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대의 욕망과 윤리가 충돌하는 지점에서 날카롭고 단단한 질문을 던져온 기자 박선영. ‘도라에몽은 울지 않는다’, ‘약자가 약자를 혐오할 때’, ‘따뜻한 개천으로 내려오든가’ 등, 시민이기에 지켜야 하는 최저선을 끈질기게 상기시키면서도 인간이기에 어쩔 수 없는 마음들을 사려 깊게 돌아보며 힘 있게 직진하는 그의 칼럼들은 공개될 때마다 빠르게 공유되며 ‘박선영’이라는 이름을 신뢰의 바이라인으로 각인시켰다. 냉철한 현실 인식과 뜨겁게 타오르는 결기로 치열하게 발신하던 그가 현장을 떠난 지 7년, 어디에도 글을 쓰지 않은 침묵의 끝에서 그가 다시 세상을 향해 말을 건넨다.
<한국일보> 시절 기자님의 칼럼과 문학 기사가 올라온 날이면 SNS가 들썩였던 기억이 납니다. 그때의 칼럼을 다듬어 출간한 『1밀리미터의 희망이라도』가 출간되었을 때는 어떤 트위터리안의 표현을 빌리자면 “직진하는 문장의 힘과 부지런한 자료 인용, 적확하게 핵심을 찌르는 표현력”이라며 많은 독자들이 반가워했고요. 그래서 회사를 그만두신 뒤 더는 글을 볼 수 없다는 아쉬움의 목소리가 많았는데요. (위의 트위터리안은 “이렇게 잘 쓰던 사람이 왜 아무것도 쓰지 않는 걸까, 국가적 손실이다.”라는 탄식을!) 7년이라는 시간 동안 어떻게 지내셨나요? 20년 가까이 쓰던 글을 다시 쓰고 싶다는 마음은 들지 않으셨는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또 무엇이 이제는 글을 써야겠다(혹은 써도 좋다)는 생각으로 이끄셨는지도요.
글을 쓰는 유사 직역의 많은 일들 중 일간 신문 기자가 아마도 글을 쓰는 양으로는 가장 압도적 다작일 거예요. 글의 밀도는 상대적으로 낮지만, 속도가 엄청나죠. 그만 쓰고 싶다, 아무것도 쓰고 싶지 않다는 욕구―‘반(反)욕구’라고 할까요―는 이율배반적이게도 글쓰는 걸 업으로 삼는 모든 사람의 근원적 욕구일 텐데, 그 욕구를 실제 집행했을 때 ‘다시 쓰고 싶다’는 본래적 욕구로 돌아가기까지, 일종의 해독기간이랄까, 그게 길었던 것 같아요. 세상에 너무 많은 말들을 뱉어놔서요. 그렇지만 지난 7년간 넓은 의미에서 글을 쓰지 않았던 적은 없었던 것 같아요. 생각한다는 것과 글을 쓴다는 것 사이의 구분이 희미한 편인데, 아마도 파블로프의 개처럼 생각이라는 걸 하면 곧장 써야만 하는 삶을 살아와서 그랬겠죠. 생각을 안 하고 살 수는 없으니까, 머릿속으로는 늘 무언가를 쓰고 있었고, 그게 터질 듯 부풀어오르면 어느 순간 노트북 앞에 앉았어요. 글쓰기란 생각이라는 걸 가장 잘해낼 수 있는 방법이고, 좋은 생각들을 한다는 건 더 좋은 사람이 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니까요. 다만 그걸 사람들 앞에 내놓아 세상의 소란에 가담하느냐, 마느냐의 문제인데, 가담키로 마음을 먹은 건 오로지 편집자인 박아름 선생님의 고요한 집념 때문이었습니다.
『1밀리미터의 희망이라도』는 일간지의 칼럼을 바탕으로 한 만큼 시의적인 이슈에 대한 관점이 돋보였다면, 이번 책에서는 개인적인 삶과 그 경험을 더 많이 엿볼 수 있습니다. 기자라는 직업을 내려놓은 지금의 글쓰기가 이전까지의 글쓰기와 다른 점이 있다고 느끼시는지 궁금합니다.
