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형의 나를 통과한 여자들
[김선형 칼럼] 당신의 눈이었던 진주 – 실비아 플라스 | 예스24
실비아 플라스는 싫어도 빛나는 작가가 될 운명이었다. 반드시 그래야만 했다.
글: 김선형
2026.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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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형 번역가가 그린 실비아 플라스 초상화 ⓒ 김선형

 


"날마다 색색깔의 구슬이 꿰어진 한 줄 목걸이처럼 살고 싶어. 미래에 타지마할 같은 대건축물을 짓겠다고 악다구니같이 노력하며 그 설계도에 맞추려고 현재를 잔인하게 조각조각 찢어버리고 싶지는 않아." (『실비아 플라스의 일기』, 209쪽)



『실비아 플라스의 일기』를 번역하는 내내 그를 미워했다. 모든 걸 갖고 있으면서 하나도 가진 게 없다며 끝없이, 지독하게, 자기 스스로 채근하고 고문하는 그가 미웠다. 전부를 원하는 듯 보이지만 실상 진짜로 원하는 바를 하나도 모르는 그가 미웠다. 오로지 자기 자신밖에 안중에 없으면서 바로 그 죄를 물어 누구보다 가혹하게 스스로를 벌하는 그가 미웠다.

 

다음 학기에는 수석을 하겠다고 장담하면서 자기한테는 “재능도 천재성도” 없다고 자학하는 그가 미웠다. 완벽한 의사 남편과 세계 최고의 대학을 두고 고민하고, “엘리자베스 테일러”와 “꼬마 헤밍웨이”라는 양립 불능의 롤 모델을 세워놓고 자기를 찢어발기는 그가 미웠다. 비련의 주인공이 되었다가 팜파탈이 되었다가, 자기만 읽는 일기장 속에서도 끝없이 가면을 바꿔 쓰는 비대한 자아가 미웠다. “나 이외의 아무도 사랑하지 않는”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이고 시기심 덩어리에 상상력도 없는” 그 여자가, 노골적으로 “남자들을 질시”하는 그 여자가, “원고를 출판하면 나 자신을 정당화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에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으리만큼 집착하지만 막상 무도회와 남자 생각을 떨칠 수 없어 괴로워하는 그 여자가, 사랑을 받고 사랑하고 싶다는 절박한 갈망과 삶을 바쳐 글을 써서 반드시 작가가 되어야만 한다는 지독한 갈망 사이에서, 짧은 삶의 모든 순간 시시각각 갈가리 찢기던 아름답고 천재적인 그 여자가, 세상 그 누구보다 자기 자신을 가장 미워하던 그 여자가, 정말이지 얼마나 미웠는지 모른다. 

 

물론 그때 내가 정말로 미워했던 건 나 자신이었다. 박사논문을 쓰고 아이를 키우고 생활비를 벌고 강의를 하고 번역을 했지만, 사실은 아침에 제시간에 일어나고 집안을 청소하는 간단한 일조차 버거워 물이 코밑까지 차오른 듯 허덕거리며 하루하루 살고 있었다. 

 

그때 나의 세계에 횡행하던 이야기들은 남편의 와이셔츠를 반듯하게 다려주는 게 사랑이라고 내게 말했다. 나는 그를 사랑했고, 그래서 정말로 그의 와이셔츠를 반듯하고 예쁘게 다려주고 싶었다. 강의를 듣고 과제를 하다 구겨진 셔츠가 쌓여가면, 나는 사랑에 실패하고 일조차 제대로 못하는 나의 이기적이고 한심한 나의 무능을 질책했다. 내 아이를 내 어머니의 손에 맡기고 공부를 하러 나갔다가, 하루 종일 내가 온 힘을 다해 사랑해야만 하는 두 사람을 다 버리고 나왔다는 죄책감에 시달리다 논문 한 줄 쓰지 못하고 터덜터덜 집에 돌아오던 날들이 있었다. 그때 우리의 세계에서 횡행하던 이야기들은 여자가 사회에서 성공하고 싶다면 집안에서도 바깥에서도 슈퍼우먼이 되어야 한다고, 그 불가능한 미션에 실패한다면 성공할 자격이 없는 여자의 책임이라고 귓전에 속삭였다.

