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부터 한 달에 한 번 세계문학 속 명문장을 소개하는 연재를 시작한 민음사 해외문학 편집자 박혜진입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문장 수집을 참 좋아했어요. 시작은 초등학교 3,4학년 때 아버지가 처음 선물해 주신 손바닥만 한 속담집이었어요. 평일에 타지에서 근무하시던 아버지가 금요일 밤 기차역에서 기차를 기다리다 사 오신 책이었는데요. 문장과 그림이 같이 있는 어린이 속담집이었어요.
“겸손도 지나치면 거만이 된다” 같은 글귀 아래 덩치가 커다란 거인이 자기보다 훨씬 체구가 작은 사람에게 ‘저처럼 연약한 사람이 어떻게…….’ 하는 익살스러운 그림이 그려져 있었죠.
저는 무언가 깨달은 듯 무릎을 치면서 베껴 쓴 종이를 책상 앞에 붙였어요. 그렇게 속담, 격언, 에세이, 소설, 교과서, 책에 둘러져 있던 띠지 문구까지……. 문제는 점점 감동의 역치가 낮아져서 어떤 문장이든 쉽게 감동받았고, 금세 수집한 문장들이 천장까지 닿았어요. 책상 위에 올라가서 까치발을 들고 메모를 붙이다가 엄마에게 무당집이냐고 혼이 난 적도 있었죠. 그래도 꿋꿋이 옆 벽으로 옮겨가서 행거 위에도 명문장을 붙이던, 저에게는 집요한 구석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어른이 되고(?) 출판사에 입사해 매해 세계문학 일력을 만드는 일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매일 한 문장씩 고전 속 명문장을 읽는다!’라는 콘셉트로 365개의 문장을 소개하는 일이었어요. 늘 제가 담당자였던 것은 아니었고요. 그래도 해외문학 팀에서 가장 자주 담당자가 되었던 것 같아요. 이 년 전부터는 일력이 애플리케이션으로도 출시되어 정말 많은 분들께 사랑을 받으면서 보람도 커졌지요.
그런데 문제는 이 명문장을 새롭게 수집하기가 점점 어려워진다는 것이에요. 왜냐하면 책을 읽다가 밑줄 쳐 둔 문장을 그대로 가져와 달력에 넣어 보면, 분명히 명문장이었는데, 명문장이 아닌 게 되었거든요……? 소설 속에서 인물들의 인생역정이 비로소 그 의미를 드러내며 한 문장으로 모이는 순간, 그러니까 맥락 속에서 너무나 감동적이었던 대목은 그 부분만 뚝 떼어 놓고 보면 평범해 보였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독자님들께 이런 말도 자주 들었어요. “일력에 있는 문장이 너무 좋아서 책에서 다시 찾아봤는데, 그냥 지나가는 문장이던데요?”
SNS에 바이럴 되기 위해서는 짧고 강렬하며 감각적인 문장을 찾아야 합니다. 하지만 고전 속 명문장들은 대개 저마다의 맥락 속에서 가장 아름답습니다. 어릴 적 제가 책상 앞에 잔뜩 붙여 두었던 속담이나 격언이 아니라, 문학이기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이 연재를 통해 명문장을 ‘해석’ 하는, 유행에 다소 뒤처지고 살짝 구질구질 하기까지 한 글을 써 보려 해요. 설명해야 하면 이미 명문장이 아닌 게야,라고 말하는 소리가 마음속 어딘가에서 들려오지만요. 한편으로는 어떤 문장이 왜 좋은지를 설명하는 글을 쓴다고 생각하니, 집요하고 이상한 기쁨이 차오릅니다.
자, 자다가 이불킥하며 일어나게 하는 실수담으로 시작해 볼까요? 저는 이 문장만 떠올리면 너무 창피해서 숨고 싶어지는데요.
어느 해 6월 14일 세계문학전집 캘린더
“사랑을 하는 것은 인간으로서 당연한 일이겠지만, 단 인간다운 사랑을 해야 돼요.”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오, 좋다. 요즘 너무 비인간적인 사랑이 많은 것 같아, 뉴스만 봐도 무서워…… 인간적인 사랑을 해야지, 암.”
