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연과 인간은, 인간과 인간은 서로 어떻게 연대할 것인가, 질문을 던져온 나희덕 시인. 산문집 『반통의 물』『저 불빛들을 기억해』『예술의 주름들』 이후 5년 만에 산문집 『마음의 장소』를 다시 펴냈다. 시인은 영국과 미국, 프랑스, 튀르키예 등 해외 여러 도시들부터 한국의 회산 백련지, 전주 한옥마을, 전남 백운동 별서정원, 소록도와 나로도 등 국내 곳곳을 천천히 걸으며 수많은 장소들을 만났고, 그곳에서 든 성찰들을 사진과 함께 책 속에 담았다.
“산책과 여행, 삶을 견디게 하는 두 가지.” 나희덕 시인에게 걷기란 곧 사람을 “품어주고 길러주”는 일이기에 시인은 스스로를 ‘산책자’라 표현한다. 생각이 흘러넘칠 때면 억지로라도 몸을 움직인다. 그럼 마음도 이내 두 다리를 따라 걷고, 그러다 우연히 생각이 멈추는 공간을 발견하게 마련이다. “걸음을 멈추고 오래 머무”르는 곳. 그 순간 ‘공간’은 ‘장소’가 되고, 그곳은 우리에게 ‘마음의 장소’로 남는다. “살면서 지치고 외로울 때 오랜 친구를 찾아가듯 몸과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는 곳”이다.
『한 걸음씩 걸어서 거기 도착하려네』의 개정증보판, 『마음의 장소』를 출간하셨습니다. 2017년에 출간된 책을 다시 살펴보시면서 드신 감정이 궁금합니다. 또 그때와 지금을 비교했을 때 어떤 점이 달라지셨을까요?
예전에 쓴 글들을 다시 읽으며, 제가 어린아이처럼 호기심이 많고 움직이는 걸 어지간히 좋아하는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길에서 만난 낯선 사람들과 대화도 많이 나누고, 관광지보다는 사람들이 잘 찾지 않는 장소들도 여기저기 가보고…. 그때의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오르더군요. 지금보다는 훨씬 자유롭고 활력이 있었구나 싶고요. 개정증보판을 내자는 출판사의 제안에 글과 사진을 전체적으로 보완하고 새로운 글도 여러 편 추가했어요. 초판에서는 부를 나누지 않았었는데, 이번에는 지역이나 주제에 따라 4부로 나누고 서문도 새로 썼지요. 제목을 『마음의 장소』로 붙이고 나니 그야말로 새로운 마음의 장소가 하나 생겨난 느낌이에요. 책의 표지 색과 만듦새가 정갈하고 산뜻해서 마음이 환해져요.
『마음의 장소』의 서문에서, "산책과 여행, 삶을 견디게 하는 두 가지."라고 표현해주셨습니다. 이렇게 표현해주신 이유가 있으실까요? 산책과 여행이 작가님의 인생에 구체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궁금합니다.
올해가 붉은말의 해인데, 제가 붉은말띠예요. 그래서 그런지 역마살이 있나 봐요. 어릴 때부터 혼자 해찰하며 걷는 걸 좋아했어요, ‘산책’이나 ‘소요(逍遙)’라는 말을 알기 전부터. 서문에도 썼듯이, 산책은 단순한 걷기가 아니에요. 저는 ‘walking’이라는 말보다 ‘sauntering’이라는 말을 더 좋아하는데요. 헨리 데이비드의 설명처럼, 산책이란 성지 순례처럼 마음의 성소를 향한 발걸음이고 자연을 집으로 삼아 지상에 뿌리내리는 행위라고 할 수 있어요. 그는 적어도 하루에 네 시간 이상을 산책했다고 하는데, 그러지 않으면 자신의 건강과 정신을 온전하게 보전할 수 없다고 생각했지요. 저는 그 정도로 걸을 여유는 없지만 산책과 여행이 회복과 치유의 시간인 것은 분명해요. 저는 아프면 병원에 가는 대신 여행을 떠나요. 일상의 진부함과 무력함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집을 나서야 해요.
책 곳곳에서 시인으로서, 한 사람으로서의 성찰이 돋보였습니다. 비인간적 존재인 자연물 또는 사물을 통해 인간 삶의 방향과 태도를, 더 나아가서 시인으로서의 의식을 가다듬는 듯했는데요. 선생님께 자연과 사물은 어떤 의미인가요?
최근에 신유물론과 관련된 책들이 쏟아져 나오고, 비인간 존재나 사물이 지닌 생동성과 행위 주체성에 대한 인식이 넓어졌지요. 그런데 시인들은 생래적으로 만물과 대화하고 다른 존재들에 동화되는 기질을 지니고 있는 편이예요. 지난 4월에 출간된 제 시집 『시와 물질』에서 저는 무기질로 이루어진 유기체로서 인간을 새롭게 사유하고, 인간과 비인간 존재들이 서로 어떻게 연결(연루)되어 있는지를 탐구했는데요. 『마음의 장소』에서도 길 위의 벤치나 버려진 소파, 하늘에 떠가는 구름, 강변의 물닭, 언덕의 굽은 나무, 반려견과 인간 등의 모습이 담겨 있지요.
시를 쓰실 때와 산문을 쓰실 때, 글쓰기 방식에 어떤 차이가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폴 발레리는 산문은 보행에, 시는 춤에 비유했어요. 산문이 일정한 목적을 향해 나아가는 걸음이라면, 시는 움직임 그 자체의 심미성이 중요하지요. 시를 쓸 때는 춤과 춤추는 사람을 구별할 수 없는 어떤 역동의 순간이 필요해요. 내면의 리듬을 타고 흘러나오는 감정을 통해 시인은 정신의 상승을 경험하게 되지요. 그런 시적 순간은 드물게 오고, 의지나 노력만으로 이루어지는 건 아니에요. 시인은 자신을 열고 바깥을 향해 기다리는 수동적 존재지요. 그건 방임의 순간이면서 동시에 산문보다 훨씬 더 집중과 몰입이 필요해요. 그에 비해 산문은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찬찬히 전개하면서 독자를 글의 시공간 속으로 안내하지요. 물론 산문에서도 직설적인 표현을 줄이고 문장 사이의 여백을 충분히 두려고 노력해요.
본문에 실린 사진들이 매우 감각적이었습니다. 평소에도 사진을 많이 촬영하시나요? 주로 어떤 순간에 카메라를 드시는지, 또 사진이 글쓰기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궁금합니다.
책에 실린 사진들을 감각적으로 느끼셨다니 정말 다행이에요. 아마추어이긴 하지만 한때는 무거운 카메라를 들고 세계 곳곳을 다니며 열심히 사진을 찍었던 시절이 있었어요. 이제는 스마트폰의 카메라 기능이 좋아져서 갈수록 큰 카메라를 들고 다니지 않게 되었어요.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우선 인상적인 대상이나 중요한 순간을 기록하고 보존하기 위해서지요. 그러면서도 프레임의 구도와 미학적 요소들을 고민하면서 찍으니까 일종의 예술행위라고도 할 수 있겠지요. 제 시나 산문은 이미지가 선명하게 떠오르는 편이라고 하던데, 사진을 찍거나 그림을 그리는 것이 그런 관찰과 묘사를 위한 연습이 될 수도 있고요. 물론 롤랑 바르트가 말한 것처럼, 글쓰기는 이미 의미를 지니고 있는 ‘언어’를 매개로 한다는 점에서 카메라라는 기계를 통한 사진 찍기와는 다른 면이 많지만요.

