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빠지는 것은 실수투성이의 신을 믿는 종교를 창조해 내는 것이다.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말에 따르면 그렇다. 가장 적합한 상대와 사랑에 빠진다는 법은 없고, 상대의 마음이 식었다고 이쪽의 마음을 쿨하게 끊어낼 도리도 없으며, 아무리 똑똑한 인간도 그 앞에서는 바보가 되기 일쑤기 때문이다. 마치 신의 지시에 따르듯, 예외 없이. 하지만 연애소설을 읽는 묘미는 바로 그 ‘실수투성이’라는 데 방점이 찍힌다. 논리나 판단력과는 전혀 관계없는 게임의 세계.
웹소설과 웹툰에 대해 이야기하는 유튜브 영상을 보다가 ‘돌돌노’라는 말을 듣고 크게 웃었다. ‘돌돌노’는 “돌고 돌아 다시 노아다”라는 문장의 줄임말인데 노아는 밀차 작가의 웹소설 『그녀가 공작저로 가야 했던 사정』의 남자 주인공(이하 남주) 노아 벌스테어 윈나이트의 이름이다. 다른 로맨스 판타지(이하 로판)를 많이 읽고 나서도 결국 최고의 남주는 노아라는 뜻에서 ‘돌돌노’라는 말이 생긴 것이다. 웹소설, 그중에서도 로판에 밝은 독자들은 모르기도 힘든 이 작품은 2016년에 종이책이 출간된 것을 필두로, 웹툰, 게임, 애니메이션까지 만들어진 거대 IP 중 하나다. 웹소설 입문작으로도 로판 입문작으로도 손색없는 이 작품에는 ‘노아 윈나이트식 웃음’이라는 게 나오는데, 그 뜻은 이렇다. “모두에게 평등한 미소죠. 그건 ‘지금 네 입에서 나오는 게 말인지 똥인지 모르겠는데?’란 뜻이에요.” 그 누구에게도 틈을 주지 않는 데다 부유하고 정치적으로도 고단수인 계략 남주의 전형이지만 여자 주인공(이하 여주) 한정으로 한없이 따뜻하다. 로맨틱 코미디(이하 로코)가 영원히 사랑하는 장르적 유니콘인 셈인데, 노아의 족보를 캐면 그 시조격 조상의 자리에는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의 피츠윌리엄 다아시(a.k.a. 다아시 씨)가 있다.
영화 <오만과 편견>(2006) 포스터
응원하고 싶은 여자 주인공, 같이 자고 (또 살고) 싶은 남자 주인공. 로코에서는 이게 전부다. 세상에 캐릭터가 중요하지 않은 소설이 어딨겠느냐만은 로맨스는 더 그렇다. 왜냐하면... 로맨스, 그중에서도 로맨틱코미디의 경우, ‘설정’에 해당하는 부분이 거의 천편일률적이기 때문이다. 제인 오스틴의 로코 구조 발명은 오늘날 일일연속극까지 지배한다. 여주는 흔히 말하는 캔디형인데 돈을 벌어야 하는 상황에 처한 씩씩하고 밝은 사람이고, 남주는 낙하산을 타고 떨어진 실장님으로 사람을 잘 믿지 않는 재벌 2, 3, 4세다. 남주는 엄청난 부자로 모든 여자와 그들의 부모에게 노려지지만 성격은 대체로 싹퉁바가지스럽다. 똑똑하지만 차갑고, 인정머리 없으며, 자기 잘난 줄 너무 잘 안다. 여주는 그런 남자 주인공을 흰 눈 뜨고 보는데, 남자의 마음이 ‘먼저’ 여자 쪽으로 확 기울고, 여자는 망설이지만, 남자의 적극적인 공세에 결국 꽉 닫힌 해피엔딩ㅡ결혼ㅡ으로 향한다. 그들이 영원히 행복하게 살았는지는 동화의 영역이지만.