시의적이란 말이 참으로 무색하게도 세상이 별로 바뀌지를 않아요. 기자여서 그때그때 시의적인 새로운 글들을 썼다기보다는 사회적 이슈를 주기적으로, 악화된 버전으로 반복해서 썼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일 것 같아요. 거기에서 오는 무력감이 상당했습니다. 제가 무언가 반복적인 일을 하는 걸 잘 못 견디는 편인데, 했던 말을 또 하고 또 하는 게 힘들었습니다. 기자로서 아주 무책임하고, 큰 결격사유죠. 세상이 변할 때까지, 누가 이기나 보자, 덤벼들어 쓰고 또 써야 하는데―그런 훌륭한 기자들이 실제 많습니다!―, 무슨 세기말 데카당스 예술가도 아니고, 반복에 염증을 느꼈으니까요. 제 칼럼이 사람들의 마음에 가닿은 적이 있다면, 그건 제가 기자이기 이전에 시민으로서 시민 공동체 내부에서 발화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논객이라고 일컬어지는 많은 필자들이 시민 공동체 외부에서 대중을 향해 훈계하고 일갈하는 경향이 있죠. 너희들은 이걸 고쳐야 한다고. 저는 감히 그런 생각은 해본 적이 없고, 우리 함께 이걸 고쳐야 하지 않을까, 딴에는 고민하고 궁리했어요. 개인과 사회를 연결했달까. 좋은 사회란 무엇일까요? 저는 좋은 개인들이 많이 있는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신문은 사회에 대해 말해야 하는 자리니까 거기에 좀 더 포커스를 맞췄다면, 이제는 자유롭게 개인에 대해 말할 수 있죠. 기자 전후의 글쓰기에 본질적 차이는 없고, 다만 포커스가 달라진 것 같아요. 좋은 생각들을 많이 하고, 그 생각들을 실천하려고 애쓰고, 그렇게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요. 혹시라도 내 생각이 좋은 생각이라면 당신과 나누고 싶고, 당신의 좋은 생각도 듣고 싶고요. 그러면 여기는 더 좋은 곳이 될 것 같아요.
퇴사 후 했던 여러 가지 경험 중에 의미 있고 즐거웠던 일들에 대한 에피소드가 많습니다. 재미있었던 일과 반대로 가장 재미없었던 일, 잘 맞았던 일과 안 맞았던 일도 궁금해요. 책이나 영화 등의 콘텐츠를 소개해주셔도 좋습니다.
퇴사 후 첫 일 년이 가장 즐겁습니다! 갭이어(Gap Year)라는 그럴듯한 이름을 붙인 채 돈을 좀 쓰면서 온갖 쓸데없는 일들을 벌여도 누가 뭐라고 하지 않아요. 그러나 2년차부터는……. 장래희망과 진로, 경제적 내핍이라는 어두운 그림자가 어디든 따라다니죠. 즐거운 일들은 첫 일 년에 대부분 했는데, 책에 쓴 것처럼 악기를 배우고, 짧은 기간이지만 강의를 들으러 다니던 게 무척 좋았습니다. 대형 강의실 맨 뒷자리에 앉는 순간 깨달았어요. 아, 나를 행복하게 하는 자리는 역시 학생의 자리구나. 그런데 늙어버렸네. 대학 학보사 기자들에게 기사 쓰는 법을 가르치러 다니기도 했는데, 그때 또 깨달았죠. 아, 가르치는 일은 역시 나랑 맞지 않는구나. 책에 쓰지는 못했지만, 뜻밖에도 제게 큰 기쁨을 주었던 일은 꽃꽂이였어요. 친구들이나 후배 중에 십자수라든가 뜨개질, 꽃꽂이 같은 ‘여성적’ 취미를 가진 사람들이 좀 있는데, 잘 이해를 못했어요. “규방놀이 좀 그만해!” 말하기도 했죠. 그런데 인간세상이 너무 싫어 회사를 때려치우고 나니, 갑자기 꽃에 관심이 가더라고요. 그래서 한동안 꽃꽂이를 배우러 다녔는데, 정말 행복했습니다. 꽃은 비싸고 무용하니까, 일 년에 고작 한두 번쯤, 미국에 있을 때는 트레이더 조스에서, 한국에서는 고속터미널 화훼상가에서, 차 트렁크를 반쯤 채울 만큼 꽃을 사다가 다양한 꽃다발을 만들어 선물하곤 했어요. 신문지를 테이블 위에 쫙 펼쳐놓고 꽃을 종류별로 놓은 후 베토벤을 틀어놓고 커피를 마시며 꽃을 꽂죠. 번뇌가 사라집니다. 꽃꽂이를 비롯한 규방놀이의 매력은 그것이 명상의 일환이라는 점 같아요. 명상과 가사노동과 예술을 성삼위일체로 결합시킨 것이 바로 규방놀이죠. 꽃을 꽂으면서 우주만물의 원리를 깨달았다고 하면 과장이지만, 그 비슷한 언저리는 헤매고 있었다고 생각해요. 여성은 정말로 현명하고, 규방놀이는 환상적이에요. ‘규방에서 진리 찾기’라는 글도 언젠가 써보려고 해요.
