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처음 만화편집자가 되었을 땐 한국 만화를 출간하는 일은 웹툰 단행본을 출간한다는 것에 가까웠다. 수익성과 화제성의 측면에서 말이다. 이를테면 영화 〈신과 함께〉 시리즈가 ‘쌍끌이 천만영화’라 불리며 흥행중이었고 그에 힘입어 웹툰 원작과 원작 단행본도 수혜를 입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영상물의 원작으로서 웹툰이 각광을 받던 시기였다. 그 연장선에서 나도 『남남』 『정년이』와 같은 웹툰 단행본을 출간했다. 두 작품 모두 성공적으로 드라마화되었다. 『극락왕생』은 조금 다른 케이스인데, 독립 플랫폼을 통해 웹으로 연재했지만 단행본 7권까지의 분량은 출판 형식의 페이지 만화이기 때문이다. 내가 말하는 ‘웹툰 단행본’이란 세로 스크롤 기반에, 대형 플랫폼을 유통처로 둔 작품을 ‘책’이라는 형식에 맞춰 옮겨온 것을 가리킨다. 그 뒤로도 『기억의 해부학』 『효정의 발화점』 등 웹툰 단행본을 출간하며 한국 만화를 내왔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한편에서는 또 다른 한국 만화를 해왔다. 웹에 연재하는 것이 아니라 책이 될 것을 상정하고 그리는 오리지널 출판 만화들이었다. 이 만화를 준비할 때는 작가님들께 정해진 판형(148*210mm)과 인쇄 시 잘려 나가는 도련(상하좌우 3mm), 웹(72dpi)이 아니라 인쇄물에 적합한 해상도(최소 300dpi 이상) 같은 것을 안내해야 했다. 그리고 이 만화들을 기획하고 편집할 때는 분명히 같은 한국 만화인데도 웹툰 단행본과는 전혀 다른 기술과 시선이 필요했다. 마음가짐도 아예 달랐던 것 같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웹툰을 보는데 왜 출판 만화를…? 라는 질문에 답을 해야 했다. 출판 만화를 그리는 작가도 그렇게 많지 않아서 (일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됐을 때라 출판 만화를 충분히 작업하고 계신 분들이 있었음에도 몰라보았을지 모른다) 바쁜 웹툰 작가님들께 제안을 드리고 고사의 회신을 받기 일쑤였다. 죄송했습니다.

하여튼 그런 와중에도, 그러니까 웹툰이 주가 된 한국 만화 시장에서 출판 만화를 그리는 사람도 읽는 사람도 찾기 힘든데 처음 보는 편집자가 대뜸 연락을 해와 출판 만화를 그려달라 말하는 그런 얼토당토않은 ‘와중에도’ 기적 같은 분들이 계셨고 덕분에 귀한 원고를 모을 수 있었다. 그렇게 ‘젊은 만화가 테마단편집’이라는 이름으로 3년 동안 세 권의 앤솔러지 『여자력女自力』 『그 길로 갈 바엔』 『이 편지가 도착하면은』을 출간했다. 소설과 만화, 두 분야의 각각 다른 매력과 연출 방식으로 한 세계관을 공유해 이야기를 만드는 『제사를 부탁해』와 같은 책도 출간했다. 마찬가지로 앤솔러지인 『도덕적 해이』는 같은 주제를 두고 만화를 그리는 것은 ‘테마단편집’ 시리즈와 비슷하지만 ‘읽는 이로 하여금 찝찝하고 불쾌하고 불편하게 만드는 이야기’라는 좀 더 구체적인 의미와 타깃층을 설정했던 단편집이다. 개인적으로 이 만화에 실린 단편들은 나의 깜냥을 짓밟은 과히 위대한 명작들이라 생각한다. 아무도 내게 출판 만화책 내라고 시키지 않았는데 이런 걸 했구나…라는 생각이 들지만 한참 부족하다는 생각이 더 크다. 나는 연재가 가능한 만화 잡지를 보유하고 있는 만화 전문 출판사의 편집자가 아니다 보니 더 많은 출판 만화를 하기에는 환경이나 여건이 어쩔 수 없이 완전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리고 순전히 내가 갖고 있는 기술, 능력, 시야 등에도 종합적으로 아쉬움이 남는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고 아마 이 일을 하는 동안엔 계속 그럴 것이다.