언젠가 밑줄 쳐두었던 문장을 달력에 옮기면서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인간다운’이라는 말은 오독의 여지없이 긍정적으로(p) 읽혔거든요. 그런데 몇 달 뒤 오랜만에 이 작품을 다시 읽어 보니 내용이 전혀 딴판이었습니다.
이 대목은 작가 괴테의 분신이기도 한 소설 속 화자 ‘나’가 친구에게 편지를 통해 자신의 사랑관을 이야기하는 부분인데요.
“이것 보게! 내가 자네에게 비유를 하나 들어 주지. 그것은 사랑의 경우와 똑같다고 할 수 있다. 젊은 청년이 어떤 아가씨에게 연정을 품고, 날이면 날마다 아침 일찍부터 밤 늦게까지 그녀를 따라다니며, 모든 정력과 재산을 쏟아부으면서, 자기가 그녀를 위해 온몸을 바치고 있음을 줄곧 나타내려 한다고 하자. 그런데 그때 속물 하나가, 즉 어떤 공직에 종사하는 남자가 나타나서 그 젊은이에게 이렇게 말한다고 하자. ‘여보시오, 젊은 양반, 내 말 좀 들어봐요! 사랑을 하는 것은 인간으로서 당연한 일이겠지만, 단 인간다운 사랑을 해야 돼요. 자기의 시간을 둘로 나눠서 한쪽은 일하는 데 쓰고, 다른 한쪽, 즉 쉬는 시간을 여자에게 바치도록 해야지요. 당신의 재산을 헤아려보고 꼭 필요한 경비를 뺀 다음, 나머지를 가지고 여자에게 선물을 하는 것쯤은 나도 말리지 않아요. 그것도 너무 자주 해서는 못 쓰고 여자의 생일이라든가 세례일 같은 날에만 해야지요.’”
여기서 ‘인간답게 사랑한다’라는 것은, 적당하게 사랑한다’ ‘계획적으로 사랑한다’ ‘합리적으로 사랑한다’라는 뜻으로 모든 정력과 재산을 쏟아붓는 화자의 헌신적인 사랑과 대비됩니다.
그래서 그 다음 대목에서 ‘나’는 이렇게 덧붙이지요. “만약에 그 젊은이가 그런 충고에 따른다면 그는 쓸 만한 인물은 될 것이다. 나도 그런 젊은이라면 어떤 영주에게나 직원으로 채용해 달라고 추천하고 싶어진다. 그러나 애인으로서의 그는 그것으로 끝장이다.”
그러니까 ‘인간다운 사랑’은 화자에게는 시시하고, 관습적이며 그래서 가장 비인간적인 사랑인 셈입니다. ‘나’는 이런 세상의 흔하디 흔한 사랑을 반어적으로 표현했던 것이에요. 세상에, 반어법에 속다니! 이런 실수를 하다니!
이 실수를 그해 6월 14일이 지나가기 전에 미리 깨닫고 독자님들의 채찍을 기다리고 있었어요. ‘편집자 님, 이건 그런 뜻이 아니지 않나요?’ 하지만 유월이 다 가도록 단 한 건의 독자문의도 들어오지 않았죠. 오히려 SNS에서 이 문장이 활발하게 바이럴되었어요. 음, 이 문장은 맥락과 무관하게 사랑받고 있구나. 우리 모두 자기 식대로 이 문장을 가졌구나! 그것이 결코 틀리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한편으로는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이 문장의 진면목을 전하지 못했다는 생각 때문이었어요.
이 문장을 제가 좋아하는 이유는 사실 따로 있거든요.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괴테가 스물다섯 살 때 이미 약혼자가 있었던 샤로테 부프라는 여인을 사랑했던 자전적 경험을 녹여 쓴 것인데요. 소설 속 1771년 6월 16일의 편지에 ‘나’가 샤로테를 처음 만난 날과, 사랑해서는 안 될 사람을 사랑하는 슬픔과 기쁨을 자세하게 묘사해 두었어요. 그런데 ‘인간다운 사랑’을 역설하는 이 문장은 샤로테를 만나기 이전인 5월 26일에 쓴 것입니다. 즉 태어나서 한 번도 사랑을 해 본 적 없는 청년이 자신이 추구하는 연애에 대해 일장연설을 하고 있는 것이에요. 얼마나 구체적이고 자신만만한지 이미 그런 사랑을 해 본 것처럼 느껴질 정도예요. (귀엽죠?)
