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문 기자에서 제주로 이주해 감귤 농사꾼이 되었다가, 남편과 사별한 후 지역 문화재단에서 일하던 조선희 작가는 정년을 앞두고 인생에서 가장 대담한 선택을 한다. 바로 생판 남들과 집을 짓고 함께 살기로 결심한 것이다. 『나이 60, 생판 남들과 산다』는 60대 맏언니인 조선희 작가를 필두로 열두 살 차이의 막내까지, 직업도 나이도 서로 다른 다섯 명이 우연한 계기로 제주에 ‘미로헌(美老軒)’이라는 집을 짓고 살아가는 과정을 그린다.
불안할 수도, 외로울 수도 있는 독거 대신 즐겁고 유쾌한 동거를 선택한 ‘무연고 우연 가족’의 생생한 이야기는 각자의 이유로 홀로 살고 있는 이들, 타인과의 셰어 라이프에 관심이 있는 이들, 중년을 넘어 노년으로 건너가는 시점의 이들에게 새로운 삶의 방식을 보여준다.
혈연으로 맺어진 가족과도 한 지붕 아래 부대끼며 살기 힘든 시대입니다. 그럼에도 혈연, 학연, 지연 없는 ‘무연고 우연 가족’으로 요망진 동거 프로젝트를 시작한 계기가 궁금합니다.
'우연 가족'이라는 이름을 붙인 건 정말 그 시작이 우연이었기 때문입니다.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 우연은 오래 준비된 필연이었다고나 할까요.
대학 4학년 교생 실습 때 처음 만나 오랜 세월 인연을 쌓아 온 비누가 어느 날 제주에 집을 지어 함께 살아보지 않겠느냐고 제안했습니다. 저는 정말 망설임 없이 "좋아!"라고 답했습니다. 그 한마디는 아마도 정년을 앞두고 제 안에서 꿈틀거리던 질문에 대한 반응이었을 것입니다. '혼자 늙어간다면 너무 쓸쓸하지 않을까?', '이성의 반려자만이 노년의 삶을 나눌 대상일까?'
남편을 먼저 떠나보내고 아이들도 모두 독립한 뒤, 앞으로 맞이할 20~30년을 떠올려 보니 미래가 선뜻 그려지지 않았습니다. 그때까지 저는 ‘혼자 사는 삶’이 유일한 선택지라고 생각했는데, 어느 날 '생판 남들과 함께 살아보는 삶'이라는 기상천외한 선택지가 제 인생에 불쑥 끼어든 것입니다.
혈연이 아니어도 가족이 될 수 있을까? 서로에게 지나치게 간섭하지 않으면서도 필요할 때는 기꺼이 손을 내미는 관계는 가능할까? 이런 질문을 품고 시작한 실험이 미로헌 셰어 라이프였습니다. 주변에서는 "괜히 후회할 일을 만들지 마라", "오래지 않아 깨질 거다", “다시 생각해 봐라”라는 말을 정말 많이 했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저도 겁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아니, 겁은 났지만 호기심이 더 컸던 것 같습니다.
'피붙이가 아니어도 한 공간에서 함께 나이 들어갈 수 있을까?'
그 질문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입니다. 아직 정답은 모르겠습니다. 다만 적어도 혼자 늙는 것만이 유일한 답은 아니라는 사실만큼은 미로헌에서 살아가는 하루하루가 조금씩 증명해 주고 있습니다.
10평 남짓인 개인 방에서 독립적으로 생활하되, 공유 주방, 살롱 같은 공유 공간에서 일상이 겹치며 ‘같이 사는 맛'을 느낀다고 하셨습니다. 언제 그러한 맛을 가장 잘 느끼시나요?
거창한 순간이 아니라 아주 사소한 순간들입니다. 누군가가 가구를 옮기기라도 하는 날이면 우르르 달려가 함께 "으쌰으쌰!" 힘을 보탭니다. "그건 거기가 낫다", "아니, 이쪽이 더 예쁘다" 하며 마치 자기 집인 양 진심 어린 참견을 합니다. 그러다가 서로 마주 보며 깔깔 웃고 있으면, 세상 어느 대가족도 부럽지 않습니다.
가끔 제 아이들이 집에 오면 너나없이 반가운 조카를 맞듯 스스럼없이 어울립니다. 별것 아닌 이야기에도 웃음이 터지고, "아, 정말 사람 사는 집이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회식하는 날도 그렇습니다. 단체 대화방에서 각자의 맛집 리스트를 꺼내 메뉴를 정하고, 서로 다른 음식을 시켜 한 입씩 나눠 먹습니다. 영락없는 보통 가족의 모습이지요. 혼자라면 결코 누릴 수 없는 즐거움입니다.
