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경희의 곰팡이를 만나다
[윤경희 칼럼] 사라진 숲에서 곰팡이는
윤경희 작가의 곰팡이를 만나다 칼럼 마지막화. 사건으로부터 5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곰팡이와 완전히 헤어지지 못한 이야기.
글: 윤경희
2026.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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텃밭에서 뽑아온 딜


곰팡이 동굴로 변한 집에서 혼자 싸우느라 고통스러운 가운데 예상치 않은 좋은 일이 생기기도 했다. 노끈에 묶은 책더미를 내놓으려 비바람에 맞서 우산을 부여잡고 낮이나 밤이나 분주하게 빌라 앞 쓰레기 내놓는 곳을 오가다 보니 이웃들과 자주 마주치게 되었다. 평소에 목례만 건네는 사이였던 이웃들이 나에게 호기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무슨 일 때문에 황망하게 오가는지, 책을 왜 이렇게 많이 버리는지, 내 표정과 행색에서 심상치 않음을 짐작하고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사정을 알게 되자, 위층 아주머니는 공부하는 사람이 책을 버려서 마음이 얼마나 아프겠냐고 위로의 말을 건넸다. 매정하게 책을 내버리던 중에 이 말을 들으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북받쳤다. 무거운 쓰레기를 나르며 여러 번 들락날락하느라 현관을 자주 열어두었더니 빌라 전체를 자기 영역으로 여기는 옆집 고양이가 쏜살같이 우리 집으로 들어왔다. 고양이는 집 구석구석을 탐험하면서 아예 자기 놀이터로 삼았다. 아침에 눈 떠서 밤에 잠자리에 들 때까지 지루하게 책 소독에 매달리던 시기에 세상만사 느긋한 고양이 동료는 참으로 큰 정신적 위안을 주었다. 아랫집 이웃은 이런 상황에 밥을 제대로 해 먹을 수 있는지 걱정하면서 나를 자기 집으로 불러 점심상을 차려 주었다. 손수 밥을 해주시는 것만으로도 고마운데, 본받고 싶을 만큼 깔끔한 살림 솜씨와 요리 손맛을 지닌 분이어서, 이분 댁에 머무르는 식사 시간 동안 내 몸과 마음이 정결하게 소독되는 것 같았다. 이웃들과 얼굴을 익히고 말을 트자, 집 안에서 책 소독에 몰두하고 있으면, 문을 두드려 과일, 빵, 우유 같은 먹을거리를 전해 주곤 했다.

 

곰팡이를 겪는 내내 머릿속에서 근원적인 질문이 떠나지 않았다. 곰팡이는 어디에서 비롯했을까. 긴 장마와 잦은 태풍은 한반도 전체가 겪는 기상 이변이건만, 우리 집만 유달리 곰팡이의 낙원이 된 연유는 무엇일까. 내가 청소에 게으르고 살림에 무심했기 때문, 내 집이 후락했기 때문이라는, 사건의 원인을 피해자 개인에게 귀속시키는 편집증은 접어두고.

 

2020년 봄여름에 나는 구청에서 유기농 텃밭을 분양받아 온갖 식물을 길렀다. 상추, 방울무, 토마토, 당근, 루콜라, 유채, 박하, 고수, 쑥갓 같은 식용 작물은 물론, 개양귀비, 수레국화, 백일홍 같은 관상용 화초에도 작은 땅뙈기를 나누어주었다. 딜과 펜넬도 심었는데, 딜 잎을 조금 수확했을 뿐, 그대로 방치했더니 내 키보다 훨씬 웃자라 탐스럽게 노란 방사형 꽃송이를 피워냈다. 3월 말에 밭갈이해서 4월에 모종을 심거나 씨를 뿌린 식물들은 기름진 흙에서 5월과 6월 내내 굉장한 속도로 성장했다. 풍성한 채소와 함께 꽃을 꺾어 귀가하는 게 나날의 큰 기쁨이었다. 식용 가능한 어린잎 시기가 지나 성숙기에 이른 루콜라, 고수, 쑥갓이 얼마나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지 처음 알았다. 나는 절화로만 만족할 수 없었다. 낮의 텃밭을 밤의 집으로 옮기고 싶을 만큼 그것이 이루는 풍경에 빠져들고 사랑하게 되었다. 딜과 펜넬을 뿌리째 뽑아 갖고 와서, 뿌리를 깨끗이 씻고, 유리병에 꽂아 실내에 배치했다. 그렇게라도 내내 텃밭 속에 있을 수 있었다.


