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청소년 책을 읽으며 배우는 마음이 있다. 그건 ‘가능’의 세계를 꿈꾸는 것. 종종 낙관적인 희망이 담긴 이야기를 ‘동화적’이라 표현하는데, 동화는 결코 그런 이야기들만을 말하지는 않는다. 아름답고 다정한 이야기도 있지만, 내가 동화를 사랑하는 이유는 결코 포기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소 익숙한 절망 속에서도 우리에게 가능한 사랑과 돌봄, 연대하는 마음에 가까워지는 이야기들. 그렇게 ‘되기’의 세계를 향해 나아간다. 희망의 상상력 속에서 서로의 손을 잡고 나아가는 마음을 발견하는 세 권의 책을 소개한다.
둘채 글그림|쥬쥬베북스
매일 앉아서만 지내는 소녀가 있다. 소녀는 앉아서 무엇이든 한다. 양치질하고, 샤워하고, 청소와 정리는 물론, 뜨개질과 공상, 창밖의 비둘기에게 먹이를 주는 일까지도 가능하다. 이처럼 우리는 누구나 마음대로 자유롭게 살아갈 권리가 있다. 앉아서 하든 누워서 하든, 모든 행위의 ‘하기’가 가능한 세계다. 그러던 어느 날, 대통령으로부터 ‘모든 국민의 앉는 행위가 금지’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화가 난 국민들은 집 밖으로 나와 ‘의자 레이싱’이라는 행위를 통해 자신들의 자유를 되찾기 위해 연대하고 투쟁한다.
이 이야기를 마주한 독자들은 지난해 일어났던 12.3 비상계엄을 떠올릴 것이다. 당연하고 평범한 일상을 보내야 할 우리가 추운 겨울 광장에 나와 권력에 맞서 싸우며 승리에 이른 진짜 우리의 이야기 말이다. 그림책은 그 시간을 이야기적인 ‘기록’으로 남겼고 기억하길 바란다. 축제처럼 여겨지기도 했던 광장의 모습처럼, 작가는 유머러스한 설정으로 시민의 권리를 되찾는 연대의 순간을 그려냈다. 어린이를 포함한 모든 연령대가 함께 기억하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그림책이라 의미 있다. 우리에게 그 시간은 이미 지나갔지만, 회복의 시간과 희망의 역사는 기록되어야 한다. 그래야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참지 않는 ‘되기’와 ‘하기’를 향한 가능성의 연대로 나아갈 수 있을 테니까.
강석희 저 | 돌베개
『녹색 광선』은 우리가 어떤 방식으로 함께 살아갈 수 있을지에 대한 감각을 일깨우는 청소년 소설이다. 타인을 잘 믿지 못하며, 섭식 장애를 겪는 여고생 연주의 시점을 통해 지체 장애를 지닌 이모와 학교 친구들과의 관계를 통해 빛과 온기를 발견하는 이야기다. 구체적인 아픔들을 보듬어 나가는 서사는 개인과 사회가 어떤 ‘돌봄’을 수행할 수 있을지 대한 고민을 함께 던진다. 이 소설은 ‘돌봄’이라는 행위가 대체로 일방향적인, 한쪽이 희생해야 하거나 감내하는 이야기로 흐르는 클리셰를 벗어난다는 점에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돌봄이란 자기 삶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안에서 밖을 향해 나아가는 이타적인 행위다. 아주 드물게 나타나는 빛, 일시적으로 만날 수 있는 순간인 ‘녹색 광선’이 우리 삶에는 필요한 것이다.
작가는 이 소설을 쓰면서 되도록 가능한 세계를 상상하려 했을 것이다. 섬세한 문장으로 다루어진 소설은 어떤 인물도 대상화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누군가의 삶을 이해하는 일은, 한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존재성을 부정하고 지워내지 않아야 한다는 걸 보여준다.
“우리는 세상을 나은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어. 그게 우리 일이야.” (153쪽)
특히 소설 후반부에 다뤄지는 ‘장애인 이동권 투쟁’ 장면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연대’를 떠올리게 한다. 차별과 혐오에 맞서 연대하는 힘이자, 서로가 연결되며 기꺼이 손을 잡는 가능성에 대해. 우리가 어떤 마음을 겹치고 포개어 볼 수 있을지 청소년 문학은 이토록 가능한 세계를 그리며 우리를 성장시킨다.
성동혁 글/다안 그림|봄볕
희귀 난치 질환을 지니고 태어난 시인은 불가능의 벽에 부딪히며 성장한다. 한 번도 산에 올라가 보지 못했던 시인을 위해 친구들은 원대한 계획을 세운다. 수액과 의료 용품, 산소통처럼 필요한 물품을 챙기고, 시인의 지게에 업어 태우고, 뒤에서 받쳐주며, 그 모습을 사진으로 남긴다. 이들의 목표는 산 정상이 아니다. 그저 함께, 오를 수 있는 만큼만 오르는 것. 함께라면 어디든 정상이 될 수 있기에. 시인은 불가능 속에 있었던 자신을 충분히 가능성의 세계로 나아갈 수 있게 만든 건 친구들이라 말한다. 그들이 나의 ‘옆집’이자 나 또한 너희의 ‘옆집’임을 고백한다.
성동혁 시인의 자전적인 이야기가 담긴 시와 에세이에서 시작한 그림책은 곁에 있는 옆집의 존재를 바라보게 한다. 가족, 친구, 이웃… 때론 너무나 가깝고 멀어지기도 했던 수많은 곁의 얼굴이 떠오른다. 어떤 다정은 곁을 메우고 씩씩해지는 마음을 만든다. 그림 속에는 그런 튼튼한 생명력이 느껴진다. 흙 아래 단단히 뿌리를 내리고 싹을 틔우고 꽃을 피워내는 것처럼, 눈부시게 산뜻한 초록의 풍경 곳곳에는 곁에 함께 ‘살고 있다’는 벅찬 위로가 담겨 있다. 산을 함께 오른 이들의 마음을, 시간을 가늠하며 시인과 친구들이 그들만의 정상에서 보았을 그 풍경을 펼쳐본다. (그림책을 볼 때 이 장면은 실제로 펼치는 행위가 이뤄진다는 점이 참 좋다). 세상의 수많은 옆집이 존재하는 풍경 속, 그것이 우리가 함께 사는 세계라는 사실 앞에서 다짐한다. 기꺼이 서로의 옆이 되겠다고.
* AI 학습 데이터 활용 금지
유지현
어린이청소년문학서점 ‘책방 사춘기’를 운영하며, 그림책과 동화, 청소년 소설을 소개한다. 본명보다 '춘기' 혹은 '춘기 이모'라 불리는 게 더 익숙한 사람. 앤솔러지 에세이 『좋아한다고 말할 수 없었어』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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