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하늘 시인 “시보다 나를 자유롭게 해준 것은 없었다”
부끄러움이 많고 말하기에서 유독 불편함을 느끼는 어린이-청소년 시기를 보냈는데 시 언어를 통해 나를 표현하는 일에 자유로움을 느껴 삶이 크게 변화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것보다 나를 자유롭게 해준 것, 해방시켜준 것은 없다고 느꼈습니다.
글: 출판사 제공 사진: 출판사 제공
2025.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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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4회 김수영 문학상을 수상한 나하늘 시인의 첫 시집 『회신 지연』 이 민음사에서 출간되었다. 나하늘의 시는 단정한 문장으로 쌓아 올린 탄탄한 시적 플롯을 통해, 실험적 스타일과 서정성을 탁월하게 결합시킨다. 자신의 언어가 어떤 궤적을 그리며 어디에 가닿는지를 정확하게 알고 있는 시인 특유의 단단함은, ‘사라지기’라는 모험을 경유하여 세상에 셈해지지 않는 자리를 만든다. 그리고 그 자리는 시인 혼자만의 것이 아닌, 시집 안으로 들어온 우리 모두의 것이 된다. 경쟁으로 과열된 시대에 소진된 이라면 누구든, 과장 없는 담백한 언어로 구현된 나하늘 시의 빈칸 안에서 잠시 머물다 가도 좋을 것이다.

첫 시집 『회신 지연』의 출간을 축하드립니다. 언제부터 시를 쓰기 시작하셨는지, 그리고 어떻게 시 쓰기라는 활동을 유지하셨는지, 시작 활동의 계기와 원동력이 궁금합니다.

‘시’라는 형식을 자각하면서 쓰기 시작한 것은 열일곱 살 무렵입니다. 부끄러움이 많고 말하기에서 유독 불편함을 느끼는 어린이-청소년 시기를 보냈는데 시 언어를 통해 나를 표현하는 일에 자유로움을 느껴 삶이 크게 변화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것보다 나를 자유롭게 해준 것, 해방시켜준 것은 없다고 느꼈습니다. 성인이 되기 전에 이미 계속해서 시를 쓰게 될 것을 예감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회신 지연』은 제44회 김수영 문학상 수상작이지요. 당선 소식을 들었을 때 어떤 기분이셨는지, 기억에 남는 감정이나 순간을 함께 공유해 주세요.

저의 친구들 몇몇은 대학 시절부터 함께 살고 있는데요, 그 집을 ‘초록집’이라고 불러요. 수상 소식을 들은 초록집 친구들이 서로 끌어안고 울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아마 오랫동안 제가 글을 써온 과정을 지켜봐 와서 그런 것 같아요. 그리고 독립 문학출판 씬의 창작자들로부터 뜨거운 축하를 받은 것도 특별히 의미 있게 다가옵니다. 누군가 잘 보이지 않는 방식으로 무언가를 쓰고 만들어온 일이 공적 언어 안에 기록되었다는 사실에 대한 반응이었을까요? 한편으로 각자가 글을 써서 도달하고자 하는 곳이 더 멀리에 있다는 것도 분명하게 알거든요. 초록집 친구들의 눈물도 그렇고, 동료 창작자들과 생생히 나눈 기쁨도. 제가 지금 받는 축하는 어떤 일에 대한 것일까? 우리가 공유하고 있는 기쁨이 있다면 그것이 무엇일까? 아직 헤아려보는 과정에 있어요.

 

김수영 문학상은 시 50편 이상을 대상으로 하는데요, 시집 한 권 분량의 원고를 엮기가 쉽지 않으셨을 텐데 준비하는 과정에서 특별히 어려웠던 점은 없으셨나요? 

한국 현대시가 공유하고 있는 ‘시집’이라는 특정 형식이 저의 작업과 과연 잘 맞을까, 하는 고민이 있었습니다. 십대 때부터 한국 현대시에 존경과 애정이 있었고, 일찍이 깊이 마음을 두었기 때문에 성찰해볼 기회가 없었던 것 같아요. 이후에 다른 형식들도 탐구해보게 되었는데요. 이번 시집 원고를 엮는 일은 결국 저의 가장 중심에 ‘시’가 있다는 것을 확인한 작업이기도 했습니다. 

