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정은의 미술과 문장] 순환하는 지구 생물체 | 예스24
섭취와 분해, 인간 이후의 생태적 상상력
글: 오정은
2026.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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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재은, <이것은 나의 몸>, 스테인리스스틸, 흙, 냉장고, 소시지(작가가 사육한 닭 10%+일반 국내산 닭고기 90%), 케찹, 아크릴, 스티로폼을 먹은 밀웜의 분변, 밀웜을 먹은 닭의 분변, 스티로폼, FHD 3채널 비디오 설치, 컬러, 무음, 20분 반복, 2023. 


가죽이 벗겨진 죽은 토끼를 투명 레진으로 감싸 진열한 <시들지 않는 언덕>(2019), 먹음직한 햄버거 사진을 쇼윈도에 설치하고 <Cutting a Hamburger>(2018), 그 인근에 흙과 시멘트 탑에 깔린 돼지 사체를 둔 <침묵의 탑 pink>(2018), 플라스틱을 분해하며 자란 애벌레와 그것을 모이로 먹은 닭을 기른 뒤, 그 닭으로 만든 소시지를 구워 관람객에게 건넨 <이것은 나의 몸>(2023).

 

신재은은 동물의 죽음과 부패, 그리고 이를 둘러싼 인간의 소비 행위를 작업 안으로 끌어들이는 한편, 감각적 불편과 기괴함을 촉발하며 지속적인 논쟁의 대상이 되어왔다. 작품 제작 과정에서 수행되는 윤리적 긴장을 둘러싼 의문은 SNS상의 찬반 갈등을 키우기도 했으며, 수술복을 입고 돼지를 발골하는 이미지가 첨부된 인터뷰 기사는 결국 삭제되기도 했다. 그러나 신재은의 이러한 작업은 장식용 동물 박제처럼 미화된 죽음 뒤에 가려진 폭력성, 인간 중심적 사고에 기반한 종래의 생태관, 가축 사육과 살처분 같은 생명 통제의 사회적 현실, 그리고 제도 속에 은폐되어온 생명의 다양한 물질성이라는 더 큰 화두와 복합적으로 맞물린다. 작가는 관람객과 미술계의 반응 또한 작품의 일부로 포함시키며, 순환하고 뒤얽힌 유기체적 관계 속에서 존재를 사유하는 방식을 탐구해왔다.

 

식품성분표의 표기 정보보다도 더 적나라한 진실을 드러내온 신재은의 ‘음식 실험’은 <가이아(GAIA)>라 불리는 일련의 연작에 속한다. 이 작업은 사육과 도축, 유통 단계를 거친 물질의 흐름을 섭취와 소화, 배설의 과정을 따라 추적하며 점차 신체 내부의 미시세계로 확장된다. 최근 발표한 <숭고하지 않은 아이>(2025)는 작가의 대변에서 채취한 장내 미생물을 촬영한 영상이다. 작가는 기념비적 조각을 연상시키는 대형 화면으로 확대된 미생물에게 ‘나를 먹을 너에게/ 오늘, 너의 몸짓을 처음 보았다’로 시작하는 편지를 쓴다. 이는 음식뿐 아니라, 언젠가 우리 몸을 자연 상태로 분해하게 될 몸속 존재에게 보내는 하나의 인식론적 메시지이기도 하다. 섭취하는 주체일 뿐 아니라 섭취당하는 존재로서, 우리 몸은 유일한 상위 포식자가 아니라 끊임없이 먹고 먹히는 생명활동의 순환 속에 놓여 있음을 드러낸다.


신재은, <숭고하지 않은 아이>, 작가의 대변에서 채취한 장내미생물을 1000배 확대 촬영한 영상, single channel FHD video, 4분 반복, (현미경 촬영: 제주대학교 의과대학 김의태 교수), 관객 섭취용 편지 (식용 종이에 식용 잉크), 아크릴 블록, 100 × 40 × 13 cm, 작가가 작가의 장내미생물에게 쓴 편지, 2025


신재은의 작업에 나타나는 기이한 분위기와 그에 내재한 비판적 태도, 그리고 인간과 비인간종의 뒤섞임이 드러내는 관계 설정은 정보라의 소설을 하나의 참조점으로 삼아 이해해볼 수 있다. 특히 인체 배설물로부터 새로운 피조물이 탄생하는 줄거리를 지닌 단편소설 「머리」는 모성의 통념을 벗어나 위계가 전복되는 상황을 그로테스크하게 펼쳐 보이며, 존재를 다른 관점에서 인식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신재은의 작업과 맞물려 읽힌다.

 

그녀는 물었다. 

너는 무엇이냐?”

머리’는 대답했다.

저는 ‘머리’입니다.”

그녀는 다시 물었다.

그래, 그건 알겠다. 그런데 왜 내 변기 속에 존재하는 거냐? 그리고 왜 나를 ‘어머니’라고 부르는 거냐?”

머리’는 입술 없는 입을 서투르게 뻐끔거렸다.