결국 같이 사는 맛은 특별한 이벤트에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대수롭지 않은 일상을 함께 겪는 데서 생기는 것 같습니다. 그런 순간마다 “아, 이제 우린 가족 다 됐네”라는 말이 절로 나오곤 합니다. 그게 바로 셰어 라이프가 제게 준 가장 큰 선물입니다.
생판 남들과 살기 전과 비교해, 작가님 스스로 가장 크게 달라졌다고 느끼는 점은 무엇인가요?
생판 남들과 살기 전에는 아주 사소한 일부터 꽤 무거운 문제에 이르기까지, 대부분 제 방식대로 결정하며 살았습니다. 굳이 누구와 의논하거나 제 선택을 설명할 필요도 없었지요. 그런데 함께 살아보니 세상에는 정말 다양한 방식이 있더군요.
내 방식이 존중받으려면 먼저 타인의 방식을 존중해야 하고, 모두에게 영향을 미치는 일이라면 타협하고 조율하는 과정도 필요하다는 것을 일상에서 배우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도대체 왜 저럴까?” 싶었던 일도 시간이 지나면서 그 사람에게도 나름의 이유와 방식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요. 서로 다르다는 것은 고쳐야 할 문제가 아니라 이해해야 할 차이라는 것도요.
재미있는 것은 생판 남이어서 오히려 더 유연해진다는 점입니다. 내 피붙이였다면 곧바로 따져 묻거나 대놓고 언짢은 기색을 보였을 일도, 생판 남에게는 일단 한 번 멈춰 생각하게 됩니다. “저게 뭐야?” 하기보다 “그럴 수도 있지”, “도대체 왜?” 하기보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겠지”를 먼저 떠올리게 되는 것이지요. 예전보다 사람을 쉽게 판단하지 않고, 그 행동의 맥락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아마 그게 제가 생판 남들과 살면서 가장 많이 유연해지고 자란 부분이 아닐까 싶습니다.
"60이 넘었어도 날마다 자란다"라는 고백처럼, 나이 듦을 수용하면서도 성장을 멈추지 않는 모습이 멋있습니다. 앞으로 이어질 삶의 여정에서 작가님이 결코 놓치고 싶지 않은 삶의 방향성은 무엇인가요?
배움에는 끝이 없다는 말은 맞습니다. 그런데 예순을 넘겨보니 배움에는 때가 있다는 말이 더 깊이 와닿습니다. 이 나이가 되어야 비로소 보이는 것, 배울 수 있는 것이 분명 있더군요. 그래서 저는 나이 드는 것이 성장의 끝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지금이 사람과 관계에 대해 가장 많이 배우는 시기인 것 같습니다.
혼자 살 때는 일상이 비교적 예측 가능했습니다. 그런데 생판 남들과 함께 살기 시작하면서는 거의 매일 예상 밖의 일이 생깁니다. 덕분에 계속 생각하고, 계속 제 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 호기심도 더 커졌고요. 어쩌면 매일이 작은 수업 같다고나 할까요.
앞으로도 저는 사람과의 관계를 조금씩 더 깊고 넓게 만들어 가는 어른이고 싶습니다. 살다 보면 나이를 앞세워 "내가 살아보니 다 그렇더라"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종종 만납니다. 저는 가능하면 그 말을 가장 늦게 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대신 "내가 아직 모르는 게 있네", "한번 해볼까?" 하는 마음을 오래 간직하고 싶습니다. 그 마음이 저를 계속 자라게 해 줄 거라고 믿습니다.
미로헌의 셰어 라이프가 가진 장점 중 하나는 바로 ‘커뮤니티 케어’, 즉 서로에 대한 돌봄이라고 생각합니다. 돌봄을 약속하고 셰어 라이프를 시작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우리는 적지 않은 나이에 만나 함께 집을 짓고 살기로 했기에, 처음부터 노년의 삶에 대해 진지하게 이야기했습니다. 언젠가 사회 활동이 줄고 몸이 예전 같지 않게 되었을 때, 피붙이에게만 의지하며 살아가는 것이 과연 우리가 원하는 노후일까? 그 질문 끝에서 떠오른 것이 '서로 돌봄'이었습니다.
