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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레이션] 이 말을 전하기 위해 다시 태어나고 있잖아요 | 예스24
시를 읽는다는 것은, 끝나야만 하는 일이 많아서 영원을 뒤척이는 시인의 말들을 부축해가는 여정이다.
글: 서윤후
2026.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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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런 것이 알고 싶었다. 시 안에서 막 탄생한 화자를 볼 때마다, 무엇을 끝내고 싶었던 것일까. 무엇을 끝내기 위해 언어를 뒤집어쓰고 부활했는지 알고 싶었다. 막 태어난 사람은 악을 쓰며 울고, 죽은 이의 고요한 곁에는 다시 우는 사람들이 남는다. 울면서 시작해 우는 풍경으로 저무는 한 사람의 삶이 시에서 반복되는 것은 화자가 있기 때문이다. 화자의 근원을 쫓아 시집을 읽으면, 그 세계의 실마리가 잡히기도 한다. 한 사람이 서 있는 형상을 본 뜬 열쇠 구멍처럼, 꼭 그 세계를 열 수 있을 것만 같다.

 

시집을 읽는 일이 한 사람의 생일을 오랫동안 축하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말하게 된 것을 축하해. 볼 수 있음을 축하해. 쓰게 된 것을 축하해. 읽을 수 있어 축하해. 이 행간을 함께 침묵으로 지날 수 있어 축하해. 살아남은 것을 축하해. 부활을 축하해. 이 탄생의 징조가 무엇을 끝내게 만들었는지, 또 이 죽음과 같은 선고가 무엇을 태어나게 만들었는지 이야기하고 싶었다. 

 


『조금 깨물고 몰래 버리기』

연정모 저 | 아침달


큰 사랑이 두렵단 건

벌써 사람이란 뜻이다

 

나 몸통만 한 공포를 지니고 살 운명에 처해진 건데

다들 웃고 있어서 성이 났고

빽빽 울면 당신들은 나를 안아 올렸다

 

다음엔 뭘 할까?

말랑한 발등에 당신이 말을 걸면

나는 문득 자라나

밝은 손차양 아래서 날렵하게

단단해진다

 

이제 그들 중 몇은 없고

 

나는 아직도

당신을 사랑해서 운다는 이야기

 

(「사랑하기」의 부분, 『조금 깨물고 몰래 버리기』 13쪽)

 

연정모 시인의 첫 시집을 여는 시 「사랑하기」에는 자신이 태어난 일을 지켜보는 듯한 시선이 인상적이다. 오래된 비디오테이프에 녹화된 자신의 탄생 장면을 보듯이, 그 탄생의 준비 없음의 상태도 고스란히 보여준다. 그러나 그것은 지금 ‘사랑’을 말하기 위한 기원. “몸통만 한 공포”를 부대끼면서도 “다음엔 뭘 할까?” 계속 나아가려는 힘은 어쩌면 몸통만 한 사랑을 믿는 일. 태어나 처음 우는 일처럼 사랑해서 우는 일도 사랑으로부터 계속 태어나는 내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큰 사랑의 두려움을 알고, 공포를 느끼면서도 “밝은 손차양 아래서 날렵하게/ 단단해”지는 사람의 첫걸음을 어떻게 바라보지 않을 수 있을까. 태어난 일처럼 갑작스럽게 일구는 사랑의 마음이 모종의 두려움처럼 느껴진다는 것은, 사람으로 존재하는 일 자체가 사랑의 징조란 뜻일 것이다. 맛에 대한 감각으로 점철된 이 시집을 지나면서, 마치 새로운 이름을 얻는 세례식에 서 있는 기분이 들었다. 


 

『네이티브 가드』

나타샤 트레스웨이 저/정은귀 역 | 은행나무


나는 혼자 상상하네, 저 밖에 누군가가 있을 때

나 또한 내 목소리를 높여서, 여기서 거기까지

내 목소리의 선을 박음질해 보낼 거라고,

내가 만드는 소리는 분명히 그 누구를

집에 불러들일 수 있을 거라고.

