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중미 “돌봄은 생애 전 주기에 걸쳐 누구에게나 필요한 삶의 조건이에요” | 예스24
돌봄은 우리 삶의 조건이에요. 그걸 가정 내의 딸이, 여성이 맡아야 하는 게 문제인 것 같아요. 개인의 짐, 고통이 되지 않게 혼자 감당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글: 출판사 제공 사진: 출판사 제공
2026.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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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미 작가 ⓒ강민구


2000년에 『괭이부리말 아이들』을 시작으로 아동청소년들에게 문학으로 다양한 사회 모습을 전해온 김중미 작가가 처음으로 자신의 가족 이야기를 들려준다. 『엄마만 남은 김미자』는 김중미 작가가 인지장애가 온 엄마를 돌보면서, 1970년대 무렵부터 자기 가족의 일대기를 풀어내는 책이다. 그 일대기는 작가의 원가족에서 시작해 위 세대의 이야기로 퍼져나가며, 지난 50여 년간 한국 사회가 발전함에 따라 계속해서 주변부로 떠밀릴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의 삶을 담아낸다.


 

첫 가족 에세이 출간 후 주변 반응은 어떨지, 어머니 김미자님은 혹시 출간된 사실을 인지하고 계실지 궁금해요.

출간된 뒤 엄마에게 가장 먼저 갖다 드렸지만, 엄마는 인지하지 못하셨죠. 1년 전만 해도 의미를 몰라도 축하해주셨을 텐데, 그 대신 요양보호사님들이 틈틈이 읽으신다고 해요. 책을 읽으며 동생은 동생대로 남편은 남편대로 각자의 시간을 돌아보았던 것 같아요. 책을 읽으며 ‘김중미’가 아니라 자신을 돌아보았다는 이야기가 기뻤어요. 

 

에세이에는 가족 내 돌봄에 대한 구성원들의 입장이 현실적으로 드러나 있어요. 가족 안에서 뿐만 아니라 요양 병원 등 외부에서도 자연스럽게 돌봄 노동이 여성들에게 흘러드는 흐름이 보이기도 하구요.

가부장제의 폐해, 돌봄이 여성 그리고 이주노동자에게 흐르는 현상은 유교 국가인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돌봄을 공부하며 읽은 번역서들을 보면, 유럽이나 미국 역시 돌봄 문제는 여성에게 떠맡겨져 있더군요. 돌봄은 삶의 조건이잖아요. 우리는 태어나 자라고 죽을 때까지 누군가의 돌봄을 받으며 살아가죠. 돌봄은 내가 수행할 노동만 피하면 되는 게 아닌 거예요. 우리는 살아가는 모든 순간에 누군가의 돌봄을 받고 있어요. 그런데 육아를 비롯해 노인, 장애인, 환자 돌봄처럼 몸과 마음을 쓰고 시간을 써야 하는 이 일이 여성에게서 시장으로 가면서 돌봄이 우리 삶의 조건이라는 것도, 그 바탕이 사랑이라는 것도 사라져버렸어요. 그렇게 시장의 상품이 된 돌봄은 그 가치가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돌봄을 수행하는 이들에 대한 존중도 사라지고 있죠. 돌봄을 받아야 하는 사람은 자신이 쓸모없는 사람이 된 것 같아 괴롭고요. 

돌봄에 대한 관점부터 변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러려면 정부와 사회가 시장으로 넘어간 돌봄 시스템을 다시 공공의 영역으로, 지역 공동체 안으로 들여와야 하지만 거기에 더해 돌봄을 받아야 하는 우리, 누군가를 돌봐야 하는 우리도 바뀌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돌봄이 필요한 것은 주체적이지 못한 나약한 소수, 혹은 늙고, 병든 존재가 아니라 생애 전 주기에 걸쳐 누구에게나 필요한 삶의 조건이라고요.

 

에세이에는 1970~80년대 인천, 동두천의 마을 풍경이 자주 나와요. 과거의 연대와 오늘날의 연대, 그리고 미래의 연대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실까요?

저는 우리의 주거지가 공동주택(아파트)으로 변한 것도 지역 공동체가 사라지는 데 큰 몫을 한 것 같아요. 그렇게 온 도시에 공동주택이 들어서고 모든 길에 아스팔트가 깔리면서 우리는 내가 누구와 같이 사는지(인간뿐 아니라 비인간 존재까지) 알 수 없게 되었죠. 저는 이 위기감을 두려움, 울분감으로만 느끼는 게 아니라 우리에게 도달한 이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까로 바꾸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온전히 ‘나’로 존재하는 내가, 사실은 수많은 생명과 연결되어 있다는 자각이 필요한 것 같아요. 저희 공부방이 있는 인천 만석동 옆에 있는 화수동이 곧 재개발이 돼요. 그곳에는 대를 이어 살아온 서민들이 아직 살고 계세요. 평생 수제화를 만들며 이웃인 장애인 손님의 발이 불편하지 않도록 고민하는 구두장인, 어머니가 해온 기름집을 이어 하면서 동네에서 상담사 역할을 마다하지 않는 사장님이 계시고, 사정이 있으면 손님인 이웃에게도 가게를 맡길 수 있는 동네죠. 앞집 할머니는 당뇨가 있고, 뒷집 할아버지는 고혈압이 있다는 걸 아는 이웃들이 서로를 돌보며 살았는데 재개발이 돼요. 그런데 이곳에 새로 지어질 브랜드아파트에 들어갈 수 있는 주민은 몇 안 돼요. 그래서 그 주민들과도 그 이후를 생각해보자고 이야기를 해요. 지금처럼 함께 살아가는 터전에서 서로 돕고 돌보던 삶은 불가능하겠지만 서로의 안부를 살피고 뭔가를 같이 하는 모임을 만들자고 했는데, 그렇게 의식적으로 작은 공동체를 만들어가고 연결하는 게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에세이는 여성들의 삶에 주목하고 있어요. 그 시선에는 자연히 남성들의 자리와 삶도 함께 담기는데요, 에세이 속 아버지는 과거 남성의 자리를 보여주는 인물로 보이기도 해요.    

