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양솽쯔 작가를 처음 알게 된 건, 오 년 전쯤이다. 샤오샹션 작가가 동인지를 선물로 주면서 여기 필진 중에 역사 백합을 전문적으로 쓰는 작가가 있다고 했다. 그게 바로 양솽쯔 작가였다.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역사 백합 소설을 쓰는 작가라니. GL이 아닌 백합이라니.1 그것도 웹소설이 아닌 종이책이라니.2 자기 자신을 ‘대중 소설가’ 혹은 ‘대중문화 관찰자’라고 명명하는 작가3에게 나는 큰 호감을 느꼈다. 나 또한 장르 소설을 읽는 독자이자, 장르 소설을 쓰는 작가이기 때문이었다.
그 뒤로 내게 양솽쯔 작가는 역사 백합이라는 한 우물을 파는 사람이었다. 양솽쯔 하면 역사 백합이었고, 타이완 역사 백합 하면 양솽쯔였달까. 그런 양솽쯔 작가에게 조금 다른 설명이 더해진 건 2024년 11월 21일 이후였다. 『1938 타이완 여행기』(양솽쯔 저/김이삭 옮김)가 전미도서상 번역 문학상을 수상했던 날. 타이완 최초 수상이었다. 역사 백합 소설가라는 설명 뒤에 전미도서상 수상 작가라는 말이 추가된 것이다.
당시 한 타이완 지인이 내게 이런 질문을 했다. 한강 작가의 수상 소식과 양솽쯔 작가의 수상 소식 중 어떤 소식에 더 놀랐냐고. 나는 잠시 생각을 해보다가 양솽쯔 작가의 수상 소식에 더 놀랐다고 솔직하게 답했다. 그러자, 왜? 라는 질문이 이어졌다. 나는 쉽게 답할 수 없었다. 상대가 양솽쯔의 작품을 읽어본 적이 없어 더더욱 그러했다. 그 이유를 알려주려면 양솽쯔 작가와 그의 작품들 외에도 그가 쓰는 장르에 대한 이해가 필요했으니까. 정확히는 백합 장르가 문학계에서 어떠한 위치에 있는지에 대한 이해가.
백합 소설도 전미도서상을 탈 수 있을까?
나는 쉽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양솽쯔 작가가 수상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크게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바로 이어진 감정은 기쁨이었다. 타이완 백합 소설이 전미도서상을 타다니! 『1938 타이완 여행기』를 번역하고 있는 번역가로서도, 장르 소설을 읽고 쓰는 작가로서도 너무나 기뻤다. 그런데 내게 질문했던 지인은 기쁨이 아닌 못마땅함을 느꼈던 듯하다. 뭐라고 답해야 할지 말을 고르고 있는 내게 바로 다음 질문을 던졌는데, 그 질문이 “그렇게 메시지가 선명한 작품은 번역이 쉬워서 해외 진출이 더 쉬운가?”였다.4
오, 나는 이 질문을 듣고 큰 깨달음을 얻었다. 타이완에서도 장르 문학 혹은 대중 문학을 향한 편견이 생각보다 공고하다는 깨달음이었다.5
쉽게 읽히는 글이라고 해서 과연 그 글을 쉬운 글이라고 볼 수 있을까? 쉽게 쓰인 글이라고 볼 수 있을까? 깊이 없는 글이라고 여길 수 있을까? 그리고 번역이 쉬울 거라는 판단은 대체 무엇을 근거로 하는 걸까. 모어로 쉽게 읽힌다고 해서 쉽게 다른 말로 옮길 수 있는 건 아닌데. 이 판단은 백합 소설에 대한 편견에서 기인한 걸까?
그러나 타이완 내부에 편견이 있든 말든, 그 편견이 어떠한 형태이든, 『1938 타이완 여행기』는 제 갈 길을 뚜벅뚜벅 가고 있다. 부커 인터내셔널 후보작이 된 것이다. 타이완 작품이 부커상 후보가 된 건 우밍이 작가의 『도둑맞은 자전거』 이후로 이번이 8년 만이다.
과연 백합 소설은, 백합 소설을 쓰는 대중 소설가는 전미도서상에 이어 부커상을 탈 수 있을까?
