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혹·사랑·선택, 책과 뮤지컬로 읽는 ‘안나 카레니나’ | 예스24
공연이 주는 감각, 책이 지닌 사유. 책과 공연을 잇는 토크 프로그램 <페이지&스테이지>가 첫 번째 작품으로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를 함께 읽었습니다.
글: 이참슬 사진: 김태윤
2026.0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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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을 원작으로 하는 공연을 조명하는 예스24의 새로운 북토크 프로그램 <페이지&스테이지>의 첫 번째 행사가 지난 2월 5일 서울 예스24 원더로크홀에서 열렸습니다. 첫 번째 작품으로 러시아의 대문호 레프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를 조명했습니다. 민음사 박혜진 편집자와 2월 20일 개막하는 뮤지컬 <안나 카레니나>의 오리지널 연출가 알리나 체비크, 주연 배우 옥주현, 문유강, 민영기가 참여해 문학과 뮤지컬, 두 가지 장르를 통해 서사를 더 깊이 탐구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행사는 박혜진 편집자의 도서 해설로 시작해, 뮤지컬 해설, 명장면 명대사, 질의응답의 총 네 가지 파트로 구성되었습니다. 각 인물을 대표하는 대사를 배우들이 직접 낭독하면서 <페이지&스테이지>의 첫 장이 열렸습니다.

 

내 모든 삶과 사랑 향해, 나는 날아가네. 사랑 그리고 삶.”

(안나 카레니나 역 옥주현)

세상 모든 걸 다 잊는대도, 그대를 잊진 못하리.” 

(브론스키 역 문유강)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 정도는 지켜주길 바라오!” 

(카레닌 역 민영기)

 

소설과 뮤지컬로 읽는 『안나 카레니나』는 어떻게 같고 또 달랐을까요?

 

당신이 빠진 가장 강력한 유혹은 무엇인가요?

 

『안나 카레니나』는 크게 안나와 레빈이라는 두 인물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소설입니다. 주인공 안나는 유능한 고위직 관리인 알렉세이 카레닌의 아내로, 사교계와 가정생활만이 세계의 전부인 정숙한 귀부인입니다. 그러나 어느 날 젊은 백작 브론스키와 사랑에 빠지면서 자신을 둘러싼 견고한 세계로부터 외면당하게 됩니다. 

 

안나의 이야기와 대비되는 또 다른 축에는 레빈이 있습니다. 도시 생활을 떠나 시골에서 농장을 운영하며 살아가는 그는 사랑과 신념, 종교와 삶의 의미를 끊임없이 고민하는 인물입니다. 톨스토이는 서로 다른 삶의 방식과 가치관을 가진 두 인물을 교차하며, 당시 러시아 사회가 직면한 문제와 인간 내면의 갈등을 깊이 탐구합니다. 

 

이 방대한 서사를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로, 박혜진 편집자는 ‘유혹’을 제시하며 『안나 카레니나』의 안으로 들어갑니다. 다음은 박혜진 편집자의 작품 해설을 정리한 내용입니다. 




민음사 박혜진 편집자


박혜진 편집자의 작품 해설


여러분이 빠졌던 가장 강력한 유혹은 무엇입니까? 다이어트하던 중 만난 두쫀쿠일 수도 있고, 어쩌면 위험한 사랑을 떠올렸을 수도 있습니다. 유혹이라는 단어를 발음할 때 그것을 왠지 거부해야 할 악덕이나 도덕적 타락이라고 생각하기 쉽죠. 하지만 러시아의 대문호 레프 톨스토이의 생각은 조금 달랐던 것 같습니다. 그에게 유혹은 죽어 있는 영혼을 막 흔들어 깨우는 살아있다는 가장 뜨거운 증거였으니까요. 

 

톨스토이는 이 소설의 제목이자 이야기의 심장인 안나 카레니나를 향해 “절제된 활기가 있다”라고 묘사합니다. 20살이나 많은 정치인과 특별한 러브 스토리 없이 결혼했지만 그래도 그녀는 한 남자의 아내이자 어머니로서 최선을 다해 살아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기차역에서 브론스키를 만나 이렇게 되뇝니다. “불길한 징조예요.” 안나는 자기 인생을 뒤흔들 가장 강력한 유혹이 눈앞에 다가왔음을 직감합니다. 

 

이런 안나의 한쪽 팔을 붙들고 있는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남편 카레닌입니다. 우리는 흔히 그를 냉혹한 악역으로 기억하는데요. 원작의 카레닌은 법과 규율, 종교적인 의무를 중시하는 도덕적인 인간입니다. 하지만 그에게는 결정적인 단점이 있었습니다. 바로 사랑하는 법을 아예 모른다는 겁니다. 아내가 죄책감으로 고통스러워할 때도 자기 체면을 먼저 생각하고, 사랑을 마치 법률 조항처럼 분석하고 해석합니다. 톨스토이는 이 카레닌을 통해 사랑이 결여된 도덕이 얼마나 폭력적일 수 있는지 보여줍니다. 

 

안나에게 카레닌이 벗어나고 싶은 차가운 감옥이라면, 그 감옥을 부수고 들어오는 남자 브론스키가 있습니다. 젊고 잘생기고 돈이 많은 시종무관, 한마디로 ‘얼굴값’하는 삶을 살아온 남자입니다. 책임 없는 쾌락마저 특권처럼 여겨지는 브론스키의 삶이 안나를 만난 후 완전히 바뀝니다. 군인으로서 창창한 앞날과 사교계의 화려한 영광을 뒤로 하고 처음으로 자신의 인생을 걸고 안나를 책임지게 되니까요. 우여곡절 끝에 함께 살게 된 두 사람은 꿈 같은 행복을 기대합니다. 하지만 이런 말이 있죠. “사랑은 위기가 아니라 권태 때문에 무너진다.” 안나의 집착과 질투가 심해지면서 두 사람의 관계는 좀먹기 시작합니다.

