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율의 시선』에서 두 소년의 성장을 섬세하고도 뭉클하게 담으며 독자들의 큰 사랑을 받은 김민서 작가가 신작 소설 『호구』로 돌아왔다. 착하게만 살아왔던 주인공 ‘윤수’가 강하고 나쁜 아이가 되기로 결심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로, 자신의 욕망을 치열하게 들여다보고 삶과 행복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뜨겁게 담겼다.
‘호구(虎口)’란 본래 ‘호랑이의 입’이라는 뜻으로 바둑에서 세 돌에 둘러싸여 위태로운 상황을 이르는 말이다. ‘호구’처럼 자신을 둘러싼 위태로운 세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신을 벼려 낸 소년의 고민과 깨달음이 바둑 대국에 비유되며 감동적으로 펼쳐진다. 진짜 ‘나’, 그리고 진정한 행복에 도달하기 위해 최선의 수를 찾아 헤매는 모든 이들을 위한 소설이다.
‘호구’가 바둑 용어라는 사실을 이 책을 읽고 알게 되신 분들도 많을 것 같습니다. 평소에 바둑을 두시나요? 어떻게 이번 소설에 바둑을 활용하실 생각을 하게 되셨나요?
평소 바둑을 잘 두는 편은 아닙니다. 다만 어릴 적부터 바둑을 좋아했고, 배우고 싶다는 열망이 늘 있었습니다. 독학을 해 보고자 홀로 사활 문제를 풀어 보기도 했지만, 사실 제 바둑 실력은 그리 좋지 못합니다. 저보다는 아버지께서 바둑을 더 잘 아시고 잘 두시는 편입니다. 그래서 이번 소설에서 바둑 장면을 집필할 때 아버지께 종종 조언을 구하곤 했습니다.
이번 소설은 집필 시작 단계부터 제목과 핵심 주제가 정해져 있었습니다. 제가 인간관계에 지쳐 있을 때마다 어머니께서 해 주셨던 말씀인 "다른 사람을 의식하며 무리해서 못되게 살 필요도, 일부러 착하게 살 필요도 없다. 나는 네가 행복하기만 하면 된다."를 작품의 주제로 삼기로 마음먹고, '호구'라는 제목을 처음부터 염두에 두었습니다. '호구'가 바둑 용어라는 점은 아버지의 영향으로 이미 알고 있었기에, 소설에 바둑 요소를 섞으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율의 시선』에서는 천천히 이어지는 시선의 변화로 주인공 ‘율’의 변화를 보여 주셨다면, 이번 작품에서는 곳곳에 등장하는 바둑 용어들로 주인공 ‘윤수’의 상황을 표현하신 점이 인상적이었는데요. 이처럼 인물의 변화나 상황을 묘사하면서 특히 신경 쓰시는 부분이 있으실까요? 그 밖에도 이번 작품에서 주안점을 둔 부분이 있으셨는지 궁금합니다.
전작인 『율의 시선』은 ‘이도해’가 주인공 ‘안율’의 성장을 이끌어 주고, ‘안율’이 ‘이도해’의 성장을 이끌어 주는, 동반자가 존재하는 성장 소설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율의 시선』은 전반적으로 이상적이고 낭만적인 분위기로 문장을 연출하고자 했습니다.
반면 『호구』에서는 주인공이 스스로를 구원하며 성장하는 이야기를 쓰고 싶었습니다. 그 구원은 고독 속에서 이루어져야 했고, 그렇기에 주인공의 내면을 표현하는 모든 문장에 힘을 실었습니다. 가급적 간결하고 차갑게. 특히 단어와 단어 사이의 공백에 집중했습니다. 문장을 소리 내어 읽었을 때, 어디에 호흡이 실리는지를 가장 많이 고민했습니다.
예컨대, ‘제2국: 축’에 이런 문단이 있습니다.
“걱정하지 마, 할아버지. 내가 아주 큰사람이 될게.”
아주 크고, 무겁고,
더러운 사람이 될게. (110쪽)
‘무겁고’와 ‘더러운’ 사이에 일부러 행을 나누어서 ‘더러운 사람이 될게.’라는 문장에 호흡이 긴장되도록 하였습니다. 실제로 윤수가 이 대사를 읊조리는 것처럼요.
