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당 해고를 당한 아빠, 하루하루 버티는 엄마, 힘을 갖고 싶지만 아무것도 바꿀 수 없는 나, 나보다 더 힘든데도 씩씩해서 오히려 비참한 기분을 느끼게 하는 친구, 태연히 얼굴색을 바꿔 가며 자신을 휘두르는 또 다른 친구... 현실의 벽에 부딪히면서도 한 걸음 더 나아가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작가는 우리를 구하는 건 결국 진심으로 누군가와 함께하려는 올곧은 마음임을 전한다. 읽을수록 가슴이 꽉 조여드는 열세 살 아이들의 뭉클한 성장담이 『열세 살 우리는』에 담겨있다.
작가님은 지금까지 십 대들의 내면을 섬세하고 따뜻하게 그려오셨는데, 특별히 『열세 살 우리는』을 집필하고, 보리와 루미, 세희라는 아이들을 탄생시킨 이유나 계기가 있을까요? 또, 이야기의 배경에 사회적 이슈를 담은 특별한 이유가 있으신가요?
문경민 : 세상이 찌그러져 있다고 생각해요. 온전치 않은 거죠. 이제까지 살아오면서, 그리고 역사를 되짚어 보면서, 사람 자체가 어긋나 있기도 하지만 구조적인 악이 사람을 옭아맨다는 생각을 할 때가 많았습니다. '사람이 희망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람 말고는 찌그러진 세상을 회복시킬 대안이 없어요. 저는 사람들이 더 나은 세상을 바라는 마음을 잃지 않았으면 해요.
다가올 미래 어딘가에 더 나은 세상이 있다는 생각이 실체를 가지게 되는 날이 오기를 바랍니다. 어떤 능력을 갖고 있든, 어떤 환경과 배경에서 살아왔든, 저마다의 행복을 추구할 수 있고 경제적으로 위협당하지 않고, 모두에게 동등한 존엄이 보장되는 세상이 저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그곳으로 가야 해요. 믿음으로 승화시켜도 좋을 생각이라고 느낍니다. 사회적 이슈를 담고 싶어진 건 제가 그동안 써 보지 않은 새로운 소설을 쓰고 싶다는 마음으로부터 시작되었어요. 사회적 이슈를 직접적으로 다룬 고학년 장편 동화를 만들어 보면 어떨까, 하는 소설가로서의 태도를 가지고 희망퇴직이라는 사회 이슈를 동화에 끌어들이게 되었습니다.
『열세 살 우리는』 원고를 처음 읽었을 때 받은 가장 강력한 느낌을 한 단어로 표현해 주시겠어요? 그리고 이 작품을 그리겠다고 마음먹은 이유가 있으실까요?
이소영 : 제가 이 원고를 출판사에서 받아 읽었을 때가 2021년이었습니다. 겨울날,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아이를 기다리고 있을 때였어요. 그때 이 원고를 읽었는데, 아이들이 갖는 처연한 느낌과 배신감, 보리가 자신의 감정과 좋지 않은 상황에서 뛰쳐나와 자기 스스로를 회복해 나가는 과정, 어른들 못지않게 고군분투하는 아이들의 모습에서 연민을 느꼈습니다.
또, 제가 작업하는 대부분의 작품은 분위기가 다소 무거운 편이에요. 가벼운 이야기들은 아니죠. 이 작품에서 어린이들은 실질적으로 어른들이 겪는 부조리함에 직접적으로 맞서 싸우지는 않지만, 어른들의 영향을 받아서 감정의 소용돌이를 겪게 되잖아요. 고군분투하는 어른과 어린이의 이야기가 같이 담겨 있는 점이 크게 와닿았어요. 어른이나 어린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느꼈죠. 그래서 이 작품에 그림을 그리기로 결심했습니다.
『열세 살 우리는』을 집필하실 때 가장 고민하거나 신경 썼던 부분은 무엇이었나요? 그리고 원고 집필을 마치신 이후에 가장 마음에 드는 장면은 무엇이었나요?