*
양솽쯔 작가는 이제껏 무엇을 썼을까?
(왼쪽부터) 『1938 타이완 여행기』 『꽃피는 시절』 『꽃피는 소녀들의 화려한 섬』원서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역사 백합 소설 3부작
장편 『1938 타이완 여행기』와 장편 『꽃피는 시절』(한국어판 출간 예정) 그리고 소설집 『꽃피는 소녀들의 화려한 섬』은 모두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하나의 세계관을 이루고 있다. 『꽃피는 시절』, 『꽃피는 소녀들의 화려한 섬』, 『1938 타이완 여행기』 순으로 따로 읽어도 좋지만, 함께 읽었을 때 그 매력이 배가 된다.
『우리 가족은 장르싱 옆집에 산다』 원서
쥐앤춘에서 자란 쌍둥이 작가의 자전적 에세이, 『우리 가족은 장르싱 옆집에 산다』
양솽쯔 작가에게는 여러 특징이 있다. 양솽쯔가 양뤄츠, 양뤄후이라는 쌍둥이 자매의 공동 필명이라는 점, 자매가 쥐앤춘6에 있는 한 조손 가정에서 자랐다는 점, 아르바이트와 학업을 병행하는 고학생이었다는 점, 번역가이자 연구자인 동생 양뤄후이는 2015년 암으로 하늘나라로 떠났다는 점 등이다. 결손과 가난으로 힘들었으나 쌍둥이 자매가 한 몸처럼 가깝게 지냈던 지난 과거와 동생을 잃고 ‘우리’에서 ‘나’로 변해갔던 상실의 과정을 양뤄츠는 자신의 첫 에세이에 진솔하게 담았다. 장르싱은 타이중 청궁링 쥐앤춘에 있는 한 잡화점의 이름으로 동네의 랜드마크라고 한다. 타이중 문학상 산문 부문 1등상과 2021년 오픈북(Openbook) 연간 중문 창작상을 수상했다.
『소녀의 사랑: 타이완 ACG계 백합 팬덤 문화 발전사』 원서
타이완 최초의 백합 연구서, 『소녀의 사랑: 타이완 ACG계 백합 팬덤 문화 발전사』
양솽쯔 작가 중 동생인 양뤄후이가 쓴 책이다. ACG 관련하여 BL을 연구하는 이는 많지만, 백합을 연구하는 이는 많지 않다. 타이완의 백합 팬덤 문화를 학술적인 관점으로 분석한 최초의 책으로 2023년에는 양뤄츠의 손을 거쳐 개정판으로 출간되었다.
(왼쪽부터) 『기담화물어』 소설과 만화
소설과 만화, 『기담화물어』
양솽쯔 작가는 사실 소설 작업보다 만화 작업을 더 먼저 했다. 소설을 주력 창작 분야로 삼는 지금도 만화 작업 협업은 꾸준히 해오고 있다. 소설이 출간된 뒤 2차 판권이 팔려 만화화가 되는 게 아니라 창작 단계에서부터 출판 만화 작업을 동시에 진행한다. (현재 집필 중인 장편도 출판 만화로 제작 중이라고 한다) 만화 『기담화물어』는 타이완 문화부에서 주관하는 만화상인 금만상을 수상했는데, 함께 협업한 만화가인 ‘월요일은 재활용하는 날(星期一回收日)’ 작가는 일본 외무성이 주관하는 ‘일본국제만화상’에서 우수상을 탄 적도 있다.
1 양솽쯔 작가는 퀴어, GL, 백합이라는 장르를 다음과 같은 기준으로 나누었다. 퀴어 소설은 퀴어와 사회와의 관계를 중점적으로 보고, GL 소설은 로맨스 장르와 같으나 남주 포지션에 여성이 있는 것이며 백합 소설은 여성과 여성 간의 관계에 집중한다는 것이다. 그의 관점에 의하면, 백합 소설 속 여성 캐릭터는 헤테로 이성애자일 수도 있고, 퀴어일 수도 있다. 또한 이들이 서로 나누는 감정도 사랑이거나 우정일 수도 있다. 중요한 건 이러한 여성 캐릭터 간에 어떠한 관계가 형성되어 있고, 서로에게 영향을 주며 성장한다는 것이다.