 

『회신 지연』에는 「사라지기」라는 연작 시가 무척 눈에 띄어요. 1부에서 3부까지 적재적소에 위치하면서 시집의 중심을 잡아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연작의 출발점이 된 시는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어떻게 이런 연작을 기획하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작은 공간에 칩거하면서 외부와의 접촉을 최소화했던 시기가 실제로 있고, 그 과정이 연작에 드러납니다. 어느 순간에는 시쓰기가 어떤 예술 행위가 아니라, 단지 정말로 내 삶에서 할 수밖에 없는 말, 반드시 해야만 하는 말만 하는 일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시쓰기는 시인에게 의무나 선택이 아니라 불가피한 하나의 사건이어야 하지 않을까. 「사라지기—막」에 적은 것처럼 “삶이 너무 불편해서, (...) 더는 참아낼 수 없어서” 그 마음을 해결하(려)는 일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그렇지 않은 시들은 신뢰할 수 없다. 다소 극단적으로 들릴 수 있지만 그런 생각을 하며 썼어요.

 

『회신 지연』에는 의미를 명확히 파악하기 어려운 시들도 곳곳에 보여요. 사다리 그림이 그려진 시도 있고, 줄을 그어 독자가 스스로 문장을 만들어야 하는 시도 있고요. 독일에서 짧게 체류하셨다고 알고 있는데, 이런 시들은 외국어를 배우던 경험에서 나온 것일까요? 혹은 그와 무관한 언어적 감각에 의한 것일까요?

독자분들이 시집을 받아들고 실제로 연필을 쥐고 “문제”를 푸는 모습을 보게 돼서 당황스럽기도 하고 즐거웠어요. 해당 연작 같은 경우에는 독일어 학습자로서의 경험에서 착안한 것이기는 합니다. 외국어 학습을 위한 지문들이 문학적 경험으로 다가올 때가 있었어요. 다른 언어를 처음 배울 때처럼 한국어를 대해보고 싶다는 마음도 있었고요. 시를 쓸 때 시인인 저를 믿기보다 시 언어 자체의 역량을 믿고 언어를 힘껏 굴려보곤 해요. 그럴 때에만 도달할 수 있는 장소들이 있었고요. 그렇다면 더 적극적으로 시인의 자리를 비워보면 어떨지 궁금했습니다.

 

저자 소개에 적힌 시집들도 흥미로워요. 『Liebe』와 『은신술』은 지금으로서는 구하기 어려운 시집인 것 같은데요, 대표작으로 올라와 있는 만큼 많은 분들이 궁금해 하실 것 같아요. 이 시집들에 대해서도 간단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Liebe』는 2부의 ‘소설'이 문장부호만 남기고 전부 지워진 채로 인쇄되어 있다는 것이 특징적으로 여겨질 것 같습니다. 『은신술』은 근작으로, 왼쪽이 제본되어 있는 대부분의 책들과 달리 양쪽 모두 제본되어 펼칠 수 없는 형태로 만들어졌습니다. 망원경처럼 둥글게 구부려 안에 적힌 글을 조금씩 들여다볼 수 있어요. 이런 태도를 반복하는 이유는 이러한 형식을 취했을 때 마음이 편해서 그렇게 하는 것 같습니다. 은신술의 제본을 파손하거나 사진을 찍어 읽는 분들도 있어요. 그런데 읽지 않으셔도 상관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 두 경험이 같다고 생각해요. 왜 그런 믿음이 제게 있는지 아직 더 명료한 말을 찾는 중이지만, 글을 지우거나 폐쇄하는 방식을 취해도 아쉬움이 없어요.

 

『회신 지연』은 「사라지기 -막」으로 문을 닫고 있습니다. 시집을 덮고 나니, 앞으로도 계속 사라지기가 시인님 작품 세계의 화두가 될지 문득 궁금해집니다. 사라지기 작업에 관한 소회와, 앞으로의 활동 계획이 있으시다면 들려주세요.

‘막’이라는 말을 붙일 때 ‘사라지기’ 프로젝트는 마음 속에서 마무리를 지었고, 후련한 기분이 들어요. 수상 소식이 전해졌을 때 제가 정말 좋아하는 친구에게 편지를 하나 받았어요. “나의 은둔자에게"로 시작하는 글이었는데요. 요즘은 내가 계속 ‘은둔자’라고 불려도 될까 싶을 정도로 사람들 앞에 불려나와야 하는 상황에 더 자주 놓이게 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사라지기는 궁극적으로 단절이 아니라 연결에 대한 것이라고 믿어요. 나를 비움으로써 내 안에 다른 이들의 자리를 만들 수 있다고, 경계를 지울 수 있다고 상상하거든요. 역설이 있기는 하지만, 그 긴장을 유지하는 것이 앞으로의 과제가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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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신 지연

<나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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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