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3년 3월, 이슬아 작가는 “데뷔 전부터 선생님과 책 만드는 미래를 상상했습니다.”(『인생을 바꾸는 이메일 쓰기』, 135쪽)라는 문장이 담긴 이메일을 김진형 편집자에게 보냅니다. 자신의 글을 마치 프러포즈하듯 투고한 것이죠. 그 꿈은 『끝내주는 인생』으로 현실이 됩니다. 그리고 몇 년 뒤, 이슬아 작가는 두 번째 제안을 하는데요. 공교롭게도 김진형 편집자가 퇴사를 고려하던 참이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이슬아 작가는 김진형 편집자가 출판사를 만든다면 “너무나, 당연히 같이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고 해요. 그렇게 먼곳프레스의 첫 책은 『갈등하는 눈동자』가 되었습니다.
두 사람의 서로에 대한 열렬한 팬심, 존중에서 비롯한 깊은 우정을 보고 궁금해졌습니다. 이 관계의 정체는 무엇일까, 하고요. 두 시간이 넘는 인터뷰 끝에 내린 결론은 ‘자기 일에 대한 첨예함이 가능하게 한 드라마’입니다. 이 한 권의 책이 나오기까지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짜릿한 한 편의 활극을 보는 기분이었으니까요. 이런 이야기는 언제나 영감을 줍니다.
참, 먼곳프레스는 앞으로 시집, 사진집, 에세이와 소설 등으로 독자와 만날 예정이라고 합니다. 출판사의 시작에 ‘염치’라는 단어를 놓은 곳에서는 얼마나 미더운 책이 나올까요. 자못 기대하게 되지 않으세요? 한편 이슬아 작가는 “무슨 책 쓸지 모르는 채로 가만히 잘 읽고 싶다”고 말하는데요. 그러면서도 여름에 오를 공연과 『가녀장의 시대』 이탈리아판 출간 소식을 알려왔습니다. 그림책에 대한 꿈도요. 이야기를 들으며 문득 ‘먼 곳’으로 걸어가는 두 사람의 뒷모습을 본 것 같았습니다.
긍지를 주는 책
처음부터 끝까지, 만든 사람들의 목소리가 가득한 책이었습니다. 글과 사진뿐 아니라 표지 디자인과 본문의 구성, 제목 등 모두 대단히 고심한 흔적이 엿보였어요. 완성된 책을 손에 쥔 순간 어떤 생각을 하셨나요?
김진형: 언제나 책을 작가에게 가장 먼저 보내 드려야 한다는 생각이 있어서요. 물류 창고에서 『갈등하는 눈동자』를 가져와 바로 작가님 집으로 갔어요. 당시 이슬아 작가님과 이훤 시인님 모두 일정이 많았기 때문에 만날 수 없더라도, 그냥 집 앞에 두고 가겠다는 이야기를 드렸죠. 도착해서 책을 내리는데 마침 이훤 시인님이 나오고 계시더라고요. 시인님이 얼마나 만족스러워하는지가 정말 중요했기 때문에 그 자리에서 책을 바로 보여드렸거든요. 외출하느라 다급하게 나가는 중이었는데 책을 보자마자, 이훤 시인님의 시간이 갑자기 멈췄어요.(웃음) 너무 좋아하시는 거예요. 그게 참 좋았어요.
이슬아: 저도 마찬가지인데요. 저의 출판사에서도 책을 만들어보고, 문학동네와도 만들어보면서 여러 종류의 경험을 했잖아요. 그러면서 좋은 타협을 해왔던 것 같아요. 가장 해보고 싶은 디자인을 끝까지 고집할 수 없는 조건들이 있었으니까요. 한편 이번 책은 김진형 선생님이 제가 하나도 타협 안 하게 하셨다는 생각이 들어요. 책을 만들 때면 언제나 책을 보실 독자에게 긍지를 주는 물성이면 좋겠다고 생각하는데요. 이 책이 그래요. 저 역시 독자로서, 어떤 책을 가방에 넣을 때 제게 긍지를 주는 책을 챙기거든요. 힘든 날이거나 견뎌야 하는 게 있을수록 더욱 그렇죠. 『갈등하는 눈동자』가 바로 그런 책이라는 생각을 책 받았을 때 했어요.
긍지라는 말이 좋아요.
