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서운 이야기는 ‘진짜’ 같을수록 무서워진다. 아는 장소 혹은 익숙한 관계에 외부 세계의 무엇이 침입하면서 공포가 발생하는 경우다. 지극히 사실주의적인 태도로 익숙한 삶의 조건들이 전개될 때 독자 혹은 관객은 주인공의 입장에 쉽게 몰입한다. 이제 막 새집에 이사 가서 새로운 삶을 꾸리는 가족, 오래된 낡은 인형 같은 것들. 이야기 속에 있는 설정이 현실이 되어 사람들에게 말을 걸어오는 순간은 괴담의 백미다. 도시괴담은 힘이 센, 사람들을 매혹시키는 이야기 장치다.
도시괴담 계열 최고의 멋쟁이 이야기는 스즈키 고지가 쓴 소설 『링』과 그 작품을 나카다 히데오가 연출한 영화 <링>이다. 1편에 국한해서 이야기해보면 여기에는 의문의 비디오테이프가 등장한다. 학생들 사이에 어느 비디오테이프에 대한 소문이 돌아다닌다. 네 명의 남녀가 한날한시에 갑작스레 죽은 채 발견된다. 주간지 기자 아사카와는 여기에 공통점이 있으리라 직감하고 탐문을 시작한 뒤 수수께끼의 비디오테이프를 알게 된다. 아사카와도 비디오테이프를 보게 되고, 이런 문장을 마주하게 된다.
“이 영상을 본 자는 일주일 뒤 이 시각에 죽을 운명이다. 죽고 싶지 않으면 지금부터 말하는 내용을 실행하라. 즉...”
그런데 여기서 화면이 바뀌어 버린다. 누가 덮어씌워 녹화를 한 모양으로 갑자기 광고 영상이 나오더니 비디오가 끝나버리는 것이다. 이 비디오테이프를 본 네 사람이 정말 죽었다는 사실을 아는 그는 초조함을 느끼기 시작한다.
아이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난 이상한 비디오테이프 이야기에서 시작해 점점 규모를 키워가는 <링> 시리즈에서, 난데없는 비디오테이프가 등장하는 도입부의 몰입감은 대단하다. 나카다 히데오 감독은 이 소설을 영화로 만들면서 이후 동아시아 공포영화의 미장센을 바꾸어놓은 결정적인 발명을 하는데, 바로 사다코가 나오는 후반부 클라이맥스 장면이다. 소설에서는 죽어가는 사람이 죽음을 앞두고 진상을 깨닫는 내면의 독백이 길게 이어지는 연출이지만 영화는 이 장면을 소설이 말하지 않은 방식으로 영상화했다. 사다코가 정말로 등장하는 것이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화면 안의 사다코는 이미 본 적 있으니 놀랍지 않다. 하지만 그 사다코가 화면을 뚫고 기어 나온다면?
나카다 히데오의 연출은 괴담이 공포를 유발하는 논리를 정확히 알고 활용한다. 괴담은 ‘믿을 수 없게 가까운’ 느낌을 유발할수록 무서워진다. 집집마다 TV가 있다. 밤의 꺼진 TV 화면은 검은 거울이 되어 방 혹은 거실의 사물을 비춘다. 영화 <링>을 보고 나면 이러한 방 안을 비추는 형상들이 불쾌하게 느껴지는데, 화질이 안 좋은 비디오에서 지직거리며 긴 머리 귀신이 기어 나오는 모습을 떠올리게 되기 때문이다.
저주의 비디오를 보면 죽는다는 이야기를 담은 이 소설과 관련해서 내가 좋아하는 이야기가 있다. 나는 소설 『링』을 동네 도서대여점에서 빌려 읽었다. 굉장히 인기있는 책이었기 때문에 예약을 하고 순서를 기다려야 했다. 빌리러 갔더니 대여점 주인이 말하기를, 어느 초등학생이 이 책을 빌려 가서 반납을 하지 않아 받아오는데 시간이 걸렸다고 했다. 소설 속 설정처럼, 책을 읽은 뒤 자기가 죽을까 봐 두려워진 나머지 책을 보이지 않는 곳에 꽁꽁 숨겨두었다고. 대여점 전화를 받은 아이의 어머니가 아이 방을 뒤져 책을 반납했다. 본 것만으로도 무언가에 씐 듯한 느낌. 나에게도 내가 읽은 사건이 발생할 것 같은 오싹함. 도시괴담이 재미있어지는 방식이다.
도시괴담은 당대의 생활과 문화를 반영하기 때문에 기술문명의 발전으로부터 영향을 받는다. 최첨단 기술이 아니라 일상적 접근성이 높은 당대의 무언가가 끌려 들어온다는 것이다. 1991년에는 비디오테이프에 ‘무언가’가 깃들었다면 2020년대에는 인터넷 게시판에 ‘그것’이 머문다. 세스지의 『긴키 지방의 어느 장소에 대하여』는 실종된 사람에 대해 제보를 해달라는 호소로 시작한다. 책 전체가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이야기들이 가리키는 하나의 방향을 가리키는 식으로 되어 있는데, 실제로 인터넷 사이트에 연재되었던 작품이다.
