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지니아 울프 저/이미애 역 | 민음사
책들의 우주를 유영하는 작품 중엔 누구나 다 알지만 (거의) 아무도 읽지 않은 고전들이 참 많다. 문학사적 중요성이 반드시 재미를 보장하지 않듯이, 인류사적 관점에서 보자면 굉장한 작품들이지만 한 사람의 독자로서 마주하기엔 영 내키지 않는 그런 책들이 있는 것이다. 그리스 고전, 다들 아시죠? 그런데 이 작품들을 세심하게 읽은 분이 과연 얼마나 계실까? 교양을 위한 독서가 아니라, 진정한 의미에서 흠뻑 취하는 책 읽기 말이다. 특히나 고전은 동시대의 산물이 아니므로(비록 오늘날에 번역되었더라도), 내 삶을 슬쩍 가져다 붙이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거리감을 느끼는 건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고, 그러한 감정적 이입 불능에서 비롯하는 지루함(인간의 감정이란 늘 변덕스러운 법)은 덤이다. 그중에서도 유독 문학 독자들을 못살게 구는 작품이 있으니, 바로 ‘의식의 흐름’을 선뵈는 소설들이다.
모더니즘의 산물이라 할 수 있는 ‘의식의 흐름’은, 앞서 언급한 그리스 고전에 비하면 그리 먼 시대의 유산이 아니다. 어쨌든 ‘모던’의 자장(磁場)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은 어쩌면 그들 작품에 쉽게 공명할지도 모른다. 제임스 조이스, 마르셀 프루스트, 헨리 제임스, 버지니아 울프 등 우리가 익히 아는, 심지어 친구같이 느껴지는 이들의 책을 한번 펼쳐 보기로 하자. 음, 곧장 책장이 덮이는 소리가 들린다. 영문학과를 나온 분들이라면 벌써 눈치챘겠지만 울프나 조이스, 제임스의 작품들은 ‘통곡의 벽’이라 할 수 있다. 연구자에게도 장벽이므로 번역가에겐 시련이고, 학생들에겐 전장(戰場)이다. 또 놀라운 점은, 이들 작품이 “누구나 알지만 아무도 읽지 않은 고전”에 완벽히 부합한다는 것이다. 언젠가 시몬 드 보부아르가 무인도에 단 한 권의 책을 들고 갈 수 있다고 하면 주저하지 않고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사실상 한 권이 아니다.)를 가져가겠다고 얘기했다는데, 아마 그분 역시도 ‘그 책’을 읽으려면 무인도와 같은 억겁의 고독이 필요했는지도 모르겠다.
『댈러웨이 부인』은 울프의 다른 단편들을 살펴보면 쉽게 알아챌 수 있듯이, 그간의 여러 스케치를 발전시키고 재구성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게다가 비교적 초기에 쓰인 이 작품은 ‘모더니스트’ 버지니아 울프의 탄생을 알린 작품으로서 그 가치가 남다르고 하겠다. 일단 문학에 ‘실험’이라는 단어가 붙으면 누구든 골치가 아플 수밖에 없는데, 『댈러웨이 부인』도 마찬가지다. 정말 지금 읽어도 혁신적이다. 그동안 ‘사이비 의식의 흐름’에 시달리던 나는 비로소 이 책을 독파하고 나서야, 그 굉장한 도전에 전율할 수밖에 없었다. 이것은 거의 앵그르에서 피카소로 비약하는 수준의 충격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을 ‘모두를 위한 책’이라고 단언하기엔 어딘가 꺼림칙하다.
다시 작품으로 돌아오자. 일단 누군가가 책의 줄거리를 물었을 때, 명쾌하게 답할 수 없다면 결코 친절한 작품이라 할 수 없다. 특히나 ‘의식의 흐름’ 기법을 통해 집필된 작품의 경우엔 (서사적인 면에서) 더욱 불친절하다. 왜냐하면, 흐름 속에서 중요한 것은 부단한 떠나감이지 발자크식 극장에 들어찬 왁자지껄한 박장대소가 아니기 때문이다. 종전의 소설들이 누구나 혹할 법한 이야기를 구성하는 데에 치중했다면, 울프는 그 모든 것을 내려놓고 의식 속으로 침잠했다. 어떤 의미에서 진실은 사실이 아니라, 이 의식이기 때문이다. 우리 인생이 어느 회사에 제출하는 자기소개서와 같지 않듯이, 끊임없이 죽음으로, 그 유한성을 향해 질주하는 이 줄거리 없는 흐름이야말로 삶의 참된 반영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놀랍게도 이러한 지루함과 불친절마저 울프가 아주 예민하게 의도한 결과이니, 가끔 힘겨운 독서를 즐겨도 좋지 아니한가?
