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의 찢긴 일기장에게, 그걸 찢어 버린 어린 내 손에게, 연필을 깎던 아침에게, (중략)케이크 위 작은 촛불들과 고깔모자, 달콤한 마가렛트 과자에게, 높이 날아간 그네에게 이렇게 멀리서 인사를 보낸다.”(273쪽)는 말로 등단 13년 만에 출간한 첫 산문집 『백지 앞에서』를 닫은 최은영 소설가는 이 책이 자신의 과거와 닮아 있는 어느 외로운 사람에게 닿기를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자신의 슬픔을 애도하지 못하는, 자신을 괴롭히는 나쁜 생각에 고통받는, 혼자 울고 있는 사람에게로 가서 “나도 그래요” 하고 말 걸고 싶다고요.
유기 불안, 외모 강박, 발병과 치료의 과정까지. 자신의 연약한 부분을, 아픈 경험을 정확하게 바라보는 글을 마주하면서 가장 많이 한 생각은 그래서 용기였습니다. 슬픔에게 자유를 주는 용기, 고통에게 언어를 주는 용기, 나로부터 너에게로 향하는 용기가 한 권의 책에 있었습니다. 덕분에 어느 차가운 곳에 있는 독자는 따뜻한 곳으로 한 발 옮겨가게 되겠다고, 분명히 그럴 거라고도 생각했습니다.
용기 있게 살고 싶은 마음
“처음 책을 냈을 때처럼”(9쪽) 떨림을 느꼈다면서, 『백지 앞에서』를 내는 마음에 대해 “타인의 얼굴에 가까이 다가가는 기분”(10쪽)이라고 하셨어요.
그저 저 자신으로 말하는 것이 처음이기 때문에 좀 떨렸어요. 산문에는 숨을 데가 없더라고요. 소설처럼 인물의 이야기, 허구의 이야기라고 말할 수 없으니까요. 에세이는 이렇게 다른 글쓰기구나, 많이 생각했어요. 제가 워낙 정신이 없는 스타일인데(웃음) 산문을 쓰면서 정돈하는 기분도 들었거든요. 평소에는 이런저런 생각이 뭉게구름처럼 있고 그것을 정리하지 못하고 살다가, 여기 담긴 글을 쓰면서 마치 정신없는 집의 옷장도 정리하고 화장실도 정리하는 그런 기분이었어요.
쓰고 난 뒤에야 정리된 생각이 많았던 거군요?
평소에는 이 생각에서 저 생각으로 바쁘게 머릿속이 전환되곤 해요. 여러 생각이 다 섞여 있고요. 그것들을 분류해서 잘 정리하는 느낌이더라고요. 덕분에 저도 쓰면서, 읽으면서 정돈된 생각에 마음이 편안해지는 느낌이 있었어요. 이해도 더 되고, 그러면서 자유로워지는 기분이었는데요. 생각들이 엉켜 있을 때는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느낌이었다면 글을 써서 정리하고 나니 편안했어요. 자유로운 해방감이 있었어요.
자유라는 것에는 무언가에 얽매이지 않는다는 뜻도 있잖아요. 생각해보면 이것들이 저를 엄청 옭아매고 있었던 것 같아요. 타인에게 솔직하게 말하지 못하는 성향처럼 혼자 갖고 있는 마음들이 있었는데요. 그것이 무게로 남아서 저를 짓누르고 자유롭지 못하게 했다면요. 언어로 꺼내 놓은 뒤에는 비로소 이 무게가 사라지고, 풀려나는 기분이 들었어요.
너무 좋은 얘기네요. 작가님 개인에게도 꼭 필요했던 작업이었다는 생각이 들고요. 한편으로 읽는 내내 가장 많이 생각하게 된 단어는 ‘용기’였어요. 용기를 많이 느낄 수 있게 해주셨어요.
태생적으로 두려움이 엄청 많아요. 항상 최악을 상상하고요. 그 상황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모면하듯 살아왔어요. 더 상처받기 싫으니까요. 워낙 ‘사고가 안 났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이 크니까 사는 내내 원하는 바를 찾아가기보다 무난하게 가자는 생각으로 선택한 것이 많았어요. 그 과정에서 오히려 저 자신이 소모되는 경우도 많았죠. 삶이 행복하지 않던 경우가 많았고요. 결국 두려움 때문에 저 자신을 속이면서 살았던 건데요. 사실 다른 사람한테 속아도 되게 기분이 안 좋잖아요. 근데 저는 아주 오랜 시간 저 자신한테 속으면서 살았던 거예요. 때문에 자괴감이 많이 들고, 나한테 미안하기도 했어요.