 

실비아 플라스는 일기에서 자책했다. “자존심과 야망”이라니, 그 얼마나 “비열하고 이기적”인 감정인가, 라고. 나는 그를 이해했다. 그가 쓴 모든 문장을 이해했다. 이토록 잘 이해하는 내가 미웠고, 그래서 그를 미워했다. 그처럼 나도 이기적인 여자가 될 수밖에 없어서, 칭얼거리지 않고 의젓하게 내 할 일을 다 잘 해내는 여자가 될 수가 없어서, 그래서 내가 미웠다. 박사논문을 완성하는 일은 한 해 두해 미뤄져갔고, 몸속에는 분노가 쌓여갔다. 그 분노는 대체로 게으르고 산만하고 자기만 아는 나 자신을 향한 것이었다. 축적된 자기혐오의 힘으로 나는 한 줄 한 줄 옮기고 있던 플라스를 미워했다. 

 

하지만 물론, 한편으로는 속절없이 매혹당하고 있었다. 첫줄부터 끝줄까지 나는 그를 아프게 연민했다. 첫 문장부터, 그는 이미 자신이 죽도록 열망했던 모든 것이었다. 작가이고 천재이고 시인이었다. “태양이 하얀 안개 속에 핏빛의 달걀노른자처럼 걸려 있는” “잿빛의 런던”에 처음 도착하던 그날, 그날의 분위기를 묘사하는 소름끼치게 감각적인 그 필력, 그 마술 같은 필력에 번역하는 내내 반쯤 넋을 잃고 홀려 있었다. 로젠버그 부부의 처형이 신문의 헤드라인을 모두 장식하던 날, 흡사 자기가 전기의자에 앉은 듯 비명소리와 타들어가는 살점의 냄새까지 맡아내던 예민한 공감각이, 내 코끝에마저 여운을 남겼다. 나 또한 그렇게, 온몸의 살갗이 반투명하게 얇아진 듯 타인의 공포와 고통을 투과시킬 수밖에 없는 순간을 알았다. 턱없는 이기주의자라 호명된 우리에겐 이따금 폭력을 당하는 타인의 몸에 본능적으로, 주체할 수 없이 공감해야만 하는 불가해한 순간들이 찾아오곤 했다. 청천벽력 같은 그 순간들은 이따금 광기에 근접했다. 탁월한 그의 문장들은 그런 기막힌 순간을 불가항력으로 포착해 비춘다. 이 날카롭고 뜨겁고 입체적인 공감의 상상력이 자기연민에 젖은 사춘기적 자아의 벽을 뚫고나오는 시점이 오면, 그 미숙한 영혼이 문득 훌쩍 성장해 세계와 공명하는 순간이 오면, 그는 싫어도 빛나는 작가가 될 운명이었다. 반드시 그래야만 했다. 그 “본성의 핵심적 욕구”가 “언어로 표현해야 하는 욕구”라는 건 자명했다. 세상 누구보다 그 자신이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시점은, 그 순간은, 고통스럽게 지연되었다. 그는 사랑과 결혼을 통해 “불가피한 식탁의 영토와 의자와 양배추의 왕국”을 넘어 남자와 둘이 “함께 천사가 될” 수도 있다고 믿으려 애썼고, 기어이 그래야만 한다는, 여자를 겨냥한 세계의 강박에서 끝내 자유롭지 못했다. 오로지 사랑할 줄 아는 존재가 되려고 악다구니를 썼지만 기실 그의 깊은 꿈속에서 식탁은 상상력을 목 졸라 죽이고, 아기는 악성종양과 뒤섞인다. 테드 휴스는 작가와 여자라는 양립 불가능한 두 개의 꿈을 하나로 이어주는 가교처럼 보였으리라. 하지만 든든해 보였던 그 다리는 동요 속 런던브리지처럼 허무하게 무너져버린다. 대재앙의 여파로 터져버린 절망과 증오가, 불길 속에 부활해 남자들을 공기처럼 잡아먹는 레이디 라자루스의 분노로 밀어닥친다.