작가 세스지는 소설 연재 사이트인 ‘가쿠요무’(kakuyomu.jp)에 짧은 괴담을 3달간 연재했다. 긴키 지방의 어느 지역에서 일어나는 기이한 일을 담고 있는데, 각각의 이야기는 저마다 다른 사람들의 체험담이다. 인터넷 게시글에 달린 댓글이 지시하는 장소, 수학여행을 간 학생들이 경험한 이상한 일, 주택단지에 새로 이사 온 아이들만 하는 특이한 놀이 같은 별것 아니지만 들을수록 괴이쩍은 이야기들이 모인다. “정보가 있으신 분은 연락 바랍니다. 긴키 지방의 어느 장소와 관련된 괴담을 수집하는 동안 무시무시한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라는 소설 속 문장은 괴담을 좋아하는 사람을 끌어들이는 최고의 펀치라인이다.
이 소설 특유의 구조(게시판 글, 제보, 인터뷰 등을 모은 구성)와 반전의 성격 때문에 영화가 소설처럼 무섭기는 쉽지 않으리라 예상했지만 이 경우는 아무래도 아쉽다. 그도 그럴 것이 괴담은 이야기를 듣는 사람의 ‘상상하는 힘’에 온전히 기대기 때문이다. 영화 <링>이 제4의 벽, 즉 ‘무대와 관객 사이에 존재하는 보이지 않는 벽’을 허물어버려 비디오테이프 속 사다코가 물리적으로 TV 밖으로 기어 나오는 깜짝쇼를 했다면, 『긴키 지방의 어느 장소에 대하여』는 하나같이 모호한, 결정적인 단서가 빠진 인터뷰와 인터넷 게시글 등을 읽으며 상상으로 여백을 채워나가는 독서 경험이 매력적인 소설이기 때문에 시각적으로 모든 걸 보여줘야 하는 영화는 불리할 수밖에 없다. 그때 남는 것은 때로 불쾌한 깜짝쇼가 된다.
영화 <긴키 지방의 어느 장소에 대하여> 스틸컷
도시괴담은 현대 사회에서 구전의 형태로 전해지는 짧은 이야기다. 기이하거나 무섭거나 충격적인 사건이 소재가 된다. “내 친구의 친구가 겪은 일인데”하고 시작하는 경우가 많아서(친구의 친구는 그냥 남이다) ‘FOAF 이야기’(friend of a friend tale)라고 불릴 정도다. 호랑이가 등장해서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는다고 했던 고전 민담은 외딴 숲속을 배경으로 하지만 도시 괴담은 현대적인 공간을 무대로 한다. 고속도로부터 교외의 주택가, 쇼핑몰이나 학교, 무엇보다 인터넷이 중요한 공간이 된다.
예를 들어 ‘자유로 괴담’은 고속도로를 무대로 하는 이야기다. 새벽 시간이면 빠른 속도로 질주하는 차가 많은 강변북로에서 길가에 서 있는 희멀건 무언가를 보았다는 이야기인데, 그 형체가 선글라스를 낀 여자처럼 보이며 사실 선글라스가 아니라 눈이 있어야 하는 부분이 검게 함몰되어 있다는 애용이다. 학교를 무대로 한 괴담은 너무나 많아서 영화 <여고괴담>이 아예 시리즈로 만들어질 정도다. 학교에서 벌어지는 성적을 둘러싼 치열한 경쟁, 갖은 이유로 차별받거나 따돌림을 당하는 아이들. 집에 놀러 온 친구가 발견한 침대 밑에 숨어있는 남자, 같은 엘리베이터를 탄 엄마의 “내가 네 엄마로 보이니?”라는 질문, 새로 이사 간 집에 있는 수상한 물건 같은 것들이 괴담에서는 자주 등장한다. 다 듣고 하나하나 짚어보면 딱히 논리적이지 않아서 두려워할 이유가 없는 경우도 많은데, 듣는 동안은 세상 둘도 없이 무섭다. 놀래키면 되고, 무서우면 된다.
도시괴담은 단순하고 간결한 공포담의 형태를 띤다. 일상을 무대로 오직 중요한 부분만 짚어가며 진행되며 마지막에 오싹한 느낌으로 끝맺을 수 있다면 과장이나 생략은 얼마든지 허용된다. 구전, 즉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다는 도시괴담의 또 다른 특징도 흥미로운데, 언제나 ‘사실’ 혹은 ‘(친구의 친구가) 겪은 일’이라고 말해지지만 실제 누가 겪었는지를 확인하려고 하면 거의 항상 실패한다.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동안 놀랍지 않게도 온갖 변형이 일어나 같은 이야기를 알고 있는 사람조차도 막상 말을 맞춰보면 차이가 발생한다. 그럼에도 그것이 ‘같은’ 도시괴담이 되는 이유는 가장 핵심적인 키워드가 동일하기 때문이다.