저와 30년 넘게 함께 공동체로 사는 부부가 열 쌍인데요. 저희 역시 신혼 때부터 그 가부장제와 가열하게 싸웠죠. 가장 가까운 동지로, 가족으로 살아가면서 끊임없이 여성, 남성이 대립했어요. 육아, 밥상을 나누기까지 지난한 시간을 겪었죠. 이제는 가사노동의 분배나 육아를 자연스럽게 함께 하지만 가부장제가 뿌리 깊은 사회에서는 갈등이 필수였죠. 사회적인 고정관념, 관습으로부터 남성 스스로 자유로워지는 게 쉽지 않은 것 같아요. 가끔 ‘남성’이 답답하기만 한 게 아니라 가엾고 외롭게 느껴지는데요. 중년 남성들만이 아니라 젊은 남성들도 크게 다르지 않아요. 저는 남성 역시 가부장제의 피해자라는 생각을 하거든요. 남성들이 어려서부터 소통하고, 나누고, 타자의 자리와 입장을 살피는 법을 배우지 못한 것 같아 안타까워요. 

인간 사회는 생물학적 여성과 남성이 반반씩 존재하고,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잖아요. 이제까지 남성이 인간 사회를 이끌어왔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함께 이룬 문명이고 사회죠. 그저 여성이 지워졌던 것뿐이지. 지금은 남성의 자리가 없어지는 게 아니라 지워졌던 여성의 자리가 드러나는 시기라고 생각해요. 평등이 가시적으로 드러나야만 하는 시기라고 할까요. 호모사피엔스가 출현한 지 7만 년 중에, 여성이 집단으로 목소리를 내며 우리의 존재를 드러내기 시작한 건 길게 봐야 150년쯤 아닐까요? 저는 이 갈등이 더 오래갈 거라고 생각하고요. 여성에게나 남성에게 꼭 필요한 갈등이라고 생각합니다. 

 

책에서 언급하셨던 ‘맏딸콤플렉스’에 공감할 여성 독자님들이 많을 것 같아요. 지금은 ‘맏딸콤플렉스’와는 어떻게 공생하고 계신지 궁금해요.

에세이에도 나오지만, 맏딸로서 가졌던 무거운 짐과 감정을 엄마에게 토로하고 해소하는 것이 엄마와 관계에 쌓인 갈등을 해소하는 길이라고 여겼는데 그렇지 않았어요. 그건 엄마와 관계에서 해소해야 할 것이 아니라 제가 해석하고 그 콤플렉스에서 벗어나야 하는 것이었죠. 그걸 깨닫고도 엄마에게 살가운 딸이 되지 못했던 게 아쉬웠어요. 그런데 엄마 아버지의 돌봄이 4남매의 몫이 되고 나서 맏딸콤플렉스가 되살아나 깃발을 들고 4남매 사이의 중재를 맡았어요. 그렇게 8년을 지나는 동안 제 자리가 맏딸에서, 그냥 엄마와 딸의 관계로, 다시 한 여성과 여성으로 관계가 바뀌었던 것 같아요. 엄마는 이제 음식을 삼키는 기능도 잃으셨고, 자주 위급한 상황이 돼요. 그러나 가난한 저희 4남매는 서로의 처지와 입장을 인정하고 이해하고 있어서, 제가 맡게 되는 역할이 맏딸 콤플렉스의 억압이라고 여겨지지 않습니다.

 

작가님과 비슷한 생애 주기를 지나고 있는, 엄마이자 딸이자 돌봄의 책임자이자 훗날 돌봄의 대상이 될 여성 독자님들에게 해주실 말씀이 있을까요?

돌봄은 우리 삶의 조건이에요. 그걸 가정 내의 딸이, 여성이 맡아야 하는 게 문제인 것 같아요. 개인의 짐, 고통이 되지 않게 혼자 감당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도 나누지 않고 혼자 책임져야 한다는 압박을 느낄 때가 가장 힘들었던 것 같아요. 주변에 알리고 묻고 도움을 청하면서 돌봄의 길을 찾아가야 할 것 같아요. 정보가 막혀 있거나 분절된 정보가 많아서 혼자 길을 찾으면 어려워요. 나의 어려움을 주변에 알리고 함께 하다 보면 길이 보여요.

 

앞으로 작업 예정이신 소설에 대해서도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

가족의 이야기를 에세이로 한 것은 저희 가족 이야기가 너무 소설적이라 엄마 아버지나 외가와 친가의 인물들을 허구적인 존재로 만들고 싶지 않기 때문이었어요. 그런데 외할머니가 그렇게 세상에 남기려던 당신의 이야기는 원고와 일기 모두 사라져버렸죠. 주부였던 외할머니에 대한 정보는 찾기가 쉽지 않아요. 그래도 대부분 비어 있는 그 퍼즐을 허구로라도 메워보고 싶었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 외할머니의 삶을 뼈대 삼아 강화와 인천의 개항기, 일제강점기, 6·25전쟁을 거치며 앞으로 나아가고자 했으나 휘청이다 스러져간 한 여성의 삶을 소설로 복원해 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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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