이슬아: 게다가 검정 책은 잘하기 힘들기도 한 것 같아요. 특히 젊은 작가한테 검정 책을 잘 안 쓴다는 생각도 들고요. 그래서 검정을 비롯한 이 책의 많은 요소들이 책을 내는 작가한테 잘 허락되지 않는 것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생각을 해요. 책을 여러 번 내니까 이런 기회가 생겼구나, 하는 생각에 너무 기뻤어요.
책의 앞부분과 뒷부분에 다른 종이를 사용하셨잖아요. 자주 보지 못했던 선택이라 놀라면서도 그 이유가 납득되기도 했습니다. 어떤 고민에서 연결된 선택인지 듣고 싶어요.
김진형: 말씀처럼 종이가 두 종류예요. 앞부분은 미색 마카롱지인데, 텍스트가 가장 잘 보이는 종류예요. 눈에 피로감 덜 하고 책장 넘기는 느낌이 좋은, 텍스트에 집중할 수 있는 종이죠. 뒷부분의 하얀 종이가 ‘인스퍼엠러프’라는 종이인데요. 이 종이를 사용한 부분의 전반부는 흑백 사진, 후반부는 컬러 사진이에요. 그러니까 정확하게는 책이 세 부분으로 나눠지는 것이죠. 비싸서 곧 단종이 된다고 하는데, 이 종이를 고집했던 이유가 있어요. 『끝내주는 인생』 때 이훤 시인님과 사진 발색이 잘 되는 종이를 엄청 찾았거든요. 그래서 이번에도 이 종이를 사용했어요.
다만 단순히 사진을 잘 보여주기 위한 선택만은 아니었어요. 저는 이 책에 에세이를 비롯해 다양한 형식의 글이 있는 것이 강점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차례에도 인터뷰나 강연을 따로 구별하지 않았어요. 모두 본문에 하나로 녹아들어 가기를 바랐거든요. 특히 통념상 인터뷰 장르를 본문의 부속처럼 여기는 경우가 있죠. 사실 인터뷰는 정말 아름다운 장르잖아요. 무엇보다 굉장한 장점은 입체감 같고요. 인터뷰에는 이미지가 등장할뿐더러 글도 읽다보면 음성화가 돼요. 처음에는 그냥 읽어도 나중에는 목소리를 구별해 읽잖아요. 인터뷰에는 이런 입체감이 있기 때문에 여기가 중요한 부분입니다, 라는 말을 다른 종이를 사용해서 힘주어서 하고 싶었어요.
공감해요. 인터뷰가 주는 다른 읽기가 분명히 있다고 생각해요.
김진형: 어느 댓글에서 ‘절반이 인터뷰네’ 한 것을 봤어요. 선생님, 그게 왜요? 그게 이 책의 강점인데요, 하고 말하고 싶죠. 『갈등하는 눈동자』에 수록된 두 편의 인터뷰는 각기 굉장히 다르잖아요. 저마다 하나의 단편소설을 읽는 느낌이 있어요. 이러한 입체감을 어떻게 담아낼 것인가 고민할 수밖에 없었고요. 그렇다면 똑같이 마카롱지를 쓸 수는 없었어요. 그 점을 이렇게 읽어 주시니 너무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또 딱 절반으로 나눠지잖아요. 그거 맞추고 너무 기뻤거든요.(웃음) 혼자서 너무 아름답다, 균형감 있다, 생각했어요.
이슬아: 굉장히 문학적인 이야기인데요. 계산을 할 때는 되게 수학적인 작업이잖아요. 미팅 중에, 김진형 선생님 머릿속에서 언제부터 사진이 나오는데 거기에 어떤 종이를 써야겠다, 하고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더라고요.(웃음) 진짜 멋있는 책쟁이다, 실감했어요. 워낙 책을 많이 만들어 보셨으니까 가능한 것이죠. 그러니까 이런 전문가가 세상에 있다는 걸 사람들은 알까, 생각해 보고요. 이러한 고민의 결과로 나온 책의 책배를 보면 묘하게 색깔이 다른데요. 이것을 정확하게 절반으로 떨어진 걸 보면서 쾌감을 느끼는 종류의 사람들과 이야기 나누고 싶다는 생각을 해요.

후방 파워가 소중하다
『갈등하는 눈동자』에 가장 먼저 등장하는 두 글이 ‘싸움’이죠. 흥미로운 것은 이슬아 작가님은 싸움에서 기어코 존경과 사랑을 읽어내고 계신다는 거예요. 여러 원고 가운데 이 이야기를 가장 앞에 배치한 이유도 분명히 있을 것 같습니다.