문경민 : 아이들에게 너무 가혹한 이야기라는 지적을 받을 수도 있겠다, 하는 생각을 하곤 했습니다. 아이들에게 세상의 구조악을 마주하게 하는 게 과연 좋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고요. 그건 선택의 문제였고 결정한 대로 작품이 나왔어요. 쓰면서 일종의 부채감 혹은 미안함을 저변에 깔고 작업했던 것 같아요. 제가 기성세대가 되었고 나름 열심히 살았는데, 세상을 크게 바꾸지 못한 것 같아서요. 더 나은 세상을 바라는 선량하고 공의로운 마음이 옳다고 말하는 '어린이가 주인공인 소설'을 쓰고 싶었어요.
이 작업을 통해서 세상에 대한 나의 책무와 소명을 이행하고 싶었습니다. 가장 마음에 드는 장면은 보리가 철탑에서 실려 내려오는 아빠를 마주하는 장면이었어요. 가장 중요한 장면이죠. 세상의 구조악과 그 구조 속에서 분투하는 가족을 대면하는 아이의 모습을 그리고 싶었던 처음 의도와도, 서사로서도 중요한 장면이었습니다.
『열세 살 우리는』 등장인물들의 감정이 그림에도 오롯이 담겨 있는 것 같아요. 표정과 색채에서도 보리와 루미의 마음이 잘 느껴지는데, 작가님께서는 어떻게 표현하고자 하셨나요? 그림 작업을 하시면서 특별히 신경 쓴 부분이 있으셨다면, 그리고 그림 작업을 마치신 이후, 작가님 스스로 마음에 드는 그림은 무엇이었나요?
이소영 : 원고를 처음 읽었을 당시 가장 먼저 떠오른 장면이 바로 이 장면이었어요. 이 장면은 수정 없이 바로 그림을 그렸습니다. 가장 음침한 곳에서 가장 은밀한 서로의 모습을 들키고 밑바닥까지 보여 주는 모습, 물리적으로 치고받는 싸움의 순간, 한 줄기 빛이 들어오고 나머지는 어둠에 가려진 양면적인 모습이 제일 먼저 떠올랐고 결과적으로 마음에 드는 그림이 되었어요. 또, 밤이 배경인 장면들이 많았어요. 밤을 배경으로 두는 그림은 애잔한 분위기로 만들어 보고 싶었습니다. 각자의 슬픔과 사연을 그림으로 표현해 보고 싶었고, 빛을 잘 활용해야겠다는 생각에 어두운 골목길의 빛, 루미가 비추는 플래시, 삼인 기업의 LED 전광판 등의 빛 요소를 많이 활용했습니다.
그리고 등장인물이 가지고 있는 감정을 배경에 자연스럽게 녹여 내고 싶다 보니 자연스럽게 물감이 번지는 기법을 많이 넣었어요. 특히, 보리가 세희에게 기다리라고 말하는 장면 등에서도 감정이 배경에 드러날 수 있도록 표현했고요. 보리가 세희의 뒷모습을 보면서 중얼거리는 장면에서도, 건물이나 주변 풍경 등 배경에 들어가는 모든 요소를 지우고 색으로 보리의 감정이 변화하는 것을 표현해 보았습니다.
『열세 살 우리는』은 글과 그림이 정말 완성도 있게 어우러져 있는 작품이에요. 글을 쓰신 작가로서, 그리고 그림을 그리신 작가로서 서로 가장 마음에 드는 글과 그림 한 장면을 꼽는다면 무엇일까요?
문경민 : 가장 좋았던 건 보리가 철탑에서 들것에 실려 내려오는 자기 아빠를 마주하게 된 장면이었고요, 또 입이 벌어지도록 감탄했던 건 보리와 세희가 건물과 건물 사이 좁은 틈에서 서로를 마주하는 그림이었습니다.
이소영 : 원고를 보면서 가장 마음에 와 닿았던 대사는 루미의 대사였어요.
