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살해당한 언니가 남긴 여섯 살 아이를 집에 들인 뒤, 소설가 커플의 일상에는 ‘사고’로 처리된 죽음들이 하나둘 스며든다. 아이의 정체를 좇을수록 그들은 조선의 도참 비서 『진군비기』, ‘산군’을 봉인하려 한 국무 ‘계림’, 불멸을 탐하는 무력(巫力)의 계보에 다다르게 되고, 병오년에 다시 열리는 의암산의 굿판 한가운데로 끌려 들어간다.
드디어 신작 『산군: 당산나무 기담』이 세상에 나왔습니다. 이번 작품을 한 문장으로 소개해주신다면요?
한 문장으로 소개하자면 ‘오컬트 연작 소설로 성공을 이룬 여성 작가의 남자친구인 화자(정찬유)가 저주받은 쌍둥이 언니의 어린 아들을 양육하게 된 후, 주변에서 일어나는 흉사를 지켜보며 옛 예언서 『진군비기』에 언급된 천지개벽의 신 산군의 재림을 의심하는 이야기’입니다.
『산군: 당산나무 기담』은 박해로표 섭주(懾州) 유니버스의 절정판이 될 작품입니다. 섭주는 포크너의 요크나파토파, 러브크래프트의 아캄, 스티븐 킹의 캐슬록처럼 모든 박해로 소설의 활동 무대가 되는 가상의 소도시입니다. 저는 장편 데뷔작 『살: 피할 수 없는 상갓집의 저주』가 『상문살』이란 전자책으로 먼저 선을 보인 2013년부터 모든 공간 배경이 섭주인 오컬트 소설, 코스믹 호러 소설만 써왔습니다. 지옥을 벗어나도 지옥, 산을 넘어도 산이라는 중첩된 악몽을 선사하기 위함인데 실제로 우리가 사는 세상이 그러하다는 은유이기도 합니다. 섭주는 작은 군(郡)에 불과하지만 작가의 상상력은 우주에 버금가도록 확장됩니다. 그런 만큼 『산군: 당산나무 기담』은 새로운 오컬트 소설에 목마른 독자님을 위해 열과 성을 다해 만든 작품입니다. 지금까지 쓴 전작을 다 합친 것보다도 완성도가 뛰어나다고 자부하니, 유행에 휩쓸리지 않는 원조 K-오컬트 작가의 최신작을 믿고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작품의 모티프가 된 강렬한 계기가 있으셨다고요. 작가의 말에 언급된 ‘산불’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2025년 3월이었습니다. 의성에서 시작되어 눈 깜빡할 사이에 안동을 지나 청송을 거쳐 영덕까지 번진 괴물 산불의 현장에 저와 동료들이 있었습니다. 예고도 없이 당한 일이었고 힘을 모으지 않았으면 어떤 비극이 초래될지 모를 무서운 시간이었습니다. 차량 이동 시, 바람이 한 번만 방향을 바꿔도 죽을 수도 있을 상황이 있었습니다. 오염된 세상에서 믿고 의지할 수 있었던 자연이 사실은 얼마나 인정사정없는 조물(造物)인지를 절실히 느꼈고, 오늘이라도 불쑥 찾아올 수 있는 게 죽음이라는 실증적 충격에 한동안 정신을 놓고 살았습니다. ‘만물의 영장’이 인간이 아니라 ‘만물의 영장 집행’ 앞에서 인간은 무력하다는 깨달음이었죠. 이 자연의 복수가 사실은 신의 벌이 아닐까 하는 『산군: 당산나무 기담』의 모티프는 심신을 회복한 후에 떠올릴 수 있었습니다. 적절한 소설적 형상화를 위해 『오멘』 풍의 악마 아이 설정을 가져와 제가 겪은 느낌을 반영했습니다.
소설 전반에 흐르는 탐미적이고 기괴한 미장센이 인상적입니다. 혹시 집필에 영감을 준 작품이나 음악이 있나요?