책에는 어릴 적 자신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어린 날의 가난과 무엇이든 오래 배울 수 없던 경험, 슬픔, 엄마에 대한 이야기 등등이요. 지금 기자님이 그 시절의 자신에게 가장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가요? 이 말이 곧 지금 한창 어두운 터널을 통과 중인 젊은 독자들에게 보내는 한마디가 되기도 할 것 같아요.
“Girls, be ambitious!”요. 제가 많이 하는 말 중에 “교수 집 아들이 교수 되고, 판사 집 딸이 판사 된다”가 있는데요. 계급의 대물림도 대물림이지만, 스피릿이라고 할까요. 상위계급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일단 자기 능력에 비해 꿈들이 커요. 놀랍도록 커요. 부모란 원래 좀 우스워 보이는 존재니까, 부모의 성취는 별로 어려워 보이지가 않는 거죠. 그 스피릿으로 능력 이상의 일들을 해내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반면 가난한 아이들은 꿈조차 쪼그라들어 있습니다. 어릴 때는 그런 걸 전혀 알 수 없어서 많이 주눅 들어 있었어요. 지금 저는 어린 시절 제가 꿈도 꾸지 못했던 삶을 살아오고 있는데요, 내가 이 정도는 할 수 있는 사람이란 걸 알았더라면 그렇게까지 괴로워하면서 머리카락을 뽑아대지는 않았을 것 같아요. 세상은 생각보다 허술하고, 당신에겐 힘이 있다. 지금의 곤궁, 별거 아니다. 스피릿!
울음에 대한 묘사가 많아요. 자주 우시는 편인가요. 어떤 게 기자님께 ‘눈물 버튼’인지 궁금합니다.
네, 많이 웁니다. 홀로 우는 시간이 제법 많은 편이에요. 운다는 행위는 저를 가장 인간답게 만들어주는 것 중 하나 같아요. 사실 저는 저 자신의 일 때문에는 별로 울지 않아요. 보통 화를 내죠. 울 때는 대개 남의 일 때문에 우는데, 엄마나 자식을 생각하며 운다든가, 친구의 고통 때문에 혹은 기사나 책을 읽다가, 드라마나 영화를 보다가 우는 식이죠. 최근에는 드라마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을 보다가 백정태 이사한테 배신당하고 그의 멱살을 잡는 김부장을 보고 터져서 저 자신이 놀라버렸습니다! 저의 눈물 버튼은 크게 말하면 ‘숭고’이고, 작게 말하면 ‘선의 희미한 가능성’입니다. 세계의 폭압에 스러진 개인이 미약하나마 자기 윤리의 힘으로 덜덜 떨리는 두 다리 일으켜 세울 때, 저는 어김없이 울고 마네요. 눈물은 제가 표하는 존경의 염입니다.
