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선미 작가 "실패는 특별한 일이 아니었어요"
소심하고 조용한 아이 '영재'와 호기심도 많고 겁도 많은 예비 안내견 '바론'. 동화 『강아지 걸음으로』는 이들이 함께 자라는 이야기다.
글ㆍ사진 임나리
2023.0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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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심하고 조용한 아이 '영재'와 호기심도 많고 겁도 많은 예비 안내견 '바론'. 동화 『강아지 걸음으로』는 이들이 함께 자라는 이야기다. 황선미 작가는 이번 작품을 쓰면서 힘든 시간을 건너왔다고 말했다. 나 아닌 다른 이의 보폭에 맞춰서 걷는 삶을 그리면서. 그리고 생각했다.

'다른 길도 있는 거지. 정답이 어디 하나뿐이겠어?'



실패와 다른 길

이번 작품은 '감동적인 개의 행동에서 시작된 이야기'라고 하셨어요. 강의실에서 안내견을 만난 경험이 있으시다고요.

2010년대 후반이었는데 제 강의를 듣는 시각장애인 친구가 있었어요. 안내견을 데리고 수업에 들어왔는데, 처음에는 큰 개가 강의실에 들어오니까 무섭고 당황스럽더라고요. 주황색 조끼를 입은 안내견을 처음 본 건 아니었어요. 일상에서 봤죠. 그런데 그건 그냥 풍경이에요. 특별히 내가 신경 쓸 일이 생기지 않으면 안내견이나 그 개를 데리고 다니는 장애인은 그냥 풍경이거든요. 평면적이죠. 그런데 그들이 내 수업에 들어왔고, 저는 큰 개를 보고 겁도 조금 났고 시각장애인 친구가 수업을 잘 들을 수 있을까 걱정도 됐어요. 그 친구는 항상 맨 앞줄에 앉았는데, 안내견이 책상 옆에 엎드려서 자리를 잡고 수업이 끝날 때까지 한 번도 안 움직이더라고요. 너무 신기했어요. 그리고 제가 수업을 끝내면서 '다음 시간에는...'이라는 말만 하면 기지개를 켜고 일어나는 거예요.

영특하네요.(웃음)

진짜 똑똑하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 일을 소재로 동화를 써야겠다는 생각은 못했는데, 잔상이 되게 오래 남았어요. 안내견을 데리고 왔던 학생은 제가 말하는 걸 다 자판으로 쳤는데, 아마 그 자판에 점자가 있었던 것 같아요. 그렇게 수업 내용을 다 기록했는데, 그게 굉장히 인상적인 장면으로 남아 있었어요. 그러다가 시간이 지나서 잊어버렸는데, 어떤 모임에서 '퍼피 워커'라는 말을 처음 듣게 됐어요. 자신이 퍼피 워커 경험이 있다고 이야기를 들려주더라고요. 나중에 두 이야기를 가지고 작품을 구상하면서 퍼피 워커 사례자들의 기록을 알아보니까 (안내견 테스트에) 성공한 사례보다 실패한 사례가 많더라고요. 그래서 '실패가 특별한 일이 아니구나'라는 걸 알게 됐고 '그럼 실패한 애들은 어떻게 될까' 굉장히 궁금했죠.

영재에게 '큰일'이 벌어지죠. 체험 학습 때 다른 친구들이 보는 앞에서 흙탕물에 빠져요.

큰일이죠. 웃음거리가 된 거잖아요. 모두가 나를 보고 웃었다는 것만으로도 굴욕적인데, 그게 자기가 실수한 거면 너스레라도 떨면서 아무렇지 않은 척 할 수 있겠지만, 의도적이었든 실수였든 누군가 나를 밀었던 거잖아요. '누군가에 의해서' 일어난 일이었기 때문에 영재한테는 화가 날 일인 거죠.

나중에 영재는 '누가 날 밀었던 건지' 찾아 나섭니다. 그리고 사과를 요구하려고 해요. 어디에서 그런 용기가 생겨난 걸까요?

