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행운은 언제나 때늦게 찾아온다 | 예스24
허먼 멜빌은 내가 아는 한 가장 무모한 작가이고, 그 숭고한 어리석음 덕분에 ‘영광의 월계관’을 쓴 위대한 예술가다.
글: 유상훈 (편집자)
2026.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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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비딕』 

허먼 멜빌 저/황유원 역 | 문학동네

 

오늘날 ‘불후의 영광’을 누리는 작가들 중에서, 살아생전 그 같은 축복을 누린 이들은 그리 많지 않다.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괜찮은 삶을 살았던 빈센트 반 고흐조차(오히려 그의 곁을 지키던 사람들이 더 큰 고통을 받았다.) 그의 죽음 이후에 벌어진 일련의 사건들을 훑어보노라면, 영광이란 언제나 때늦게 찾아오는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다. 물론, 모든 작품이 블록버스터였던 셰익스피어나 눈을 감는 그 순간까지 원하는 바를 모두 이룬 피카소 같은 인물들도 존재하기는 하지만, 대개 행운은 인간의 유한한 삶 속에서 좀처럼 잡아챌 수 없는 신기루다. 설령 살아 있을 적에 그 행운을 붙잡았다 할지라도, 대부분 망각이라는 더 가혹한 심판을 받게 마련이다.

 

비단 작가뿐이겠는가? 본의 아니게 태어난 그 순간부터, 세상의 모든 권세를 누린 인간에게조차 인생이란 실패와 좌절의 연속이고, 이따금 의미를 부여할 만한 기쁨을 만끽하는 짧은 백일몽이다. 이 잔혹한 순리를 겸허히 받아들이느냐 마느냐, 하는 것이 일종의 지혜인데, 유독 작가들 중에 이 얄궂은 운명과 씨름한 이들이 적잖다. 어쩐지 괜찮게 살아온 작가보다 비참에 시달린 작가들에게 더욱 끌리는, 이토록 아주 괴이한 악취미를 지닌 나에게는, 허무맹랑할 정도로 운명에 맞서 온 무모한 작가들이 훨씬 아름답게 보인다.

 

역시 허먼 멜빌을 이야기하지 않고는 이 같은 주제를 논할 수 없다. 그는 내가 아는 한 가장 무모한 작가이고, 그 숭고한 어리석음 덕분에 ‘영광의 월계관’을 쓴 위대한 예술가다. 제일 참담한 시련은 늘 인생의 첫 순간부터 시작되곤 한다. 예컨대, 허먼 멜빌은 태어난 그 순간부터 짓궂게도 그에게 재능을 선사한 운명에게 배반당했고, 그렇게 아버지라는 울타리를 잃은 그는 몹시 중한 병을 앓다가 시력마저 상하게 된다. 그럼에도 그는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했고, 글을 배워야 했으며, 엄중한 운명의 부름에 응해야 했다. 인생의 농간으로 제대로 교육받지 못했음은 분한 일이었지만, 그는 생존하기 위해 더 큰 학교에서 배움의 기회를 엿보기로 한다. 바로, 바다 그리고 세계. 젊음이라는 아주 값진 재산을 가지고 있던 멜빌은 뱃사람이 되어 망망대해를 유랑했고, 뭍에 뿌리내린 사람들로서는 상상도 못 할 진귀한 경험을 가득 품고 돌아오게 된다. 여전히 공백이나 다름없던 태평양 한가운데에서 식인종과 함께 생활을 했다니, 이보다 더 놀라운 이야깃거리가 있겠는가?

 

바다라는 학교를 졸업하고 돌아온 멜빌은 비로소 글을 쓸 시간, 즉 자유를 얻게 된다. 그사이 형제들도 저마다 자리를 잡았고, 자신에게도 어느 정도 생활할 만한 여유가 생긴 덕분이었다. 멜빌은 그동안 바다에서 경험한 기상천외한 사건들에 약간의 양념을 더해 세상에 내놓는다. 오늘날처럼 어디든 갈 수 있는 시대에도 대양 중앙의 동떨어진 벽지는 여태 신비로 남아 있으니, 멜빌의 시대에는 오죽 경이로웠겠는가? 머나먼 바다의 정취를 담은 그의 작품은 즉각 대성공을 거두었고, 그가 바라던 방식은 아닐지언정 ‘작가’로서의 삶을 열어 주었다. 하지만 그가 이 성공에 안주했다면, 멜빌은 곧 잊혔을 것이다. 우리 중 그 누구도 그의 이름과 작품을 알지 못했을 것이며, 문학사상 가장 위대한 작품 역시 가능성의 영역에만 머물러 있었을 터다. 

