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길보라의 엄마가 된다
[이길보라 칼럼] 엄마됨과 예술가
"돌봄은 예술이 될 수 없는가. 엄마됨이라고 하는 건 예술가에게 어떤 의미인가." 영화감독이자 작가인 이길보라가 엄마됨과 예술에 관해 이야기합니다.
글: 이길보라 (영화감독, 작가)
2026.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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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개월 아기를 안고 미술관에서 전시를 보는 모습. 예술을 감상하러 온 것인지 육아를 하러 밖에 나온 것인지 알 수 없는 상태의 엄마됨과 예술가 되기. ©Tanaka Ken


Motherhood. 엄마됨, 모성, 어머니가 되는 상태, 어머니로서의 삶과 책임, 경험 등을 포괄적으로 나타내는 단어다. 이 단어를 『자아, 예술가, 엄마』라는 책에서 처음 접했다. 문화예술기획자이자 이 책을 쓴 김다은은 엄마가 되는 경험을 하며 스스로 질문한다. 

 

왜 예술계에서 엄마됨은 잘 보이지 않는 걸까? 또는 한 사람의 삶을 완전히 뒤바꾸는 엄마됨의 과정에 대해 들어볼 수는 없는 걸까? ‘여성’을 둘러싼 이슈들이 다층적으로 다뤄지는 현대예술 안에서 왜 유독 ‘여성-엄마’라는 주제는 드러나지 않을까? 엄마됨과 예술은 어디에서 어떠한 모습으로 공존하고 있는 것일까?

 

시각 예술분야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엄마이자 예술가들의 인터뷰, 에세이를 엮은 이 책에서 나와 같은 기로에 서 있는 이들의 이야기를 만날 수 있었다. 페미니스트이자 예술가로서 아이를 낳기로 선택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왜 그 경험들은 드러나지 않는가. 돌봄은 예술이 될 수 없는가. 엄마됨이라고 하는 건 예술가에게 어떤 의미인가. 여러 생각을 하며 책을 읽었다. 

 

그러다 An Artist Residency in Motherhood1라는 프로젝트를 접했다. 이는 어머니이기도 한 예술가들에게 힘을 실어주고 영감을 주는 자율적 오픈소스 아티스트 레지던시로서, 기존의 아티스트 레지던시가 어딘가에 물리적으로 머물면서 새로운 환경에서 영감을 받고 창작에 전념하는 시공간을 제공하는 것이라면 위 레지던시는 태도 혹은 상태에 가까운 것이었다. 육아하면서 힘들게 신청서를 쓸 필요도 없고, 값비싼 비용을 들이지 않아도 되고, 원하는 대로 시간을 할애할 수 있으며, 아이와 함께 이동하거나 혹은 아이를 누군가에게 맡기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웹사이트에서 레지던시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확인하고 어떤 강령이 있는지 읽어보고 사용 설명서를 다운받아 자신만의 레지던시를 구축하는 방식이었다. 필요하다면 온라인으로 진행되는 멘토십 프로그램에 참여하거나 멘토가 되어 멘토링을 진행할 수도 있었다. 엄마이면서 동시에 예술가로서 어떻게 돌봄과 창작을 지속할 것인지 고민하는 전 세계의 ‘엄마됨 예술가’들과 연결되어 우리가 혼자가 아니며 우리의 커리어는 끝나지 않았으며 창작은 아이를 돌보는 그 순간에도 계속되고 있음을 확인하는 방식의 자가 레지던시였다. 그제야 깨달았다. 


‘아, 이건 관점의 전환이구나. 이게 예술이구나.’


지금 당장 어딘가를 가서 아티스트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참여하지 못해도, 물리적으로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무언가를 창작할 수 없어도, 세상을 바라보고 대하고 해석하는 관점만 바꿔도 되는 거라는 걸 다시금 깨달았다. 맞다, 무언가를 다르게 바라보는 법을 제시하고 제안하는 것, 그게 예술이었지. 

 

그렇게 생각하니 육아를 하며 끄지 못한 데스크탑과 노트북, 나중에 읽겠다고 덮어둔 책들과 노트들이 다르게 보였다. 무수히 쌓여 있는 빨랫감과 아이 장난감으로 널브러진 거실을 용인할 수 있게 되었다. 무엇보다 이전과는 같은 방식으로 일할 수 없음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아니, 그래야만 했다. 출산 전에는 마음만 동하면 바로 프로젝트를 시작했지만 이제는 함께 돌봄의 몫을 나누어지는 이들과 상의를 해야 하고 일을 하다가도 아이의 상태를 살피며 속도 조절을 해야 했다. 이전에는 지금 당장 퇴고하지 않으면 송고할 수 없다는 마음으로 쓸 수 있는 에너지의 총량을 다해 글을 마무리했다면 지금은 70~80%의 체력만을 쓰고 나머지는 편집자나 다른 이들이 보완해주기를 바라는 마음 상태를 가져야 했다. 또한 뭐 하나 잘못되면 나락으로 떨어진다는 불안을 떨쳐내야 했다.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하겠지만 무언가 문제가 생기면 다음에 채우자고 되뇌어야 했다. 작업은 누군가가 이어서 할 수 있지만 내 눈 앞에 있는 이 작은 아이는 내가 아니면 아무 것도 할 수 없으니까. 