소름이 끼칠 정도로 예측 가능한 수순을 밟아가는 장르가 오랫동안 생명력을 갖는 이유는 다시 한번 말하지만 캐릭터 때문이다. 여성향(여성 독자가 주를 이루는) 장르에서는 여자 주인공보다 거의 항상 남주가 중요하다. 이른바 ‘노맨스’(로맨스가 없거나 비중이 극히 적은) 계열의 여주 성장물에서는 남주가 종잇장 같아도 큰 문제가 안 생기지만 사랑 이야기라면? 독자가 ‘그 남자’를 남주로 인정해야 한다. 의심의 여지없는 확신을 가지고. 이게 무슨 말인지 알고 싶다면 고개를 들어 『오만과 편견』을 읽어보라.
하지만 장담컨대 『오만과 편견』을 읽은 사람보다 <오만과 편견> 영화나 드라마를 본 사람이 압도적으로 많을 것이다. 재독, 재시청 회수로 따지면 더더욱 그럴 것이다. 1995년 BBC 드라마 <오만과 편견>은 행운의 편지처럼 영국에서 시작되어 전 세계로 퍼져나간 제인 오스틴 바이러스의 시발점이었다. 영국 바깥에서는 거의 인지도가 없었던 배우 콜린 퍼스는 이 작품에서 ‘미스터 다아시’를 연기하며 섹스 심볼(?)로 급부상했다. 『오만과 편견』 영상화가 화제가 되는 데는 ‘그 장면’을 어떻게 구현하는가가 필수적인데, 재밌는 점은 ‘그 장면’은 책 속 특정 장면을 뜻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제인 오스틴은 상식적이고 건전하게 소설을 썼다. 후대의 여성들은 상식적이고 건전한 정도로는 만족이 잘되지 않는다. 그래서 행간을 집요하게 읽어내 ‘그 장면’을 만들어낸다.
콜린 퍼스가 출연한 <오만과 편견>의 ‘그 장면’은 다아시 씨가 물에 홀딱 젖은 흰 셔츠 차림으로 물에서 걸어 나오는 장면이다. 구글에서 ‘colin firth pride and prejudice’로 검색하면 첫 화면에 바로 뜨는 이 ‘젖은 다아시’ 장면은 소설이 보여줄 수 없는, 영화가 잘할 수 있는 ‘끌림’ 포인트를 적확하게 잡아내 숱한 여성들의 관심을 끌었다. 콜린 퍼스는 이후 <브리짓 존스의 일기> 영화에서 다아시를 연기했는데 이름이 우연히 같은 것이 아니라, 동명의 소설을 쓸 때부터 그 남주는 <오만과 편견>의 다아시를 염두에 두고 창작된 캐릭터였다. 감히 말해보자면 <오만과 편견>의 콜린 퍼스가 없었다면 <킹스맨>의 콜린 퍼스도 없었을 것이다.
BBC 드라마 <오만과 편견>(1995) 스틸컷
<어톤먼트>, <다키스트 아워> 등 역사 드라마에 특장점이 있는 조 라이트 감독의 2006년작 영화 <오만과 편견>에도 ‘그 장면’이 있다. 드라마 <오만과 편견>과 다른 장면이다. 이 영화는 처음 개봉했던 당시에 1995년작 드라마 <오만과 편견>과 비교되며 깊이가 없다는 혹평을 얻기도 했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그 장면’을 언급하는 사람들이 자주 ‘끌올’하는 로코 명작이 되었다. 언젠가 ‘그 장면’이 트위터(현 X)에서 클립으로 돌아다녔을 때 그 글에 전 세계 여성들이 ‘인용’으로 환호하던 순간을 잊을 수가 없다.
영화의 초반, 엘리자베스와 다아시는 서로 못 잡아먹어 안달인 것처럼 보인다. 여자는 남자가 오만하다고 생각하고, 남자는 여자가 편견에 사로잡혔다고 생각한다. 가족 때문에 두 사람은 반복적으로 얽히게 되지만 두 사람이 서로를 바라볼 때면 은은한 신경전이 벌어진다. 엘리자베스는 다아시에게 아직은 관심이 없고, 다아시는 엘리자베스에게 관심이 있다는 자각을 아직 하지 못한 상태에서 ‘그 장면’이 나온다. 다아시가 엘리자베스의 손을 살짝 잡아 마차에 오르도록 에스코트한 직후(어디까지나 예의범절에 어긋나지 않기 위해 하는 행동처럼 보인다), 엘리자베스는 돌아서서 저택으로 향하는 그를 흘끗 바라본다. 다음 순간 카메라는 다아시의 손을 클로즈업하는데, 그는 자기도 인지하지 못한 것 같은 움직임으로 손에 힘을 줬다 뺀다(너의마음을너는아직모르는거니너는행동으로말하고있잖아그녀가신경쓰인다고).
