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리의, 개와 인간의 시간
[김혜리 칼럼] 병원의 시간 ㅡ 마지막화 | 예스24
김혜리 기자 칼럼 <개와 인간의 시간> 마지막화. “병원에는 그곳에서만 볼 수 있는 인간과 동물의 표정이 있다.”
글: 김혜리
2026.04.22
작게
크게

 

살면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공간을 꼽으라면, 학교와 영화관, 그리고 병원이다. 소아과 단골 어린이로 출발해 지금까지 비뇨기과 정도를 빼면 거의 모든 진료 과목을 섭렵한 인간인 나의 병원으로도 모자라, 같이 사는 개의 병원까지 더해지다 보니 체류 시간이 상당하다. 다행히 나는 병원을 꽤 좋아한다. 감정과 무관하게 나를 보살피는 손길이 편하고, 문제를 의료진과 함께 단계적으로 해결해 나가는 과정도 적성에 맞는다. 고통과 죽음을 다루는 일을 생업으로 삼은 유능한 사람들이 보여주는, 겸손과 우월감이 독특하게 뭉뚱그려진 태도는 언제나 흥미롭다. 무엇보다 병원에는 그곳에서만 볼 수 있는 인간과 동물의 표정이 있다. 나는 개들과 사는 동안 다섯 곳의 동물 병원을 경험했다. 현재 아로하의 주치의 선생님이 계신 병원(이하 우리 병원)은 타티를 입양할 때부터 인연을 맺어 십 년째다.

 

내 책장에 애장판이 꽂혀 있는 만화 『동물의사 Dr. 닥터 스쿠르』가 보여주듯, 동물과 동물을 사랑하는 인간들이 모이는 동물 병원은 명랑한 에피소드도 많은 곳이다. 환자 이름부터 천태만상이다. 원내 스피커로 울려 퍼지는 “허준 선생님, 뚱땡이 진료 있습니다. 뚱땡이 진료 있습니다.” 하는 차분한 목소리는 언제나 나를 웃게 한다. ‘황장군’을 호명했는데 몸길이 두 뼘의 치와와가 총총 입장하는 반전 유머도 있다. 대기실에는 주로 긴 소파나 연결된 플라스틱 의자들이 놓여 있는데, 한번은 줄지어 앉은 보호자 품의 모든 강아지들이 일제히 겁에 질려 떠는 바람에, 4DX 극장과도 같은 진동을 느낀 적도 있다. 개중에 더 소심한 환자는 반려인에게 달라붙다 못해 딛고 올라가 정수리를 정복하기 직전이다. 타티는 대기실에서 담담한 편이었지만, 특이하게도 병원에만 가면 나 아닌 다른 보호자에게 더 붙어 앉아 남의 집 개인 척해서 좌중 폭소를 자아내곤 했다.(내가 부끄러웠던 거니?) 반면 명랑 소녀 아로하는 병원을 겁내긴커녕 일종의 만남의 광장이라고 여긴다. 우리 병원은 물론이고 환자 등록도 되어있지 않은 동네 동물 병원에 거의 매일 들러 대기실에서 놀다 나온다. 주사를 잘 참는 건 둘이 똑같지만 약을 복용하는 태도는 대조된다. 타티는 병원에서 먹이기 힘든 약을 먹인 후 차에 탔는데 혀 밑에 숨겨놓았던 캡슐이 톡 떨어진 적이 있었다. 아로하는 테크니션 실장님이 약을 들고만 있어도 간식인 줄 알고 낚아챈다. 동물병원도 계절을 탄다. 명절 연휴 끝에는 배탈 난 환자가 늘어나고 여름이면 발바닥 화상 환자가 많아진다. 코로나 팬데믹 기간에 동물병원들이 잠시 북적였다는데 이유인즉슨, 재택근무를 하게 된 반려인들이 평소 자세히 들여다보지 못했던 반려동물들과 붙어 있다 보니 이상을 발견한 데다 민생 지원금도 지급된 덕분이었다. 

 

 

그러나 내 동물에게 무거운 병이 생기면, 동물 병원에서 보내는 시간의 성질은 급격히 변한다. 일단 일상적 구충과 접종을 중단하고 중증 치료에 집중하게 되는데 정기적 진료를 받으러 온 남의 집 개와 고양이가 그렇게 행복해 보일 수 없다. 수술이 불가능한 위치의 중증 질환일 경우 심지어 수술을 앞둔 동물들의 보호자들에게도 차마 말 못 할 부러움을 품게 된다. 울 일이 잦아져 사람 몸 안에 물이 얼마나 많은지 놀라게 되고, 나처럼 부박한 사람에게 있는 줄 몰랐던 끈기도 발견한다. 병원 밖에서 동물을 바라보는 관점도 달라진다. 소위 ‘개모차’를 탄 개를 보고 세태를 한탄하는 사람들을 요즘도 많이 본다. 개를 과보호하고 애지중지하는 사람들의 괴상한 행태라고만 여겨서다. 그러나 반려견과 발맞추어 걷고 달리는 산책보다, 바퀴 달린 무거운 물건을 계단 만날 때마다 들어올려야 하는 고역을 선호하는 반려인은 좀처럼 없다. 탈것에 실려서 산책하는 개들은 외견은 멀쩡하더라도 근골격계에 이상이 있거나 염증으로 움직임이 곤란한 상태일 수 있다. 노견들은 말할 나위도 없다. 우리 사회는 건강을 디폴트로 간주하지만 현실에서 병증 없이 살아가는 존재는 사람이나 동물이나 드물다. 이런 당연한 사실이, 나와 내 반려동물이 환자가 되고 나서야 보인다. 