내면이 작동하기 시작하는 감정은 누구에게나 있다고 생각해요. 표현하느냐 못하느냐에 달린 것일 뿐. 그런데 변화라고 하는 것은 비슷한 일상이 유지되는 상황에서는 생길 수 없어요. 어제와 다른 오늘, 일상이 깨지는 순간에 나올 수밖에 없거든요. 영재한테는 바론이 위험해졌다는 것에 대한 분노가 작동의 원리였던 거예요. 자기 혼자만의 일이었다면 똑같은 방식으로 참았을 텐데, 이제는 전과는 다른 행동을 하게 되는 거죠. 예전에 참았던 일에 대해서도 '누가 그랬는지 나한테 사과를 해야 돼'라고 생각하게 된 거고요. 우리는 (무언가가) 건드리지 않으면 내 문제는 참을 수 있어요. 그게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상황까지 갈 때는, 거기에 더해서 뭐가 더 생기는 거죠.

'퍼피 워킹'을 직역하면 '강아지 걸음'이 됩니다. 책의 제목이 『강아지 걸음으로』인데요. 강아지 걸음으로 사는 삶이란 어떤 걸까요?

바론의 입장에서만 생각해 보면, 자기 보폭보다는 자기가 도와줘야 되는 사람의 보폭을 따라서 걷는 일이거든요. 바론은 자기 마음대로 뛰는 것도 아니고 짖는 것도 아니고, 철저하게 자기가 케어해야 되는 장애인에게 맞춰서 걷고 행동하도록 교육 받는 거예요. 우리는 다른 사람을 볼 때 자기 기준으로 판단을 하잖아요. 자기의 상식에서 벗어나거나 자기가 가진 기준에 맞지 않는 사람을 보면 불편해하죠. 그럴 때 즉각적인 반응은 불편함을 보여주거나 공격하는 거예요. 우리에게는 '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기', '그 사람에게 뭐가 필요한지, 왜 저러는지 이해하는 시간을 갖기'의 훈련이 필요해요. 사회적으로 그런 교육이 더딘 거예요. '강아지 걸음'이라는 건 그런 거죠. 내가 갖고 있는 판단 기준으로 대응하기보다는 상대방의 입장에서 바라보고 생각하는 것. 결국 배려죠.



숙제처럼 느껴지는 이야기

2017년에 첫 에세이 『가끔, 오늘이 참 놀라워서』가 나왔고, 2년 후에 두 번째 에세이 『익숙한 길의 왼쪽』이 출간됐습니다. 등단 후 20년 넘도록 수필집을 안 내셨던 터라, 의외의 소식이었습니다.

사실 에세이집을 낼 계획은 전혀 없었어요. 블로그 같은 데에 비공개로 글을 많이 쓰는데, 짧게짧게 그날 있었던 일을 스케치처럼 적어놔요. 그런데 몇 년이 지나니까 너무 많은 거예요. 제 딴에는 그걸 적으면서 언젠가는 작품의 소재가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너무 어설프게 저장을 해놔서 나중에 찾지를 못하는 거예요. 그래서 '이러면 안 되겠다, 한 번은 털어야겠다' 생각했어요. 머릿속에 넣어둔 이야기가 너무 많았던 거죠. 몇 년에 걸쳐서 모아놓은 개인적인 기록을 꺼냈다고 할까요. 가끔 청탁 받아서 쓴 에세이도 있었고, 그것들을 다 모아서 한번 내보자고 생각했어요. 두 번째 책에 실린 글들은 짧은 글쓰기 모임에서 썼던 것들이에요. 일주일에 한 번씩 모여서 5~10매짜리 짧은 글을 썼는데, 저도 항상 같이 썼지만 다른 사람들 글에 코멘트만 해주고 제 글을 오픈을 안 했었어요. 그 글들도 한번 털고 가자고 생각했어요.

