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레이션] 다시, 우리에게 필요한 시간
어린이의 마음으로 펼쳐본 두 권의 그림책.
글: 유지현
2026.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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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는 멀리 갈수록 큰 사람이 될 것이다. 우리가 가 보지 못한 곳에 닿아서, 한번도 만나지 못한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어린이는 멀리 간다』, 6쪽, 김지은 저)

 

어린이는 멀리 떠나는 사람이다. 어린이는 우리가 가 보지 못한 곳에서 새롭게 세상의 경이와 신비를 느끼며 성장한다. 그렇게 멀리 갈 수 있는 어린이의 마음으로 두 권의 그림책을 펼쳐본다.


 

『바다로 가는 기차에 호랑이가 탔어요』

마리사 둘락 글/레베카 코브 그림/엄희정 역|미래엔아이세움

 

모래삽과 양동이를 든 소년의 모습에서 설렘이 느껴진다. 그러나 곁에 있는 아빠는 무심하게도 휴대폰만 들여다보고 있다. 이야기는 “그날 바다로 가는 기차에서 무슨 일이 있었냐 하면…”으로 시작된다. 그건 옆자리에 커다란 검은 모자를 쓴 호랑이가 탄 것이다. 아이는 “아빠! 방금, 봤어?”하고 묻지만 휴대폰 화면에서 절대 눈을 떼지 않는 아빠가 호랑이를 봤을 리 없다. 심지어 아빠가 고개를 든 순간에는 호랑이가 절묘하게 만화책으로 얼굴을 가린다. “치크치크 추크추크 치크치크 추크추크” 마치 마법 주문 같은 소리와 함께 기차는 계속 바다로 간다. 아빠의 시선이 다시 휴대폰으로 향하자 우당탕 소리와 함께 새로운 동물들이 등장한다. 악어떼, 하마, 돼지 가족, 퍼그, 쥐까지 여러 동물들은 아이에게 여러 친절을 베푼다. 뜨거운 차와 캐러멜을 나누고, 카드 게임을 하며 기차 안을 소란하게 채운다. 이 모든 상황에서도 아빠는 홀로 평온한 모습으로 여전히 휴대폰만 보고 있다.

 

호랑이가 울음소리를 냈을 때 상상의 시간이 끝난 줄 알았건만 호랑이는 다짜고짜 아빠의 휴대폰을 꿀꺽 삼킨다. 놀란 아빠가 “지금, 봤니?”하고 묻지만 아이는 모른 척 호랑이와 함께 도망쳐 바다로 내달린다. 휴대폰이 없어지니 아빠의 눈길이 드디어 아이를 향한다. 함께 모래사장을 뒹굴고, 모래성을 만들며 신나게 논다. 호랑이 뱃속에서 희미하게 휴대폰 벨소리가 들려 오지만, 아빠는 온전히 아이와의 시간을 즐긴다. 아빠와 휴대폰이 아닌 아이는 손을 마주 잡는다. 현실로 돌아온 마지막 장면에서 아빠는 달라진 모습이다. 우연한 단절로 인해 이뤄진 자연스러운 디지털 디톡스 덕분일까. 생각해보면 우리는 현실에서 온전히 벗어날 기회를 좀처럼 경험하기 어렵다. 어린이, 어른 모두 모든 소통을 스마트폰으로 하고 있다 보니 화면 밖의 세상에서 쉽게 기쁨을 느끼기가 어렵다. 부디 그림책을 펼친 동안만이라도 온전히 환상 속에 머무는 시간을 즐겨보면 어떨까?


 

『반짝반짝』

문지나 글/그림|문학동네

 

내 휴대폰 사진첩에는 무용한 장면이 가득 있다. 꽃이 어여뻐서, 빛의 그림자가 아름다워서, 거리 풍경이 귀여워서… 찍은 순간에는 이유가 있었을 테지만 그때의 감정이 휘발되는 순간 장면의 의미도 사라진다. 그런데 이 그림책을 보고 나서는 순간의 감정과 의미를 소중히 기억하고 싶어졌다.

 

『반짝반짝』은 어린이의 시선으로 느낀 일상의 반짝임을 그러모아 아름답게 담아낸다. 문구점 앞을 걷는 아이는 뽑기 통 안의 구슬, 껌을 감싸고 있던 은색 종이, 그늘 밑의 돌멩이들처럼 눈에 보이는 반짝임을 찾아낸다. 하교 중인 아이는 길 위의 수많은 색의 일렁임, 할머니의 하얀 머리카락, 마당을 물줄기가 흩어지며 부서지는 것처럼 순간에 포착될 수 있는 반짝임을 발견한다. 어린 시절 기억이 뽀얗게 소환된다. 친구 앞에서 색색의 종이로 작은 별들을 접었던 쉬는 시간, 여름날 물총을 쏘면서 흩어지던 물방울의 빛을 발견했던 내게도 존재했던 반짝반짝한 시간들이 떠올랐다.

 

반짝임에 대한 아이의 사유는 계속 이어진다. 동굴 속에 새겨진 비밀 같은 창밖의 불빛들, 깃털처럼 떠다니는 한낮의 빛처럼 시적 상상력으로 연결되는 반짝임도 있다. 낙엽이나 솔방울 같은 길가에 떨어진 작은 이야기, 고인 빗물 위로 깜빡거리는 신호등 불빛, 물웅덩이 속을 흘러가는 구름처럼 서로를 비추면서 발견되는 반짝거림도 있다. 또 오롯이 나의 마음을 통해서 느낄 수 있는 반짝거림도 있다. 고양이의 털 위로 내려앉는 오렌지색의 아침 햇빛, 좋아하는 아이가 안녕하고 말하며 활짝 웃어주는 얼굴. 온 세상이 이토록 반짝이는 것들로 채워져 있다.


반짝임은 눈으로도 볼 수 있고, 만질 수도 있으며, 마음으로 느낄 수도 있다. 오감을 기분 좋게 간지럽히는 순간들을 잊지 말자. 어린이가 보여주는 세계를 간직하자. 반짝반짝한 것들은 우리의 세계를 그야말로 충만하게 채워준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 AI 학습 데이터 활용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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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로 가는 기차에 호랑이가 탔어요

<마리사 둘락> 글/<레베카 코브> 그림/<엄희정> 역

출판사 | 미래엔아이세움

반짝반짝

<문지나> 글그림

출판사 | 문학동네

어린이는 멀리 간다

<김지은>

출판사 | 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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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지현

어린이청소년문학서점 ‘책방 사춘기’를 운영하며, 그림책과 동화, 청소년 소설을 소개한다. 본명보다 '춘기' 혹은 '춘기 이모'라 불리는 게 더 익숙한 사람. 앤솔러지 에세이 『좋아한다고 말할 수 없었어』에 참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