 

그 민감한 영혼을 내파한 건, 그 세계를 장악한 이야기들이었다. 그 불안과 두려움, 자기혐오와 자기애는 핵심적인 자기 앎의 부재에서 온다. 자기를 설명할 이야기들이 실비아 플라스에게는, 또 그때의 나에게는 없었다. 먼저 글 쓰는 여자의 야망을 배서하는 이야기가 그때는 없었다. 그 이야기를 새로 쓰기 위해서는, 야망을 품을 수밖에 없었던 우리가 자기 자신을 비난하는 내면의 채찍질을 멈추기 위해서는, 페미니즘이 필요했다. 또한 우리가 자학에 가까운 자기비난과 자기검열을 멈추고 자기혐오와 자기애의 감옥에서 탈출하기 위해서는, 그래서 세계와 연결되기 위해서는, 조용한 고기능 신경다양인이라는 진단을 선사해 줄 현대의학과 뇌과학의 발전이 필요했다. 

 

『실비아 플라스의 일기』가 세상에 나온 건 42년 전의 일이다. 내가 그 일기를 번역한 건 정확히 22년 전의 일이다. 그 사이에 소수자들을 향한 과학과 인문학의 시선이 기존의 이야기들의 폭압성을 읽어냈고 끝내 다른 이야기들을 써냈고, 그 새로운 이야기들이 형성한 전선들은 자기 앎에 도달할 길 없이 온갖 세상의 이야기들에 갈래갈래 찢겨 혼자 죽어가던 무수한 야심찬 여자들에게, 무수한 신경다양인들에게, 탈출구를 열어주었다. 



어쩌면, 어쩌면 그 일기로는 플라스를 결코 알 수 없다는 생각이 든 건, 한참 후의 일이다. 사후에 일기를 편집한 사람은 남편 테드 휴스였다. 편집 과정에서 여러 이유로 원고의 3분의 2 이상이 생략되었다고 그는 말했다. 무엇보다도, 마지막 일기 한 권을 파기했다고 자백했다. 휴스 본인이 ‘참된 자아가 언어를 찾아 말하기 시작하는’ ‘눈부신 사건’이라고 일컬었던 실비아 플라스 최후의 걸작들이 드디어 쓰이던 결정적인 시기의 일기가 영원히 사라졌다. 자식들이 읽지 않기를 바랐고, ‘망각이 생존의 조건’이었다는 게 테드 휴스의 변이었다. 

 

일기의 문장들이 나를 통과한 이래로 한 가지 의문이 마음속에 오래오래 버석버석 걸려 사라지지 않았다. 실비아 플라스는 테드 휴스를 파티에서 처음 만난 날, 서로 무섭게 이끌린 나머지 춤을 추다가 격렬하게 키스하기 시작했고 끝내는 휴스의 뺨을 물어뜯어 잇자국을 남겼다고 일기에 썼다. 이 날 플라스는 분명 “내 심장의 붉은빛을 다 바쳐 사랑했던 빨간 스카프”를 잃어버렸다고 썼다. 하지만 테드 휴스는 플라스의 사망 이후 35년이 지난 1998년 그와의 삶과 사랑을 회고한 시집 『생일편지』를 출간했고, 이 스카프의 색깔을 “파란색”이었다고 수정했다. 어째서 그는 분명히 아내가 “심장의 붉은빛”이라 명시한 스카프의 색을 “파란색”으로 고쳐 쓰고 싶었을까? 아내의 기록이, 처음부터 끝까지 믿지 못할 허구라고 말하고 싶었던 걸까. 이미 자신의 명성을 넘어선 아내의 글을 끝까지 편집하고 싶었던 걸까. 

 

나는 죽은 아내의 일기에서 확정한 그 스카프의 색깔을 자기가 죽기 전에 기어이 고쳐 쓰고 싶었던 테드 휴스의 욕구를 오래, 아주 오래, 20년이 넘도록 잊지 않고 가끔 생각하곤 했다. 어쩌면, 어쩌면, 그는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독자가 실비아 플라스를 미워하길 바랐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어쩌면, 통제 불능의 핏빛으로 분출하는 아내의 진실을 파랗게 구획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이 모든 문장에서 방점은 ‘모른다’에 있다. 나는 그때도, 또 지금도, ‘모른다.’ 