그럼에도 왜 한국의 출판 만화를 하냐면, ‘한국 만화책’이라고 했을 때 웹툰 단행본 말고 다른 볼거리가 더 풍성하게 있기를 바랐다. 기본적으로 판형이라는 닫힌 세계 안에서 그려내는 출판 만화는 그만의 고유한 형식미와 아름다움이 있고 그것을 담은 책은 분명히 세상에 (아니 세상이라고 하니까 너무 거창해지네) 하여튼 다양한 독서 경험을 위해 꼭 필요하며 분명히 사람들도 좋아할 것이라 생각했다. 한국 만화에는 한국 만화만의 매력이 있다. 분명히 내가 어릴 때부터 봐온 한국 출판 만화들에는 그만의 매력과 이어 나가길 바라는 감성이 있었다. 기본적으로 칸과 말풍선으로 이루어진 것은 같을지언정 미국의 코믹스, 일본의 망가, 유럽의 그래픽노블과 구분되는 독특한 개성이라고 해야 할까? 그게 뭐냐고 물으면 그냥 홍시 맛이 나서 홍시라고 대답하는 어린 장금이처럼 답하게 된다. 나는 만화책을 만드는 사람이지 만화를 공부하고 연구하는 사람은 아니라서 그게 무어라고 막 어렵고 멋진 단어로 딱 잘라 대답할 순 없는 것 같다. 작가마다 작품마다 다르기도 하고 말이다.
그렇지만 언제나 한국 만화를 볼 때면 고유한 맛이 있다는 것만은 느낀다. 이를테면 일본의 망가를 보면 어느 정도 인기작의 반열에 오른 작품들이 한국에 수출되니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우선 그림이 정말로 균형적이고 균질적으로 예쁘다. 일본 출판사와 미팅을 할 때 나는 ‘이 정도 그림체면 무난하고 비교적 호감형이지’라고 여긴 작품이 있었는데, 일본 측에서는 굉장히 당연하게 ‘독특한 스타일이 있는 그림체(絵に癖がある)’라고 말하길래 조금 놀랐던 적이 있다. 일본은 출판 만화 형식으로 그리는 작품들이 종이 잡지로든 웹 코믹으로든 최고의 콘텐츠고 최대 규모의 시장을 자랑하니 작품들 또한 다수를 겨냥하는 상업성이 두드러지며, 그림체를 포함하여 종합적으로 ‘주류’를 향하는 것이 일차적인 목표라는 인상이다. 한국 웹툰에도 선호되는 그림체나 연출 같은 게 있는 것과 비슷하지 않나 싶다. 반면 한국의 출판 만화는… 그렇게까지 인기 장르가 아닌데, 그러니까 ‘당장 돈이 되지 않는데도’ 그려진 한국 출판 만화들은 순전히 누군가가 하고 싶어서 한, 그리고 싶어서 그린 만화의 모습을 하고 있다. 그 강렬한 ‘하고 싶음’이 자아내는 무언가들을 보며 나는 한국 만화의 개성과 매력을 느끼는 것 같다.
그런데 요 몇 년 사이 변화를 느낀다. 한국에서 출판 만화를 그리는 사람들이 부쩍 늘어난 것이다. 처음에는 믿기 힘들어서 에이 설마, 아니야, 그냥 내가 맨날 출판 만화 하는 작가들만 찾아보니까 그렇게 느낀 걸 거야, 확증편향 참 무섭다, 하고 (너무 좋으면 뇌에서 제동을 건다) 생각했지만 아니다. 분명히 늘었고 심지어 너무나 수준 높은 작품들을 그리고 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싶은데, 일단 ‘포스타입’이라는 개인 연재처를 통해서 창작자들이 출판 형식으로 그린 만화를 올리고 그것을 보는 독자들이 안정적으로 자리잡은 게 큰 것 같다. 그걸 어디서 누가 가르쳐주길래 배워서 그린 거냐? 하는 물음엔 온라인 서점을 통해 전자책으로 일본 출판 만화를 구매하고 감상하는 일이 손쉬워짐에 따라 나타난 움직임이 아닐까 싶다. 여기에 란탄, 우야, 도이 작가가 상반기에 연 독립 출판 만화 위탁 판매전 ‘칸새’와 만화 회사 사이드비(SIDE B)가 하반기에 여는 ‘하고싶은 만화전’과 같이 현장에서 창작자가 작품을 공개 및 판매하고 독자를 만날 수 있는 장場이 마련되며 그 움직임에 결정적인 활기를 불어넣어주고 있는 듯하다. 나로서는 지금 이 늘어난 출판 만화 창작과 수요가 기쁘기만 하다. 내가 한 세 명 정도였으면 좋겠다. 한 명은 일본의 새로운 만화들을 출간하며 국내에 수작들을 소개하고, 한 명은 한국 출판 만화가들을 쫓아다니며 대체 어떻게 만화를 그리시는 거냐, 어디서 뭘 보고 배워와 그리시는 거냐 같은 근원적 물음부터 몇 페이지 분량이 편한지, 몇 시부터 몇 시까지 만화를 그리는지, 앞으로 무슨 만화 그릴 건지, 좋아하는 만화가 무엇인지 물어보고 싶다. 마지막으로 남은 한 명은 뭐하냐면, 앞의 두 명이 저렇게 뭐 빠지게 해서 출간한 만화들을 볼 거다…
