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헤어진 지 스무 해 만에 아버지와 아들이 만났다. 아버지는 주검으로, 아들은 시신 인수자로. 스무 해 동안 거주지 불명으로 떠돌던 아버지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남긴 주소지의 한 평 남짓한 방에는 메모 한 장이 붙어 있었다. “꼭, 무연고 처리해주세요.”
빈소도 없이 하루 만에 장례를 치르고 돌아온 아들은 좁은 곳에 들어서면 숨이 막히는 이상 증세를 겪는다. 두렵고 견디기 힘든 날들이었지만, 그에게는 그 두려움을 혼자 삼키지 않고 털어놓을 가족이 있었다. 아내와 아이들, 그리고 어머니. 연고란 그런 것이다. 서로를 살아 있는 쪽에 붙들어두는 것. 서로의 이름을 부르고 곁을 지키는 것.
『꼭 무연고 처리해주세요』는 무연고로 사망한 아버지에 대한 애도이자 여전히 이어지고 있는 관계에 관한 애틋한 기록이다. 제주에서 소방관으로 일하는 작가 이유진은 “아빠, 잘 갔다 와”라고 외치는 아이들과 “여보, 고생했어”라고 말하는 아내와 늘 아들의 뒷모습을 지켜보는 어머니의 손을 붙들고 살아가는 이야기를 담담하게 써내려간다.
제13회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 대상을 수상하셨습니다. 대상작으로 선정되었을 때, 책이 출간되었을 때의 소감이 궁금합니다.
대상작 발표 소식을 들었을 때, 기쁨보다 먼저 아버지가 남긴 말이 떠올랐습니다. 로또 번호를 적는 빈 용지에 쓰인 “꼭, 무연고 처리해주세요”라는 문장. 그것이 아버지와 저 사이에 남은 하나의 연고였습니다. 대상작 발표가 그 문장을 다시 알아본 순간이었다면, 출간은 그 문장 위에 제 이름을 얹는 일이었습니다. 표지에 찍힌 이유진이라는 이름을 손끝으로 짚어보고서야 제가 누구의 아들인지 알았습니다.
‘꼭 무연고 처리해주세요’라는 제목은 한 번 들으면 쉽게 잊히지 않습니다. 아버지의 마지막 말에서 시작된 책이지만, 그럼에도 혹시 이 문장을 제목으로 삼는 데 망설임이 있으셨을까요? 독자에게 제목이 어떤 첫인상으로 닿기를 바라셨는지도 궁금합니다.
아버지의 마지막 말은 아무리 곱씹어도 목으로 넘길 수 없었습니다. 목구멍 안쪽이 조여들고 좀처럼 삼켜지지 않는 쓴맛에 가까웠습니다. 그 무렵에는 대부업체로부터 아버지의 빚을 갚으라는 소장까지 날아왔습니다. 저는 그 종이를 다른 물건들과 함께 봉투에 넣어 버렸습니다. 아버지를 무연고로 보내지 못한 손이, 정작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남긴 종이는 봉투째 무연고의 물건으로 만들어버렸습니다.
한참 뒤, 그 문장이 다시 떠올랐습니다. 왜 가지고 있지 않았을까. 종이는 사라졌지만 문장은 제 안에 줄곧 남아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문장은 로또 용지가 아닌 한 권의 책 표지 위에 다시 새겨졌습니다. 그러니 제목을 정할 때의 마음은 망설임보다는, 한번 제 손으로 버린 것을 다시 줍는 감각에 가까웠습니다. 이번에는 버리지 않겠다는 마음으로요. 처음에는 낯설고 차가운 문장으로 다가가더라도, 책장을 모두 넘긴 뒤에는 그 말 아래 감추어져 있던 연고를 저마다의 방식으로 발견하셨으면 합니다.
개인의 경험을 깊이 드러내는 글을 쓴다는 건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기도 합니다. 처음에 어떤 마음으로 연재를 시작하셨나요?
오래전 마당 데크에 앉아 아내와 아버지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그때 맑은 물에 검은 잉크 한 방울이 떨어진 것 같았습니다. 그 잉크는 물속으로 퍼지지 않고 바닥에 가라앉아 웅크렸습니다. 아버지에 대한 기억도 제 안에서 그렇게 오래 머물러 있었습니다. 흩어지지 않은 채로요.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은 그 기억을 한꺼번에 꺼내기 위해서가 아니었습니다. 제 안에 웅크리고 있던 장면들을 하나씩 건져 올리는 일이었습니다. 문장을 쓸 때마다 바닥에 가라앉아 있던 검은 잉크가 물속으로 풀려나갔습니다. 아버지를 향한 감정도 그렇게 제 안에서 움직였습니다. 저는 지금도 아버지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합니다. 다만 쓰기 전에는 뭉쳐 있던 감정이, 글을 쓰는 동안 여러 빛깔로 흩어졌습니다. 이 에세이는 오래 가라앉혀 둔 제 마음을 더 이상 없는 것처럼 두지 않기 위해 시작한 글입니다.
