앞이 보이지 않는 상태였었거든요. 그런 시간들을 생각하다가 '내가 그 시간을 그냥 보내버렸구나. 뭔가 내 안에서 잘 돌아보지는 못한 것 같다. 그냥 거기 가서 사는 것에 집중했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의 이야기들을 좀 기억하고 싶고, 그때의 내 마음을 좀 기억하고 싶고 '그런 걸 한번 써볼까?' 계속 그런 마음을 품고 있었더니, 어떤 목소리 같은 것들이 찾아왔다고 하면... 좀 이상하게 들리려나요.(웃음) 

황정은 : 아뇨, 그런 순간이 분명히 있죠.

안윤 : 네, 그런 것들이 찾아와서 메모를 하기 시작했고, 그게 어떤 여자의 목소리라고 생각을 했어요. 

황정은 : '나지라'였나요?

안윤 : 네, 나지라의 목소리라고 생각을 했고, 그렇게 시작이 돼서 2016년에 열심히 쓰다가 2017년에 취업을 하면서 강도 높은 노동을 하다가 거의 2년을 일기조차 쓰지 못했어요. 그 기간 동안에. 그리고 (회사를) 관두고 2019년에 여름부터 쓰기 시작해서 마무리가 된 것 같아요. 그 중간에 쓰기도 하고 고치기도 했지만, 쓰지 못했던 2년 동안에는 거의 (진도를) 나가지 못하는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황정은 : 키르기스스탄에 다녀왔다고 하셨는데요. 언제 어쩌다가 가셨습니까?

안윤 : 2006년에서 2008년, 그 2년 정도인데요. 『남겨진 이름들』 서문에 나오는 화자 '윤'의 경험이 거의 일치해요. 체류한 기간이라든지 장소라든지 그런 부분들은 일치하고요. 그때 제가 광고 대행사를 다니고 있었는데요. 창문이 없는 사무실에서 일을 했어요. 신문 광고 같은 걸 하는 회사였는데 매일 마감이 있었어요. 작은 회사였기 때문에 디자인을 하면서 카피라이팅을 해야 했는데, 그 삶을 살다 보니까 어느 순간 몸에 두드러기 같은 것이 나고, 얼굴이 뒤집어지고, 잠을 잘 못 자고, 위장병이 생기고 그런 상황이 와서 '나는 살아야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그때도 많은 준비를 해서 그 일을 하기 시작했던 건데 '내가 이걸 놓아야 하나? 나는 너무 유약한가?' 이런 갈등 속에서 어쨌든 살아야 된다는 느낌이 있어서 일단 일을 관두고, 키르기스스탄에 저희 어머니가 아는 지인 분이 살고 계셨어요. 그래서 가볍게 바람을 쐬러 가는 느낌으로 "가보지 않겠니?"라는 제안을 엄마가 먼저 주셨어요. 딸이 너무 상태가 안 좋아 보여서 그러셨을 것 같아요. 그곳이 그때는 더 물가가 좀 저렴했고, 한국 사람들이 거의 가지 않는 곳이었기 때문에 제가 쥐고 있는 돈으로 충분히 출발할 수 있어서, 그렇게 가게 됐죠. 아무 목적도 목표도 없이.

황정은 : 『남겨진 이름들』의 배경이 키르기스스탄이죠. 그리고 비슈케크라는 도시에서 온 우편물로 이야기가 시작이 되는데요. 작가님이 경험한 장소라는 이유도 있었을 테지만, 이 소설의 배경이 꼭 거기여야 할 이유가 있었을 것 같습니다. 어떤가요?

안윤 : 제가 지금 말씀드리는 건 이후의 제 해석이기도 하고 이후에 제가 깨달은 것일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잘 모르는 곳, 먼 곳, 낯선 곳이어야만 했었던 것 같아요. 그런 곳에서 온 아주 멀게 느껴지는 되게 보편적인 이야기이기를 바랐던 것도 있고요. 개인적인 욕심은 그 시절의 나를 조금 녹여내고 싶다는 게 있었어요. 제가 그 시절에 가졌던 감정을 한 번 다시 기억하고 싶은 그런 욕심. 그리고 이 이야기가 먼 데서부터 와서 점점 우리에게 가까워지는 것이 결국 한 사람을 알아가는 과정과도 닮아 있을 것 같아요. 옆에 있지만 멀 수 있잖아요. 그런 한 사람에 대한 거리라고 생각을 해서 멀어야만 하고 낯설어야만 한다는 생각도 있었던 것 같아요.

황정은 : 원래 제목이 『나지라, 쿠르만, 이카티리나』였죠. 제목을 왜 바꾸셨어요?

