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리딩런
[리딩런] 기담의 집에 당신을 초대합니다
성해나 작가가 공포를 이기고 기담을 읽고 쓰려는 이들을 위한 세 권의 책을 소개합니다.
글: 성해나
2026.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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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쓰는 만큼 달린다!” 리딩런 시즌2는 책을 읽은 시간과 도서 리뷰가 독서 거리로 환산되어 기부금이 적립되는 독서 캠페인입니다.(여기서 참여 가능!) 여름은 기담이 제철인 계절이죠. 성해나 작가의 『인비인』을 읽고 으슥하고 축축한 기담의 세계에 좀 더 발들이고 싶어지셨나요? 성해나 작가가 읽고 쓰는 이들과 함께 나누고 싶은 매운맛 기담 세 권을 소개합니다.

 

 

봉준호 감독의 인터뷰 중 유독 인상 깊었던 말이 있다.

 

“비디오 가게에 가도 액션, 코미디 이렇게 나뉘어 있잖아요. 저는 이 테이프를 어디에 꽂아야 할지 모르는 그런 영화를 만들고 싶어요.”

 

나 역시 내 소설이 ‘기담’, ‘진짜/가짜’, ‘시대물’로 한정되기보다는 독자의 시선에 따라 저마다 다른 카테고리로 남길 바라는 바이다.


그런 욕심에서 내키는 대로 ‘기담 (아닌) 소설’을 꼽아 보았다. 혹자는 ‘이게 기담이라고?’ 의아해할지 모르지만, 어떤 소설이 하나의 수식으로만 고정되는 것은 너무 시시하고, 작가에게도 미안한 일이기에 ‘이것도 기담’이라 적극적으로 표명해 보고자 한다. 

 

공포란 상상력을 가진 인간의 특별한 유산이자 자산이다. 상상할 수 있기에 인간은 늘 더 멀리 나아가고, 다채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내며, 수천 년에 걸쳐 그러한 서사에 현혹되어 왔다.

 

한때는 나를 겁 없는 사람이라 여겼는데, 온갖 괴담과 기담, 호러물에, 고어물까지 접하다 보니 나만 한 겁쟁이가 없다고 깨닫게 되었다.(어둠 속에서 무언가 튀어나오지 않을까, 불을 켜고 잠든 지 꽤 되었다.)


겁쟁이인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건 귀신도, 괴수도 아닌 인간이다. 우리를 공포에 빠트리는 숱한 서사를 써낸 것도 인간이며, 감히 따라 할 수조차 없는 발칙하고도 괴상한 일을 매 순간 벌이는 것도 인간이다.

 

인간만큼 공포를 자아내는 존재가 있을까, 곱씹으며 공포를 이기며 기담 정독에 도전하려는 혹은 쓰려 하는 이들을 위한 세 권의 책을 선별했다.


『지옥변』

아쿠타카와 류노스케 저/양윤옥 역 | 시공사


기담의 ‘담(談)’은 ‘이야기하다’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이를 말미암으면 기담이란 기이하고 괴상한 하나의 ‘이야기’일 테고, ‘서사’란 기담에 필연적일 것이다. 

 

아쿠타카와 류노스케는 대단한 이야기꾼이자 이상야릇한 서사에 특화된 작가다. 「코」만 해도 그렇다. 여섯 치(대략 19cm)나 되는 코를 가진 스님이라니. 소설가라면 누구나 탐낼 기이한 소재 아닌가. 이 소재를 류노스케는 인간의 열등감, 이기심, 성마른 심리와 버무려낸다. 타인의 시선에 따라 이리저리 표변하는 인간의 나약함을 이토록 섬세히 그려내는 작가가 또 있을까. 

 

류노스케의 소설은 한 꺼풀씩 벗길 때마다 탄성과 더불어 깊은 사색에 잠기게 만든다. 설화의 형식을 빌린 「라쇼몬」이나 「덤불속」뿐 아니라 자전 소설인 「점귀부」나 근대를 배경으로 둔 「톱니바퀴」 역시 마찬가지다.

 

즉각적이고 직접적인 공포를 야기하기보다 인간을 냉철하고도 뚜렷하게 관찰한 작품이 내겐 도리어 공포스러운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건조한 문체와 인간의 걷잡을 수 없는 탐욕을 가감 없이 드러내는 류노스케의 섬뜩한 소설들은 ‘기담’으로 불리기에 적합하다.  

 

『치인의 사랑』

다니자키 준이치로 저/김춘미 역 | 민음사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소설을 읽다 보면 셰에라자드와 밤을 새우는 듯한 기분이 든다. 아무리 잔인하고 냉정한 왕이라도 그의 이야기에 매혹되어 끝까지 살려두었으리라.