이 책은 단 하루 동안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단 하루, 24시간이 채 안 되는 찰나 같은 순간을 포착하고 있는 것이다. 280쪽을 단 하루의 시간으로 채우다니, 이미 야심작임을 감지할 수 있다. 난데없이 한 가지 이야기를 덧붙이자면, 번역은 물론이고(울프의 작품 중 최고의 난이도를 보여 주었다고 한다.) 편집을 하기에도 고된 작품이었다. “댈러웨이 부인은 꽃을 직접 사러 가겠다고 말했다.” 허먼 멜빌의 『모비딕』에서 “나를 이슈미얼이라 불러 달라”고 대뜸 말이 붙이는 첫 문장만큼이나 강렬하다. 사람들에게 ‘댈러웨이 부인’이라고 불리는 클래리사 댈러웨이는 그날 저녁에 열릴 파티를 준비하기 위해 아침부터 서두른다. 꽃을 사야 하고, 지난 연회에서 찢긴 드레스도 손봐야 한다. 우리는 한 사람의 자질구레한 상황과 그에 걸맞은 두서없는 의식의 행방을 따라 런던을 활보하게 되는데, 어느 순간 돌연히, 지금 읽고 있는 이 문장이 (꽃을 사러 나가겠다고 길을 건너던 클래리사가 아니라) 전혀 낯선 누군가의 목소리임을 깨닫게 된다. 그렇게 사소한 사건들이 겹겹이 포개지고, 족히 스무 명에 이르는 인물들의 의식이 (서로 무관하든 엮여 있든) 거대한 골조를 이뤄 나간다. 우리 모두가 자기 삶의 주인공이듯이(모두가 주인공이므로 사실상 주인공은 없는 셈이다.), 『댈러웨이 부인』은 이 단순한 진실을, 유한한 존재로서의 공평함을 조밀하게 얽히고설킨 의식들의 흐름을 통해 폭로하는 것이다.
그런데 더욱 소름 끼치는 사실은, 이러한 각각의 운명들이 (죽음처럼 절대적인) 시대 속에 가로놓여 있다는 점이다. 『댈러웨이 부인』은 수많은 목숨을 앗아 간 1차 세계 대전과 스페인독감이 한바탕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 우뚝 서 있다. 안정감이라는 달콤한 유혹에 빠져 사랑을 저버린 클래리사, 전쟁 영웅으로 추앙받지만 소중한 전우를 잃고 후유증에 시달리는 셉티머스, 어리석은 환상에 젖어 인생의 대부분을 허비한 피터, 단지 독일 혈통이라는 이유로(1차 세계 대전의 주모자) 모든 기회를 박탈당하고 광신에 매달리는 도리스 킬먼 그리고 그 밖의 속물들. 그야말로 잠깐 등장하는 거리의 걸인, 이제 막 런던에 도착한 시골 출신의 젊은 여자마저 이 불가피한 역사, 운명에 개입해 있는 것이다. 어쩌다 길에서 스쳐 지나갔을지도 모르지만, 실상 아무런 인연도 없는 클래리사의 회환과 전쟁 영웅 셉티머스의 고통이 지난날의 모든 것을 송두리째 바꿔 놓은 전쟁을 통해 뒤섞이고, 불현듯이 조응하면서 흠칫 몸서리치게 하는, 새삼 인생을 되돌아보게 하는 찌릿함을 전달하는 것이다.
책을 만들면서, 어쨌든 책 역시 하나의 상품이므로, 본의 아니게 ‘걸작’이라는 말을 남발하게 된다. 매일같이 쏟아져 나오는 온갖 책들의 표지를 뒤덮은 수많은 찬사와 추천의 말을 가만 들여다보면 관습적으로 쓰이는 일부 표현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이를테면, 흉보는 방법은 무궁무진하지만 칭찬하는 데에는 규격화된 표현이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나 또한 이런 혐의에서 자유롭지 않으며, 그동안 책을 만들면서 남사스러운 말을 습관적으로, 아니 천연덕스럽게 사용해 왔음을 인정한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진심이라고, 한 점 부끄럼 없이 말할 수 있다. 『댈러웨이 부인』은 ‘걸작’이다. 어차피 단 한 번 사는 인생인데, 아무리 불친절하고 우리 머릿속을 왕창 헤집어 놓을지언정, 이 같은 작품을 읽지 않고 최후를 맞이한다면 정말 어마어마한 손해다. 지난 십수 년간 책 만드는 ‘일’에 너무 함몰되어 있었는지, 오히려 독서가 가져다주는 경이를 지나치게 냉소적으로 과소평가해 왔던 것 같다. 그러나 나는 『댈러웨이 부인』을 통해 다시금 독서의 신비를 실감했고, 마지막 책장을 덮는 순간, 오래도록 잊고 살아온 그 기적을 새삼 경험했다. 이 작품은 그저 단 하루 동안의 사건을 다룰 뿐이지만, 그 보잘것없는 찰나 속에 인생사의 모든 것이 깃들어 있음을 일깨워 준다, 우리의 삶이 그러하듯이.
* AI 학습 데이터 활용 금지
댈러웨이 부인
출판사 | 민음사
유상훈 (편집자)
책을 읽고, 책을 만들고, 좋은 책을 찾아다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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