 

얼마 전, 실비아 플라스의 초상화를 그리고 싶어졌을 때, 그의 글을 다시 읽고 그의 시를 다시 읽으며 그의 사진을 다시 들여다보았다. 핀업 걸처럼 새하얀 치아로 환하게 웃고 있는 그 여자의 목에 걸린 진주목걸이가 갑자기 너무나 슬퍼보였다. 그 여자를 옭아맨 세계의 이야기들이 알알이 응축된 족쇄처럼 보였다. 이 일기의 글줄들로 감히 실비아 플라스를 안다 여긴 내가 잘못이었다. 전부 다 틀려먹었다. 나의 초상화는 빛바랜 흑백사진처럼 글레이징을 썼고 균열하고 폭발하는 심장의 핏빛과 편집하고 구획하려 분투하는 파란 선을 오래 생각하는 데서 시작되었다. 실비아 플라스는 언제나 사력을 다해 웃고 있었다. 잡으려 하면 잡을 수 없이 바스러져 부서지고 슬프고 아름답게, 섬뜩하게 흩어진다. 




* AI 학습 데이터 활용 금지

1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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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imei

2026.07.21

실비아 플라스의 일기를 읽었습니다. 그 땐 김선형 선생님 번역인 줄 몰랐어요. 그녀의 고민과 방황과 아름다움이 어쩐지 너무 먼 이야기같았는데 벨자를 읽고 나서야 안타깝게 떠난 그녀가 그리워졌어요. 선생님의 글을 통해 지나쳤던 장면들이 떠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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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비아 플라스의 일기

<실비아 플라스> 저/<김선형> 역

출판사 | 문예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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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형

번역가. 영어권 문학을 연구, 강의, 번역한다. 메리 셸리, 수전 손택, 토니 모리슨, 비비언 고닉, 실비아 플라스 등 다양한 작가들의 작품을 번역했으며 2010년 유영번역상을 수상했다. 쓴 책으로 『디어 제인 오스틴: 젊은 소설가의 초상』과 『나만 아는 단어』(공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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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비아 플라스

1932년 10월 27일 매사추세츠주 보스턴에서 태어나 스미스대학에서 공부했다. 1955년 풀브라이트 장학금을 받아 영국 케임브리지대학교에서 유학했다. 촉망받는 시인 테드 휴스와 1956년 결혼하고 1957년부터 이 년 동안 모교인 스미스대학에서 영문학 강사로 재직했다. 생전에 시집 『거상The Colossus』(1960)과 소설 『벨 자The Bell Jar』(1963)를 펴냈고, 1963년 2월 11일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1981년 출간된 『시 전집The Collected Poems』이 퓰리처상(시 부문)을 수상했다. 시 부문에서 작가 사후에 출간된 책이 퓰리처 상을 수상한 것은 처음이며 지금까지 유일하다. 『에어리얼Ariel』은 남편 테드 휴스의 편집으로 1965년 출간되어 전 세계적 찬사를 받았지만, 동시에 작가의 본래 의도와 달리 일부 시가 가감되고 시의 수록 순서가 바뀌어 오랜 비난을 받아왔다. 이 판본은 실비아 플라스가 직접 선별하고 배열한 원고를 복원한 것으로, 1963년 실비아가 세상을 떠나기 전 검은색 스프링 바인더에 남긴 40편의 시 형태에 기초한다. 실비아 플라스의 『에어리얼』에 묶인 시 대부분은 1962년 가을 결혼생활의 긴장감이 극도에 달하던 시기에 쓰였다. 초고는 단번에 쏟아져 나왔고 이후 한 편씩 신중하게 퇴고해, 타이핑된 원고를 ‘「에어리얼」과 그 외 시들’이라는 제목으로 묶었다. 표제시의 제목 ‘에어리얼’은 실비아 플라스가 좋아하던 말의 이름에서 가져온 것으로, 실비아 플라스는 이 시를 자신의 서른 번째 생일에 완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