 

멜빌은 자신에게 부(富)를 가져다준 ‘해양 모험 작가’라는 이름표를 떼고 싶어 했다. 영원토록 자극적인 오락거리나 지어낸 작가로는 기억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달콤한 평안을 약속하는 운명의 뺨을 때리고, 새로운 수난을 기다리고 있었다. 1850년, 멜빌의 눈앞에 존경할 수밖에 없는 ‘문학’을 창조해 내는, 너새니얼 호손이 나타난다. 그는 호손의 작품에 곧장 매료되었고, 심지어 태양처럼 불타오르는 그의 재능과 매력에 달처럼 이끌렸다. 강둑을 무너뜨릴 단 한 장의 벽돌을 호손이 뽑아낸 것이나 다름없었고, 멜빌은 칼춤을 추듯 경악스러울 정도의 필력으로 대작 『모비딕(Moby-Dick)』을 완성해 낸다.(물론, 이 책은 호손에게 헌정되었다.) 그저 놀랍다는 말밖엔 할 수 없는 『모비딕』은, 지금 이 순간에도 뭐라 딱 잘라 설명하기 어려울 만큼 대단히 기이하고, 어떤 면에서는 초월적인 작품이다.(전위적이라는 표현으로는 부족하다.) 성서적 계시, 햄릿과 맥베스를 연상하게 하는 셰익스피어적 독백, 장황한 박물지를 들여다보는 듯한 생물학적이고 해부학적인 보고서 그리고 철학적 사색을 절묘하게 뒤섞으며 신과 악, 운명과 자유의지, 파멸을 불사하는 인간의 비애와 한계를 총체적으로 웅변하는 이 작품은, 한마디로 ‘기적’이다. 이제껏 읽은 적도 없거니와, 아마 미래에도 이것을 능가할 만한 작품은 결코 탄생하지 않으리라고, 감히 확신한다.

 

그렇게 운명에 맞선 대가로 멜빌은, 마치 오디세우스가 감내해야 했던 시련처럼, 심연으로 떠밀리게 된다. 『모비딕』은 실패했다. 분명 실패작은 아니었지만 당시 그에게 아무런 영광도, 보화도 가져다주지 못했으니, 실패한 것은 자명한 사실이었다. 오직 호손만이 이 걸작의 진가를 알아봐 주었고, 결국 그 일을 계기로 멜빌은 더욱더 호손에게 집착하게 된다. 아마도 열다섯 살 연상의 호손은 멜빌에게 (어린 시절에 상실한) 아버지이자, 자신과 같은 ‘문학’을 추구하는 아름다운 우상이었을 것이다. 멜빌이 얼마나 집요하게 호손을 ‘소유’하고 싶어 했는지는, 훗날 공개된 서신을 통해 명확하게 확인할 수 있다. 혹자가 말하듯이, 멜빌은 거의 애인처럼 호손을 사랑했고, 거의 성적인 욕망을 표출하는 지경이었다. 당연하게도, 고갱이 끝내 고흐의 곁을 떠나갔던 것처럼, 호손은 멜빌의 열정에 기함하고 만다. 이 사건이 멜빌에게 어떻게 다가왔을지, 나로서는 짐작할 수 없다. 또다시 찾아온 아버지의 죽음, 어쩌면 더 큰 상실이었을지도 모른다.

 

그 뒤로 이어지는 이야기는 역시나 형벌 같다. 뒤이어 발표한 (멜빌의 사상적 자서전이자) 배다른 누이에 대한 괴상한(급기야 근친상간적) 연민으로 파국을 자초하는 주인공의 모습을 그린 『피에르, 혹은 모호함(Pierre, or, The Ambiguities)』 역시 여지없이 실패한다. 오늘날 멜빌의 작품 중 가장 널리 읽히는 중단편 소설, 「필경사 바틀비(Bartleby, the Scrivener)」나 「베니토 세레노(Benito Cereno)」마저 연거푸 실패하면서, 사실상 그의 작가 경력은 ‘사형 선고’를 받게 되었다. 말년에 접어들면서 시에 몰두하기는 했으나, 딱히 괄목할 만한 성과는 얻지 못한다. 그렇게 멜빌은 작가가 아닌,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취업한 ‘세관 검사원’으로서 눈을 감는다. 이렇게 운명 앞에 맥없이 스러져 간 인간(나는 거인이라고 부르고 싶다.), 허먼 멜빌의 인생을 닫는 마침표는 더욱 초라했다. 그의 부고는 ‘헨리 멜빌’이라는 이름으로 났으며, 그의 작품 『모비딕』은 잘못된 철자로 인쇄되었다.

