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아웃] “작가가 정말 신나서 쓸 수 있는 주제로 에세이를 내 보자!”
‘책임’감을 가지고 ‘어떤 책’을 소개하는 시간이죠. ‘어떤,책임’ 시간입니다.
글ㆍ사진 신연선
2024.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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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현듯(오은): 오늘의 특별 게스트는 위고 출판사의 이재현 대표님입니다. 안녕하세요.

이재현: 안녕하세요, 위고 출판사 이재현이라고 합니다. 위고 출판사는 에세이, 인문 교양서, 그림책을 내는 출판사인데요. 2013년에 『소년의 심리학』을 첫 책으로 냈고요. 이후 『공부 중독』 『잃어버리지 못하는 아이들』 『나는 심리 치료사입니다』 같은 교양 심리서를 출간하면서 개인과 사회에 질문을 던지는 책들을 출간해 왔어요.

최근 2-3년에는 여성과 생태, 기후 위기와 관련된 책들을 꾸준히 출간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제철소, 코난북스와 함께 한 ‘아무튼, 시리즈’로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시는 것 같아요.

불현듯(오은): 함께 이야기 나눌 책은 정보라 작가님의 『아무튼, 데모』입니다.

 

『아무튼, 데모』

정보라 저 | 위고



 

불현듯(오은): 출판사 이름이 독특해요. 어떻게 짓게 되신 이름인가요?

이재현: 영문 스펠링은 ‘hugo’예요. 브라이언 셀즈닉의 『위고 카브레』라는 소설이 있어요. 영화 <휴고>의 원작인데요. 주인공 위고의 모험을 다룬 이야기예요. 아빠가 돌아가신 뒤 아빠의 유산을 물려받아서 자동 인형을 완성하는 과정인데요. 약간 판타지인데 성장과 예술에 관한 이야기라고 할까요. 출판사를 시작할 때 많은 이름을 고민하다가 이 소년이 너무 마음에 들어서 위고라고 짓게 됐어요. 그래서 출판사의 모토 역시 ‘저마다 마음 속의 지치지 않는 소년을 응원합니다’가 되었죠.

불현듯(오은): 위고 출판사 하면 아무튼 시리즈를 먼저 떠올리지만 말씀을 듣고 보니 정말 다양한 책들을 지금까지 내오셨다는 걸 알게 돼요. 이슬아 작가님의 『날씨와 얼굴』도 그렇고요.

캘리: 맞아요. 저희가 <어떤,책임>에서 소개했던 『여름의 잠수』 같은 굉장히 멋진 그림책도 위고에서 나왔어요.

이재현: 처음에 두 사람이 시작했는데요. 한 사람은 성인책을 만들어 왔고 한 사람은 청소년, 어린이책을 만들어 왔어요. 어떻게 보면 다른 분야에서 일을 한 거죠. 그러면서 여러 분야에 열려 있었어요. 모호한 말이긴 하지만 사람 마음속의 소년성이라고 할까요. 어떠한 상황에서도 계속 가져가야 될 무언가가 꼭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요. 그런 것을 어떤 카테고리에 국한하지 않고 담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다 보니까 출간 목록이 다양해진 것 같아요.

불현듯(오은): 아무튼 시리즈가 2017년에 시작됐잖아요. 이재현 선생님이 관여하신 책도 꽤 많을 텐데요. 기억에 남는 책 있으면 소개해주세요.

이재현: 사실 다 기억에 남아요. 이 시리즈의 특징이 내가 만든 세계, 애호하는 세계니까요. 그 애호라는 것이 저마다 결이 달라서 특정 작품을 말하기는 힘든데요. 저희 출판사에서 낸 아무튼 시리즈 중 비교적 다른 결이 있다면 『아무튼, 비건』을 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애호이긴 한데 다른 책과는 달리 이 책은 조금 강경한 느낌도 있거든요. 처음에 원고를 받았을 때, 원고가 막 화를 내고 있었어요. 독특했죠. 책이 나올 때만 해도 비건니즘이 이렇게 활발하지는 않았는데요. 어쨌든 시기를 잘 만난 것 같고요. 이후 많은 분들이 입문서로서 많이 읽으시는 것 같아요.

캘리: 저는 이재현 대표님께 약간의 내적 친밀감을 혼자 갖고 있는데요. 요조 작가님의 『아무튼, 떡볶이』에 재현과 소정이라는 실명으로 많이 등장하셨잖아요.(웃음)

이재현: 그 부분을 요조 작가님이 쓰신다고 하셨을 때 저희는 사실 반대했어요. 그런데 작가도 용기를 내는데 편집자들도 용기를 내야 하지 않겠냐고 하시는 거예요. 그렇게 실명으로 나오게 됐어요.(웃음)

불현듯(오은): 저는 최근에 오지은 작가님의 『아무튼, 영양제』를 읽었는데요. 읽으면서 집에 있는 영양제들을 살펴 보는데 저도 작가님과 다를 바가 없는 거예요.(웃음) 물론 저는 오지은 작가님처럼 직구를 한다거나 모든 영양제의 쓰임을 잘 알지는 못하지만요. 먹었을 때 곧바로 효과 같은 것들을 느끼지는 못하지만 안 먹으면 불안한 존재가 영양제인 것 같은데요. 그런 내용이 책에도 있어서 읽으면서 계속 고개를 끄덕였어요. 오지은 작가님의 필력도 워낙 좋으시고요. 영양제 하나를 바라봐도 이렇게 맛깔스러운 글이 나오는구나, 새삼 감탄했어요.

