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슴이 단단히 부었다. 무심코 뛰거나 계단을 오르내릴 때마다 얻어맞는 듯이 아프다. 생리가 끝난 게 엊그제 같은데 호르몬이 다시금 요동친다. 귀한 난자를 배출했는데 감히 임신을 안 한 것이 아주 괘씸한 죄라는 듯, 국가적 프로젝트라도 실패한 것마냥 달마다 형벌에 처해진다. PMS(월경 전 증후군)는 내 몸이 정해진 계획대로 작동하고 있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다만 그 계획이 번번이 내 허락 없이 닥쳐온다는 것이 문제다.
가족과 함께 살던 시절, 생리는 아무도 모르게 치러야 할 비밀 의식이었다. 집에서는 ‘생리’라는 말을 입밖으로 꺼내지 않았고, 생리대를 버릴 때도 비닐로 싸서 쓰레기통 깊숙이 묻었다. 그것이 여자의 미덕이라나 뭐라나. 피 묻은 휴지 좀 본다고 남자들이 급사하는 것도 아닌데 참 유난이다. 연애 관계도 생리적으로는 편치가 않았다. 나도 그들도 PMS나 생리에 무지했고 무관심했다. 생리 때문에 아프다고 약속을 취소하면 애정이 부족하다는 질책을 들었다. 내 몸이 멋대로 벌이는 사건을 가지고 상대방을 설득해야 하는 상황이 부당하게 여겨졌다. 생리 휴가 받으려면 진단서 떼어오라는 직장 상사랑 다를 게 있나? 생리는 장기의 조직이 파열되어 피가 흐르는 일이다. 상한 곳이 다른 장기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위 내벽이 헐어서 입으로 피를 토한다면 사람들은 119 구급대를 부르고, 그가 병가를 쓰는 것을 당연히 여길 것이다. 피가 흐르는 것이 여성의 생식기가 아니었다면 그토록 비밀스럽게 처리할 이유도 없었을 것이다.
이다와 같이 살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아무리 감추려 해도 집에서는 서로의 몸 상태를 비밀로 할 수 없었다. 때가 되면 누군가는 생리대로 가득 찬 욕실 쓰레기통을 비워야 했고, 진통제와 함께 아랫배를 데울 물주머니를 준비해야 했다. 일회용 생리대의 흡수체가 생리통을 유발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에 이다는 면생리대를, 나는 생리컵을 쓰기 시작했다. 신기하게도 밑을 당기는 듯한 통증이 싹 사라졌다. 반면 우리의 ‘생리 전시’는 더욱 적나라해졌다. 전시 기간과 작품은 매달 비슷비슷하다. 면생리대를 물을 담은 양동이에 넣어 핏물을 서서히 뺀다.(국립현대미술관에 이 핏빛 양동이가 전시된다면 반응이 볼만할 것이다.) 나는 가끔 소독 중인 생리컵을 주방 카운터에 놓아두고 잊기도 한다. 그것이 내 몸에 들어갔던 물건이라는 것을 까맣게 잊은 채. 한 마디로 관람객이 바라지 않아도 볼거리가 끊이지 않는다. 양동이의 핏물을 비우고 생리대를 가볍게 주물러 빨아 세탁기에 돌린다. 그리고 생식기가 닿는 부분을 위로 해서 건조대에 가지런히 넌다. 햇볕에 바짝 말려 북어처럼 빳빳해진 생리대를 크기별로 모아 수납상자에 넣을 때까지 이놈의 월례행사는 끝나도 끝난 게 아니다. 이 모든 귀찮음과 분노와 무력감의 돌고 도는 굴레를 함께 통과하면서 이다와 나는 ‘동지’라는 이름으로 다시 엮인다.
이다와 동거하기 전까지 나는 월경이라는 사건을 외면하고 살았다. 20대에는 1년에 고작 네 번쯤, 30대에는 두어 달에 한 번쯤 했으니 “월경(月經)”이라고 부르기도 좀 애매했다. 그때는 PMS가 뭔지도 모르면서 내 몸을 웬만큼 안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갑자기 생리가 시작되면 매번 낯설어하며 대강 넘겼다. 머리가 아플 땐 진통제를 먹으면서 생리통은 당연한 듯이 참았다. 사람을 만나기 싫고, 느닷없이 분노가 치미는 것이 오로지 내 인성의 문제인 줄 알았다. 그러나 몸은 끊임없이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지속적인 스트레스와 공포에 노출되면 몸은 스스로 배란을 멈춘다고 한다. 생리를 드문드문 하는 것도 그 때문이었다. 신경정신과를 다니며 불안장애 치료를 시작한 지 2년 만에 생리 주기가 규칙적으로 바뀌었다. 몸은 이제야 내가 안전한 곳에 도착했다고 판단하는 것 같았다.