안윤 : 저는 처음 쓸 때부터 『나지라, 쿠르만, 이카티리나』여야 한다고 생각을 했는데, 그리고 소설을 마무리하고 책이 되는 과정 속에서도 상당 시간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을 했는데, 출판사 편집자님과 다른 분들의 다양한 의견도 있었고, 이것이 좀 더 많이 읽히길 바라는 마음들도 있으셨고요.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저도 어느 정도는 수용을 했고, 그래서 그렇게 되었죠. 『남겨진 이름들』도 제가 차후에 생각해놨던 제목들 중에 하나였기 때문에.

황정은 : 소설을 아직 읽지 않은 분들을 위해서 내용을 약간 소개를 해보겠습니다. 『남겨진 이름들』은 키르기스스탄 비슈케크에 머물다가 한국으로 돌아온 윤이 국제 우편물을 받으면서 시작이 됩니다. 같은 유학생이었던 '우징'이 보낸 우편물인데요. 윤이 머물던 하숙집 할머니 '라리사'가 유품으로 남긴 꾸러미를 윤에게 보내준 거죠. 

이 소포의 내용물은 라리사의 수양딸인 '나지라 하미돕나 유수포바'가 남긴 기록물입니다. 라리사 할머니는 유언으로 그 노트들을 윤에게 전달을 하면서 '여기 기록된 이야기를 위해서 네가 뭐든 해주었으면 한다'는 바람을 남기고요. 그래서 윤은 나지라의 기록을 번역을 합니다. 이 과정이 소설의 서문처럼 실려 있는 첫 번째 글의 내용이기도 한 거죠. 소설의 나머지 내용은 나지라의 이야기인데요. 이런 형식을 액자 형식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여러 이야기 형식 중에 왜 이 형식을 선택해 쓰셨어요?

안윤 : 글 쓰는 과정과도 좀 관련이 있을 것 같은데요. 아까 말씀드렸던 것처럼 나지라의 목소리가 조금씩 들렸는데, 그래서 사실은 1부와 2부를 먼저 썼어요. 서문은 없었고요. 그런데 1부와 2부를 쓰고 거의 2년의 공백이 있고, 3부를 다시 시작하려고 할 때 서문에 나오는 윤의 고민들이 저에게 똑같이 들었어요. '내가 이 이야기를 왜 계속 하려고 하는가, 무엇을 말하고 싶은가'라는. 그런데 그 다리가 되는 어떤 지점이 필요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요. 그 다리가 지금의 나의 모습으로 투영되면 좋겠다, 해서 서문을 썼어요. 그리고 3부를 쓰고 서문을 지웠다가 뒤로 보냈다가 다시 앞에 붙이는 과정이 있었어요.(웃음)

황정은 : 독자가 결국은 '윤'이라는 인물의 번역을 통해서 나지라의 이야기를 읽게 되는 거잖아요. 이 이야기가 사실은 윤만이 아니라 여러 매개를 통해서 전달이 된단 말이죠. 예를 들어서 나지라가 기록을 남기고 그것이 라리사에게 온 다음 라리사가 우징에게 보내고, 우징에게 도착한 다음에는 또 윤에게 보내집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그 이야기가 독자에게 전달이 되는 거잖아요. 전달이란 면에서는 이 형식이 대단히 효과가 있었다는 생각이 들고요. 

또, 이렇게 독자에게 도착한 나지라의 이야기가 나지라 본인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카탸'와 '쿠르만'의 이야기이기도 하잖아요. 그리고 이 소설의 원래 제목인 『나지라, 쿠르만, 이카티리나』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저는 읽으면서 이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필요했던 이유가 궁금하기도 했어요. 이야기가 이렇게 많은 사람들의 손을 거쳐야 했던 이유가 궁금합니다.

안윤 : 쓸 때는 그게 많은 사람들이라고 생각을 잘 못했던 것 같아요. 왜냐하면 먼 곳에 있는 이야기가 윤에게 도달하기까지의 과정이 그렇게 간단하고 쉽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있었고. 그리고 이미 윤은 비슈케크를 떠나온 상황이고 어느 정도 멀어져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그런 과정들이 자연스럽게 나와야 하지 않나, 라고 생각을 했고요.

황정은 : (우편물이) 반송이 되기도 하지 않습니까?

안윤 : 네. 어려움이 있어야만 한다는 제 생각이 있었어요. 타인의 이야기이기도 하고 낯선 이야기이기도 하고. 그리고 어떻게 보면 나지라가 혼자 갖고만 있었으면 전해지지 않을 이야기를 라리사 아주머니에게 줬고, 라리사 아주머니가 나지라가 떠난 이후의 어떤 사랑, 잘 보내주고 싶은 마음으로 또 이것을 누군가에게 전달하려고 했던 보이지 않는 마음들이 연결되어서 이야기가 여기까지 도착했고, 그것을 독자 분들에게 들려드린다, 그런 과정을 쓰고 싶었던 것 같아요.



*안윤

2021년 장편소설 『남겨진 이름들』로 제3회 박상륭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방어가 제철』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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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겨진 이름들
남겨진 이름들
안윤 저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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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임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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