집 안에 곰팡이가 퍼진 까닭은 유기농 텃밭에서 자연의 사물들이 서로 얽혀 살도록 두지 않고 욕심껏 인간의 탁한 숨으로 꽉 찬 좁은 실내에 뽑아 들여서였을까. 채소와 꽃에는 달팽이, 공벌레, 진드기뿐만 아니라 곰팡이 포자도 묻어 들어왔을 테니까. 죄의식을 동반한 추리는 기각되었다. 밭일 가방, 밀짚모자, 고무장화를 놓아두는 현관은 마른 흙가루가 드문드문 깔렸기는 해도 곰팡이에 전혀 오염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반면, 가장 피해가 막심한 서재는 창을 열면 바로 산이라는 점이 마음에 걸렸다. 산기슭을 깎아 만든 골목의 맨 끝에 자리 잡은 집에서 나는 여름의 부드러운 산그늘과 겨울의 교교한 설경을 즐겼다. 창밖에 박새, 물까치, 붉은머리오목눈이 외에 꿩도 날아와 실내의 인간을 쳐다보곤 했다. 그러나 산의 경사면을 따라 불어오는 바람에는 분명 인간의 생활 환경에서는 좀처럼 발견되지 않는 다른 곰팡이 종류의 포자가 섞였을 텐데, 그것들이 서재에 떠다니다가 유달리 긴 장마 동안 공기에 포만한 습기를 먹고 자라난 게 아니었을지. 


옆집 이웃과 고양이와 함께 옥상에 올라가 보았다. 나무가 무성한 앞산에, 하필이면 내 방 창문 바로 앞에만 아무 나무 없이, 좁은 빈터에 잡풀이 자라나 있었다. 이 빌라에서 25년 거주한 아랫집 이웃에 따르면, 그 자리에 아카시아가 수 그루 있었으나 몇 년 전에 구청 녹지과에서 베어 버렸다고 했다. 아카시아가 제거된 이후, 어느 해 장마에, 깎은 산의 옆구리를 감싼 축대 밑으로 빗물이 배어 나와 자기 집 벽까지 번졌다고 했다.


나는 짐작한다. 나무와 잡풀이 울창하고 곤충, 새, 미생물, 지렁이 등이 얽혀 사는 숲은 그 자체로 생장과 분해가 순환하는 자율적이고 건강한 생태계인데, 나무가 사라지면서, 바람에 습기가 불어오면 그것에 포함된 균류가 나의 창문으로 침입한 거라고. 겹겹의 나뭇가지와 잎사귀들이 막아주었을 곰팡이 포자들이 기나긴 빗줄기와 함께 내 방에 터를 잡고 세력을 넓혔을 것이다. 풍성하고 조밀한 얽힘이 파괴된 자연의 구멍으로부터 곰팡이는 달라붙을 곳을 잃고 나에게 왔다. 나와 얽히게 되었다.

 

곰팡이는 자기가 타고난 자연의 이치에 따라 바람 불면 날리고 습하면 자라는 일을 했을 뿐. 5년이 흐른 지금도 나는 곰팡이와 완전히 헤어지지 못했다. 여전히 소독하지 못한, 그러나 버릴 수 없는 물품이 상자 두어 개에 잠들어 있다. 아무리 락스와 에탄올로 제거할지라도, 인간의 육안에 보이지 않는 포자는 어떤 사물의 구석에든 숨어 살아 있고, 공기가 정체되고 습도 높은 환경이 조성되면 다시금 피어난다. 그런 구석이 눈에 뜨이면, 나는 내 생활의 영역에 얼마나 더 넓은 빈자리가 필요한지 다시 실감하며, 공기가 움직이는 공간을 만들어준다. 공기가 움직일 때 물론 포자도 함께 움직일 것이다. 살 곳을 찾아 새로 얽힐 것이다.

 


* AI 학습 데이터 활용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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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경희

문학평론가. 비교문학 연구자. 한국예술종합학교 강사. 산문집 『그림자와 새벽』과 『분더카머』를 쓰고, 앤 카슨의 『녹스』를 비롯하여 그림책과 그래픽노블 여러 권을 번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