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이삭의 중화권 대중문화와 문학
[김이삭 칼럼] 나는 왜 화어권 문학 번역을 업으로 삼게 됐을까? | 예스24
베이징의 서점 페이지원(PAGEONE)에서 개최된 중국 SF 국제 교류행사에서 나온 질문, “무엇이 중국 SF를 중국 SF답게 만들까”에서 출발하는 이야기.
글: 김이삭
2026.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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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중국 SF 국제 교류 행사에 참여했다. 중국 청년 SF 작가들이 베이징에 있는 유명 서점인 페이지원(PAGEONE)에 모여 줌으로 행사에 참여한 해외 번역가, 편집자, 연구자 등에게 중국 SF와 자기 작품을 소개하는 자리였다. 오랫동안 유럽에 머물면서 중국 SF를 영미권에 소개하던 SF 작가이자 연구자인 왕칸위가 온라인 사회를 맡았고, 청년 SF 작가 중 네 명은 오프라인인 페이지원에서, 나머지 세 명은 줌에서 함께했다. 

 

베이징 서점 페이지원에서 진행된 중국 SF 국제 교류 행사 포스터


원로급 SF 작가이자 중국과보작가협회1 부이사장인 왕진캉이 중국 SF의 발전 역사를 정리하는 기조 발언을 맡고, 유명 SF 작가이자 중국작가협회2 SF 분과 위원회3 주임인 류츠신이 청년 SF 작가의 작품을 읽어야만 하는 이유를 말하면서 후배들을 응원했는데, 현장인 페이지원 서점에 있는 인원을 제외하고도 줌에서만 80명 가까이 참여를 했다.

 

이날의 주제는 ‘星芒东方, 幻耀未来(성망동방, 환요미래)’였다. 의역하면 별빛이 동쪽에서 빛나니 미래를 환상처럼 밝게 비춘다, 정도가 될 듯하다. (중국에서는 SF를 ‘과환(科幻)’이라고 부른다)

 

지난 몇 년 동안 중국 SF계는 동양만의 SF, 중국만의 SF란 무엇인지를 탐구하고, 서구 SF와 다른 목소리를 부여하고자 노력해 왔다. SF라는 장르 자체가 서구에서 넘어온 장르라는 점에서 피해 갈 수 없는 고민과 실천이 아닐까 싶다.4 또한 중국 SF가 중국 내부에서도 그리고 외부에서도 괄목할 만한 성과를 얻었다는 점이 어느 정도 (어쩌면 아주 많이)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행사 때 짧은 소감을 말해 달라는 요청을 미리 받았는데, 보내준 질문 중에는 중국 SF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는 것도 있었다.

 

중국 SF란 무엇일까?

중국 SF는 공통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을까?

그렇다면 그 특징은 무엇일까?

무엇이 중국 SF를 중국 SF답게 만들까?

 

그날 나는 그 특징을 ‘전고(典故)의 사용’에서 찾았다. 또한 이는 중국 SF만의 특징이라기보다는 중국 문학 전반에 드러나는 특징일지도 모른다는 의견을 덧붙였다.

 

전고의 사전적 의미는 “전례(典例)와 고사(故事)를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다시 말해, 전고의 사용이란 역사적 사건이나 신화 전설, 종교 경전 혹은 문학 작품에서 ㅡ곧 출처가 분명한ㅡ 어휘나 문장을 인용하는 걸 말한다. 이렇게 인용되는 전고는 짧은 표현이라고 할지라도 완곡하면서도 우아한 방식으로 작품의 결을 풍성하게 해주는데, 본래부터 지니고 있던 맥락과 정취를 새로운 문장 위에 더해주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전고의 사용’은 내가 대학원에 진학하고, 화어권 문학 번역을 업으로 삼게 된 데에도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원서도 읽을 수 있고, 드라마나 영화도 자막 없이 볼 수 있는데 굳이 진학할 필요가 있냐고 생각하던 나를 오만함에서 건져준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지금으로부터 십여 년 전에 있었던 일이다. 소설 『보보경심』을 원서로 읽다가(한국어판 출간 전이었다) “식미식미호불귀(式微式微胡不歸)”라는 문장을 보았다. 남자주인공 중 한 명이자 강희제의 아들인 팔황자 애신각라 윤사가 여자주인공인 마이태 약희에게 보냈던 편지에 적혀있던 구절이었다.