그러다 중년이 되니까요. 시간이 생각처럼 많이 남아 있지 않다, 소중하게 써야 한다는 사실을 인식했어요. 예전에는 시간이 되게 많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정말로 한도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하지만 시간을 다르게 인식하게 된 뒤에 더는 비겁하게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더는 예전과 같이 살고 싶지 않다고요. 천년만년 사는 것이 아닌데 전처럼 삶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던 거예요. 그렇다면 용기 있게 살고 싶다고 생각했고요. 산문 역시 쓰고 싶은 것을 쓰자, 그래야 여한이 없지, 생각하고 썼어요.
글을 써왔고, 계속 쓸 것이기 때문에 갖게 된 생각이기도 할 것 같아요. “글쓰기는 나 자신을 계속 대면하게 하여 나의 취약성을 인정하게 했다. 그리고 언어로 그 취약성을 드러내기를 원했다.”(64쪽)고도 하셨잖아요. ‘백지 앞에서’ 나를 속이지 않고 용기 있게 쓰겠다는 마음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 듣고 싶어요.
저를 약한 사람이라고 오래 생각하면서 살았어요. 신체적으로도 허약하고, 자주 아팠는데 그것이 스스로에 대한 기본적인 인상을 남겼던 것 같아요. 나는 약한 사람이다, 저항할 수 없고, 외부로부터 어떠한 압력이 오면 무너지는 사람이다, 힘이 없는 사람이다, 이렇게 오래 생각하고 살았죠. 그러다 대학에 가서 글을 쓰면서 바뀌었어요. 사람들이 “너의 글은 힘이 있다”고 얘기하는 거예요. ‘힘이 있다니. 내가 힘이 있는가?’ 생각한 동시에 그 말이 참 듣기 좋았어요. 어찌 되었든 나는 약한 사람이지만 글은 힘이 있구나, 정도의 생각을 하게 되었죠.
그동안 작가 생활을 13년 정도 했고요. 사람들이 제 글에 공감도 해주고, 받아들여 주었잖아요. 수용해주는 그 모든 반응들이 큰 힘을 주는 것이었어요. 저에게 힘이 없다고 생각했을 때는 어떤 말을 해도 수용 받지 못하고, “시끄러워” “조용히 해” “입 다물어” 같은 말을 많이 들었거든요. 이런 말은 사람의 기운을 주저앉히는 말이라고 생각해요. 마치 불을 끄듯이 말이에요. 그런데 글을 쓰고, 어떤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니까 “나도 이런 게 있었다” 하면서 들어주더라고요. 그게 엄청나게 힘을 주는 경험이었어요. 그 경험이 계속 쌓이니까 나는 약한 사람이 아니다, 힘이 있구나, 하고 몸으로 느끼게 됐어요. 네, 몸으로요.

나쁜 생각에 실금을 낼 수 있다면
그 과정에서 진짜 나라는 사람에게 가까워졌다고 느끼세요? 이를테면 진짜 내가 되는 과정이었다고요.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지금은 나를 훨씬 정확하게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첫 번째 책을 낸 뒤에 상담을 받기 시작했는데요. 선생님이 “본인은 본인에 대해서 얼마나 안다고 생각해요?”라고 물어보셨어요. 보통 나는 나에 대해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잖아요. 그런데 그 선생님이 “최은영 씨는 대통령 아는 것만큼 본인을 알고 있어요.”라는 거예요. 대통령을 뉴스로 보니까 알지만 그 사람은 모르잖아요. 그 정도로 저에 대한 이해가 없다고 하더라고요. 처음에는 너무 과장된 말이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그 말이 맞았어요. 예를 들어 어느 날은 상담을 받으면서 울었거든요. 그때 선생님이 무슨 기분이 드냐고 물었는데 진짜 모르겠는 거예요. 충격이었어요. 그러면서 일상 생활을 할 때도 ‘지금 무슨 기분이지?’ 저한테 묻게 됐고요. 덕분에 조금은 저에 대해 알 수 있었던 것 같아요.