미국의 갈고리 이야기나 일본의 침대 밑 남자 이야기, 한국의 엘리베이터에 함께 탄 엄마 이야기 같은 것들은 전개가 어떻든 결정적인 대목의 전개가 동일하다. 예를 들어 미국의 괴담이지만 한국에도 유사품이 있는 ‘사라지는 히치하이커’ 이야기가 있다. 운전자가 비 오는 밤 젊은 여성을 태워준다. 그런데 목적지에 도착하면 그 여성은 사라지고 없다. 알고 보니 그 여성은 그 도로에서 사고로 사망한 사람이었다. 한국, 일본, 중국에서는 히치하이커가 아닌 택시 기사의 이야기로 바뀐다. 히치하이커를 하는 문화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젊은 여자 승객을 밤에 태웠는데 목적지에 도착해보니 손님은 없고 목적지인 집은 상갓집이었다는 식의 이야기. 장소는 지극히 사실적이지만 사건 자체에는 빈틈이 숭숭 뚫려있는 괴담을 꽉 채워 즐기게 하는 도구가 바로 이야기다.

익숙해야 한다. 어딘가에서 들어본 이야기를 닮았다면 승산이 높다. 괴담은 그렇게 귀에 쏙쏙 들어온다. 택배가 어디까지 왔는지 알아보려고 운송장 번호를 조회해 본 사람들에게 지극히 친숙한 ‘곤지암’이라는 지명과 그곳의 정신병원에 얽힌 공포 체험을 다루는 영화 <곤지암>은 <블레어 위치>에서부터 유구한 역사를 지닌 페이크 다큐멘터리 형식의 괴담-공포물이다. <살목지> 역시 마찬가지다. <곤지암>과 <살목지> 모두 실제 존재하는 지명을 제목으로 내세운 작품들인데, 공포 체험을 콘텐츠로 하는 유튜버가 등장해 ‘촬영’한 영상이 영화 안에 액자 형식으로 들어가 비밀을 밝히거나 공포를 가중시킨다. 살목지의 경우는 실제로 이상한 경험을 한 사람이 방송에서 경험담을 직접 이야기해서 원래부터 인기 있는 공포 체험 장소였다. 영화 <곤지암>과 <살목지>는 둘 다 공포영화로서는 새롭거나 탁월하지 않지만, 그것이야말로 이 두 편의 영화가 인기를 끈 이유가 된다. 일종의 ‘놀이’ 콘텐츠로서 괴담영화가 갖는 힘이다.
<곤지암>이 개봉했던 당시 관객 유입이 급격히 증가한 사건이 있었다. 영화를 본 관객의 리뷰였는데, 구구절절 말이 아닌 사진 한 장의 힘이었다. ‘곤지암 후기’라고 게시된 사진에는 영화관 바닥에 팝콘이 흩뿌려져 있다. ‘팝콘 먹으며 영화를 보다가 너무 무서워서 팝콘을 집어 던졌다’는 뜻이다. 이 사진이 바이럴된 뒤 1020 관객들이 너도나도 (먹기보다 집어 던지려고) 팝콘을 사 들고 영화관에 가서 인증사진을 찍었다. 아마도 청소하시는 분들이 당시 꽤 고생했을 것이다. 팝콘을 던지기 위해서 일부러 관객이 덜 앉는 맨 뒷자리에 나란히 앉아서 비명을 더 크게 지르며 노는 것이다.

<살목지>의 경우는 인기 관광지가 됐다. 충남 예산군 광시면의 살목지는 1982년 농업용수 공급을 위해 조성한 저수지다. 괴담으로 익숙한 장소가 영화로도 만들어지자, 한밤중에 살목지에 차를 몰고 가는 사람들이 급증했다. 이쯤 되면 음기가 강한 물귀신도 절로 퇴치될 정도다. 밤 12시에 지도를 검색해보니 실시간 통행량이 149대나 됐다는 인터넷 게시글이 농담이 아니어서, 한밤중의 굉음과 고성 때문에 인근 주민들이 밤을 설친다는 말이 뉴스로 보도되기도 했다. 이렇게 ‘갑자기 뜬’ 번화가에 이름을 붙이는 한국식 작명인 ‘~리단길’을 붙여 부르는 사람도 있다. 살리단길. 원래 ‘~리단길’은 금방 뜨고 금방 지는 곳. 살목지의 귀신(이 있다면)도 머지않아 다시 안식을 취할 수 있을 것이다. 아마도.
* AI 학습 데이터 활용 금지
긴키 지방의 어느 장소에 대하여
출판사 | 반타
링 세트
출판사 | 황금가지
이다혜
작가, <씨네21> 기자, 팟캐스트 <리딩 케미스트리> 진행.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몇몇 영화들이 얼마나 소설인지 얼마나 영화인지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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