영혼까지 끌어 모아 지은 이 집에서 우리는 함께 늙어갈 것입니다. 그렇다면 언젠가는 서로를 돌봐야 하는 순간도 오겠지요. 그래서 입주 전부터 약속했습니다. 치매처럼 전문적인 돌봄이 필요한 경우가 아니라면, 가능한 한 요양원이 아니라 이 집에서 서로를 돌보며 살아보자고요.
거창한 돌봄이 아닙니다. 병원에 함께 가주고, 아픈 사람의 끼니를 챙기고, 기운이 없어 보이면 먼저 안부를 묻는 것에서 시작하는 겁니다. 아프다고 해서 그 사람의 일상이 송두리째 무너지지 않도록, 우리가 한 귀퉁이씩 붙잡아 주는 것입니다. 함께 산다는 것은 결국 함께 늙어간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돌봄은 선택이 아니라, 처음부터 셰어 라이프의 일부였습니다.
그랬기에 집을 짓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제가 암 진단을 받고 투병하게 되었을 때 미로헌 식구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저를 보살펴 주었습니다. 그 시간은 우리가 말로 나눈 약속이 곧 삶이 되는 과정이었습니다. 그 덕분에 '서로 돌봄'은 결코 이상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충분히 가능한 삶의 방식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반드시 우리와 같은 형태일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나이가 들수록 가능한 범위 안에서 서로 돌보고 서로 기대며 살아가는 사람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미로헌의 라이프스타일을 특히 추천하고 싶은 독자가 있으실까요?
모든 사람에게 추천할 만한 라이프스타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혼자 사는 것이 더 행복한 사람도 있고, 공동생활이 맞지 않는 사람도 있습니다. 자신의 취향과 성정에 맞는 삶을 선택하는 것이겠지요.
다만 은퇴를 앞두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한 분들, 자녀에게 짐이 되고 싶지는 않지만 혼자 늙는 것도 걱정인 분들, 새로운 인간관계를 만들어 보고 싶은 분들에게는 한 번쯤 상상해 보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결혼 여부와 상관없이 혈연 중심의 가족 말고 새로운 형태의 가족을 만들어 보고 싶은 분들에게도 하나의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꼭 우리처럼 집을 짓고 살라는 뜻은 아닙니다. 가까운 곳에 집을 구해 ‘따로 또 같이’ 살아보는 것부터 시작해도 충분합니다. 중요한 것은 집의 형태가 아니라 관계의 형태입니다. 결국 가장 필요한 노후 준비는 집이 아니라 관계라고 저는 믿습니다.
브런치북 대상을 수상하셨습니다. 소감이 어떠신지 그리고 앞으로 브런치북 출간에 도전할 작가님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처음 연락을 받았을 때는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실수로 제게 잘못 온 연락인 줄 알았어요. 떨림을 가라앉히고 생각해 보니, 세상에 그 많고 다양한 이야기 가운데 생판 남인 다섯 사람이 함께 사는 이야기가 이렇게 큰 공감을 얻었다는 사실이 무엇보다 놀라웠습니다. 상을 받았다는 기쁨 못지않게 큰 선물은 "이런 삶의 방식도 한번 생각해 볼 만하지 않을까?"라는 제 질문에 귀를 기울여 주셨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브런치북 출간에 도전하시는 분들께 꼭 드리고 싶은 말씀은 나만이 던질 수 있는 질문 하나를 끝까지 밀고 나가시라는 것입니다. 일상의 소소한 이야기도 좋습니다. 다만 그 안에는 내가 오래 품어 온 물음 하나쯤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것이 다른 사람의 호기심과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면 더없이 좋겠지요.
제 글 역시 ‘노년에 접어든 나는 앞으로 어떤 방식으로 살아가야 할까?’라는 질문에서 출발했습니다. 이 세상에 나와 같은 질문을 품은 사람이 분명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다면 내 체험이 그 질문에 작은 힌트 하나쯤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런 마음으로 쓰기 시작한 글이 브런치북 대상을 받게 되었고, 결국 한 권의 책으로도 출간될 수 있었습니다. 이 세상에는 글을 잘 쓰는 사람은 셀 수 없이 많습니다. 하지만 오래 품어온 물음 하나를 끝까지 밀고 나가는 글은 흔치 않습니다. 독자들은 문장력보다는 진심을 먼저 읽습니다.
* AI 학습 데이터 활용 금지
나이 60, 생판 남들과 산다
출판사 | 샘터
출판사 제공
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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