권이철에게 괴롭힘당하던 윤수가 결국에는 맞서 싸우기로 결심하게 되는데요, 그 결심의 가장 핵심에는 어떤 생각이 있었을까요? 윤수가 가장 참지 못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윤수가 권이철에게 맞서 싸우기로 결심한 결정적인 계기는 ‘제1국: 호구’ 마지막 부분에서의 할아버지의 대사입니다.
“착하지 말어라, 윤수야. 싹바가지 없게 살어라.” (69쪽)
할아버지는 '착하게 살아야 한다'는 신념을 지키며 평생을 살아온 인물입니다. 하지만 그 인생은 몹시 고통스러웠고, 할아버지는 윤수만큼은 자신처럼 고통을 견디며 살지 않기를 바랐습니다. 싸가지 없는 사람, 즉 공격적인 사람이 되라는 할아버지의 말은 '착한 아이'가 되어야 한다는 강박 속에 살던 윤수에게 큰 충격인 동시에 치명적인 유혹이었습니다.
윤수의 공격성은 본질적으로 자신과 소중한 가족을 지키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자신의 손톱을 물어뜯는 행위를 멈춤으로써 스스로에게로 향하던 공격성의 방향을 돌립니다. 이후 달리기를 통해 그 에너지를 외부로, 보다 긍정적인 방식으로 표출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권이철의 괴롭힘이 지속되고, 마침내 권이철이 윤수를 ‘불쌍하다’라고 표현했을 때 윤수의 공격성은 폭력성을 띠며 폭발합니다. 윤수는 자신의 존재가 할아버지와 엄마의 모든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 윤수에게 ‘불쌍하다’라는 말은 자신뿐만 아니라 할아버지와 엄마의 노력까지 모두 보잘것없는 것으로 치부하는 모욕이었습니다. 그것이 윤수의 역린이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윤수를 보며 마음 아파하기도 하고 권이철의 행동을 보며 분노하셨으리라고 생각되는데요, 두 아이 모두 어떤 결핍이 있었고 이를 메우려는 시도가 다르게 나타났던 것은 아닐지 생각해 보게도 됩니다. 작가님이 생각하시는 윤수와 권이철은 어떤 아이인가요?
윤수는 스스로를 호구이자 개자식, 겁쟁이이자 위선자 등 다양한 말로 칭하곤 합니다. 한 사람에게는 다양한 면모가 존재하며, 윤수를 그리며 그 점을 강조하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본질적으로 윤수가 어떤 아이인지 묻는다면, 저는 '상냥한 아이'라고 답하고 싶습니다.
작중에서 윤수는 권이철에게 폭력을 휘두른 뒤, 왜 때렸느냐는 선생님의 질문에 엄마를 힐끗 보더니 "담배 냄새가 지독해서요."라는 대답만을 내놓습니다. 권이철이 자신에게 가했던 모욕을 사실대로 말했다면 모두가 납득했겠지만, 그 자리에 있는 엄마에게 상처를 주고 싶지 않다는 마음으로 자신의 아픔을 감내한 것입니다.
윤수는 금전적, 사회적으로는 많은 결핍이 있었으나 사랑과 신뢰만큼은 부족하지 않았고, 결국 그것이 윤수의 성장에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반면 권이철은 윤수와 정반대의 인물입니다. 금전적, 사회적으로는 풍족했으나 사랑과 신뢰가 결핍되어 있었습니다. 권이철은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을 경멸하고, 가진 것을 과장되게 드러내는 방어 기제로 그 빈틈을 메우려 노력합니다. 그러나 그 결핍은 끝내 채워지지 않았고, 극 후반부에 이르러 권이철은 비로소 그 결핍을 직면하게 됩니다. 그리고 혼란에 빠지는 것을 끝으로 더 이상 등장하지 않습니다. 윤수가 이야기에서 '성장의 절정'을 보여 준다면, 권이철은 '성장의 발단'을 보여 준 인물이라고 생각합니다.
윤수가 던지는 질문이 읽는 내내 맴돌며 독자들에게도 화두를 제시해 주는 것 같은데요. 행복하지 않은 삶에도 가치가 있는가, 이 질문은 작가님도 평소에 해 오셨던 생각이셨을지요? 작가님만의 답을 찾아간 과정이 궁금합니다.