루미는 보리를 똑바로 쳐다보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세희나 너나 다 끔찍해. 네가 불행해지면 좋겠어. 네가 더 망가졌으면 좋겠어. 너랑은 끝이야"
루미는 화상 미팅 창을 꺼 버렸다. 혼자 거친 숨을 몰아쉬던 루미는 두 손에 얼굴을 묻고 소리 없이 울었다.
이 대사가 루미의 진심과 분노가 느껴지는 대사여서, 루미의 마음이 이해가 가면서도 동시에 '솔직해서 시원하기도 했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도 화가 날 때가 가끔 있지만, 루미처럼 솔직하게 표현하지 못하거든요. 극단의 감정을 겪고 있을 때 '나도 이렇게 얘기했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에 이 대사가 마음에 박혔고, 이렇게 얘기하기까지 루미가 얼마나 힘들었을지 헤아리니 안타까웠습니다. 루미는 지금까지 자신의 선과 책임감을 놓지 않았던 아이였는데, 이 장면에서 모든 걸 놓아 버린 듯한 느낌도 들었고요. 개인적으로는 병원 장면도 좋아하는데, 이 장면에서 저는 루미의 표정을 밝고 착하게만 그리고 싶지는 않았어요. 이 아이의 복잡한 속내가 조금 드러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그림을 그렸습니다.
보리, 루미, 세희 캐릭터는 어떻게 만들어졌나요? 보리와 루미는 앞으로 어떤 삶을 살아갈지, 단단한 우정을 쭉 지켜나갈지 궁금해져요. 또, 『열세 살 우리는』을 읽은 많은 독자가 세희의 뒷이야기를 궁금해할 것 같은데, 작가님이 상상하신 세희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요?
문경민 : 상처받고 슬퍼하는 아이보다는 단단한 아이를 보여 주고 싶었어요. 보리가 퍼플마스크 클럽의 어처구니없는 제안을 받고서 '결정은 내가 할 거야'라고 속으로 중얼거리는 장면이 있는데요, 저는 그게 보리의 야성을 보여 주는 장면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루미는 따뜻한 아이예요. 이미 극복해 낸 이야기가 있는 아이죠. 상처받은 아이의 모습보다는 헤쳐 나가는 아이의 모습을 그리고 싶었습니다.
세희 역시 혼란스러운 시기를 거쳐 가는 아이예요. 다만 세희는 자신의 문제를 해소하거나 극복하지 못하고 위태로운 채로 끝을 맺습니다. 세희의 미래를 생각하면서 저는 세희의 엄마를 생각했어요. "잘 해 볼게. 세희는 내 딸이야"라고 말하는 세희 엄마의 모습이 믿음직스러웠어요. 물론, 세희가 성숙해지는 데는 세희의 몫도 있다고 생각해요. 마지막 장면에서 보리는 졸업식 무대에 올라와 강당을 바라보며 세희를 보고 싶어 하는데, 그때 보리의 마음이 저의 마음이기도 했어요.
『열세 살 우리는』을 읽었거나, 앞으로 읽을 독자분들께 한말씀 부탁드립니다.
문경민 : 이 이야기가 적은 분량이 아니라, 읽어 주신 어린이 독자들께는 감사한 마음뿐이에요. '주니어 소설'이라는 이름으로 제가 쓰는 동화의 정체성을 정리하곤 하는데, 아이와 어른 모두에게 의미 있고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제가 쓰는 작품이 정말 특별했으면 좋겠어요. 안전하게 흐르는 이야기가 아니라 예상치 못한 이야기가 가슴으로 훅 들어오는 작품을 만들고 싶습니다.
*문경민 (글) 1976년 경기도 양평에서 태어났다. 동국대학교 문화예술대학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하고, 2016년 중앙신인문학상에서 단편 소설 「곰씨의 동굴」이 당선되어 등단했다. *이소영 (그림) 한국과 프랑스에서 그래픽 디자인을 공부하고 프리랜스 디자이너로 활동한 후, 현재는 그림책 작가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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