이 장면은 시간이 흐르면서 ‘그 장면’으로 추앙되기 시작해, 이 장면만을 ‘설렘 포인트’로 편집한 쇼츠가 여럿 생겼을 정도다. 나는 이 영화가 보여주는 영국 전원 풍경을 정말 사랑한다. 내게 있어 이 영화의 ‘그 장면’은 또 다른 ‘젖은 다아시’ 장면인데, 비가 억수로 내리는 날 두 사람이 그리스 신전같은 장식이 있는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 말다툼을 하는 장면이다. 엘리자베스는 “당신의 오만함과 이기심에 신물 나요”라면서 “하늘이 무너져도 당신과 결혼 안 해요”라고 쏘아붙인다. 로코에 닳고 닳은 관객은 이 순간 “아, 두 사람은 결혼하겠구나”라는 사실에 확신을 갖게 된다. 이 영화에서 다아시를 연기하는 매튜 맥퍼딘은 콜린 퍼스와 달리 확신도 오만도 조금은 부족하지만, 흔들리는 눈빛과 쥐었다 펴는 손만큼은 확실히 각인되었다.
영화 <오만과 편견>(2006) 스틸컷
『오만과 편견』이 영상화될 때는 엘리자베스와 다아시의 사랑이 어떻게 되는지를 중점에 둔다면 소설 『오만과 편견』은 결혼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사고실험에 가깝다. 19세기의 결혼은 지금보다 더 가문과 가문의 결합이었으며 계급적 결속력을 높이는 역할을 했다. 계급과 재산, 명성은 언제나 가장 중요했으며 여성의 외모는 중요했지만 계급을 뛰어넘을 정도로 중요한 취급을 받는 일은 없던 시대였다. 성격이나 취향, 애정은 결혼을 결정하는 데 있어 가장 홀대받는 가치였다. 특히 상류계급의 경우는 그랬다. 남자만이 집안의 재산을 상속할 수 있던 시대에 딸만 다섯이 있는 베넷 가족이 느끼는 위기감과 불안은 상상하기조차 어렵다. 베넷 부인이 딸들의 결혼에 목을 매는 이유는 거기에서 출발한다. 남편이 죽으면 이 집안은 끝이라는 문제의식.
『오만과 편견』은 최근 새 번역이 적극적으로 이루어지는 작품 중 하나다. 여러 번역본이 존재하지만 일독을 권하고 싶은 번역은 2025년 김선형 번역가가 옮긴 『오만과 편견』이다. 번역가인 친구가 “님이라면 이 번역을 즐겨 읽을 것 같다”며 책을 주었는데, 첫 페이지를 펼치자마자 ‘다르다’의 여러 뜻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가장 눈에 띄는 첫 번째 특징은 존대어를 사용한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누군가가 ‘말하는’ 느낌을 극대화한다. 그 유명한 첫 문장은 이렇게 옮겼다.
“온 세상이 인정하는 진리 하나는 재산이 많은 독신 남자라면 반드시 아내가 필요하다는 것이에요. 그런 남자가 그 지역에 이사 온다고 하면, 당사자의 감정이나 의견 따위는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도 이웃 가족들은 저마다 당연히 자기 집 딸내미 중 하나가 차지할 재산이겠거니 생각해버린답니다.” (『오만과 편견』 9쪽, 제인 오스틴 저, 김선형 역, 엘리)
소설의 모든 지문이 마치 영화의 내레이션처럼 읽힌다. 제인 오스틴의 장기인 신랄하면서도 적확하고 때로 다정한 인물 묘사는 이런 목소리의 힘을 빌려 생기를 얻는다. 영어에 존댓말도 말도 없다는 사실을 떠올려보면, 반말로 옮길 수 있는 글을 왜 존대어로 옮길 수 없겠는가? 번역가들은 대화에 있어 한국어의 관습을 따라 존댓말과 반말을 옮긴다. 하지만 대화가 아닌 글은 어떻게 옮길 것인가? 김선형 번역가는 여기에서 파격적인 결정을 내리고 시작한다.