아버지의 죽음에서 출발한 이야기는 자신에게 닥친 공황, 어머니의 뒷모습과 아내의 숨, 아이들의 목소리로 확장됩니다. 처음부터 전체 구도를 생각하고 쓰신 걸까요?
처음 글을 쓸 때는 아버지의 무연고 죽음과 장례까지만 이야기하려 했습니다. 그것만으로도 오래 외면해 온 한 사람을 다시 마주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의 죽음을 따라가다 보니, 그 죽음은 한 사람에게서 끝난 일이 아니었습니다. 어머니의 굽은 등에도, MRI 원통 속에서 굳던 제 숨에도, 아내의 발에서 차오르던 고름에도 그 죽음이 묻어 있었습니다.
그렇게 글은 죽은 사람의 이야기에서 남은 사람들의 이야기로 넓어졌습니다. 끊어진 관계를 쓰기 시작했지만, 결국 여전히 이어지고 있는 관계에 대해 쓰게 되었습니다.
1부와 2부 사이에 놓인 「비릿한 연고」라는 글이 인상적입니다. 아버지가 짐이 되지 않기 위해 무연고의 길을 택했다면, 연고란 상처의 시간을 붙들고 끝내 곁에 머무르는 것임을 아내와의 에피소드를 통해 보여줍니다.
아버지에게 무연고는 남은 사람에게 짐이 되지 않으려는 선택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아내와 살아가며 저는 그와 다른 방향의 연고를 배웠습니다. 짐이 되는 순간에도 서로를 지우지 않는 것. 상처가 비리고 불편하더라도 그 곁을 떠나지 않는 일이었습니다.
「비릿한 연고」는 아내의 발에 고름이 차오르던 시간과, 그 상처 앞에 서 있던 저를 담은 글입니다. 상처를 보살피는 사람이 때로는 그 상처를 더 아프게 하는 사람이기도 했습니다. 이 글은 1부와 2부를 잇는 자리에 놓입니다. 독자의 마음이 갑자기 건너뛰지 않도록, 무연고에서 연고로 시선이 옮겨가는 순간을 여기에 담고 싶었습니다. 고름을 닦던 손과, 그 곁을 떠날 수 없었던 자리를 오래 바라보며 썼습니다.
소방관으로 일하며 네 남매를 홈스쿨링으로 키우고 계십니다. 분주한 일상에서 글 쓰는 시간을 어떻게 확보하시는지, 글을 쓰는 원동력은 무엇인지 듣고 싶습니다.
한 시간 남짓 걸리는 출퇴근길, 저는 매일 같은 돌담길을 지납니다. 자고 있는 아이들의 뺨을 한 번씩 만지고 문을 나서, 한라산을 따라 먼바다를 향해 운전대를 잡습니다. 그 길에서는 전날 있었던 일이나 마음에 남은 장면을 오래 생각합니다. 문득 한 문장이 떠오르면 하루 종일 입안에서 굴립니다.
그렇게 오래 곱씹은 말을 아내에게 툭 내놓습니다. 싱크대 앞에서 설거지를 하거나, 요가 매트 위에서 몸을 늘이거나, 양치하거나, 밭에서 흙을 고르는 아내에게 말합니다. 아내는 하던 일을 멈추지 않은 채 제 말을 듣습니다. 대답할 때도 있고, 말없이 받아둘 때도 있습니다. 돌아보면 제 글은 혼자 떠올린 문장에서 시작되지만, 아내에게 건너가면서 비로소 제 안을 벗어납니다. 아직 글이 되지 못한 말을 가장 먼저 건네받아주는 사람. 아내의 생활 곁에 내려놓았던 말들을 다시 주워 적는 일. 그것이 제가 글을 쓰는 방식입니다.
‘작가의 말’에서 이 책이 ‘늦게 마련된 빈소’ 같다고 말씀하셨어요. 빈소를 세상에 내어놓는 지금, 독자들에게 이 책이 어떻게 다가가길 바라시나요?
이 책에는 직접 설명하지 않은 이미지가 하나 있습니다. ‘오후의 빛’입니다. 화장터 유리문 너머로 아버지의 뼈가 가루가 되던 순간, 오후의 빛이 제 팔 위를 한 번 긋고 지나갔습니다. 그때는 그 빛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뒤늦게 마련한 빈소에 와서야 그 빛이 보였습니다. 아버지의 죽음 앞에서도, 공황을 겪던 순간에도, 제가 알아보지 못했을 뿐 그 시간 곁에는 오래 저를 바라보던 빛이 있었습니다. 빈소는 죽은 사람을 애도하는 곳이지만, 남은 사람이 자신이 끝내 혼자는 아니었다는 사실을 발견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이 책이 독자에게도 그런 빈소가 되었으면 합니다. 각자의 계단참에서, 그 곁을 한 번도 떠나지 않았던 빛 하나를 알아보셨으면 합니다.
* AI 학습 데이터 활용 금지
꼭 무연고 처리해주세요
출판사 | 나무옆의자
출판사 제공
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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