 

허먼 멜빌은 에이헤브 선장이자 피에르였고, 최후의 순간까지 타협을 거부한 바틀비였다. 에피쿠로스의 말대로, 죽음은 삶의 바깥에 있으니 살아가는 동안 누리지 못한 영광은 죽은 이의 몫이 아니다. 사후에 아무리 융숭한 대접을 받는다 한들, 당최 그것이 멜빌에게 어떤 위안을 줄 수 있겠는가? 멜빌에게 뒤늦게 찾아온 영광이 분명 그 자신에게는 무의미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가 연이은 실패 속에서도 끈질기게 써 내려간 작품을 통해 경이와 감격을 누리는 지금의 우리들에겐 그 영광이야말로 다시 없을 행운이다. 살아생전에 호메로스의 곁에 앉지 못한 멜빌의 경우처럼, 이따금 간절한 기도에 대한 응답이 뒤늦게 도착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응답이란 본디 기도하는 자를 위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언젠가 그 응답에 화답하게 될 이들에게 주어진 축복이다. 우리의 삶을 단순하게 정리해 보자면, 죽음으로 치닫는 불가역적인 질주라고 할 수 있다. 이 유한함을 어떤 식으로 합리화하든, 몹시도 덧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살아간다, 때늦게 도착한 응답에 화답해 줄 이들이 있음을 알기에. 멜빌이라는 거성(巨星)이 발산한 광채가, 이제야 우리 삶을 비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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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상훈 (편집자)

책을 읽고, 책을 만들고, 좋은 책을 찾아다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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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먼 멜빌

미국의 소설가. 1819년 무역상이던 아버지 앨런과 어머니 머라이어의 둘째아들로 뉴욕 파르 거리 6번지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을 유복하게 보냈지만 13세 때 가세가 기울어 학업을 중단한다. 그때부터 멜빌은 은행이나 상점의 잔심부름, 농장일 등을 전전한다. 20세에 처음으로 상선의 선원이 되어 바다로 나간 그는 22세에 포경선을 타게 된다. 이때 항해를 하면서 얻은 경험은 그의 작품의 주요 소재가 된다. 이후 포경선의 선원과 미 해군이 되어 5년 가까이 남태평양을 누볐다. 포경선에서 탈주해 마르키즈 군도의 식인종과 함께 보낸 경험을 바탕으로 쓴 첫 작품 『타이피Typee』(1846)로 평단의 호평을 받으며 작가의 길로 들어선다. 바다 생활을 담은 『오무Omoo』 (1847)에 이어 발표한 『마디』(1849)에는 철학적 논의들을 담았지만 평단의 차디찬 반응에 멜빌은 다시 생활고에 시달리게 된다. 바다에서의 모험으로 돌아가 『레드번』(1849), 『하얀 재킷』(1850)을 발표하지만 형편은 나아지지 않았다. 『바틀비, 월 스트리트의 한 필경사 이야기Bartleby, the Scrivener: A Story of Wall-Street』(1853)는 1856년 다른 중단편들과 함께 『회랑 이야기The Piazza Tales』라는 제목의 단행본으로 출간되었다. 대표작 『모비 딕Moby Dick or The Whale』(1851)조차도 그 실험적인 형식으로 인해 혹평에 시달린다. 그는 작가로서 큰 인기를 얻지 못했고, 뉴욕 세관의 감독관 자리를 얻어 근무했다. 그래서 소설 창작은 접고 시 창작에만 몰두했다. 남북 전쟁을 그린 『전쟁 시와 전쟁의 양상』, 종교적 장시 『클라렐』, 그리스와 이탈리아 여행의 인상을 담은 『티몰레온』이 그때의 시집들이다. 마지막 소설 『선원 빌리 버드 인사이드 스토리Billy Budd, Sailor: An inside story』를 원고로 남긴 채, 1891년 9월 심장 발작으로 세상을 떠났다. 에이해브 선장이 머리가 흰 거대한 고래에 도전하는 내용을 다룬 『모비 딕(백경)』은 멜빌의 대표작으로, 당시에는 크게 주목받지 못했으나 작가 하수에 인정받은 작품이다. 이 소설은 포경선 선원들의 생활을 생생하게 그리는 한편, 악·숙명·자유의지 등의 문제에 대한 철학적 고찰까지 담고 있다. 그의 다음 작품인 『피에르』는 전작처럼 경험에 입각한 해양 이야기에서 탈피하여, 시골의 부유한 평민 집안의 외아들 피에르가 이복누이 이사벨을 구하려다가 빠져 들어간 비극적인 삶을 그리고있다. 이 작품은 캘비니즘적 그리스도교 사상에 의지하면서도 때로는 그 범주를 넘은 견해를 제시하여 인간심리의 착잡함을 비유적·상징적으로 묘사하고 있어 당시의 독자들에게는 잘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이 역시 오늘날에 와서 더욱 각광받는 부분이 되었다. 근대적 합리성을 거부하는 철학적 사고, 풍부한 상징성이 뭍어나는 작품을 쓴 하먼 멜빌. 살아생전에는 단순한 해양 탐험 소설을 썼다과 평가되었을런지 모르지만 1920년대에 극적으로 재평가되었고, 현대에 와서는 친구 N.호손과 더불어 인간과 인생에 비극적 통찰을 한 상징주의 철학적 작가로, 미국이 낳은 가장 위대한 작가의 한 사람으로 꼽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