 

2018년 타티의 방광에서 악성으로 의심되는 종양이 발견됐고, 정밀 검사를 받으러 2차 병원으로 가는 길에 이미 울고 있는 나를 우리 주치의 선생님은 “우실 만합니다.”라며 배웅하셨다. 쌀쌀맞게도 들리는 말이다. 우리 선생님은 보호자가 듣고 싶어 하는 말을 절대 들려주지 않는 수의사다. 동시에 유의미한 질문이라면 보호자와의 문답을 결코 성가셔하지 않는 수의사다. 타티의 방광암은 수술이 불가능한 위치에 있었고, 내가 받아 든 난제는 항암을 할지 말지의 여부였다. 수명의 길이보다 남은 삶의 질이 우선이라는 원칙에는 흔들림이 없었지만, 항암을 하지 않아 전이가 빨라진다면 그 일상도 단기간에 무너질 수 있었다. 어차피 삶은 힘든 것이 정상 상태이고 각자 그나마 잘 견디는 고통을 선택할 뿐이라고 나는 문장으로 잘도 써왔지만, 더 잘 견디는 고통의 선택이 극히 난해할 수도 있음을 타티가 가르쳐 줬다. 주치의 선생님은 2차 병원이 제시한 항암 일정 앞에서 갈팡질팡하는 내게, 어느 저녁 오직 상담만을 위한 시간을 넉넉히 내주셨다. “자, 묻고 싶은 걸 다 말씀하세요. 아는 한 최선을 다해 설명하겠습니다.” 선생님은 그날 내 무수한 질문에 담담한 답을 제시하고 판단을 돕기 위해 최근 논문도 찾아주셨다. 다른 병원에서 항암을 하는 동안에도 내 이메일을 마다하지 않았고 필요하면 간결한 답신을 보내주셨다. 선생님의 말투와 똑같은 문체로 쓰인 어떤 구절들은 다시 꺼내보지 않아도 기억에 새겨져 있다. “낫게 해야 하는 시점이 아니라 견디게 해야 하는 시점입니다.”, “크로노스의 시간은 두 달이 한 달보다 두 배 길지만 카이로스의 시간은 순간에 영원이 담겨 있을 수도 있습니다. 갈 길이 머십니다.”, “타티와 보호자님은 좋은 팀입니다.” 어느 시점부터 나는 해결책을 듣기 위해서가 아니라, 타티의 상태를 선생님이 계속 알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나를 지탱해 주기에 메일을 보냈다. 얼마 후 타티는 하루에 한 번 수액을 맞고 신부전 약을 복용해야 하는 상태가 되어 우리 병원으로 돌아왔다. 8개월 동안 나는 거의 매일 타티와 통원했다. 병원에 가자고 부르면 책상 밑에서 약해진 몸을 천천히 일으키던 타티의 “네가 정 원한다면…”하는 표정이 생생하다. 병원에서 보내는 시간은 어느새 1인 가구 반려인이자 간병인인 내게 휴식과 비슷해졌다. 타티의 성품과 상태를 나만큼 아는 세상에서 몇 안 되는 사람들과 함께 있는 그 시간만큼은 혼자가 아니라는 감각 안에 쉴 수 있었다.

 

타티가 떠난 후에도 나는 우리 병원에 발길을 끊지 못했다. 장기간 매일 통원을 하다 보니 병원에서 상주하는 두 강아지가 나를 ㅡ그리고 내가 가져가는 간식을ㅡ 기다리게 되어서라고 변명하며 양해를 얻어냈다. 하지만 진짜 이유는 우리 동물 병원이 내 삶에서 떼내기 힘든 장소가 되어 버려서임을 나는 알고 있었다. 아로하로 인해 나는 다시 반려인이 됐고 치료와 간병은 불가피하게 예정돼 있다. 틀림없이 처음인 것처럼 허우적거리겠지만 나는 내 고통과 내 개의 고통을 혼동하지 않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나보다 훨씬 단단한 마음과 현명한 방법으로 동물을 사랑하는 우리 병원 여러분이 있기에 가능한 결심이다.

 




지금까지 <김혜리의, 개와 인간의 시간> 연재를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 AI 학습 데이터 활용 금지

2의 댓글
User Avatar

토토

2026.04.23

강아지 예방접종으로 병원에 갔을 때 수술을 하고나서신지 땀을 뻘뻘 흘린 채로 진료 봐주시던 의사 선생님 모습이 잊혀지지가 않아요. 몇년이 지났는데도요. 늘 감사합니다 선생님들.
답글
0
0
User Avatar

시월Shiwol

2026.04.22

눈물이 나네요. 저는 반려인이 아니지만 기자님의 글을 통해 세상에 존재하는 큰 사랑을 알게 되었어요. 잘읽었습니다!
답글
0
0
Writer Avatar

김혜리

테리어 믹스 아로하 샨티 킴과 서울에서 살고 있다. 팟캐스트 <김혜리의 필름클럽>, <조용한 생활> 운영. 『묘사하는 마음』, 『나를 보는 당신을 바라보았다』, 『그림과 그림자』 등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