 

『만』도 그렇지만, 『치인의 사랑』은 참으로 기묘한 소설이다. 그 고리타분한 시대에 ‘나오미’ 같은 입체적인 캐릭터를 만들었다는 것도 놀랍지만, 그녀에게 종속되어 가는 ‘치인’이자 호색한인 조지를 보고 있으면 실소가 터진다.

 

‘아아, 얼마나 윤택 나는 예쁜 눈인가. 이 아름다운 눈물방울을 살그머니 이대로 얼려서 보관할 수는 없을까.’

 

불순하다, 음습하군, 치를 떨면서도 한편으론 작가란 이토록 집요해야 하며 불쾌를 이기며 서사를 극한까지 밀어붙이는 힘도 있어야 하지 않나, 싶다. 이 기이한 동거의 결말이 어떻게 될지 짐작되면서도 책장을 계속 넘기는 것도 그 때문이다.

 

준이치로의 여성관을 불편해하는 이들도 분명 있을 거라 여긴다.(나 역시 쉽지는 않았으니까.) 세상이 그러하듯 준이치로를 그저 탐미주의 작가로 명명할 이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서사를 기담으로 읽는다면 준이치로에게 붙은 단순한 수식도 달라지리라 믿는다. 이상주의에 눈이 멀어 타자를 그저 숭배하고, 피그말리온처럼 보는 인간이란 얼마나 어리석은지 기이하게 비트는 소설이니.

 

『소돔 120일』

D. A. F. 드 사드 저/김문운 역 | 동서문화사


사드의 소설을 ‘기담’이라 칭해도 될까, 오래 고민했다.

 

『소돔 120일』을 한 마디로 정의하면 ‘인간의 상상력이 만들어 낸 가장 간특한 지옥도’라 할 수 있겠다. 사드(혹은 이 소설 속 귀족들)가 만든 작은 세계는 결코 재현되어서는 안 될 정도로 추악하고 추잡하며 섬찟하다.(사드는 이 소설을 쓸 때 과연 정신이 온전했을까. 읽는 나조차도 미칠 것 같은데.)

 

11월 1일부터 3월 1일까지. 120일간 벌어지는 고문은 악랄하며 성애 묘사는 적나라해 자꾸 시선을 돌리고, 눈을 질끈 감게 한다. 경악스러운 점은 이 모든 잔악함이 비상식으로 치부되기는커녕 짐짓 태연하고 자연스럽게 그려진다는 점이다. 다 읽고 나면 이 책이 절판된 이유가 납득되며 탄식이 절로 쏟아져 나온다.

 

‘이것이 인간인가.’

 

하지만 수치심과 죄의식을 느끼지 못한 채 본능에 충실하고, 속되고 삿된 것을 탐하는 것 역시 인간의 민낯이자 면면 아니겠는가. 그렇게 보면 인간은 가장 고매하면서도 가장 불쾌한 존재 아닐까. 

 

혹자는 이 소설의 가장 잔인한 면을 무엇으로 꼽을지 모르겠으나, 나는 주체가 성인이며 객체는 소년·소녀라는 데에 있다고 여긴다. 소년기를 이미 거친 이들이 같은 시절을 지나는 아이들을 짓밟고 오염시키는 광경을 텍스트로 읽고 있노라면, 이 소설이 도색적인 포르노그래피가 아니라 순수함을 욕망과 지배의 재료로 삼는 기득권에 대한 고발물이라는 생각에까지 미친다.

 

소설 속 귀족들은 끝으로 갈수록 더욱 탐욕스러워지고 본능에 속박되지만, 되려 그 때문에 어떤 구속도 부끄러움도 느끼지 못한다. 고매함 속에 감추고 있던 것들이 낱낱이 발가벗겨질 때 인간은 비로소 자유로워지는 걸까. 그렇다면 이 소설이야말로 진정한 공포물 아닐까.






* AI 학습 데이터 활용 금지

3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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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guehyun

2026.08.17

어플 열고 홈 화면 전까지 로딩 화면에 성혜나라고 되어있어요 수정해주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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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딘그리움

2026.08.07

앞의 두 작품은 와씨 탐미주의가 이런거구나 하고 많이 생각하게 됐던 잼있는 작품이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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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kjungsoon

2026.08.06

좋네요. 인비인 성해나 기담집 읽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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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변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저/<양윤옥> 역

출판사 | 시공사

치인의 사랑

<다니자키 준이치로> 저/<김춘미> 역

출판사 | 민음사

소돔의 120일

<마르키 드 사드> 저/<김문운> 역

출판사 | 동서문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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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해나

소설가. 경장편소설 『두고 온 여름』, 소설집 『빛을 걷으면 빛』 『혼모노』 ,『인비인』등을 펴냈다. 작가는 시대의 몸살을 함께 앓는 사람이라 여기며 시류를 기민하게 포착하고, 신중히 담아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