전쟁이나 폭력 등 누군가는 이미 겪고 있지만 우리에게 멀리 있다고 여겨지는 일들을 제법 생생하게 상상할 수 있게 된 요즘입니다. 이런 거시적인 사건에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무력감이 들기도 하는데요, 단순히 아는 것, 주위에 알리고 연대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해 낙담하게 될 때 작가님은 어떻게 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저라고 뾰족한 수가 있는 건 아니에요. 제가 기자라는 일을 좋아하게 되고, 그 일이 아주 중요한 일이라는 생각을 갖게 된 것은 대의민주주의라는 정치체제가 그래도 근본적으로는 옳은 방향으로 움직인다는 믿음 때문이었어요. 지그재그로 움직이고, 때로는 후퇴하는 것처럼 보여도, 결국은 앞으로 나아간다는 상식적 믿음이요. 언론이 제4부라 일컬어지는 건 대부분의 민주주의가 대의제의 형태로 운영되고, 대의제가 작동하는 데 가장 중요한 핵심은 여론이니까, 하나의 여론이 만들어지는데 꼭 필요한 정보들을 제공하는 기자의 일은 중요하고 의미 있다는 뜻이라고 생각했죠. 그러나 이제는 여론에 무슨 힘이 있는가, 회의가 들어요. 전 세계의 여론이 팔레스타인 학살을 멈출 것을 요구한다 한들, 이스라엘이 멈출 것인가. 트럼프의 제국주의적 주권 침탈을 전 세계가 규탄한다고 한들, 과연 제동이 걸릴 것인가. 우리는 여론이 작동하지 않는 세계, 라는 새로운 세계사적 국면으로 돌입한 것이 아닐까. 그런 비관적 생각이 강해질 때면, 역으로 ‘내가 팔레스타인 주민이라면’ 생각해 보곤 해요. 저라면 SNS에서 우연히 마주친 지지와 연대의 글 하나에도 큰 힘을 얻을 것 같아요. 내가 그린란드 원주민이라면, 트럼프의 합병 시도를 비판하는 한 줄 글에도 용기를 얻을 것 같고요. 세상에는 우리 편이 제법 있다, 우리는 혼자가 아니다, 그 생각으로 버텨낼 힘을 조금이나마 낼 수 있지 않을까요. 지성이 우리를 비관으로 이끌 때, 의지의 힘으로 낙관하는 것. 핍박받는 이에게 너의 편이다, 손을 내밀어주는 것. 이 미약한 힘들의 의의를 인정하고 차곡차곡 쌓아가다 보면, 지긋지긋한 것들의 힘으로 판이 뒤집어지는 때가 오리라고 믿어요.
사건과 사고가 끊이지 않는 한국입니다. 일간지를 떠나 계시던 그사이도 아주 많은 일이 있었는데요, 그때마다 기자님이 지금의 상황에 대해 써주신다면 어떤 칼럼이 나올까 궁금했던 독자들도 많을 것 같아요. 꼭 시의적인 내용이 아니더라도 이번 책을 읽고 기자님의 글을 더 읽고 싶다는 독자들이 여기저기 생길 듯한데요, 앞으로는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으신지 궁금합니다.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제가 추구하는 주제는 일관된 것 같아요. 인간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그게 너무 알고 싶어요. 언젠가 기자 선배들과 이야기하다가 흥미롭게 깨달은 건데, 똑같은 기자 일을 해도 그 동력이 제각각이더라고요. 어떤 선배는 인간에게는 별 관심이 없고 진실이 무엇인지가 너무너무 궁금해서 이 일을 한다고 했고, 다른 선배는 사회가 왜 이 모양인가에 주로 관심이 있었어요. 그런데 저는 사실 진실도 별로 궁금하지 않고, 사회가 왜 이러한가도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지에 대한 파악이 완료되면 저절로 알아질 문제처럼 느껴지는 거예요. 도대체 저 인간은 왜 저런 것인가! 그것만이 저의 핵심 관심사더라고요. 아마도 글 쓰는 일의 언저리를 벗어나지는 못할 것 같아요. 그 글의 형식이 무엇이든 저는 인간에 대한 탐구를 멈추지 못할 것 같고, 거기서 도출되는 잠정적 결론들을 통해 세상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을까, 짐작합니다. 그 과정을 통해 저 자신이, 제 글을 읽는 사람들이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욕구를 품을 수 있으면, 그게 저의 가장 크고 자랑스러운 성취가 될 거예요. 세상을 바꾼다는 건 사람들의 마음을 바꾸는 일이니까요.
* AI 학습 데이터 활용 금지
그저 하루치의 낙담
출판사 | 반비
출판사 제공
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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