 

안나와 카레닌, 브론스키의 삼각관계가 파멸로 향하는 하강 곡선이라면 톨스토이는 그 반대편에 희망의 상승 곡선을 그려 놓았습니다. 바로 레빈과 키티라는 캐릭터입니다. 레빈은 작가 톨스토이의 분신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화려한 도시, 사교계 대신에 시골에서 흙을 만지며 삶의 의미를 고민하는 아주 진중한 캐릭터입니다. 그리고 그 곁에는 브론스키에게 버림받은 뒤 상처를 딛고 성숙해진 여인 키티가 있습니다. 안나와 브론스키의 사랑이 서로를 소유하고 파괴하는 극렬한 욕망이라면, 레빈과 키티의 사랑은 서로를 살리고 보듬는 온기입니다. 

 

안나의 불행과 레빈의 행복을 한 화면에 대조해 놓고 톨스토이는 소설의 첫머리에 유명한 문장을 남겼습니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모습이 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 나름의 이유로 불행하다.” (1부 13쪽)

 

저는 이 문장을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행복을 이루는 조건은 서로 다 비슷하지만, 불행은 다릅니다. 잘 숨기고 있던 저 밑의 욕망을 침투해 들어오기 때문에 아주 개인적이고 은밀합니다. 우리는 누군가의 가장 내밀하고 처절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 『안나 카레니나』라는 비극을 읽고 무대를 찾고 있죠. 안나가 브론스키를 처음 만나고 내뱉었던 “불길한 징조”라는 말은 어쩌면 우리를 향한 경고일지도 모릅니다. 이 작품은 우리가 빠진 치명적인 유혹을 떠올리고, 마주하는 거울이 되어줄 겁니다. 




 

방대한 소설이 뮤지컬이 되기까지

 

『안나 카레니나』는 총 3권, 1500쪽(민음사 단행본 기준)이 훨씬 넘는 방대한 서사를 지닌 작품입니다. 이를 러닝타임 150분의 공연으로 함축하기란 쉽지 않았을 것으로 보입니다. 뮤지컬 <안나 카레니나>의 오리지널 연출가 알리나 체비크는 다양한 인물과 그로부터 뻗어 나가는 복잡한 이야기를 ‘안나의 행복’에 초점을 맞추어 풀어나갔습니다. 

 

알리나 체비크는 <안나 카레니나>를 단순한 사랑 이야기를 넘어 사회적 질문을 담은 작품으로 보았습니다. 그는 “사실 안나가 원하던 것은 단지 행복이었을 뿐”이라며 실수를 저질렀다는 이유로 그저 행복하기 위해 사회와 맞선 안나를 비난할 수 있는지에 대한 물음에서 연출을 시작했다고 설명했습니다. 

 

배우들 역시 각자가 맡은 인물을 탐구한 주요 지점을 나누었습니다. 안나 카레니나 역의 배우 옥주현은 진정한 사랑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질문을 던질 수 있다는 점을 중요한 포인트로 꼽았습니다. 그는 “진정한 사랑은 사랑하는 사람이 싫어하는 것을 하지 않는 것”이라며 “안나가 사랑을 소유하려고 하면서 결국 자신을 망가뜨렸다”는 것에 초점을 맞추었다고 덧붙였습니다. 

 

브론스키 역의 배우 문유강은 갑작스럽게 안나와 사랑에 빠지는 브론스키 캐릭터에 정당성과 타당성을 부여하는 것에 집중했다고 말했습니다. 또한, 비겁하고 미성숙해 보일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가장 현실적일 수 있겠다는 마음으로 인물을 연구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안나의 남편 카레닌 역의 배우 민영기는 카레닌이 사랑하는 법을 모를 뿐, 순수하고 열정적인 사랑을 품고 있는 사람이라고 바라보았습니다. 

 

옥주현은 “우리는 항상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을 것 같고, 삶에 닥치는 일을 준비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정작 어떤 일이 생겼을 때는 이성이 삶을 다 관통할 수 없다고 표현한 톨스토이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며 “그런 인생을 살아낸다는 것을 뮤지컬 안에서 재미있게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아름다운 음악과 앙상블의 화려한 군무, 인물마다의 임팩트 있는 등장,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폭발력을 더하는 무대 연출로 소설과는 다른 매력을 가진 뮤지컬 <안나 카레니나>를 만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됩니다. 


(왼쪽부터) 편집자 박혜진, 연출가 알리나 체비크, 배우 옥주현, 문유강, 민영기


 <페이지&스테이지> 첫 번째 장에서는 문학을 원작으로 하는 뮤지컬과 함께 깊이 탐구하며 『안나 카레니나』에 대한 다채로운 해석이 펼쳐졌습니다. 문학 편집자의 해설은 소설의 깊이를, 배우와 연출가의 이야기는 무대가 구현하는 가능성을 보여주었습니다. 소설만 읽으신 분이라면 뮤지컬을 통해, 뮤지컬만 보신 분이라면 원작을 통해 또 다른 『안나 카레니나』를 만나 보시길 권합니다. 아직 둘 다 만나 보지 못했다면, 원작과 공연을 함께 경험해 보는 것도 좋은 선택이 될 것입니다. 독자 여러분은 이 작품을 어떻게 읽으실지 궁금해집니다. 




뮤지컬 <안나 카레니나> 공연 정보 

일시 : 2026.02.20 ~ 2026.03.29

장소 :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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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 카레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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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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