회피하는 시간이 너무 길었어요. 누군가한테 화가 났어도 화난다고 느끼지 못했던 거예요. 그런 면에서는 저에 대해 더 알게 된 건 맞는데요. 그 과정이 고통스럽긴 했죠. 나를 대면한다는 것은 너무 어려워요. 에너지가 많이 들고 고통스러운 일이긴 했어요. 그럼에도 계속 대면하면서 자랑스럽지 못한 부분까지도 나구나, 근데 이게 그렇게 나쁜 건 아니야, 자랑스럽지는 않지만 이 또한 나라면 그냥 같이 살아야지, 정도의 생각은 하게 된 것 같아요.
심지어 그것을 글로 쓰셨잖아요.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대면하는 고통스러운 일에서 쓰기라는 단계로까지 갔을 때 겪게 된 고통도 있었을 텐데요.
쓰기는 사실 고통스럽지는 않았어요. 물론 약간 불편하고, 마음이 아프기는 했지만요. 제게 진짜 고통은 언어화하지 못한다는 것 같거든요. 무언가가 분명히 있는데 언어로 표현을 못 하겠고, 설명이 안 되는 게 고통 같고요. 이렇게 언어로 풀어서 써내면 마음이 아프긴 하지만 고통스럽지는 않아요.
“내게 글쓰기는 의식의 문을 두드리면서 꺼내달라고 애원하고 소리치는 무의식에게 문을 열어주는 일이었다. 내가 미워하고 수치스러워했던 나의 모습을 대면하는 일이기도 했다. 이 일에 끌린 이유를 이렇게 말할 수 있다면...... 나는 일평생 내 감정을 억압하고 회피하면서 죽어가고 있었다고. 죽고 싶지 않아서 글을 썼다고.”(48쪽)
「못생겼다는 느낌」 챕터를 쓸 때 “이런 글은 쓰고 싶지 않다”(178쪽)고 생각했다고 했어요. 처음에는 쓰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지만 그럼에도 쓴 마음을 생각해보았거든요. 과거의 나를 향해, 그리고 현재의 어떠한 독자를 향해 쓴 글 같았어요.
저는 SNS를 안 해요. 사생활을 사람들과 공유하는 것이 안 맞는다고 생각해요. 그런 면에서 이렇게 사적인 이야기를 해야 하나, 싶었어요. 자랑스러운 이야기는 아니라고 생각했으니까요. 하지만 그런 생각은 제가 가지고 있는 마음의 일부였고요. 가장 큰마음은 방금 말씀처럼 이것이 누군가한테 가서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는 것이었어요. 만약 스스로에 대해 엄청나게 나쁜 생각을 가졌던 시절에 이 글을 읽었다면, 물론 생각이 크게 변하거나 단번에 원래 갖고 있던 생각이 깨지지는 않았겠지만, 그 생각에 실금 정도는 낼 수 있었을 것 같거든요.
자신의 고통이 정당하지 않다고 느낄 때 사람은 힘들어진다고 느껴요. 왜 이런 거 가지고 힘들지, 나는 왜 이럴까, 이런 생각이 들 때가 힘들죠. 이때 당신만 그런 것이 아니다, 이것은 애써서 정당화할 필요 없이 그냥 힘든 거다, 하고 이야기 나누면 다를 거라 생각해요. 「못생겼다는 느낌」을 쓰면서 과거에 제가 겪은 괴로운 마음도 무의미하지 않게 되었고요. 이 글이 누군가한테 가서 다른 시각을 제공할 수 있다면 역시 의미가 있는 것이니까요. 그 과정이 글쓰기의 아름다움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 글을 언제나 쓰고 싶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쓰게 됐어요.
“실천으로서의 휴식”(130쪽)이라는 표현도 인상적이었어요. 휴식조차 마음껏 못했던 것이죠.
뭔가 생산적이지 않다는 생각이 들면 죄책감을 느끼는 시간이 길었어요. 저를 몰아붙이면서 살아온 거죠. 소설 쓰는 것도 그랬어요. 방금 책을 낸 뒤인데 어떤 계약에서 당장 내년까지 원고를 줘야 한다면, 지금은 그것을 해내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걸 알거든요. 무언가가 차야 나온다는 걸 지금은 알아요. 그런데 과거에는 그 일정에 맞춰야겠다는 생각에 막 했어요. 하지만 아무리 열심히 노력하고, 힘을 들여도 안 되는 거죠. 차라리 좀 쉬면서 책 읽거나 했다면 오히려 도움이 됐을 텐데 열심히만 하려고 하니까 공회전하면서 연료만 닳고, 번아웃이 된 거예요. 그런 시간을 지나면서 휴식이 결코 낭비가 아니고 꼭 필요한 것이라고 많이 느꼈어요. 사람이 반드시 생산적으로 살아야 하나, 싶은데요. 몸이 아프면서 더 그 생각을 많이 하죠. 무엇 때문에 열심히 안 하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에 쫓겨서 살았을까, 하고요. 그 시간을 겪고서 아니라는 걸 알게 됐어요.