이슬아: 정세랑 작가님이 ‘부부란 같은 화면을 같이 오래 보는 사람들’이라고 했는데요. 저도 이훤 시인과 같이 살면서 혼자였다면 안 봤을 영상들을 보게 돼요. 무서워서 잘 못 봤는데 이훤이 워낙 격투기 장르의 빅팬이어서 같이 보게 됐죠. 보니까 무서워서 안 볼 종류의 장르가 아니더라고요. 아름답고 섬세한 룰로 가득한 세계였고요. 실제로 보면서 되게 많이 울었어요. 경기 내내 서로를 막 패다가 링이 울리면 바로 껴안거든요. 진짜 사람은 너무 이상한 거예요. 그러면서 ‘갈등하는 눈동자’라는 이름으로 <경향신문>에 연재할 때, 가장 처음 썼던 두 가지 글이 이것이었어요. 한 편의 글 속에서 내내 다른 사람의 움직임에만 매혹되는 글을 쓰고 싶었어요.
또 드라마를 쓰면서 워낙 갈등을 더 극적으로 써오라는 주문을 많이 듣다 보니까 갈등의 현장을 기웃거리기도 한 것이죠. 격투기 현장이야말로 눈에 보이는, 치고받는 갈등인데요. 그 장면에서조차도 이런 마음이 크게 보인다면 그것은 저의 엄청난 취약점이자 특장점이 아닐까 생각하게 됐어요. 그래서 지금은 재능 없는 거 너무 하지 말고 소질 있는 글을 쓰자고 생각하고 있어요.
김진형: 저는 일단 두 글이 제일 좋았어요. 그래서 이 글을 맨 앞에 배치하자는 제안을 드렸죠. 이슬아 작가님 글의 탁월한 점은 우리가 쉽게 생각하는 단어들을 전복시킨다는 데 있는 거 같아요. 격렬한 격투기 현장에서 갑자기 다른 이야기로 전복되는 이야기가 너무 매력적이었고요. 편집자 입장에서는 전략적으로 독자의 시선을 사로잡을 글이 필요한데 이 글이 그랬어요. 이 이야기가 앞에서 끌어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두 글은 책의 시작점이자 중심이 되는 이야기이기도 해요. 싸우는 마음이 나아가 연대하는 마음에 닿잖아요. 여러 대목에서 작가님은 “어떻게 힘을 보탤 것인가.”(61쪽)를 고민하거든요. 그건 작가님이 타인을 내 삶으로 끌어들이는 마음이고, 이렇게 사는 일은 고될지언정 삶을 최대한으로 살고 싶은 마음과 다르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요. “모른다는 말로 도망치는 사람과 모른다는 말로 다가가는 사람. 세계는 이렇게도 나뉜다.”(114쪽)는 요조 작가님의 문장을 인용하기도 하셨는데요.
이슬아: 때로 그 질문도 미안할 때가 있어요. ‘보태는’ 입장인 것이니까요. 장애, 성노동자, 여성, 기후, 동물 등의 의제를 보면 다 저보다 잘 싸우는 애들투성이에요. 최전선에서 싸우는 친구들이 많아서 늘 부채감이 있죠. 그 옆에 있으면 어떻게 해도 제가 좀 덜 첨예해 보이거든요. 그럼에도 안 보태는 것보다는 낫다는 생각으로 힘 날 때마다 하자고 생각하는데요. 전에는 저 같은 앨라이, 옆에 서는 사람의 포지션을 과소평가했던 것 같아요. 직접 싸우는 사람도 아닌데 늘 송구하지, 하고요. 하지만 누군가 저에 대해서 그 정도로 해주면 너무 고마워요. 그래서 100점짜리로 같이 할 필요 없다, 13점 정도로도 지속적으로 함께 해주는 사람들의 후방 파워가 소중하다는 생각에 이르렀어요.
꾸준히 힘을 보태려면 매일 잘 자고 잘 먹고 운동 열심히 해서 안 아픈 게 되게 중요하더라고요. 그래서 더 야무지게, 어쩌면 좀 이기적이고 얄미울 정도로 저를 잘 챙기게 됐어요. 그래야 필요할 때 싸우지, 하는 마음 때문에요. 친구들도 그랬으면 좋겠어요. 죽도록 헌신하는 친구가 가장 속상해요. 아무도 무리해서 헌신하지 않으면 좋겠고, 얄밉게 이기적으로 살다가 뭉쳤으면 좋겠어요.