(「해 질 녘에」의 부분, 『네이티브 가드』 30쪽)

 

미국 남부에서 보낸 흑인 혼혈의 유년 시절, 전쟁과 죽음으로 참혹했던 삶 속에서 힘겹게 말하기를 멈추지 않는 나타샤 트레스웨이의 시에는, 그 목소리가 누군가를 구할 수도 있을 거라는 작은 희망이 솟아난다. “밖에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을 망각한 미국 사회에서 그는 언제나 바깥에 있는 사람이었겠지만, 그것이 안쪽으로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아니라 바깥에도 바깥이 있다는 시선으로 구부러지며 생존해왔을 것이다. “집에 불러들일 수 있”는 목소리란, 따뜻하고 다정한 목소리로 초대하는 일이 아니라, 세계와의 불화를 기꺼이 누비며 제 발로 걸어들어오지 않으면 안 된다는 깨달음일지도 모르겠다. 믿음을 깨부수는 믿음. 그렇게 존재하는 것, 마침내 자신의 존재를 스스로 발각시키는 것. 나는 거기에 시의 힘이 있다고 생각한다.



『낳고 싶다』

이토 히로미  저/한성례 역 | 포엠포엠

 

나는 진즉에 도쿄를 버렸습니다

(중략)

열 살짜리 수고양이가 쓰러져 있는 모습을 보았을 때

나는 최종적으로 도쿄를 버렸습니다

종이 상자를 꺼내어

거기에 아버지와 어머니, 고양이 사체와 고양이 모포와

옛날 인형과

정원의 나무와 진흙을

채워 넣기 시작했습니다

작업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사」 부분, 『낳고 싶다』 174-176쪽)

 

시 창작 수업을 해오면서 가장 많이 소개한 시집이다. 이 시집을 좋아한다는 사람을 우연히 만나면 아직 이 잔혹한 이야기를 떠나지 않은 사람이 있어 다행이란 생각도 든다. 좋아하는 만큼 많이 들여다보았으나 발췌에 큰 어려움이 있었다. 이토 히로미의 시는 어떤 부분에서는 가장 최전선에 있지만, 가장 밑바닥을 위한 위장이기도 하다. 숨김없이 다 내지를 수 있는 것엔 숨길 수 없는 고통이 있었다는 것이고 거기에는 ‘도쿄’라는 자신의 근원지에 대한 폭로, ‘폴란드’라는 새로운 세계에 놓이며 겪었던 부적응기, 여성이라는 몸의 침몰 등이 언어를 삼킨 다음 스스럼없이 말문을 연다. 이 시집을 읽으며 겪었던 크나큰 충격들은 시를 쓰는 내내 진동하고 있다. 내가 태어난 곳을 나는 버릴 수 있을까? 완벽하게 뿌리를 끊어내고 이주할 수 있을까? 어쩌면 시는 이러한 시도에서 벌어지는 장황한 길. 공중으로 치솟은 사다리차의 위태로움처럼, 태어난 곳으로부터 가장 높이 올라가기. 안 보일 정도로 떠나가기는 시의 숙명.


 

『내가 시인이었을 때』

마종기 저 | 문학과지성사


내가 오색 풍선 날리는 시인이었을 때

어느 집 뒤뜰의 잡풀이란 걸 몰랐다.

낭비한 시름이 허세를 다 지우면

다시 한번 거칠 것 없는 시인,

자유롭고 외로운 넋의 시인을 찾아

 

그래, 눈떠라.

감추어둔 내 안의 물길이

소리 내며 흐르는 새벽녘

길 잃은 환자가 되지 않기 위해

풀잎 사이 이슬에게 동행을 청한다.

그래서 긴 고통을 이긴 시인이었을 때.

(「내가 시인이었을 때」의 부분, 『내가 시인이었을 때』 116쪽)

 

이상하게도 ‘시인’임을 과거형으로 말하는 제목이 태어남과 죽음을 한꺼번에 불러왔다. 시인은 얼마나 많이 태어나고 죽는 존재일까 생각해보게 되었으니까. 찬란하고 아름다운 표현에 기대어 있던 시절이 겨우 “어느 집 뒤뜰의 잡풀”일지도 모른다는 것, 그것이 내가 요즘 시를 쓰며 겪는 작고 귀여운 절망을 유예하게 만들었다. 이 시집을 읽으며 “거칠 것 없는 시인”이 된 시인이 마치 다시 태어난 것 같았다. 축하를 건네고 싶었다. 무언가 이루고 싶어 안달이 났던 삶을 뒤집어 다시 태어난다는 것은 무언가를 하지 말고, 되지 않으려는 안간힘의 형국에서 살아가는 일. 고통을 지나며 알아차렸을 시인이 몇 번이고 다시 태어날 것만 같다. 시를 읽는다는 것은, 끝나야만 하는 일이 많아서 영원을 뒤척이는 시인의 말들을 부축해가는 여정이다. 부활한 이의 숨소리를 듣기 위해 나는 케이크의 가장 안쪽으로 기어 들어간다. 