 

소설 속 문맥을 기반으로 팔황자가 약희에게 자기 마음을 전하고 있음을, 황궁을 떠나 자기에게 돌아왔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담은 편지라는 건 알 수 있었는데, 나는 “식미(式微)”라는 표현에서부터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현대 중국어가 아니기에 직관적으로 문장을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또한 이러한 구절이 따로 출처가 있는 건지, 아니면 작가가 옛 문장을 모방해 조어한 건지도 구분할 수 없었다. 참고로 이 구절은 『시경』 패풍에서 나온 말이다.

 

중국 독자들은 다 이 구절을 알아본다는 걸까? (심지어 『보보경심』은 웹소설이다)

나는 전혀 모르겠는데.

 

그리고 많고 많은 고전 구절 중 왜 하필 이 구절이었을까.

많고 많은 장면 중에서 어째서 이 장면에 이 구절을 넣었을까. 

 

독자는 이 구절을 읽을 때 자연스럽게 그 이유까지 가늠할까?

그 적절함에 감탄하면서 더 풍성한 독해를 할까?

 

안타깝게도 나는 진학 후에도 이러한 의문을 풀지 못했고, 중국 문학을 번역하는 지금도 늘 헤매고 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나름의 깨달음을 얻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전고의 사용’이 중국 문학을 중국 문학답게 만드는, 중국 문학의 매력을 극대화하는 문학적 기법 중 하나라는 점이었다.

 

또한 이러한 기법은 중국 SF 장르에서도 매우 유효하다. 서구에서 넘어온 SF라는 장르의 틀에 지극히 중국적인 피와 살을 채워 넣어 중국 SF를 중국 SF답게 만들어준다. 

 

독자는 중국 SF를 읽으면서 SF라는 장르가 보여줄 수 있는 무한한 세계와 가능성만을 만나지 않는다. 수백, 수천 년이라는 시간을 견디며 축적된, 문학의 역사 또한 함께 만난다.

 

 

 

함께 읽기

 

 

 『베스트 오브 차이니즈 SF : 중국 여성 SF 걸작선』

구스, 녠위, 링천 외 14명 저/김이삭 역 | 아작

 

중국 여성과 논바이너리 작가들이 쓴 글을 엮어서 나온 책이다. 왕칸위 작가가 직접 기획하고 엮었다. ‘전고의 사용’이 돋보이는 단편이 유독 많이 수록되었는데 그중 우솽 작가의 「우주 끝 레스토랑」이 대표적이다. 

 

우주 끝 레스토랑에서 일하는 부녀가 시간 여행으로 장대를 찾아가 그가 자기 작품인 「호심정간설(湖心亭看雪)」을 쓰도록 만드는 것이 주된 줄거리이다. 장대는 명말 청초 시기에 살았던 문인으로 실제로 「호심정간설」이라는 산문을 남겼다. 명나라였을 때에는 호화스럽게 살았으나 청나라로 교체되면서 몰락할 수밖에 없었던 장대의 삶을 아는 독자일수록, 그가 쓴 「호심정간설」의 원문을 알고 있는 독자일수록 더 깊이 읽을 수 있다. 전고의 사용과 시간 여행이라는 SF적 설정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1 중국 SF 작가 중에는 중국작가협회(약칭, 중국작협) SF 분과 위원회나 중국과보작가협회에 속한 경우가 많다. 중국과보작가협회는 중국과학기술보급창작협회가 그 전신이다. 문학을 통해 과학을 보급한다는 데 좀 더 방점이 찍혀 있는데, 바로 이 점 덕분에 중국 SF가 관방의 지지를 더 크게 얻었던 걸지도 모른다. 최근에는 SF는 문학이지 과학을 보급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며 반감을 드러내는 작가들도 있다.


2 중국 문학에 관심이 있다면 중국작협이라는 조직 이름을 한 번쯤은 접해보았을 것이다. 이름만 보면 단순한 작가 조직처럼 보이겠지만, 여러 관련 기관을 관장하는 문화부 같은 곳이기도 하다. 중국작협 산하에는 중국작가출판그룹, 루쉰문학관, 문예보사, 인민문학잡지사 등 다양한 기관이 있다.