제목은 어때요? 김성은 선생님과의 인터뷰를 읽으면서 묵자를 눈으로 읽는 사람과 점자를 손으로 읽는 사람의 거리랄까, 다른 위치성을 많이 생각했고요. 동시에 ‘그런데 책의 제목이 『갈등하는 눈동자』라니 참 절묘하다’ 생각했어요. 실제로 김성은 선생님 곁에서 제목을 떠올렸다는 대목이 뒤에 나와 깜짝 놀랐고요. 결국 “눈동자에 대해 무엇을 아는가”(251쪽)라는 질문을 이 한 권의 책으로 독자에게 하고 있다고 느꼈는데요. 왜 ‘눈동자’인가요? 어떤 ‘눈동자’인가요?
이슬아: 눈동자라는 말이 그렇게나 많이 들어가는 글을 써놓고도 막상 시각장애인인 이 사람을 배제해 왔을까 봐, 그것이 김성은 선생님 인터뷰를 쓸 때 가장 마음에 걸렸어요. 특히 훤과 멋진 사진 작업을 한 뒤, 편집을 하면서요. 이 사람을 잘 보여주기 위해 사진은 필수적인 작업이나 막상 그 사람은 여기서 소외되는 거잖아요. 되게 미안했고, 처음 생각해 보는 고민이어서요. 100% 해결할 순 없지만 사진 설명을 직접 사진을 본 것보다 더 차고 넘치게 해보자고 결론을 내렸죠. 그건 당연히 비장애인 독자에게도 좋은 일이니까요. 비장애인 독자들 또한 같은 사진을 보고도 다른 생각을 하니까, 충실한 묘사라기보다 그 사람 안에 좋은 그림을 그려주는 ‘글로 쓴 사진’을 해보자고 생각했어요. 존 버거 책 제목처럼요. 그렇게 그 사람의 눈동자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문학의 다른 장르가 조금씩 열린다고 생각했어요.
한 독자님이 눈동자의 한자를 풀어서 해석하신 걸 봤어요. 눈 목(目)과 아이 동(童)이 합쳐진 것이 눈동자 동(瞳)인데요. 상대의 눈을 바라볼 때 눈동자 안에 내가 작게 보이잖아요. 그것을 아이라고 해석한다는 말이 너무 마음에 들더라고요. 눈동자는 눈 속의 작은 아이. 그것이 눈동자의 본질이구나 생각해요. 눈 속의 작은 아이를 눈과 사람이 감싸고 있는, 너무나 아름다운 세 글자라고 생각하게 되면서 제목을 붙일 때보다 더 많이 알게 된 것 같아요. 이게 얼마나 멋진 단어인지를.
“생은 자질구레한 일들의 총합이라, 사랑을 아는 자는 작은 것의 전문가일 수밖에 없다.”(30쪽)라는 문장을 떠올려요. 이렇게 쓰기까지, 이슬아 작가님이 경험한 것들에 대한 구체적인 모습도 궁금한데요. 더불어 최근 사랑한 작은 것이 무엇이었는지도 들려주세요.
이슬아: 사실 바쁘면 제일 먼저 까먹는 게 작은 것이고, 저 역시 서두르느라 자주 까먹으니까 기억하려고 애쓰는 것 같아요. 김진형 선생님 딸이 한창 입시 할 때, 집에 늦게 와도 같이 밥 차려 먹는 시간이 꼭 있더라고요. 늦은 시간에 밥해주고 얘기 들으면 취침 시간이 늦어지는데도 그 시간이 너무 좋다고 하셨어요. 이 얘기를 듣고 선생님은 다 가진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일상의 제일 연하고 고운 부분을 가진 분이니까요. 이렇듯 ‘그렇지, 이러려고 사는 건데’ 생각하게 되는 일들이 있잖아요. 자기 전에 같이 사는 사람의 발에 로션을 발라주는 것 같은 작은 종류의 일들이요. 그 점을 일깨워주는 것도 사실 다 문학 같고요.
김상혁 시인님의 시집 『우리 둘에게 큰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시인의 말’에 이런 얘기가 나와요. 아이 발에 매일 로션을 발라주는데, 후에 아이의 매끌매끌한 발을 누군가 알아봐 주면 좋겠다고요. 그 아이의 연한 뒤꿈치가 늙어서도 연하기를 바라면서 로션을 발라주는 마음이 너무 좋잖아요. 우리 모두가 필멸한다는 걸 알면 알수록 사무치죠. 그래서 제가 큰일을 성취하고 싶어서 마음이 바빠질 때마다 일기에 적어요. “훤이는 매일 내 발에 로션을 발라준다.” 딱 이것만 써놓고 자요. 그게 저한테는 일종의 신앙 같아요. ‘이런 거 잊지 마라. 이건 ‘아멘’ 같은 거야.’