이 책에서 다녀오신 나라들 가운데 특히 기억에 남는 곳이 있으실까요? 이유와 함께, 관련된 에피소드도 들려주시면 좋겠습니다.
2012년에 런던에서 연구년을 보내면서 썼던 글들이 주로 1부에 실려 있는데요. 일 년 동안 산책자로서 가장 자유롭고 풍부한 시간을 보냈지요. 영국의 다른 지방이나 유럽의 나라들을 여행하기도 했고요. 늘 바쁘게 일과 원고에 쫓겨 살다가 그곳에서는 시간이 다른 속도로 흘러가는 느낌이었어요. 다시 가보고 싶은 나라 중에는 코스타리카예요. 국제시페스티벌에 참여하며 포아스 화산의 분화구 앞에서 40개국의 시인들이 자신의 모국어로 시를 낭송했던 기억이 좋았어요. 작은 나라지만 무기와 군대를 없애고 그 비용으로 문화와 예술을 풍부하게 일구는 모습도 인상적이었어요. 초대된 시인들을 여러 지방으로 파견해서 지역의 학교나 도서관에서 행사를 하기도 했어요. 내가 떠나는 날 그 시골 마을의 한 할아버지가 조각상을 선물로 주었어요. 내가 도착한 날부터 시작해 조각상은 완성했지만 받침대를 다 만들지 못했다고 하면서… 그 조각상은 지금도 잘 간직하고 있어요.
2026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올해 작가님께서 꼭 이루고자 하는 목표가 있으실까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새해를 맞이한 독자분들께도 응원의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지난 2025년은 여러 시민단체들을 돕고 함께 일하느라 문학에 대한 집중력을 잃을 때가 적지 않았어요. 그것도 의미 있는 일이고 누군가 해야 할 일이긴 하지만, 2026년에는 『마음의 장소』 출간을 시작으로 문학의 자리로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경향신문 <세계의 시, 시의 세계>라는 코너에 매주 외국시를 해설하는 연재를 시작했는데, 잘 알려지지 않은 좋은 시들을 열심히 찾아 소개하려고 해요. 시를 쓰는 사람으로서, 시를 전하는 사람으로서, 세계의 다양한 텍스트들을 찾아 또다른 산책과 여행을 하게 되겠지요. 새해 독자님들도 문학을 통해 새로운 세계를 발견하는 멋진 시간 일구어가시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그리고 제가 초대한 『마음의 장소』에도 몇 곳 다녀오시고요.
* AI 학습 데이터 활용 금지
출판사 제공
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


![[인터뷰] 하미나 “느끼기, 경탄하기, 몸이 말해주는 것을 듣기”](https://image.yes24.com/images/chyes24/article/cover/2025/12/20251202-b2dca6d4.jpg)

![[인터뷰] 성해나, 삶을 속단하지 않고 신중하게 보는 마음](https://image.yes24.com/images/chyes24/article/cover/2025/05/20250513-3aaa0982.png)
![[큐레이션] 햇님의 나라로 우리 가고 있네](https://image.yes24.com/images/chyes24/article/cover/2025/04/20250415-fb567328.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