에세이는 '나'를 감출 수 없잖아요. 책이 출간되고 나서 걱정도 하셨어요?

별로 안 했던 것 같아요. 그냥 '내가 가지고 있는 이 많은 글들이 무겁다, 되게 무겁다'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엑시트』에서 들려주셨던 입양아 이야기가 다시 이어질 거라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엑시트』에 등장했던 아이의 이야기를 다루는 건 아니고요. 제가 작가로 살아가면서 크게 중요하게 생각하는 테마가 두 가지예요. 북한 이탈 주민의 자녀들, 그리고 입양 간 아이들의 이야기예요. 이상하게, 일부러 찾지 않아도 굉장히 오랫동안 많은 사례를 접했어요. 그래서 숙제처럼 느껴지는 게 있어요. 진짜 쓰게 될지, 언제 쓰게 될지, 그건 잘 모르지만요. 작가들은 어떤 게 요즘 유행한다고 해서 쓰기보다는, 자기를 괴롭히는 문제들을 넘어가야 되기 때문에 쓰는 일도 있거든요.



쓰지 않으면 넘어갈 수가 없나요?

그냥 괴로우니까요.

『마당을 나온 암탉』 20주년 특별판이 출간됐을 때 <채널예스>와 인터뷰를 하셨는데요. 20년 전을 돌아보면서 "참 순수하게 창작했던 시간"이라고 말씀하셨어요. 가끔 그때가 그리우세요?

학교에 있다 보니까 오롯이 창작에 즐겁게 매달릴 수 있는 시간이 물리적으로 부족한 거죠. 글을 쓸 수 있는 시간이 방학 때로 한정이 돼요. 그러니까 자신을 막 몰아붙이는 거죠. 방학이 끝나기 전에 꼭 써야 된다는 강박이 있어요. 굉장히 자기를 닦달하는 기분이 계속 들어요. 글을 쓴다는 건 쓰기 전에 그 속에 충분히 들어갈 수도 있어야 되고, 그게 내 현실이 될 수도 있어야 되고, 충분히 녹아들 시간 자체가 필요한 건데, 학교에 있다 보면 그게 좀 어려워요. 충분히 즐길 시간이 없다는 거죠. 굉장히 고약한 이야기를 쓰더라도 작가는 즐기고 있거든요. 그게 글을 쓴다는 건데, 그런 시간이 없어져버린 것 같아요.

10년, 20년 뒤에 지금을 떠올리면 '너무 바쁘게 살았어'라고 생각되실까요?

언제나 바쁘게 살았어요. 언제나 긴장하고 언제나 바쁘게 살고. 마감을 꼭 지키려고 애쓰고. 처음부터 습관이 그렇게 들어서 그냥 주변 사람들은 저를 '그냥 바쁜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우리 아들도 '엄마는 바쁜 사람' 이렇게 생각하고. 그건 어떤 일을 하고 있어서라기보다는 일을 진행하는 성향이에요. 그냥 그런 식으로 하는 사람인 거고. 이 일이 아니라 딴 일을 해도 아마 같은 방식으로 몰아치지 않을까, 다그치고 자기를 괴롭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은 들어요.




*황선미

충남 홍성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경기도 평택에서 보냈고, 16년 동안 『나쁜 어린이 표』, 『마당을 나온 암탉』, 『바람이 사는 꺽다리 집』, 『주문에 걸린 마을』 등을 냈다. 『마당을 나온 암탉』은 국내에서 애니메이션으로도 제작되었으며, 미국 펭귄출판사를 비롯해 수십 개국에 번역 출간되었다. 2012년 국제 안데르센 상 후보에 올랐으며, 2014년 런던국제도서전 '오늘의 작가'로 선정되었다. 앞으로도 오솔길을 열심히 걸으며 사는 게 멋지다는 걸 알 수 있는 작품을 쓰려고 한다.