이다는 불편함이 생기면 빠르게 대처하는 사람이다. 자기 몸의 신호에 기민하게 반응하는 만큼 다른 사람의 불편도 빠르게 알아챈다. 그의 유난스러움은 나를 돌보는 방식으로 이어졌다. 다소 통제적인 돌봄이었다.
“너는 지금 춥다. 옷을 더 입어라.”
“너는 지금 불편하게 앉아 있다. 허리를 세우고 의자에 방석을 깔아라.”
“(약을 까서 건네며) 먹어라. 생리 전에 약을 먹어야 안 아프다.”
잔소리에 면역이 없는 나는 이다의 참견에 꾸준히 반항했다. “아닌데? 난 괜찮은데?” 하지만 고집을 부려봤자 의미가 없다. 실제로 나는 춥거나 덥거나 아픈데도 모르다가 나중에 덜컥 탈이 났다. 내 PMS 증상도 이다의 오랜 관찰과 분석(이것을 눈치라고도 한다)으로 깨달았다. 얼굴빛이 누렇게 뜨고, 안 먹던 초콜릿을 찾고, 기분이 가라앉아서 이다가 회심의 드립을 쳐도 바닥을 구르며 깔깔 웃지 않는다. (평소에 얼마나 경망스럽게 웃었으면 즉각 알아채는 것일까.) 요즘은 가슴이 부어서 아프다거나, “아랫배가 찌릿한데 이게 배란통인듯.” 하고 몸의 변화에 대해 스스럼없이 투덜거린다.
아픈 것을 변명하거나 숨기지 않아도 되는 관계 안에서, 비로소 나는 몸이 보내는 신호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생리 증상이 있으면 생리주기 추적 어플에 기록하기 시작했고, 나의 생리 주가 31일에서 32일 정도인 것을 알았다. 다음 시작일도 어플 알림으로 대강은 짐작할 수 있다. 이다의 주기는 28일 정도여서 주기가 한 번 겹치면 서너 달은 비슷한 시기에 생리를 하게 된다. 같은 집에 산다는 것은 이렇게 몸의 시간표를 공유하는 일이기도 하다.
몸의 달력을 읽게 되면 불필요한 오해가 줄어든다. 상대방의 어두운 표정을 보고 ‘내가 뭘 잘못했나?’ 괜히 자책하는 일이 줄고, 대화가 어긋나더라도 말꼬리를 잡지 않고 부드럽게 놓아줄 수 있다. 아플 때 우리는 경계선을 넘어 서로에게 조금 더 의지한다. 이다가 통증으로 끙끙거리는 날에는 내가 저녁을 차리고, 둘 다 생리를 할 때는 설거지를 미루고 마라탕(이다 pick)이나 피자(모호연 pick)를 주문한다. 고통은 각자의 몫이지만, 매달 자비 없이 찾아오는 이 생리 현상을 겪는 동안에는 최소한의 자비를 베푼다. 여기에 특별한 결단이나 책임감은 필요하지 않다. ‘호르몬의 지배를 받고 있음’을 서로에게 알리면 평소와 다른 말과 행동의 맥락을 이해할 수 있다. 맥락을 알기에, 스스럼없이 투덜거리고 의지하며 신뢰를 이어갈 수 있다.
월경을 월경이라 부를 수 있게 되자 그다음이 궁금해졌다. 배란이 멈추고 완경에 이르러 새로운 호르몬의 격전기에 도달한 중년의 우리는 어떤 모습일까?
* AI 학습 데이터 활용 금지
모호연
평소 가까운 물건의 생애와 쓸모에 관심이 많다. 우산수리팀 ‘호우호우’ 소속으로 우산수리 마스터가 되기 위해 매주 우산을 고치고 있다. 지은 책으로 『반려공구』, 『반려 물건』, 『지금은 살림력을 키울 시간입니다』(공저)가 있다. 공구를 체험할 수 있는 공방을 만들어 수리 문화를 확대하는 거창한 꿈을 꾸고 있다.
이다
작가, 일러스트레이터. 포항에서 태어나 청소년기 내내 쉬지 않고 다이어리를 썼다. 지은 책으로 『이다의 자연 관찰 일기』, 『이다의 도시관찰일기』, 『어린이 탐구 생활』이 있으며, 『내 손으로, 치앙마이』, 『내 손으로, 시베리아 횡단열차』 등 100퍼센트 손으로 쓰고 그린 여행 노트를 꾸준히 펴내고 있다. 그림으로 할 수 있는 것을 모두 해보는 것이 소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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