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의 총명한 두 번째 개 타티는 겨울철 산책이 끝나고 나면 헤어드라이어기 앞에 자리 잡고 나를 올려다보곤 했다. 언 몸을 녹이고 싶으니 어서 따뜻한 바람을 내놓으라는 의미였다. 하루는 차를 타고 외출했다 들어온 날도 당당히 온풍을 요구해 나의 핀잔을 사기도 했다. 헤어 드라이어에 눈길이 머문 김에 오늘은 아로하를 목욕시키기로 한다. 집집마다 고유한 ‘멍빨’의 절차가 있을 텐데 내 경우 다섯 장 가량의 수건과 드라이어, 빗, 귀 세정제를 ‘건조 구역’에 깔아놓는 일이 첫 단계다. 접이식 욕조를 받침대에 올리고 수온을 맞춘 다음 눈치껏 체념하고 귀를 내린 아로하를 영차 안아 올려 샤워 부스로 들어간다.
개들은 잘 모르겠지만 인간은 개를 목욕시키는 동안 몹시 긴장한다. 내 개가 한번 목욕을 괴로운 과정으로 인식해버리면 남은 평생 고생길이 열리기 때문에 나쁜 기억을 최소화해야 한다. 둔감한 부위부터 적시고 얼굴은 마지막에 거품을 내서 재빨리 헹궈낸다. 사람과 달리 개 목욕의 본론은 말리기다. 씻기보다 훨씬 오래 걸릴 뿐만 아니라 세심하지 않으면 화상이나 피부병이 생길 수 있다. 무엇보다 털을 꼼꼼히 말리는 동안 반려인은 개의 몸에 일어난 작은 변화를 손끝으로 발견한다. 모질의 변화, 새로 생긴 뾰루지나 지방종, 갈비뼈가 만져지는-혹은 만져지지 않는- 정도의 변화를 찾아낸다. 별다른 이상이 없이 과정이 완료되면, 우리의 작은 집은 샴푸 향 서린 개운한 공기로 가득 찬다. 마침내 해방된 보송한 개가 얼굴을 러그에 부비며 축하 세레모니를 하는 동안, 물기와 털로 만신창이가 된 인간은 샤워를 하러 다시 욕실로 향한다.
목욕은 내 개의 무게와 체온, 냄새 그리고 구석구석의 생김새를 속속들이 확인하는 시간이다. 오늘의 주제. 개는 종합적으로 아름답다. 어떤 자연의 피조물이 나름의 방식으로 완전하지 않겠냐만은, 그 중 내가 지근거리에서 샅샅이 아는 아름다움은 개의 그것뿐이다. 어느 영화감독은 고양이에게 반한 운명의 날을 “세상에 이렇게 완벽한 디자인이 있나 싶었다”라고 회상한 바 있는데, 다른 반려인들은 새나 거북이, 금붕어의 아름다움을 장문으로 예찬할 수 있으리라. 어디부터 시작할까? 우선 강아지 발바닥, 이른바 젤리는 아기일 때 말랑한 분홍살이었다가 검고 탄탄하게 변한다. 이 사실을 몰랐던 나는 첫 강아지 수지의 발바닥이 어느 날 ‘흑화’한 것을 보고 중병인 줄 알고 울고불고 소란을 피운 흑역사가 있다. 개들이 태평하게 공중에 발을 쳐들고 낮잠에 빠져있을 때면 통통한 볼록살을 초인종처럼 딩동 누르고 싶은 충동을 참기 어렵다. 실제로 뒷발 쿠션을 꾹 누르면 지압 효과가 있는지 트림 소리로 화답하기도 한다. 개의 앞발에는 뒷발에 없는 발목 볼록살과 곁갈고리 발톱(며느리 발톱)이 있다. 아로하의 신체상 비밀(?)이 여기 있으니 우리 개는 뒷발에도 곁발가락이 달렸다. 나로선 다다익선, 뭐든 더 많은 아로하라면 더 큰 행복이라는 입장이다.