 

이는 새로운 상태가 되었다는 것을 단순히 수용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았다. An Artist Residency in Motherhood를 만든 예술가 렌카 클레이튼(Lenka Clayton)이 레지던시의 시작을 소개하며 함께 올린 작업이 무척이나 창의적이고 재밌었기 때문이었다. 


아이를 낳기 전, 15년 간 예술가로 활동해온 그는 아티스트 레지던시에 자주 참여하곤 했는데 출산 후에는 그러기가 어려웠다고 말한다. 대다수의 레지던시는 파트너 혹은 아이와 함께 체류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고 출산과 양육의 공백으로 인한 경제적인 어려움도 있었기에 그는 자신만을 위한 레지던시를 만들기로 결정한다. 선언문을 쓰고 필요한 것을 목록으로 만든 후에 이를 예술 프로젝트로 만들어 지원금을 받는다. 주변의 예술가와 학자, 그리고 엄마됨을 먼저 경험한 자신의 어머니를 멘토로 임명하여 작업과 돌봄의 체계를 구축한다. 


그는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어머니로서의 삶에 대한 작업을 하는 것이 아니라 ‘어머니로서의 삶에서 비롯된 작업을 하고 있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었다고 말한다. 그에 따라 〈내가 내 아들과 떨어져 있을 수 있는 거리〉2라는 제목의 비디오 작업을 만들었는데 내용은 이렇다. 언덕 위에 카메라를 세워두고 아이를 촬영한다. 아이는 신이 나서 멀리 저 멀리까지 달려가고 결국 하나의 점이 될 때까지 멀어진다. 카메라 뒤에 서 있던 감독은 아이를 지켜보고 또 지켜보다가 결국 참지 못하고 엄마로서의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카메라 앞으로 달려 나간다. 예술가인 렌카 클레이튼이 아들과 떨어질 수 있는 거리는 고작 51m이며 그 이후에는 엄마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것이 바로 돌봄과 창작 작업 사이에 매일매일 벌어지는 팽팽한 긴장이자 관계라고 말이다.


또한 〈내 아들의 입에서 꺼낸 63가지 물건〉3은 제목 그대로 아이의 입에서 꺼낸 것들을 오브제로 촬영한 작품이다. 단추, 동전, 씨앗, 나뭇잎, 장난감, 클립 등 손쉽게 입에 넣을 수 있고 삼키면 위험한 온갖 것들이 늘어져 있다. 귀엽고 사랑스러우면서도 동시에 엄마가 창작하고 육아하느라 고생이 많다며 동질감으로부터 비롯한 웃음이 터져 나오는 작품이다. 


그의 웹사이트를 살펴보며 어머니가 되고 육아를 하는 경험이 예술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관점의 전환의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또한 지구 반대편에 나와 같은 처지의 사람들이 매우 많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렇다면 나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까짓 거 뭐, 해보자, 엄마됨과 예술가!




1 2012년에 설립된 이 레지던시는 렌카 클레이튼이 첫째 아이가 한 살 반이 되었을 때 설립했고, 그 자신이 3년간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자세한 내용은 웹사이트에서 살펴볼 수 있다. 

2 Lenka Clayton, The Distance I Can Be From My Son (Park). (2013). video series / 1:43 min.

3 Lenka Clayton, 63 Objects Taken from my Son's Mouth. (2013). acorn, bolt, bubblegum, buttons, carbon paper, chalk, Christmas decoration, cigarette butt, coins (GBP, USD, EURO), cotton reel, holly leaf, little wooden man, sharp metal pieces, metro ticket, nuts, plastic “O”, polystyrene, rat poison (missing), seeds, slide, small rocks, specimen vial, sponge animal, sticks, teabag, wire caps, wooden block / size laid out as shown 40" x 40" x 1".



* AI 학습 데이터 활용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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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길보라 (영화감독, 작가)

농인 부모에게서 태어나 고요의 세계와 소리의 세계를 오가며 자랐다. 글을 쓰고 영화를 만들며 서로 다른 세계들을 연결하면서 살고 있다. 지은 책으로 책 『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어서』, 『고통에 공감한다는 착각』 등이 있고 영화 〈반짝이는 박수 소리〉, 〈기억의 전쟁〉 등을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