2 퀴어 소설은 그 형태가 주로 종이책이다. 반면 GL 소설은 종이책으로 출간되는 일이 거의 없다. 크게 성공해 소장판으로 나오지 않는 이상, 보통은 웹소설로만 출간된다. 이는 타이완에서만 그런 게 아니라 한국에서도 마찬가지다. (한국에서 종이책으로 출간된 GL 소설 중 크게 주목받은 소설을 꼽아본다면, 김청귤 작가의 『재와 물거품』이 아닐까 싶다.) 양솽쯔 작가가 주로 쓰는 장르인 ‘역사 백합’으로 좁혀서 본다면, 타이완에서 이 장르로 종이책까지 출간하는 작가는 양솽쯔 작가가 유일할 듯하다.
3 개인적으로 양솽쯔의 ‘대중문화 관찰자’라는 표현을 매우 좋아한다. 학계가 아닌 필드에 머물지만, 연구자적인 관점을 견지하면서 자신이 속한 곳을 조망한다는 점이 드러나는 표현이기 때문이다. 사실 양솽쯔 작가는 백합을 연구하는 연구자이기도 하다. 양솽쯔 작가의 지도교수는 타이완에서 장르 문학을 주로 연구하는 거의 유일한(?!) 학자이자 타이완 국립중싱대학 타이완 문학과 트랜스내셔널 문화연구소 교수인 천궈웨이이다.
4 『1938 타이완 여행기』가 번역하기 쉬운 텍스트라는 말을 나는 총 두 번 들었는데, 한 번은 위에서 말한 타이완 지인에게서이고, 다른 한 번은 이런 말을 누군가에게서 들은 천궈웨이 교수가 불만을 토로하며(?!) 내게 의견을 물어보면서였다. 나는 어이없어하면서 이 소설을 번역하고 흰머리가 서너 배 늘었다고 답했다.
5 장르에 대한 편견이 상대적으로 적다고 생각했던 건, 타이완 장르 소설 작가들이 활발하게 활동하면서 타이완 문학계의 한 축을 이루고 있는 데다가 『1938 타이완 여행기』가 이미 타이완 내부에서 금정상(金鼎獎)을 수상한 작품이기 때문이었다. 금정상은 타이완 문화부가 주관하는 출판문화상으로 타이완 문학관에서 주관하는 문학상인 금전상(金典獎)과 함께 양대 문학상으로 꼽힌다. (다만 금정상은 문학 전문상이 아니다. 잡지 부문, 도서 부문, 정부 간행물 부문, 디지털 출판 부문 등 수상 부문이 여러 분야로 나뉜다) 또 양솽쯔 작가는 문화부와 문예회에서 준 지원금 덕분에 전업 작가가 되어 창작을 할 수 있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6 국공내전 이후 국민당이 타이완으로 도망쳤을 때, 국민당 군인과 그 가족이 모여서 산 마을이 쥐앤춘이다. 즉 외성인 마을이다. 쥐앤춘 사람들은 중국에서 이주해 온 디아스포라이기에 자신의 뿌리를 중국이라고 여기는 경우가 많다.
* AI 학습 데이터 활용 금지
1938 타이완 여행기
출판사 | 마티스블루
김이삭
평범한 시민이자 소설가 그리고 번역가. 중화권 장르 소설과 웹소설, 희곡을 번역했으며 한중 작가 대담, 중국희곡 낭독 공연, 한국-타이완 연극 교류 등 국제 문화 교류에 힘쓰고 있다. 저서로는 『한성부, 달 밝은 밤에』, 『감찰무녀전』, 『천지신명은 여자의 말을 듣지 않지』 등이, 역서로는 『여신 뷔페』, 『다시, 몸으로』 등이 있다. 홍콩 영화와 중국 드라마, 타이완 가수를 덕질하다 덕업일치를 위해 대학에 진학했으며 서강대에서 중국문화와 신문방송을, 동 대학원에서는 중국희곡을 전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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