아로하는 멀리서 보면 하얗게 보이는 얼룩 강아지다. 흰 바탕에 카푸치노 색 반점들이 큼직큼직 들어있는데 모두 신기하게도 등 가르마를 기준으로 오른쪽 반신에 자리하고 있다. 수지와 타티가 흰 털을 가진 개였기 때문에 아로하와 살면서 나는 처음으로 털이 바둑무늬인 강아지는 피부도 점박이고 잇몸이나 입천장에도 얼룩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아로하는 본래 땡땡이 수정란이었던 것이다. 귀여워! 똘망하고 욕망에 정직한 아로하의 눈은 예쁘다는 칭찬을 거의 매일 받는다. 하지만 내 심장에서 지울 수 없는 눈의 이미지는 타티와 수지가 남겼다. 타티는 입양 후 8개월 정도 햇빛에 부신 듯 눈을 가늘게 떴다. 그리고 나와 아이컨택을 슬몃 피했다. 백내장이 있는 걸까 걱정했지만 아니라고 했다. 동거가 1년이 넘어가면서 타티는 조금씩 나와 눈을 맞추기 시작했다. 그제서야 나는 몇 번째 반려인이 바뀌었을지 모를 이 개가, 마음을 섣불리 뿌리내리지 않으려고 방어 본능을 발동한 게 아닐까 짐작했다. 2019년 6월 타티가 병원에서 돌아오는 차의 조수석에서 숨을 거뒀을 때 나는 내 개의 아름다운 눈을 조금이라도 오래 보고 싶은 욕심에 눈꺼풀을 바로 감겨주지 못했다. 심지어 눈동자에 손가락을 올려보다 지문까지 남겼다. 뜬 눈이 많이 아렸을 텐데. 아직도 그때의 이기심을 후회한다. 첫 반려견 수지는 열일곱 살쯤 되었을 때 안구를 붙드는 인대가 늘어져 끝내는 적출 수술을 치러야 했다. 쌍둥이별 같은 눈이 있던 자리에는 봉합의 흔적만 남았고 몰래 슬퍼하는 인간들과 아랑곳없이 개는 남은 감각들을 동원해 꿋꿋이 일상을 유지해 나갔다. 그래서 이제 와 마음으로 노년의 수지를 돌아보면 수술 자국이 아니라 눈꺼풀 뒤 의연한 한 쌍의 눈빛이 보인다.
나는 등하교길에 최대한 빈둥거리는 초등학생이었다. 사방에 한눈을 팔고 모든 문방구를 기웃거리고 아파트 철조망 사이로 삐져나온 나무와 풀을 집적댔다. 그러던 어느 여름 무심코 만져본 장미꽃잎은 나를 경악시켰다. 피아노 콩쿠르를 위해 엄마가 사준 우단 원피스는 댈 것도 아니었다. 인간이 일부러 만들지 않은 것에 이런 정밀한 보드라움이 존재할 수 있다니! 이후 살면서 이 천상의 촉감을 내가 다시 느낀 곳은 개의 귀다. 귓불의 피부가 바깥쪽으로 갈수록 얇아지다 털과 만나기 직전의 삼각형 구역을 엄지와 검지로 집어볼 때마다 나는 경건해진다. 한편 두개골과 연결되는 꼬들꼬들한 귀 뿌리 부분은 내가 가하는 압력에 유연하게 반발하며 장난을 건다. 기분이 무거워질 때 이보다 좋은 테라피는 없다.
영화와 예술에 대해 가끔이나마 말을 얹는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으로서 개와 함께하는 삶이 주는 심각한 곤란함이 있다면, 아름다움에 대한 갈증을 느끼는 순간이 드물다는 것이다. 결핍이 있어야 눈에 불을 켜고 아름다움을 찾아 성실히 헤맬 텐데, 웬만한 미술, 음악, 드라마, 영화가 주는 미적 감동은 수월히 넘어서는 존재가 지척에 있으니 배부른 나머지 게을러지고 마는 것이다. 묘사하고 싶었던 개의 아름다움 중 절반도 쓰지 못했는데 원고를 보내고 산책을 나갈 시각이 되고 말았다. 목욕 덕분에 긍지가 높아진 아로하가 옆에서 온몸으로 재촉하고 있다. “어째서 당신은 당장 아름다움과 하나가 될 수 있는데 고작 그것에 대해 부정확하게 끄적거리고 있는 거지?” (다음에 계속)
* AI 학습 데이터 활용 금지
김혜리
테리어 믹스 아로하 샨티 킴과 서울에서 살고 있다. 팟캐스트 <김혜리의 필름클럽>, <조용한 생활> 운영. 『묘사하는 마음』, 『나를 보는 당신을 바라보았다』, 『그림과 그림자』 등을 썼다.
![[윤경희 칼럼] 사라진 숲에서 곰팡이는](https://image.yes24.com/images/chyes24/article/cover/2026/02/20260206-ccb802e5.jpg)
![[김해인의 만화절경] 올해의 만화](https://image.yes24.com/images/chyes24/article/cover/2025/12/20251208-f7342428.jpg)
![[송섬별 칼럼] 저기서부터 여기까지 몽땅 ②](https://image.yes24.com/images/chyes24/article/cover/2025/06/20250604-2468aa04.png)
![[송섬별 칼럼] 저기서부터 여기까지 몽땅 ①](https://image.yes24.com/images/chyes24/article/cover/2025/05/20250507-df966cd9.png)
![[송섬별 칼럼] 내 뼈를 보고 싶어 했을지가 궁금하다](https://image.yes24.com/images/chyes24/article/cover/2025/03/20250312-56db4c82.png)
qhdud0429
2026.02.04
ksm021115
2026.01.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