캘리: 아무튼 시리즈의 매력이 그런 것 같아요. 어떤 주제에 대해서 한 권으로 글을 써낸다는 것이, 정말 그 주제에 깊이 몰입하지 않으면 어려운 일이잖아요. 그래서 저희가 오늘 얘기할 정보라 작가님의 『아무튼, 데모』를 보고도 깜짝 놀랐던 것 같아요. 데모라는 주제를 다루다니 말이에요.

불현듯(오은): 데모라고 하면 한국에서는 격렬한 투쟁을 생각하죠. 사실 데모는 나가서 자기 주장을 이야기하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일종의 선전전 같은 느낌인데 한국에서는 투쟁이 되어 버린 것 같아요. 뭔가 최루탄이 터질 것 같고, 몸싸움 일어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요. 그 탓에 많은 분들께 처음에는 진입 장벽 같은 게 있을 수도 있을 텐데요. 『아무튼, 데모』를 읽고 나서 저는 사람의 이야기구나 생각했거든요. 데모하면서 만난 사람들, 그들을 만나 바뀐 나 자신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을 실감하면서 읽었습니다.

캘리: 『아무튼, 데모』가 정보라 작가님의 첫 에세이이기도 하잖아요. 그래서 책을 만드실 때 어떠셨는지 너무 궁금했어요.

이재현: 기사를 통해서 작가님이 데모를 많이 하신다는 걸 알고 있었어요. 그렇지만 그것을 그냥 작가님 일상의 중요한 지점이겠구나, 정도로만 생각하고 있었는데요. 어느 날 작가님의 소설집 『그녀를 만나다』를 읽었어요. 그 책의 ‘작가의 말’이 오체투지 한 얘기로 시작해요. 오체투지를 열심히 했던 이야기에 이어 일상적인 이야기를 하시는데요. 그러면서 되게 웃긴 것들이 막 나오는 거예요. 이런 거예요. “나는 차별금지법 제정될 때까지 근성으로 계속 돌아야 되는 줄 알고 긴장하고 갔는데, 그건 아니고 한 바퀴만 돈다고 하셔서 약간 실망했지만 차별금지법 제정될 때까지 오체투지를 해야 했다면 나는 이 책의 교정고도 못 보고 작가의 말도 못 쓰고 지금도 오체투지를 하고 있었을 것이다.”

이런 게 참 좋아서 작가님이 데모라는 주제로 글을 쓰실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됐고요. 그렇게 제안을 드렸어요. 솔직히 제안 드리면서 기대를 많이 하지는 않았죠. 보통 작가의 첫 에세이라고 하면 아무래도 신중하게 생각하게 되잖아요. 게다가 에세이는 본인이 말하고 싶은 것과 숨기고 싶은 걸 적절히 섞어야 되는데, 데모는 비교적 날카로운 주제이기 때문에 과연 작가님이 첫 에세이를 데모라는 주제로 쓰실까, 싶었거든요. 그런데 작가님이 쓰시겠다고 하신 거예요. 저희 제안이 너무 좋았다고 하시면서요. 정보라 작가님이 시위에 대해 진심이시구나, 생각했죠.

불현듯(오은): 실제로 정보라 작가님이 쓰신 여러 책의 작가의 말에서 투쟁의 기운을 많이 느끼기는 했거든요. 작가님이 사람들에게 사회 참여를 독려하고, 스스로도 많이 가담하는 분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얘기라고 생각하고 지나칠 수 있을 텐데요. 책 제안을 해서 묶을 생각을 하신 것은 위고가 유일했던 거잖아요.

이재현: 만약 단행본으로 제안을 했다면 진짜 어려웠을 것 같아요. 지금보다 두꺼운 책을 데모라는 주제로 가기는 쉽지 않았을 것 같거든요. 하지만 아무튼이라는 시리즈에 있다 보니까요. 저도 좀 더 용기를 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캘리: 저는 이 시기에 이 책을 만날 수 있어서 정말 좋았거든요. 마침 세월호 10주기가 되는 해이고요. 책 안에서도 계속 세월호 농성장에서 있었던 일들과 이태원 참사 당시 있었던 일들을 말씀하고 계시잖아요. 그 사이에 전장연과 함께 했던 일들도 등장하고요. 이런 얘기들을 2024년에 읽는 게 너무 이상한 거예요. 그래서인지 공명이 컸던 것 같아요. 특히 책 앞부분에 정보라 작가님이 이태원 참사 이후 녹사평역에 분향소가 설치가 되어서 지킴이를 하실 때의 이야기가 등장하는데요. 이런 문장을 쓰셨어요.

세월호 서명대에서도 했던 일이라 익숙했지만 이런 일을 또 해야 할 줄은 상상도 못했다. 참사가 또 일어나고 유가족이 분향소를 또 지키고 또 특별법 서명을 받아야 하다니 너무 악몽 같았다.”  

시작 대목부터 반복되는 참사와 유가족, 피해자 당사자들이 투쟁을 해야 하는 상황들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계시거든요. 그 부분이 너무 아프게 다가왔던 것 같아요.

불현듯(오은): 한편으로는 아프기만 한 책은 아닌 것이, 그 와중에 또 정보라 작가님의 유머가 엄청나잖아요. 이야기가 한쪽으로 기울거나 무거워지는 것을 지양하면서 글쓰기를 하신 것 같아요. 그래서 퐁당퐁당 하듯이, 어떤 사안에 대해서 깊숙이 생각했다가 말끔하게 빠져나오기도 하면서 읽을 수 있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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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연선

읽고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