”그 마음은 어디서부터 오는 걸까”
「그때의 은희들에게」, 「인간과 동물 사이」, 「그날 이후」 등의 글은 연결된 글처럼 읽히기도 했어요. 기억하는 일은 얼마나 투쟁하는 일인가 생각하게 되고요. 이 글들을 쓸 때 작가님이 가졌던 싸우는 마음에 대해 듣고 싶었어요.
마음이 약한 사람이어서, 뉴스를 보면 너무 상처를 많이 받았어요. 동시에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무력감을 많이 느끼던 시기가 있었죠. 그럼에도 말하고 싶었어요. 아무도 내 얘기를 안 듣겠지만 말하고 싶다는 마음이 많았고요. 책을 계약하고, 원고를 발표할 기회가 있을 때면 그 기회를 이용해서 하고 싶은 말을 하려고 했어요. 너무 화가 나서 말하고 싶으니까요. 그것은 누군가를 무너뜨리거나 상처 주고 싶은 마음이 아니고요. 조금이라도 서로를 존중하기를, 조금이라도 인간성을 갖고 살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어요.
타인에 대해 공감하지 못하면 쉽게 잔인해질 수 있고, 잔인함은 어떤 종류의 폭력으로 터져 나온다는 점을 짚기도 하셨는데요. 지금도 그런 장면들이 너무 많아요.
다른 사람의 슬픔을 조롱하는 문화가 있는데요. 그것이 가시화되지 않고, 곳곳에 스며 있다는 느낌이 많이 들어요. 너무 비극적인 일이에요. 누군가가 고문을 당해 죽은 일을 웃음의 소재로 삼는 인간의 마음을 생각하게 되거든요. 그것이 문제없다고 여기기 때문에 기업의 마케팅으로 가는 거잖아요. 이러한 문화가 오랜 시간 쌓여서 일상적인 상황이 되고, 이것이 얼마나 나쁜 일인지조차 감각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점이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때문에 타인의 슬픔과 고통을 조롱하는 마음을 깊이 들여다보게 되는 것 같아요. 그 마음은 도대체 어디서부터 오는 걸까. 왜 이렇게 됐을까.
“언제나 소설쓰기가 깊은 애도의 과정이라고 생각했다”(200쪽)고도 하셨죠.
제 개인적인 글쓰기의 모습이라고 생각하는데요. 말씀드렸듯이 많이 회피하면서 살았고요. 뭔가를 상실했을 때 충분히 슬퍼하지 못했어요. 그냥 치워버리자, 보고 싶지 않아, 하면서 도망갔어요. 또 다른 상실이 오면 또 도망가는 식으로 애도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던 거예요. 그 결과로 정신이 건강하지 않게 된 것 같아요. 그러다 첫 번째 소설집을 낸 뒤에 생각했어요. 쓸 때는 내가 무엇을 쓰는지 모르고 쓰는데요. 시간이 지나고 읽어보니까 그때 내가 그 일에 대해 애도했다는 걸 뒤늦게 알게 됐어요. 그것 때문에 마음이 아파서 이걸 썼구나, 느끼게 됐고요. 무의식적으로 계속 애도하고 싶었다는 것을 느꼈어요.
또 한국은 애도하지 않는 사회잖아요. 그렇게 애도하지 않고 지나가는 문제를 애도하는 것 또한 소설 쓰는 일일 것 같아요. 다만 제가 의식적으로 그렇게 쓴다기보다는요. 무의식적으로 애도의 과정 안에서 글을 써왔다고 생각해요.
뒤표지에 실린 “따뜻한 곳보다는 차가운 곳으로, 웃음이 있는 곳보다는 눈물이 있는 곳으로, 함께인 곳보다는 홀로인 곳으로, 충만한 곳보다는 메마른 곳으로 힘껏 나아갈 수 있기를.”(19쪽)라는 문장은 책을 건네는 마음이었는데요. 어떤 사람을 바라보고 쓰신 문장인가요?