강아지 걸음으로
강아지 걸음으로
황선미 글 | 하 그림
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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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나리

그저 우리 사는 이야기면 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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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선미

충남 홍성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경기도 평택에서 보냈고, 16년 동안 『나쁜 어린이 표』, 『마당을 나온 암탉』, 『바람이 사는 꺽다리 집』, 『주문에 걸린 마을』 등을 냈습니다. 『마당을 나온 암탉』은 국내에서 애니메이션으로도 제작되었으며, 미국 펭귄출판사를 비롯해 수십 개국에 번역 출간되었습니다. 2012년 국제 안데르센 상 후보에 올랐으며, 2014년 런던국제도서전 ‘오늘의 작가’로 선정되었습니다. 앞으로도 오솔길을 열심히 걸으며 사는 게 멋지다는 걸 알 수 있는 작품을 쓰려고 합니다. 사실적이면서도 섬세한 심리 묘사와 마음을 어루만지는 이야기로 수많은 어린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작가. 작품을 통해, 때로는 여러 자리를 통해 항상 어린이들 가까이에서 함께하고 있다. 지금까지 60여 권의 책을 썼고, 대한민국 문화예술상 대통령 표창, SBS 어린이 미디어 대상, 아동문학평론 신인상, 세종아동문학상, 소천문학상 등을 수상했으며 현재 서울예술대학교 문예창작과 교수로 있다. 1963년 충청남도 홍성에서 태어나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와 광주대학교 문예창작과, 중앙대학교 대학원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1995년 단편 「구슬아, 구슬아」로 아동문학평론 신인문학상을, 중편 「마음에 심는 꽃」으로 농민문학상을 수상하며 문단에 데뷔했다. 1997년에는 제1회 탐라문학상 동화 부문을 수상했고, 『나쁜 어린이표』, 『마당을 나온 암탉』, 『까치우는 아침』, 『내 푸른 자전거』, 『여름 나무』, 『앵초의 노란 집』, 『샘마을 몽당깨비』, 『목걸이 열쇠』, 『뒤뜰에 골칫거리가 산다』, 『들키고 싶은 비밀』, 『엑시트』, 『세상에서 제일 달고나』 등을 썼다. 가난했던 어린 시절 학교에서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혼자 캄캄해질 때까지 학교에 남아 동화책을 읽곤 했던 그녀의 글은, 발랄한 상상력을 바탕으로 글을 써나가는 다른 90년대 여성작가들 달리 깊은 주제 의식을 담고 있다. 『마당을 나온 암탉』은 그 대표적 예. 근대 · 문명을 상징하는 '마당'과 탈근대·자연을 상징하는 저수지를 배경으로, 암탉 잎싹의 자유를 향한 의지와 아름다운 모성애를 감동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2000년에 출간한 그녀의 대표작 『마당을 나온 암탉』은 알을 품어 병아리를 만들어 보겠다는 소망을 갖고 살던 암탉 잎싹의 이야기다. 양계장에서 편하게 사는 것을 포기하고 안전한 마당을 나온 잎싹은 우연히 청둥오리의 알을 품게 되는데, 그렇게 부화한 청둥오리를 사랑과 정성으로 키우고 자신의 목숨을 족제비에게 내주기까지 한다. 고통스럽지만 자신의 꿈과 자유, 그리고 사랑을 실현해나가는 삶을 아름다운 동화로 그려냈다. 『마당을 나온 암탉』은 ‘죽음’을 전면에 내세워 어린이문학의 금기에 도전했고, 국내 창작동화로는 첫 번째 밀리언셀러를 기록하였다. 애니메이션 영화로 제작해 한국 애니메이션 역사상 최다 관객을 동원하였고, 뮤지컬, 연극, 판소리 등 다양한 공연으로도 선보이고 있다. 미국 펭귄출판사를 비롯해 수십 개국에 번역 출간되었다. 2012년 국제 안데르센 상 후보에 올랐으며, 2014년 런던국제도서전 ‘오늘의 작가’로 선정, 폴란드 ‘올해의 아름다운 책’ 등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