3 SF 분과 위원회는 중국작협에 있는 전문 분과 위원회 중 하나인데, 그 외에도 소설 위원회, 산문 위원회, 기록문학 위원회, 아동문학 위원회, 영상 문학 위원회, 문예이론 비평 위원회, 소수민족 문학 위원회, 저작권 보호 빛 연구 개발 위원회, 웹소설 위원회, 창작자 직업 도덕 위원회 등이 있다. 


4 그러나 한편으로는 중국 문학사 내부에서 장르적 계보를 추적하려는 노력이 좀 더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미스터리 소설의 경우 원나라 때의 포공희나 명청 시기 공안 소설에서 그 계보를 이어볼 수 있을 것이고, 판타지 소설의 경우 육조 시기의 지괴나 당나라 전기 소설에서, 로맨스 소설 또한 (남성향적인 경향이 있지만) 재자가인 소설에서 그 연원을 살펴볼 수 있지 않을까. 이러한 연구 시도가 없었던 건 아니고 창작자들 또한 창작을 통해 보여주고 있긴 하지만, 서구식 근대 문학(중국은 이 시기의 문학을 현대 문학이라고 부른다)의 유입을 기점으로 잡고 그 뒤의 발전에만 초점을 맞추거나 동시대 서구 문학과의 비교에 집중하기보다는, 통시적인 관점에서 중국 문학사 내부의 장르 변천을 조망하는 시도가 좀 더 많아졌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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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삭

평범한 시민이자 소설가 그리고 번역가. 중화권 장르 소설과 웹소설, 희곡을 번역했으며 한중 작가 대담, 중국희곡 낭독 공연, 한국-타이완 연극 교류 등 국제 문화 교류에 힘쓰고 있다. 저서로는 『한성부, 달 밝은 밤에』, 『감찰무녀전』, 『천지신명은 여자의 말을 듣지 않지』 등이, 역서로는 『여신 뷔페』, 『다시, 몸으로』 등이 있다. 홍콩 영화와 중국 드라마, 타이완 가수를 덕질하다 덕업일치를 위해 대학에 진학했으며 서강대에서 중국문화와 신문방송을, 동 대학원에서는 중국희곡을 전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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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쟈

1984년 6월 2일 중국 산시성 시안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본명은 왕야오(王瑤). 물리학과 영화학을 전공하고 베이징대학 중문과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2004년 중국에서 영향력 있는 SF 잡지인 〈과환세계(科幻世界)〉에 단편소설 〈요정을 가둔 병(關妖精的甁子)〉을 발표하며 데뷔했다. 그해 중국 SF 은하상 최우수 신인상을 수상하며 큰 주목을 받기 시작했으며 은하상 8회, 성운상 6회 수상 등 다수의 SF 문학상을 휩쓸었다. 장편 판타지 소설 《구주·여관(九州·逆旅)》(2010), SF 작품집 《요정을 가둔 병》(2012), 《당신이 도달할 수 없는 시간(?無法抵達的時間)》(2017), 《경국의 웃음(傾城一笑)》(2018), 학술 저서 《미래의 좌표: 글로벌 시대의 중국 SF 논집(未?的坐??全球化?代的中?科幻?集)》(2019) 등을 출간했고, 《사유의 형상: 켄 리우 작품집(思?的形?: ?宇昆作品集)》(2014), 《네이처 매거진 SF 선집 II(Nature?志科幻小??集 II)》(2017) 등을 번역하기도 했다. 미국의 대표적인 SF 웹진 〈클락스월드 매거진〉에 〈백귀야행의 거리(百鬼夜行街, A Hundred Ghosts Parade Tonight)〉를 게재하며 영미권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으며, 〈SF Magazine〉, 〈Year’s Best SF〉 및 과학 학술지 〈네이처〉 등의 해외 잡지와 플랫폼에도 꾸준히 소설을 발표하고 있다. 2021년에는 영문 단편집 《A Summer Beyond Your Reach》(Clarkesworld Books)를 출간했다. 현재 시안교통대학 중문과 교수로 재직 및 중국작가협회 과학소설문학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면서 학술 연구와 문학 창작 외에 SF 소설 번역과 영상화 기획, SF 창작 교육에도 힘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