“뭔가를 말해야 한다면(중략) 오합지졸들의 대화를”(115쪽) 살아있게 하고 싶다고도 쓰셨어요. 작가님 글에는 역시 빛나지만 주의 깊게 들여다보지 않으면 사라질 일상의 장면들이 점점이 박혀 있죠. 그 덕분에 독자 역시 자신의 주변을 돌아볼 수 있게 되는 것 같아요.
이슬아: 좋은 대화는 서로의 약한 부분을 아는 대화고, 그건 필연적으로 오합지졸의 대화죠.(웃음) 서로가 약하다는 걸 알고 대화를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늘 좋아요. 식당에 가기만 해도 다른 사람의 말이 들려오는데요. 어떤 대화는 ‘저런 대화 너무 나누기 싫다’는 생각이 들어요. 번지르르하고 멋진 요소들로 이루어져 있어도요. 그래서 좋은 샘물을 찾아다니는 것처럼 좋은 대화를 원하고요. 그것이 제게는 영원한 주제 같아요.
김진형: 이슬아 작가님 문학의 특징 같은데요. 오합지졸의 대화를 쓰고, 나아가 스스로를 오합지졸로 만들어요. 저는 도저히 할 수 없는 것들이에요. 굉장히 부럽고 놀라운 지점이죠. 덕분에 사소한 얘기를 하는 즐거움을 저도 조금씩 알아가고 있어요. 배우는 건데요. 저는 문학이라는 것이 텍스트 안에만 있다고 생각해 왔지만 그런 의미에서 이슬아 작가님은 약간 문학적인 삶을 사는 것도 같아요. 여기서 말하는 문학은 오합지졸이 마구 등장하는 아름다운 문학이고요.

다 성취한 책
『갈등하는 눈동자』는 출판사 먼곳프레스의 첫 책이기도 해요. 김진형 편집자님께 여쭙고 싶어요. 출판사를 만들고, 첫 책을 만들면서 무엇을 가장 많이 생각하셨나요? 특별히 지키고자 했던, 이렇게 불러도 좋다면, 욕심내려 했던 것이 있으셨는지 궁금해요.
김진형: 첫 책이라 더 욕심을 내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그저 ‘편집자의 말’에 쓴 것처럼 하기 싫어하는 것 안 하고, 싫어하는 사람과 안 하고 싶었어요. 물론 다 좋아하기 어렵지만 적어도 저자분들, 디자이너분들, 홍보하는 분들은 선택할 수 있다면 좋아하는 사람과 하겠다는 마음이 강했어요. 그리고 후회할 책을 안 하고 싶었는데요. 사실 100 만큼 할 수 있는데 70 정도로 만든 책이 있어요. 그런 책은 두고두고 가슴이 아파요. 그렇게는 안 하고 싶었죠. 그러한 말을 했지만 첫 책부터 다 충족되리라는 생각은 안 했어요. 책이 두 권, 세 권 쌓이면 충족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었는데요. 이 책이 그것을 다 성취한 책이 된 것 같아요.
말씀하신 ‘편집자의 말’에 이러한 문장이 있어요. “이 책은 기어코 나무가 될 것이다.” 얼마나 아름다운 고백이고 가슴 뛰는 선언인지요. 작가님, 이 글 읽고 어떠셨어요?
이슬아: 편집자님들 정말 글 잘 쓰시잖아요. 편집자님들의 지면이라면 주로 보도자료 혹은 뒤표지인데요. 그곳에서 이분들의 실력의 일부를 엿볼 수 있다는 게 아쉬웠어요. 너무 조금이니까요. 그래서 편집자 레터가 있는 책들을 너무 좋아하고요. 특히 김진형 선생님 글은 책을 내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정도로 기다리는 사람이 많은데요. 이런 글을 써 주셔서 너무 좋았죠. 특히 방금 말씀하셨듯이 “내가 만들고 싶은 책을 만들고 싶어서, 만들기 싫은 책은 만들기 싫어서, 만든 책을 남겨두고 떠나고 싶지 않아서, 좋아하는 이들하고만 일하고 싶어서, 염치를 아는 출판인이 되고 싶어서, 그렇다면 출판사를 만드는 것밖에 선택지가 없다.”는 문장에 눈길이 많이 갔는데요. 선생님이 뭔가 더 주고 싶었는데 시스템상 못 한 것이 많았다는 것이 행간에 읽혔거든요. 실제로 먼곳프레스의 계약이 조금 달라요. 인터뷰에 밝혀도 되나요?