* AI 학습 데이터 활용 금지

2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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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dong23

2026.02.11

서로 전혀 다른 시집 같아 보이는데 이렇게 연결될 수도 있구나.! 하고 생각했어요. 늘어나는 장바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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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면하는펭귄의자

2026.02.10

시작점에 있는 언어들이 가득한 시집들이라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언어로 말할 때, 시가 내재한 언어의 배후에는 어떤 고통이 있다는 것을 잊지 않게 해주는 그런 전시라고 생각했어요. 잘 읽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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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깨물고 몰래 버리기

<연정모>

출판사 | 아침달

네이티브 가드

<나타샤 트레스웨이> 저/<정은귀> 역

출판사 | 은행나무

내가 시인이었을 때

<마종기>

출판사 | 문학과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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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윤후

2009년 『현대시』로 등단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어느 누구의 모든 동생』 『휴가저택』 『소소소』 『무한한 밤 홀로 미러볼 켜네』 『나쁘게 눈부시기』와 산문집 『햇빛세입자』 『그만두길 잘한 것들의 목록』 『쓰기 일기』 『고양이와 시』가 있다. 시에게 마음을 들키는 일을 좋아하며 책을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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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종기

부드러운 언어로 삶의 생채기를 어루만지고 세상의 모든 경계를 감싸안는 시인이다. 1939년 일본 도쿄에서 동화작가 마해송과 무용가 박외선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 바닷가에 앉아 혼자 동시를 쓰기 시작했던 소년은 중학생 시절부터 일약 ‘학원’ 문단의 스타가 되어 친구들의 연애편지 대필을 도맡는 등 타고난 시인의 재능을 맘껏 선보인다. 자연스럽게 문인의 길로 접어드는 듯 했으나 어려운 고국의 현실을 외면하지 말라는 주위의 권유로 연세대학교 의대에 진학했다. 1959년 본과 일학년때 박두진 시인의 추천으로 『현대문학』에 등단하면서 ‘의사시인’으로서의 길을 걷게 된다. 1966년 미국으로 건너간 후, 오하이오 주립대학 병원에서 수련의 시절을 거쳐 미국 진단방사선과 전문의가 되었고, 오하이오 의과대학 방사선과 및 소아과 교수 시절에는 그해 최고 교수에게 수여하는 ‘황금사과상’을 수상했다. 이후 톨레도 아동병원 방사선과 과장, 부원장까지 역임했고 2002년 의사생활을 은퇴할 때까지 ‘실력이 뛰어나고 인간미 넘치는 의사’로서 명성을 쌓았다. 은퇴한 후에는 연세대 의대의 초빙 교수로 본과 2년생에게 새 학과목인 ‘문학과 의학’을 5년간 가르쳤다. 고국을 떠나 이국에서 보내야했던 그리움과 고독의 시간을 자신만의 시어로 조탁하여 『조용한 개선』을 시작으로 『두번째 겨울』(1965), 『평균율』(공동시집: 1권 1968, 2권 1972), 『변경의 꽃』 (1976), 『안 보이는 사랑의 나라』(1980), 『모여서 사는 것이 어디 갈대들뿐이랴』(1986), 『그 나라 하늘빛』 (1991), 『이슬의 눈』 (1997), 『새들의 꿈에서는 나무 냄새가 난다』(2002), 『우리는 서로 부르고 있는 것일까』 (2006), 『하늘의 맨살』 (2010), 『마흔두 개의 초록』 (2015) 등의 시집을 펴냈다. 그 밖에 『마종기 시전집』 (1999), 시선집 『보이는 것을 바라는 것은 희망이 아니므로』 (2004), 산문집 『별, 아직 끝나지 않은 기쁨』(2003)과 『아주 사적인, 긴 만남』(2009), 『당신을 부르며 살았다』 (2010), 『우리 얼마나 함께』 (2013), 『사이의 거리만큼, 그리운』 (2014) 등 수많은 시집을 펴냈다. 한국문학작가상, 편운문학상, 이산문학상, 동서문학상, 현대문학상, 박두진문학상, 대산문학상을 받았으며, 2009년에는 시 「파타고니아의 양」으로 현대문학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