가끔 그간 출간해 온 앤솔러지 시리즈는 더 이상 하지 않는 거냐고 묻는 분들이 계신데, 출판 만화를 그리는 사람들이 늘어난 현시점에는 앤솔러지 형식보다 충분히 한 권 분량을 꾸릴 수 있는 역량을 가진 작가의 작품들을 모아 한 권의 책을 만들고, 어엿한 개인 저서를 마련해 드리는 것이 창작자에게 보다 나은 방향이라 생각하고 있다. 물론 이러한 의도와 더불어 앞선 앤솔러지를 함께한 인연 덕분에 2024년 이공공구 작가님의 『앨리스, 앨리스』라는 단편 만화집을 출간할 수 있었다. 작가님과 짧은 단편을 넘어서 좀 더 긴 호흡의 만화와 한 권의 책을 함께 만들고 싶었다. 무사히 출간된 책이 2025년 ‘한국에서 가장 재미있는 책’에도 선정되었고 무엇보다 작가님께 새로운 도전과 같은 작품이라 하여 가장 기뻤다. 내가 바라고 예상한 것 이상을 이루고 있는 자랑스러운 작품이다.
실제 작업 풍경으로, 왼쪽은 『앨리스, 앨리스』, 오른쪽은 『돈덴 』.
2025년에는 만리포 작가님의 첫 단편만화집 『돈덴』을 출간했다. SNS에 버젓이 공개된 표제작 전문을 읽고 아니 이걸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무료로 공개하는 건 너무 고마우신 일이지만 말이 안 되지 않아?! (다들 왜 그러시는 거야 진짜?!) 싶었다. 이 천재 만화가를 최대한 신속히 만나 책을 내고 싶다고 생각했다. 작가님의 첫 책을 낼 수 있어서 큰 영광이었고 『돈덴』을 통해서 그간 타깃으로 해온 분들을 넘어 새로운 독자층을 만날 수 있어서 뜻깊었다. 수상 이력이 전부는 아니지만 역시나 2025년 ‘올해의 출판만화’ 출판상에 선정된 것도 밝히고 싶다. 왜냐하면 서울국제도서전에서 열린 ‘한국에서 가장 재미있는 책’ 시상식에서 이런 수상 소감을 들었다. 이 상을 받은 것이 지금 하는 것들이 맞으니 계속해도 괜찮다는 뜻으로 느껴진다고. 수상만이 누군가가 걸어온 길을 인정해 주는 건 아니지만 어느 정도 옳다고 확인시켜 주는 것은 가능하기에 이런 이력들을 아낌없이 언급하고 싶은 게 솔직한 심정이다. 하고 싶은 걸 해도 된다, 내가 해온 것에 의미가 있다. 이러한 감각은 만화를 만드는 것을 떠나서 그냥 자기 인생을 꾸려가는 인간에게 중요한 감각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출판 만화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썼고… 다 썼는데… 앞으로 난 뭐해야 하지? 출판 만화를 그리는 사람들이 늘고 있는 이 움직임이 언젠가처럼 또다시 사라지거나 혹시나 유행처럼 꺼져버리는 게 아닐까 하는 심정으로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만화는 어떤 한 사람이 혼자서 그리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아주 사소하게는 ‘잘 봤다’는 말 한마디라도 들어야 만화를 그리는 데 도움과 활력이 된다. 올해는 내가 일한 지 9년이 되는 해다. 10년이 가까워지는데 이 일을 시작했을 때 하고 싶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놀랍고 감사하게도) 거의 대부분 이루었다. 그래서 이제 새로운 계획이나 목표를 다시 세워야 하는데 무엇이 이 출판 만화의 움직임을 안정적으로 이어줄 수 있을지, 책이라는 육면체가 작가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을지 여전히 고민 중이다. 한국에서 출판 만화 그리는 사람들이 있다고, 심지어 굉장히 재밌다고 조명하고 싶은데 말이다. (강남역 앞에서 전단지라도 돌릴까…?) (이게 10년을 앞둔 편집자가 떠올릴 수 있는 발상이라는 게 너무 처참하다…) 독자에게 필요한 독서 경험이 무엇일지도 마찬가지로 고민이다. 만화를 만드는 사람도 보는 사람도 보람을 느끼고 꼭 행복했으면 좋겠다. 여기에 한 가지 더하자면 난 만화를 잘 그리는 사람은 돈을 많이 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단한 이유는 없고 내가 만화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자기가 만든 걸로 돈을 벌어야 책임감도 생기고 다음에 또 해야겠다는 마음에 부채질을 할 수 있으니까. 그렇게 해서 내가 좋아하는 만화가의 다음 작품을 볼 수 있으면 좋겠다. 하여튼 나는 만화 편집자니까 만화가들을 만화로 돈 벌게 해주고 싶다.