김진형: 아, 네.(웃음)
이슬아: 계약에 작가 인세와 사진가 인세가 있고요. 디자이너에 대한 인센티브도 있어요. 책이 팔릴수록 디자이너에게도 수익금이 가도록 하는 계약서를 저는 처음 봤어요. 작가와 사진가, 디자이너와 편집자가 인센티브를 나누는 계약을 보면서 생각했어요. 책이 잘 될수록 모두가 나눠 갖는 구조라면 협업자들이 작업을 하는 마음은 다를 수밖에 없겠다고요. 그런 의미에서 돈 계산을 정확히, 좀 다른 방식을 제안하는 선생님의 꼼꼼함이 무척 좋았어요.
출판사를 운영하게 되면 협업자분들을 더 챙겨야겠다고 생각하셨던 건가요?
김진형: ‘챙기’는 건 아닌 것 같아요. 주간으로 일한 게 7년 정도인데요. 하다 보면 회사 살림을 알게 돼요. 버는 돈과 나가는 돈을 정확히 알게 되죠. 저도 무조건 이익을 나누는 게 아니고요. 손익 분기점을 정확하게 정하고 계약한 거예요. 손해 보지 않는 지점을 어기면서까지 나누면 망하죠. 그러나 이익이 발생하는 지점부터는 이익을 나눠 갖는 구조가 저는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20년 전도 지금도, 디자이너 단가가 거의 같거든요. 외주편집자 평균 교열 단가는 불과 200~300원 올랐어요. 부당한 일이에요. 그러다 보면 좋은 편집자와 디자이너가 사라져요. 그 때문에 적어도 책이 잘 됐을 때는 수익을 나눠야 한다고 생각해요. 제가 챙겨 드리는 게 아니라 자신들의 몫을 가져가실 뿐이에요.
건강한 출판 생태계를 상상할 때, 꼭 필요한 말씀이겠어요.
김진형: 사실 작은 출판사가 아니라 큰 출판사가 이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돈 많은 출판사들이 하셔야죠. 디자이너님에게 인센티브를 드리는 이번 계약에 대해 알게 되신 한 출판사 대표님이 그러셨다고 해요. 나는 그렇게 못해서 미안하다고요. 저는 그 이야기를 전해 듣고 너무 안타까웠어요. 1인 출판사에 그런 계약을 요구하는 건 어려운 일이에요. 부디 큰 출판사에서 하면 좋겠어요. 좋은 출판인들이 떠나지 않게 하고, 계속 이 일을 할 수 있게 만드는 거니까요. 실제로 그게 출판사한테도 좋을 거예요. 저도 그래요. 이렇게 하면 작가님들도 저랑 일하는 걸 좋아하실 것 같아요.

왜 이렇게 작고 소중한 걸까
이슬아 작가님이 두 분의 첫 작업이었던 『끝내주는 인생』을 만들면서 “이런 작업을 또 만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하면 안 된다는 얘기를 했다.(시사인, 2023년 인터뷰)”고 하셨다고 해요. 편집자를 “가장 구체적으로 존경하는 직업”(『인생을 바꾸는 이메일 쓰기』, 121쪽)이라고도 하셨거든요. 그런가 하면 이훤 시인님과 박연미 디자이너님까지 네 분에게서는 각별한 팀워크가 느껴지기도 합니다. 확실히 함께하는 두 번째 작업이라 합이 더 잘 맞기도 했을 것 같아요.
이슬아: 『끝내주는 인생』 이후 다른 장르에서 협업하고 온 영향이 있을 것 같아요. 드라마 작업을 하면서 고생을 해보니까 출판계가 얼마나 작고 소중한 한 줌인지 너무 사무치게 됐어요. 저는 출판계의 대표라고 생각하지도 않고, 이곳에 필요 이상의 사명감을 갖지 않았었는데요. 거대 자본의 이야기 산업에 가보니까 출판계에서 아무도 시키지 않은(웃음) 책임감이 엄청 생긴 것 같아요. 여기는 그렇게 간단히 무시할 수 있는 작은 동네가 아닙니다, 라는 마음이 많이 생겼죠. 드라마 작업은 많은 사람이 함께 하기 때문에, 그리고 투자자가 있기 때문에 이야기도 어느 정도 손상되고, 수정될 수밖에 없는데요. 책은 다르잖아요. 네 명이서 뭔가를 만든다는 느낌이 너무 좋아요. 너무 그리웠고요. 그래서 옛날보다 더 행복하게 할 수 있었어요.
