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픽은 오로지 내 취향의 책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에서 시작했습니다. 긴 편집자 생활 이후 내 취향과 내 꿈을 담은 책들을 오롯이 내 회사에서 만들면서 내 미래를 설계할 수 있다면 삶이 좀 더 재밌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구픽은 ‘구즈마 픽션’의 줄임말입니다. 20대 초반부터 구즈마라는 아이디를 써왔는데 회사에서도 소설을 담당했던지라 친한 동료가 구즈마가 픽(pick)한 픽션(fiction)이라는 의미로 구픽 어때요 하고 운을 던졌고 그거다 싶어 결정된 이름이 지금까지 왔습니다. 그저 구픽이라 부르고 또 불리기를 원했던 지난날들과 달리 한 해 한 해 1인 출판사로서의 연차가 쌓이자 구픽에 붙이고 싶은 의미가 더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리하여 10년차가 되는 2026년을 기점으로 독서하는 고양이인 픽냥이라는 마스코트와 함께 구픽 공식 슬로건을 “주류의 바깥, 이야기의 내면”으로 정하고 나아가고자 합니다. 규모는 작지만 취향은 확실한 장르 큐레이션 출판사로서 하나의 색깔로 다양한 장르의 책들을 출간하는 출판사로 기억에 남고 싶습니다.

마크 피셔 저/안현주 역 | 구픽
원래 소설 위주로 출간할 생각이었던 구픽이 장르 논픽션 출판사도 인식되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해준 책입니다. 어쩌면 구픽의 정체성은 이 책 이후와 이전으로 나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책은 공포에 대해 단순한 설명으로 그치는 책이 아니라 그 불편함을 사회적 시선으로 해석하고, 설명할 수 없었던 감정에 이름을 붙여주며, 그 이유를 (적어도 제게는) 처음으로 글로 설명해준 이론서이기도 합니다. 이 책 출간 후 구픽은 조금은 넓어진 시각으로 논픽션뿐 아니라 소설에 있어서도 이 시대와 사회의 정서를 보다 적극적으로 담은 책을 기획하거나 고를 수 있었습니다. 장르물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누구든 유혹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 독특한 표지 디자인과 『The weird and the eerie』라는 원제를 위와 같이 멋지게 뽑아주신 역자 선생님의 역할도 정말 컸습니다.
존 윌리엄스 저/정세윤 역 | 구픽
『부처스 크로싱』은 평생 동안 단 세 편의 장편소설과 한 편의 중편소설만을 발표한 “모두가 아시는” 『스토너』의 작가 존 윌리엄스의 첫 번째 장편소설입니다. (나머지 소설들도 모두 구픽에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잔잔하고 압축적인 배경, 지식의 요람인 대학이라는 배경, 지적인 등장인물들, 일생을 달관한 듯한 주제의 『스토너』와는 달리 거장의 이 첫 장편은 눈앞에서 펼쳐지는 듯한 서부의 장엄한 배경으로 들소를 잡는 거친 사내들의 이야기를 다룹니다. 들소 사냥꾼들과 함께 거친 숨을 몰아쉬며 달리는 듯한 놀라운 몰입감을 선사하는 이 작품은 서부시대를 다루면서 또한 안티 서부극이기도 한 독특한 주제의식을 갖고 있는 소설이기도 합니다.
전혜진, 곽재식, 최희라, 류호성, 홍지운 저 | 구픽
이 책을 소개하자면 작년 이맘때로 돌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12.3 쿠데타에 모두가 충격을 받고 뉴스와 집회에 매달리던 시기, 직업적으로 이 어이없고 분한 마음을 표현할 수 없을까 하는 생각을 했고 그동안 다양한 앤솔러지를 함께해 온 작가님들을 떠올렸습니다. 이분들이라면 저의 분하기만 한 마음을 이야기 속에 녹여 보다 문학적으로 표현해주실 것이라 생각했고 같은 마음이셨던 작가님들께서 흔쾌히 응해주셨습니다. 그 결과물이 바로 이 책입니다. 이 앤솔러지는 불법 계엄으로 인한 분노와 냉소, 열정과 슬픔을 절묘하게 오가며 당시를 회상하고 우리가 앞으로 나아갈 길까지 제시합니다.
함께 읽는 다른 출판사의 책
아서 매켄 저/정보라 해설/이미경 역 | 와이드마우스
코스믹 호러의 진정한 선구자이자 러브크래프트의 조상 격 작가 아서 매켄은 아련히 그 작가의 이름만 알고 있었을 뿐 제대로 번역된 작품을 읽어볼 기회가 없었습니다. 『기이한 것과 으스스한 것』을 통해 아서 매켄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더욱 강렬해졌었는데 너무나 고급스러운 디자인으로 처음 만나는 출판사에서 출간된다고 하니 정말 기대했던 기억이 납니다. 마크 피셔가 여러 차례 언급한 만큼 아서 매켄은 불안과 공포를 차곡차곡 쌓아올려 으스스함을 극대화시키는 작가라 할 수 있겠습니다. 무섭다기보다는 그 분위기와 여운이 아주아주 오래 남는 진짜 공포를 보여주는 단편집으로 호러 소설 애호가라면 꼭 읽어야 할 필독서로 추천합니다.
* AI 학습 데이터 활용 금지
김지아
장르성 있는 픽션과 논픽션을 주로 만드는 1인 출판사 구픽 대표. 기획과 편집은 한 사람이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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