그림도 있고 음악도 있습니다. 마르크 샤갈의 캔버스에는 연인, 천사, 중력의 초월, 날개 달린 물고기, 산불, 거대한 닭, 악기 다루는 염소, 옹기종기 모인 집 같은 온갖 어울리지 않는 이미지들이 조합됩니다. 설명되지 않는 논리와 입증할 수 없는 당위성은 마치 우리가 꾸는 꿈속 같은 정경으로 가득합니다. 『산군: 당산나무 기담』 역시 우리가 눈을 뜨고 있는 현실에서 꾸는 한 편의 어두운 꿈이라고도 볼 수 있는데, 제가 이 장대한 꿈을 실천에 옮길 수 있었던 건 샤갈의 그림에서 얻은 영감 덕분입니다.
소설 창작에 도움이 되어 1960, 1970, 1980년대 이탈리아 영화음악가들의 음악을 즐겨 들은 지 오래됩니다. 가끔 어떻게 하면 상상력이 풍부한 소설을 쓸 수 있느냐는 질문을 받는데, 글쓰기의 기본기만 익히면 가급적 중구난방인 작법서들을 찾아 헤매지 말고 영화음악을 많이 들으라고 권합니다. 영화감독의 이미지네이션을 위해 공헌된 수많은 영화음악 중에는 자신의 소설에 꼭 어울리는 음악이 있습니다. ‘자신의 작품을 위해 만든 음악’이라 생각하며 반복해 듣다 보면 상상의 문이 저절로 열립니다. 특히 이탈리아 영화 음악은 이성과 감성의 분배 면에서 자극의 원천이 되고 있습니다.
『산군: 당산나무 기담』을 시작했을 때, 주요 캐릭터에게 ‘저절로 떠오르는’ 테마곡을 하나씩 선정한 후 집필에 임했습니다. 이렇게 하면 서두부터 결말까지 캐릭터가 지닌 일관성이 잘 유지됩니다. 형상의 테마로 야무지고 애처로운 스텔비오 치프리아니의 <Fulltime Piano>를, 서영과 규영의 테마에는 아름다움과 비극이 공존하는 카를로 사비나의 <Lisa and the Devil>을, 기정심의 테마에는 신들린 쿵쾅거림 이후 인간적인 한계마저 엿보이는 듯한 니코 피덴코의 <A Dive into the Past>를, 그리고 주인공 찬유의 테마로는 속세의 지옥과 인간의 고난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보이체크 킬라르와 조수미의 <Vocalise>를 입혔습니다. 작품 구상 때 수백 번씩 들은 이 음악들은 막힘이 있을 때마다 해결책을 제시해 글쓰기를 수월하게 해주었습니다. 소설을 다 읽고 유튜브 등을 통해 음악을 직접 들어보신다면 왜 이 음악들을 선택했는지 이해가 가실 거라 믿습니다.
여섯 살 아이 ‘형상’과 주인공 ‘찬유’의 관계가 소설이 전개되며 급격한 전환점을 맞이합니다. 이들의 관계성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요?
형상은 존재 자체로 신의 한 줄기이자 신의 음성을 전하는 메신저입니다. 스포일러가 있으니 저를 강제로 앉혀 주리를 틀어도 더 이상은 누설할 수 없습니다. 둘의 관계를 신과 인간의 관계, 혹은 인간과 신의 관계라고 거시안적으로 생각해주십시오. 모르고 보셔야 재미있으니까요.
서양에는 형상이 같은 아동을 주인공으로 다룬 오컬트 고전이 꽤 있습니다. 아이라 레빈의 『로즈메리의 아기』는 사탄의 탄생을 다루며 데이비드 셀처의 『오멘』은 본색을 드러내는 성장기의 사탄을 그리고 있습니다. 저 역시 두 작품처럼 『산군: 당산나무 기담』을 쓸 수도 있었으나 그렇게 나아가지 않았습니다. 저의 의도는 더 자극적인 공포소설을 내놓는 것이 아니라, 한국식 오컬트 포크 호러의 황홀경을 독자 여러분께 체험케 하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강력한 빌런으로 등장하는 무속 집단 ‘계림’의 실체가 아주 흥미롭습니다. 기존 오컬트에 등장해왔던 무당의 익숙한 모습과는 궤를 달리하는데요.