올해는 두 권의 한국 출판 만화를 만들 예정이다. 상반기에 출간될 한 권은 냘구 작가님의 『다정의 고리』다. 작가님께서 혼자 연재하고 책으로도 제작한 『영원한 샘』부터 여러 단편들까지, 오랜 시간 무척 좋아한 분인데 감사하게도 함께하게 되었다. 천사 다정이와 인간 은정이의 짧은 사랑과 성장을 그린 표제작과 죽음에 대한 메시지를 담은 새로운 SF 단편이 수록되는데 이렇게 책을 통해 처음 공개되는 작품이 있을 때 마음이 조급해진다. 얼른 세상에 보여줘야 할 것 같아서. 하반기에 출간될 다른 하나는 금대라는 필명으로 활동하는 신인 작가님의 『얘들아, 베이스가 할 말 있대(가제)』다. 금대 작가님과의 만남은 살짝 특이한데 앞서 말한 ‘칸새’에 창작자의 원고를 읽고 피드백을 하는 출장을 나간 적이 있다. 그때 『얘들아, 베이스가 할 말 있대』를 읽고 작가님을 만나러 가서 내가 한 이야기는 작가님의 만화가 너무 좋아요, 이 만화를 두고 제가 무슨 말을 하는 건 그냥 피드백을 위한 첨언에 지나지 않고요, 계속 이렇게 만화 그려주시면 제가 참 좋을 것 같고요, (몇 주 뒤 강남역 인근 카페에서) 작가님의 책을 만들고 싶어요, 였다. 모든 것이 일사천리라서 이래도 되나? 싶다. 실력 있는 분들과 함께할 생각에 영광스럽고 설렌다.
출판 만화를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생각해보는데 너무 어렵다. 출판 만화가 엄청난 인기를 끌어서 창작자도 독자도 많이 그리고 많이 읽으면 좋겠는데 그것을 이룰 수 있는 뾰족한 수가 있을까? 내가 바보라서 모르는 걸 수도 있으니까 만약 누가 알고 있다면 알려주면 좋겠다. 근데 없을 것 같다. 만약에 누가 알려줘도 사기일 가능성이 높다. 뭔가를 단숨에, 한 방에 이룰 수 있는 손쉬운 방법은 만화를 떠나서 그냥 잘 없다. 애초에 그런 건 고작 나 같은 사람 혼자서 뭐 빠지게 고민한다고 되는 일도 아닐 거다. (그렇다… “내가 뭔데?”) 그래서 나는 생각을 좀 달리해서 출판 만화를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출판 만화를 좋아하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일까 생각해보았다. 그러자 순식간에 아주 단순한 생각 하나가 떠올랐다. 그건 좋아하는 만화를 만나고 그것을 그린 만화가를 찾아가, 함께 책을 만드는 일이다. 전혀 뾰족하지 않고 하나도 대단스러운 방법이 아니지만 이거 말고 내가 할 수 있는 게 뭐지 싶을 만큼 당연한 일이고, 내가 지금까지 한 번도 의심한 적 없이 사랑해 온 나의 일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 하고 싶은 일. 다 나의 일. 그러니 일단 지금은 이 단순하고 확실한 방법으로 가보려고 한다. 생각해 보니 말 위에서 발을 동동 구르면 그것은 박차를 가하는 일이 된다.
* AI 학습 데이터 활용 금지
김해인
만화 편집자. 출판사 스위밍꿀에서 에세이 『펀치: 어떤 만화 편집자 이야기』(2024)를 냈다. 집 가서 만화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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