그런 의미에서 김진형 편집자님과 반대편에 계신 이야기장수 이연실 편집자님과의 작업도 달랐죠. 이연실 편집자님은 『갈등하는 눈동자』를 보고도 제일 처음 “띠지가 없네요”라고 하는 분이에요.(웃음) 그러니까 『인생을 바꾸는 이메일 쓰기』 작업을 할 때도 이전의 저라면 제발 제 사진 가운데에 놓지 말아 주세요, 왜 제가 아직 죽지 않았는데 전설의 귀환이라고 하시나요? 이렇게 하나하나 개입했을 텐데요. 드라마 작업을 하면서 손상되는 정도를 경험하고 나니까 다 너무 예뻤어요. ‘현피’도 다 쓰시라고 했어요.(웃음) 출판계에서의 모든 협업을 너그럽게 보게 되었는데 이 책은 얼마나 마음에 찼겠어요. 행복하기만 했습니다.
김진형: 제가 느끼는 즐거움은 이것이에요. 이훤 시인님이나 이슬아 작가님, 박연미 디자이너님 모두 저에게 원하는 것을 마음 놓고 요구하시거든요. 그게 너무 좋아요. 그게 뭐라고 인정받는 느낌이죠.(웃음) 믿음이 서로에게 있지 않을까 싶어요. 자신들의 요구를 제가 싫어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계시니까 할 수 있는 거잖아요. 거기에 약간 자부심 같은 게 있어요.
드라마 작업 이야기를 하셨는데,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면 늘 생각해요. 출판계는 왜 이렇게 작고 소중한 걸까요?(웃음) 어떤 것을 지키려고 애쓰고, 어떻게든 더 발전시키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위안이 될 때가 있거든요. 두 분은 어떠세요?
김진형: 있을수록 출판계는 정말 한 줌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아 있는 사람들의 남다른 열심, 남다른 고집은 훨씬 견고해진다는 느낌이에요. 출판계의 많은 분들이 ‘어쩌자고 여기서 이러고 있지’ 하는 실의에 빠져 있어요. 와중에 출판에 매진하고, 진심을 다하는 사람들이 있거든요. 이슬아 작가님과 북토크를 하면서도 느끼죠. 오시는 분들이, 약간 이상한 분들이세요.(웃음) 나의 절박함을 독자가 갖고 있고, 독자 역시 우리의 절박함을 정확하게 알아내는 것 같거든요. ‘텍스트힙’이라고들 하고, 이것을 트렌드처럼 얘기하기도 하지만요. 절박한 사람들이 만나서 만드는 시너지 같은 것이 출판계의 희망처럼 느껴지기도 해요. 거의 20년 정도 출판일을 하면서, 첫 10년은 꿈이 원대했지만 실의에 빠져 있었다면 다른 10년은 희망을 찾아가는 시간이었어요.
이슬아: 애초에 문학 독자라는 분들은 굉장히 특수한 분들인데, 그중에서도 저희 책 독자님들이 놀랍긴 해요. 얼마 전 있었던 저희 북토크에 다른 업계에 있는, 북토크를 처음 와본 사람이 왔는데요. “이 분위기 뭐야”(웃음) 하더라고요. 일단 저는 이 세상에 있는 문학 독자님들이 너무 소중해요. 책을 읽고, 한 작가의 오프라인 행사에 와서, 작가의 목소리를 직접 들으려고 하는 소수의 사람에게서 나오는 ‘원기옥’ 같은 에너지가 너무 강해서요. 그런 사람이 있는데 어떻게 출판계가 망했다고 하겠나, 생각하는 것이죠.
과거보다 작가는 물론이고 편집자나 디자이너, 마케터 등 책을 만드는 사람들의 고민을 다양한 채널에서 들을 수 있게 되면서 ‘각자의 절박함’이 ‘공유할 수 있는 절박함’이 된 것 같기도 하고요.