또한, 이 책은 각주에도 진심이다. 앞서 인용한 첫 대목, 첫 문장에서 ‘진리 하나’라는 하등 어려울 것 없어 보이는 표현에 달린 주석은 이렇다. “보편적 진리 하나(a truth universally acknowledge)라는 말을 눈여겨볼 것. 제인 오스틴은 유일한 우주의 진리(The universal truth)가 프랑스혁명을 통해 무수한 진리들로 부서진 것을 위트와 아이러니로 포착하고 있다.”
단어의 선택과 문장의 구사는 현대어에 가깝게 느껴지는데, 넷플릭스 시리즈 <브리저튼>과 한국 작가들이 쓰는 로판 웹소설이 해외로 수출되는 시대에 김선형의 번역은 신기할 정도로 이물감 없이 술술 읽힌다. 고전의 번역은 딱딱해야 제맛이라고 생각하는 독자라면 어색해할 수 있지만, <오만과 편견>을 소설로는 접해보지 않은 로판 독자라면 “이거 한번 잡솨봐”라고 강력히 권하고 싶을 정도다. 이 책의 띠지에는 버지니아 울프의 말이 인용되어 있다. “제인 오스틴은 남성들의 문장을 비웃어버리고, 자신이 쓰기에 적합한 더할 나위 없이 자연스러운 문장을 고안해냈다.” 이 논평대로의 제인 오스틴이 궁금하다면 선택하기 좋은 책인 셈이다.
엘리자베스와 다아시의 다툼은 그래서 더 격렬해지고 (읽기에) 즐거워진다. 다아시가 엘리자베스에게 첫 번째 청혼을 하는 장면을 읽다가 신난 나머지 소리를 내서 웃어버렸다. 다아시의 갑작스런 구애의 말에 당황한 엘리자베스와 그런 엘리자베스의 반응을 격려라고 해석한 다아시에 대해 제인 오스틴은 이렇게 쓴다.
“말은 잘 했지만 심장의 문제와 무관한 감정들이 소상히 표현되었고, 다정한 사랑의 화제보다 자존심이 걸린 화제를 말할 때 오히려 유창하고 달변이었어요. 그녀가 자기보다 열등하다는 인식- 위신이 굴욕적으로 떨어지는 일이라는 자의식 가문이라는 걸림돌들- 때문에 그녀에게 이끌리는 마음이 늘 올바른 사리 판단에 가로막히곤 했다는 - 이런 얘기들을 한참 동안 격한 감정을 섞어 토로했는데, 아마도 극심한 가슴앓이의 결과겠지만 청혼에 별로 도움이 될 리는 없었지요.” (317쪽)
신랄하기 그지없고 우습기로 따져도 윗길인 제인 오스틴의 문장 구사에 이어, 두 사람은 말다툼을 시작하고, 다아시는 청혼의 성사 가능성을 관짝에 넣고 못을 박아버리는 말을 내뱉는다.
“당신의 가문이 열등하다는 사실에 제가 기뻐해야 합니까? 삶의 조건이 이렇게 결정적으로 제 수준에 못 미치는 사람들과 친척의 연을 맺게 된 걸 자축해야 하는 겁니까?” (322쪽)
젖은 셔츠를 입은 다아시도, 손을 쥐었다 폈다 하는 다아시도 없지만, 그 모든 것을 가능케 한 제인 오스틴의 ‘원조’ 다아시가 여기 있다. 이전에 다른 번역본들로도 그와 사랑에 빠지는 데는 충분했지만, 김선형 번역의 『오만과 편견』은 엘리자베스가 왜 사랑받는지를 새삼 감탄하며 수긍하게 도와주었다. 저렇게 필사적으로 싸워놓고는 마지막에 이르러 “어떻게 시작한 거예요?”라며 꽁냥거리는 모습을 마주하며, 이 장르의 강한 생명력을 느꼈다면 너무 놀리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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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과 편견
출판사 | 엘리
만화 그녀가 공작저로 가야 했던 사정 1
출판사 | 디앤씨웹툰비즈
이다혜
작가, <씨네21> 기자, 팟캐스트 <리딩 케미스트리> 진행.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몇몇 영화들이 얼마나 소설인지 얼마나 영화인지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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