전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이, 아니 쌍방의 사랑을 하고 있지 않은 사람들이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너무나 좋아합니다. 사랑 밖에서 사랑을 발명하는 이들보다 더 사랑에 대해 잘 쓸 수 있는 사람은 없거든요. (사랑에 빠져 있는 연인들에게는 ‘말’이 필요 없으니까요.) 저도 스물다섯 살에 첫 연애를 했는데요. 제 여동생은 스물다섯 살 이전에 제가 미니홈피에 썼던 글들이 단연 최고라고, 그 이후에는 그런 글들을 다시 쓰지 못했다고 놀리듯 얘기합니다. 이십 대 초반의 저는 제 삶의 맥락에서 사랑을 바라보았거든요. 그래서 그때 제가 말했던 사랑은 곧 저이기도 해요.
마찬가지로 1771년 5월 26일, 곧 일생일대의 사랑에 빠질 운명을 모르고 있던 청년 ‘나’의 사랑론은 곧 ‘나’의 인생론 그리고 예술론이기도 합니다. ‘나’는 이날의 편지에서, “사랑하는 벗들이여, 천재의 흐름 양쪽 기슭에는 태연자약한 신사들이 산다.”라고 말하는데요. ‘나’는 신사들이 하는 말은 언제나 합리적이고 그럴듯하지만 이들처럼 ‘닥쳐올 위험’을 미리 대비하는 조심성 있는 사람들은 진짜 예술을 할 수 없다고 역설합니다. 반대로 천재들은 자신을 흔드는 위험에 기꺼이 몸을 던지죠. 네, 청년 괴테 그의 사랑론과 예술론은 놀랍도록 닮아 있습니다.
언제나 가장 비인간적인 사랑에 빠질 준비가 되었던 스물다섯 살의 괴테. 자기 영혼의 양쪽 기슭을 허물고, 둑을 무너뜨릴 연인을 기다렸던 괴테. 그리고 진짜 그런 사랑에 빠졌던 괴테. 어쩌면 우리는 자기가 준비해 놓은 그릇만큼만 사랑을 담을 수 있는 게 아닐까요? 우리 자신이라는 맥락을 뛰어넘어 타인을 사랑하는 것이 가능할까요?
얼마 전 게스트로 출연했던 한 토크쇼에서 ‘시절 인연’을 ‘명문장’에 빗대어 설명한 적이 있습니다. “시절 인연은 불교에서 만남과 헤어짐에 때가 있다는 뜻인데요. 인연이 맺어지고 해소되는 데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으니 마음의 부담을 내려놓으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어쩌면 이것은 명문장과 그것이 속한 맥락의 관계와도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맥락과 동떨어져 있어도 아름다운 문장이 있지만, 대부분의 명문장은 맥락과 합치할 때 가장 아름다워요. 그러니 지금 그 사람과 예전처럼 가깝고 친하지 않더라도 그 사람이 그 시절 내 삶의 맥락에서 완벽했다면, 그것으로 더할 나위 없지 않을까요?”
하지만 솔직한 마음은 조금은 섭섭하기도 합니다. 성숙한 태도를 갖는다고 해서, 섭섭한 마음이 없어지는 건 아닌가 봐요. 이제는 용건 없이 연락할 수 없어서, 큰 경조사는 알 수 있지만 감기가 걸리고 낫는 것은 알 수 없어서, 다른 사람들이 그 친구 안부를 물어 올 때 나도 아는 게 없어서…… 하지만 우리가 맥락에서 벗어난 옛 친구를 여전히 나만의 방식으로 기억하고 좋아하듯, 고전 속 명문장 역시 내 마음대로 오독하고 품는 그 과정 자체가 즐거운 게 아닌지요.
당신이 품은 명문장은 무엇인가요? 그 문장은 당신 안에서 어떻게 오해되고 있나요?
* AI 학습 데이터 활용 금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출판사 | 민음사
박혜진 편집자
민음사 해외문학 편집자. 책을 기획, 편집하고 소개하는 일을 합니다. 유튜브 채널 '민음사TV'에서 '세문전 독서클럽'을 진행하고 있으며 SBS 라디오 '책하고 놀자' 속 작은 코너 '박혜진의 클래식은 영원하다'와 팟캐스트 '리딩 케미스트리' 속 작은 코너 '박혜진의 고전 덕질'에 고정 출연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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