일단 장르 소설의 법칙에 충실하느라 보다 극단적이고 드라마틱한 무력(巫力) 집단 ‘계림’을 꾸며봤습니다. 신의 아들 산군과 대치하는 상대가 동네 점치는 무당이 될 순 없으니까요. 그래서 계림은 월드컵 열기의 에너지를 힘으로 비축할 수도 있고, 평범한 시민들이 가득한 지하철도 전복시키고, 목적을 위해 집단으로 흉살을 날리기도 합니다.
현실을 반영하는 매체 중 하나가 소설입니다. 최대한 근접한 상상력으로 현실 같은 간접 체험을 그리는 것이지요. 병오년 2026년까지 지내오면서 우리는 소설보다 더 믿기 어려운 현실을 여기저기서 접했습니다. 그 같은 현실의 언저리에 무속인이 자리할 때가 종종 있었습니다. 나쁜 무력(巫力)은 무력(武力)을 불러오고 권력(權力)과 금력(金力)을 지향하기 마련입니다.
그래도 희망적인 건 실제로는 좋은 무속인이 더 많다는 사실입니다. 제가 여태껏 만나본 무속 업계 종사자는 삶이라는 어두운 길을 걸어가는 나그네를 위해 신에게서 등불을 가져와 빌려주는 분들이었습니다. 이 등불을 갖고 맹신할 것인지, 무시할 것인지, 스스로 안목을 갖출지는 나그네의 몫입니다. 길을 찾지 못했다고 등불을 빌려준 대리인을 탓하면 안 됩니다.
초반에는 미스터리 호러의 형식을 띠다가, 십이지신 같은 역학적인 요소들이 등장하고 세조 왕조로 시점이 이동하면서 독자를 작품 속으로 정신없이 빨려 들어가게 만듭니다. 후반부터는 무속 오컬트로 사정없이 휘몰아치고요. 장르의 한계를 깨부순 느낌입니다.
그게 바로 미스터리 스릴러+토속 포크 호러+가공의 역사설화를 기반으로 하는 박해로 소설의 하이브리드 집필 기법입니다. 한계를 깨부쉈다기보다는 그간 일관해오던 작법을 최고로 끌어올렸다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제 전작 대부분이 미스터리 호러 베이스에 전통 토속 요소가 더해지고 창작 민담 설화가 ‘책 속의 책’으로 들어있습니다. 이는 오컬트 포크 호러를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대작가 아서 매켄(Arthur Machen)과 몬터규 로즈 제임스(Montague Rhodes James)에게서 받은 영향을 저만의 방식으로 분석 연구해 로컬라이징화한 것입니다. 부단한 노력은 작게나마 인정을 받아 많은 독자님들이 ‘이번에도 박해로가 박해로 했다’ ‘대체불가 작가’ ‘장르 자체가 박해로’라는 식으로 박해로만의 ‘인감증명서 소설’을 인정해주셨습니다.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 그 어느 작품보다 『산군: 당산나무 기담』에 필살의 노력을 쏟아부은 건 사실입니다.
마지막으로, 이 작품과 함께 오컬트의 여정을 떠날 독자들에게 추리의 열쇠가 될 작은 선물 하나를 주신다면요?
『산군: 당산나무 기담』을 읽을 때 절대 뒤를 돌아보지 마십시오. 당산나무를 닮은 천년 고목이 한 그루 서 있을 텐데 돌아볼 때마다 가지의 방향이 바뀐다는 걸 아실 테니까요. 그러나 너무 긴장하진 마십시오. 이 책은 어둠의 진수를 다루고 있으나 궁극적으로는 독자님을 밝은 지혜로 인도할 것입니다. 박해로와 『산군: 당산나무 기담』이 지키고 있는 한 이상기후의 폭염도 감히 독자님을 업신여기지 못합니다. 우주는 헤아리기 어렵지만 늘 신비로운데 독자님을 향한 제 마음도 바로 그와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책이 나오기까지의 어려움은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이제 독자님을 만나러 가게 됐으니 예나 지금이나 보잘것없는 이 작가에겐 감동적인 순간입니다.
* AI 학습 데이터 활용 금지
출판사 제공
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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