내가 쓴 글을 읽으면서 사람들이 덜 외로워졌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항상 가장 컸어요. 내 글이 미약하고, 누군가를 크게 도와주지 못한다 하더라도 읽는 순간만큼은 덜 외로워질 수 있기를, 하고요. 외롭고, 자신의 고통이 정당하지 않다고 생각하거나 자기의 외로움이 나쁘다고 생각하거나 자신이 가지고 있는 슬픔을 혐오스럽다고 느끼는, 그렇게 자기와 화해하지 못하고 마음이 힘드신 분들에게 나도 그래요, 하면서 닿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어요.

꾸준하게 쓰겠다는 각오
이 질문을 꼭 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두 번째 산문을 쓴다면 『백지 앞에서』와 어떻게 다를까, 하고요. 첫 산문을 내면서 가진 떨림, 타인의 얼굴이 가까이에 있는 느낌이 어떻게 다음으로 연결될지, 혹은 달라질지 궁금해요.
할 말을 단순하고 투명하게 하자는 생각은 그대로일 것 같고요. 내용이라면요. 제가 지금 고양이를 보내고 있어요. 앞으로 보낼 일들만 남았거든요. 또 할머니도 살아 계시지만 언젠가 돌아가실 거고요. 어머니, 아버지도 나이가 많으시니까요. 내가 사랑하는 존재들이 아프고 죽을 일이 남아 있는 거예요. 그런 것을 경험하겠구나, 생각하면 엄청 겁에 질리게 되는데요. 이것은 도무지 피할 수 없는, 사람이라면 겪어야 할 일이잖아요. 아마도 제 삶의 몇 년 동안은 상실이라는 것이 큰 주제가 될 것 같아요. 상상하는 상실과 실제로 겪는 것은 전혀 다른 거라는 것. 그에 대해 아직 잘 알지는 못하지만 앞으로 느끼게 될 테니까요. 그런 부분을 외면하지 말고, 회피하지 말고 그대로 통과하려고 해요. 다시 산문을 쓰게 된다면 그러한 주제로 쓰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어요.
‘잘 애도하기’를 생각하면 언제나 많은 고민이 뒤따르는 것 같아요.
맞아요. 지금은 살아있는 한 최종적 애도라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수용하고, 애도란 고통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생각하려고 해요. 이 고통은 끝까지 죽을 때까지 갈 거야, 그게 사랑의 결과라면 그럴 수밖에 없어, 라고 받아들이는 거죠. 그럼에도 슬프면 그저 슬퍼하고, 눈물이 나면 울자 생각하는 게 지금 제 마음 같아요. 전에는 왜 그런 거 가지고 울어, 왜 그런 거 가지고 슬퍼해, 이런 얘기를 너무 많이 들었어요. 그게 나쁜 일이라고 교육받았던 거죠. 하지만 그 마음을 회피한 결과가 자신이 아프게 되는 거라면 슬퍼하는 것 또한 용감한 일이라고 지금은 생각해요. 마음껏 슬퍼하고, 할 수 있는 만큼 다 대면하면서 나아가는 것이야말로 정말 용기 있는 일이라고요. 그래야 자신이 병들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언제나 작가님의 글을 기다리는 독자들에게 꼭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들려주세요.
각오를 말씀드리자면요. 제가 빠르게, 많이 쓰는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됐지만요. 하지만 그저 꾸준하게 쓰고 싶다고 많이 생각하고 있어요. 꾸준하게 쓰겠다, 계속 쓰겠다. 이런 결심과 각오를 말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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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지 앞에서
출판사 | 문학동네
신연선
읽고 씁니다. 장편소설 『구름이 겹치면』, 에세이 『하필 책이 좋아서』(공저)를 출간했습니다.
표기식
사진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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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동화물빛
2026.06.11
아픈 사람에게 따뜻한 빛처럼 늘 든든한 힘이 되어주는 글들이어서, 제가 작가님 글이 좋나봐요.
이번 산문집도 그런면에서 참 좋아요. 소설속 인물들 감정이 어떻게 탄생했는지 되돌아 볼 수 있어 좋았어요.
노토스
2026.06.09
독자로서 가장 좋아하는 분이예요 응원하고 또 응원하며 기다릴게요.
muzmania
2026.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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