행복이라는 것은 늘 제 인생에서 수수께끼 같은 개념이었습니다. 작가의 말에서도 살짝 언급했지만, 저는 제 삶의 행복이 온전하게 유지될 것이라고 믿지 않습니다. 지난 세월을 돌이켜 보면 행복했던 순간보다는 괴로웠던 순간이 더 깊게 남습니다. 행복은 찰나인 반면 고통은 지속적입니다. 하지만 다들 행복이야말로 인생의 목표이며, 우리는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고 말하곤 합니다.
그렇다면 행복하지 않은 시간은 의미가 없는 것인지, 그 시간은 오로지 행복이라는 결과를 위한 과정일 뿐이었는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의문'보다는 '거부감'이 들었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제 고통의 시간을 행복을 위한 계기로 폄하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시간이야말로 나의 본질을 만든 시간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삶을 살아갈수록 그 생각이 맞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작중에서는 그 확신을 이런 문장으로 표현하였습니다.
나는 정말 열심히 살았어. 숨 막히게 최선을 다했어. 이 고통을 아는 사람은 나밖에 없어.
그러니 타인은 나를 증명할 수 없어. 신조차도 나를 증명할 수 없어. 나를 증명할 수 있는 건 나밖에 없어.
이게 나의 프라이드야. (187쪽)
『호구』도 전작만큼 마음을 울리는 문장들이 많았는데요, 이번 책에서 가장 좋아하시는 대사나 장면이 있다면 어느 부분인지, 왜 그 장면을 꼽으시는지 궁금합니다.
마음에 드는 문장이 정말 많은데, 그중에서도 ‘제4국: 불계패’에서 윤수와 노인의 대화 부분을 가장 좋아합니다.
“구겨지지 말어.”
나는 노인을 본다. 노인이 검지를 든다.
“인생은 구기는 것이 아녀.”
쿡. 가슴을 찌른다.
“펼치는 것이지.” (183쪽)
작중에서 윤수는 항상 구겨진 아이로 등장합니다. 자신을 괴롭히는 아이들에게 둘러싸여 구부정한 자세로 바닥만을 바라봅니다. 노인은 중증 치매를 앓으며 맨발로 거리를 떠도는 인물입니다. 둘 다 삶이 구겨진 사람들이지만, 노인은 그럼에도 삶이란 펼쳐야 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것은 삶을 대하는 태도를 뜻하기도 하고, 동시에 신체적인 자세를 뜻하기도 합니다. 허리를 펴고 꼿꼿하게 서서, 크게 숨을 들이마시라는 뜻입니다. 이 가르침은 이후 윤수의 중요한 독백으로 이어집니다.
무릇 삶이라는 것도 숨처럼 구겨졌다 펼쳐졌다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나는 구겨지는 것을 슬퍼하기보다는 결심을 하기로 했다. (188쪽)
윤수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게 될까요? 윤수에게, 그리고 자신만의 수를 찾아 헤매는 모든 사람들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부탁드립니다.
에필로그에서 윤수는 “아무것도 되지 못했기에 무엇이든 될 수 있다. 나는 이제 내가 될 것이다.”(210면)라는 독백과 함께 돌을 두고, 그 대국에서 한 집 반이라는 아슬아슬한 격차로 역전승합니다. 늘 패배만 해왔던 이전의 서사와는 대비되는, 윤수의 값진 첫 번째 승리입니다. 그리고 그 승리의 이면에는 힘과 돈, 욕망, 그리고 행복이라는 이름의 압박에 '불계패'를 선언했던, 윤수와 인생 사이의 무형의 대국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윤수는 앞으로도 많은 패배를 겪을 것입니다. 그러나 윤수가 두는 대국이 늘어날수록, 윤수는 그만큼 자신만의 '신의 한 수'에 가까워질 것입니다.
그러니 윤수에게, 그리고 자신만의 수를 찾아 헤매는 모든 사람에게, 또 저 자신에게 말하고 싶습니다. 잠시 멈춰 서는 것도, 쓰라린 패배를 맛보는 것도 모두 소중한 '한 수'이니, 다음 수를 두는 것을 결코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입니다.
* AI 학습 데이터 활용 금지
출판사 제공
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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