이슬아: 편집자 개인 SNS든 유튜브든 책 뒤에 이런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과거보다 더 알게 됐다면 그저 잘된 일 같아요. 문학계만큼이나 작은 업계가 연극계잖아요. 어떻게 보면 더 심하다고 볼 수 있을 텐데요. 윤혜숙 연출가님을 좋아해요. 그분이 언젠가 수상 소감에서 말씀하셨어요. 아버지께서 “이 시대에 연극을 하는 건 모두가 로켓 배송하는데 너 혼자 보부상을 하는 것과 같다”고 하셨다는 거예요. 그에 대해 연출가님이 “맞다. 근데 로켓 배송도 사실은 사람이 한다는 걸 보여주는 게 또한 연극이니까 계속할 수밖에 없겠다.” 하시더라고요. 후에 딸이 커서 “옛날에는 연극이라는 게 있지 않았어?”라는 말을 안 하도록 하는 게 희망이라고 하셨는데요. 문학으로 바꿔 들어도 상관없을 것 같아요. 모든 작고 소중한 창작 업계가 비슷한 걸 공유하지 않을까 해요.

독특한 타인
김진형 편집자님이 생각하시는 이슬아 작가님의 글이 가진 미덕은 무엇일까요? 이슬아 작가님의 글이 변화하는 지점도 가까이서 목격하셨을 텐데요.
김진형: ‘일간 이슬아’를 아침마다 깜짝깜짝 놀라며 읽던 기억이 아직도 나요. 그러다 『깨끗한 존경』과 이후 나오는 책들을 보면서 실은 더 놀랐죠. 짧은 시간 안에 글이 이렇게 성숙해질 수 있나, 싶더라고요. 매일 한 편을 쓰다 호흡을 길게 한 덕분인가 싶기도 했는데요. 그렇다고 하기에는 해마다 갱신하는 느낌의 글쓰기가 계속된 것 같아요. 이런 것은 있어요. 쓸수록 문학적이 된다는 말을 더 어려운 말을 쓰는 거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요. 이슬아 작가님은 오히려 문장을 간결하게 만드는 방식, 리듬감에 굉장히 집중하신다는 점에서 문학적이에요. 문장과 문장의 리듬, 단어와 단어의 리듬에 강박적으로 집중하면서 쓰는 것 같고요. 어려운 단어, 젠체하는 문장을 가급적 배제하는 방식으로 쓰시죠. 그보다는 아는 단어를 낯설게 하는 방식으로요. 해마다 그런 지점들을 발견하는 게 굉장히 좋아요. 작가님의 글을 더 만나고 싶다고 생각해요.
성별도 세대도 다른 두 분의 존중을 품은 우정을 보는 것이 좋아서요. 상대가 나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고, 주고 있는지도 듣고 싶어요. 작가와 편집자라는 관계의 의미가 두 분 사이에서는 아주 넓어지는 것 같아요.
이슬아: 제 문학성을 책임지고 계시고요.(웃음) 이렇게 정중하고 담백하면서 아주 세세한 것까지 얘기할 수 있는 관계라는 게 참 소중해요. 질문을 듣고 깨달은 것이지만 선생님의 성별에 대해 진짜 생각을 안 했던 것 같아요. 나이도 물론이고요. 저한테도 독특한 타인이에요. 보통 중년 남성을 만날 때 제가 살짝 올리게 되는 전투력 같은 것을 한 번도 쓰지 않았다는 것을 지금 인터뷰를 하면서 처음 알았어요.
김진형: 이슬아 작가님한테는 대화하는, 인생을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는 느낌이에요. 저는 이슬아 작가님과 이훤 시인님이 대화하는 게 너무너무 좋아요.(웃음) 특히 이슬아 작가님은 이훤 시인님보다 나이가 적은데 훨씬 누나 같아요. 저보다도 그렇고요. 작가님은 저보다 세대가 훨씬 어린데도 더 많이 인생을 살아낸 사람 같거든요. 그러니까 인생을 배우는 느낌이란 대화하는 것, 효율적으로 살아가는 것, 다정하게 타박하는 것 모두에서 그래요.
* AI 학습 데이터 활용 금지
갈등하는 눈동자
출판사 | 먼곳프레스
인생을 바꾸는 이메일 쓰기
출판사 | 이야기장수
가녀장의 시대
출판사 | 이야기장수
끝내주는 인생
출판사 | 디플롯
깨끗한 존경
출판사 | 헤엄
신연선
읽고 씁니다. 장편소설 『구름이 겹치면』, 에세이 『하필 책이 좋아서』(공저)를 출간했습니다.
표기식
사진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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