당신이 변기 속에 버리곤 했던 빠진 머리카락과 당신의 배설물과 뒤를 닦은 휴지 등, 당신이 변기 속에 버린 것들로 인하여 제가 생겨났기에 당신을 어머니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 정보라, 「머리」, 『저주토끼』 중에서)

 

이러한 관계의 재구성은 정보라의 『지구 생물체는 항복하라』에서도 이어진다. 이 연작소설에서 문어, 대게, 상어, 개복치, 해파리, 고래 같은 해양 생물은 인간과 함께 지구에 터전을 둔 존재로 등장하며, 외계 생명체와 연결된 질서 속에서 인간에게 먹이로 포획되거나, 혹은 협력하며 공생하는 관계를 형성한다. 이때 지구는 소설에서 언급되는 ‘생물권(Biosphere)’, 즉 지구상 모든 생명체가 공존하며 살아가는 영역으로 부각된다. 이러한 설정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의 지정학적 긴장, 일본의 원전 오염수 방류, 해수면 온도 상승과 같은 현실의 사건들과 교차하며, 노동운동과 가족 돌봄을 둘러싼 작가의 자전적 경험과도 맞물려 서사의 층위를 높인다.

 

신재은은 인간이 꺼려온 오염과 부패, 배설과 죽음을 외면하지 않고 직시하며, 곰팡이나 미생물 등 다른 존재의 시선을 빌려 생명활동의 원형을 포착하려 한다고 밝힌 바 있다. 그의 작업은 전시 공간 안으로 산 것과 죽은 것, 섭취와 분해의 과정을 끌어들임으로써 주체와 타자,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를 흔들고, 일상에 가려져 있던 생명체의 유기적 흐름을 가시화한다. 이때 인간은 자본주의의 구조 속 주된 행위자이기 이전에, 생태계의 거대한 흐름 속에서 다른 존재들과 얽혀 있는 조건으로 드러난다. 존재는 고정된 물리적 실체가 아니라 관계 속에서 형성되고 변화하며 지속되는 과정으로 이해된다. 정보라가 이러한 관점을 사회비판적 의식과 결합해 환상과 현실이 교차하는 서사로 직조했다면, 신재은의 작업은 그러한 관계가 발생하는 순간을 물질적 차원에서 직접 마주하게 하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그가 포착해온 장면들은 인간 역시 순환하는 존재들 중 하나임을 드러내며, 자신을 둘러싼 관계를 바라보는 인식과 감각을 낯설게 한다. 아직 전모와 결말을 다 드러내지 않은 신재은의 연작은, 불완전한 상태를 감수한 채 다음 장면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애초에 ‘정상인’이란 환상 속의 존재일 뿐이다. 현실의 인간은 다들 어딘가 손상되고 어딘가 완벽하지 못한 물리적 실체를 끌어안고 자기 방식으로 생존하기 위해, 존엄하기 위해, 자유롭기 위해 싸우고 있다. 그러니까 어떤 경우든 뭔가 요령이나 방식이 있을 것이다. (— 정보라, 「고래」, 『지구 생물체는 항복하라』 중에서)

 

신재은, <통로 1>, 단채널 FHD 영상, 컬러, 무음, 약 15분 반복,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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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정은

미술비평가.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전문사 미술이론을 전공했다. 동시대 미술 현장과 작가 작업을 연구하며 글을 쓴다. 『경향신문』에 미술 칼럼을 연재했고, 『네이버 디자인』, 『월간미술』, 『서울아트가이드』 등 여러 매체에 기고를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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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라

연세대 인문학부를 졸업하고, 예일대에서 러시아·동유럽 지역학 석사를 거쳐, 인디아나대에서 러시아문학과 폴란드문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8년 연세문화상에 「머리」가, 2008년 디지털문학상 모바일 부문 우수상에 「호(狐)」가 당선되었으며, 2014년 「씨앗」으로 제1회 SF어워드 단편 부문 우수상을 수상했다. 『저주토끼』로 2022년 부커상 국제 부문 최종 후보에 올랐고, 이듬해 국내 최초로 전미도서상 번역문학 부문 최종 후보에도 이름을 올렸다. 『너의 유토피아』는 영문판이 2024년 발간된 이래, 2024년 미국 주간지 [타임]의 올해의 책에 선정되었고, 2025년 1월 현재 필립 K. 딕상 후보작으로 선정되었다. 지은 책으로 소설집 『저주토끼』 『여자들의 왕』 『아무도 모를 것이다』 『한밤의 시간표』 『죽음은 언제나 당신과 함께』 『지구 생물체는 항복하라』 『작은 종말』, 장편소설 『문이 열렸다』 『죽은 자의 꿈』 『붉은 칼』 『호』 『고통에 관하여』 『밤이 오면 우리는』, 에세이 『아무튼, 데모』 등이 있으며, 옮긴 책으로 『거장과 마르가리타』 『탐욕』 『창백한 말』 『어머니』 『로봇 동화』 등이 있다. 대학에서 러시아어를 전공하여 한국에선 아무도 모르는 작가들의 괴상하기 짝이 없는 소설들과 사랑에 빠졌다. 어둡고 마술적인 이야기, 불의하고 폭력적인 세상에 맞서 생존을 위해 싸우는 여자들의 이야기를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