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국제 문화 교류 지원 사업에 지원하려고 여러 학교에 있는 중문과 선생님들에게 연락을 했다. 국제 교류 지원 사업 중에서도 “미래 세대” 사업이라 청년1 번역가를 많이 섭외해야 했는데, 적당한 이를 찾기가 너무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화어권 문학 번역가 자체도 소수인데 창작 단계에서부터 창작자와 협업하고, 드라마터그적2인 역할까지 수행할 수 있는 번역가를 찾으려고 하니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기존 풀에서 찾기보다는 대학원생을 문학 번역가로 양성하는 게 더 현실적일지도 모른다는 판단까지 들었다.
총 세 곳에 연락해 적합한 대학원생을 추천해달라고 했는데 다들 부탁을 듣자마자 난색을 표했다. 대학원에 진학하는 이 자체가 적고, 문학 번역에 관심이 있는 이는 더더욱 적다고 했다. 또 관심이 있다고 해서 반드시 문학 번역을 잘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특히 요즘처럼 중국어를 잘하는 이들이 많은 상황에서는 이를 구분하기가 더 어려운데, 중국어와 한국어를 잘한다고 해서 문학의 언어까지 잘하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언어별로 다르겠지만 화어권 문학 번역가가 되는 루트는 대략 세 가지가 아닐까 싶다.3 하나는 대학원에서 중문학을 전공한 경우이고, 다른 하나는 통번역대학원을 나온 경우다.4 그리고 마지막 하나는 주류라고 볼 수 있는 두 루트의 여집합과도 같다. 화어권 덕질을 하다가 번역가가 된 경우도 있고, 유학을 갔다가 번역가가 된 경우도 있으며, 편집자로 출판계에서 일하다가 번역가가 된 경우도 있다.
그런데 어느 루트든 공통점이 좀 있다.
문학 번역계로 진입하고자 하는 사람이 점점 줄고 있다는 것. 혹은 관심이 있어도 업계에 진입하는 법을 모른다는 것.5
생각해보면 나조차도 문학 번역 일을 우연히 하게 되었다. 타이완의 판타지 소설과 GL 소설을 번역할 역자를 찾지 못해 모 에이전시가 번역가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마침 그 번역가가 나를 떠올려 연락을 준 것이다. 번역작이 없어 전혀 검증되지 않은 신인임에도 하루 이틀 만에 일을 맡았다.6
그런데 다른 학우들도 이렇게 운 좋게 안착할 수 있을까?
나처럼 우연히 문학 번역 업계로 진입했다고 해도, 과연 이걸 업으로 삼아 생계를 유지할 수 있을까?
그만큼의 돈을, 그것도 꾸준히 벌 수 있을까?7
중문과로 대학원을 진학하는 이도, 통번역대학원에서 문학 번역을 하려는 이도 점점 줄어들고 있는 게 지금의 현실인데, 곧 다가올 미래에 문학 번역가는 몇 명이나 될까?
한국문학번역원이 오랫동안 준비해왔던 번역대학원대학교가 드디어 내년에 개교한다고 한다. 작가로서 한국문학번역원에 감사한 마음이 크다면, 화어권 문학 번역가로서는 부러움이 크다. (내년부터는 번역대학원대학교가 되겠지만) 번역아카데미라는 확실한 번역가 양성 시스템이 있고, 문학 번역에 포커스를 맞춘 커리큘럼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번역출판지원 사업을 통해 번역가에게 번역비를 다이렉트로 지원하기 때문이다.8 물론 한국 문학 번역가들이 실감하는 현 시스템의 문제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내가 외부인이라 잘 알지 못하는 것뿐.
그런데 한국과 다른 나라의 문학 번역 지원 제도를 비교하며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보면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한다.
더 많은 한국 문학이 더 널리 퍼져야 한다는 점에는 다들 이견이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더 많은 해외 문학이 한국에 들어오고, 널리 읽혀야 한다는 말에는 다들 어찌 생각할까? 왜? 굳이? 글쎄? 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만약에 양질의 해외 문학이 한국에 들어올 수 있도록 정부에서 지원해 줘야 한다고, 해외 문학 번역가를 전문적으로 양성하는 문학 번역 교육 기관을 설립해 달라고 주장한다면 다들 어찌 생각할까?
왜 그런데 세금을 쓰냐며 반대하는 사람이 많지 않을까?
반면 나는 이러한 지원이, 이러한 기관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번역가가 엄선한 양질의 해외 문학이 자국의 문학적 토양을 더 다원적이면서도 풍성하게 만들어주니까. 이러한 토양에서 자라난 한국 문학이 전보다 더 다원적이고 풍성해질 거라고 믿는다.
출판계의 불황, 고환율로 인한 외서 계약의 부담, 인공지능의 위협 등으로 문학 번역이 쉽지는 않지만, 아직 이곳은 정상 영업 중이다.
앞으로도 정상 영업이 가능하도록 해외 문학도 한국 문학도 더 많이 읽어주면 좋겠다.
1 보통 이런 정부 사업에서 청년은 만 39세 미만이다.
2 일종의 내부 비평가다.
3 한국 현대 소설 번역과 한문 소설 번역을 동일 선상에 놓고 말할 수 없는 것처럼 문언문 번역이 가능한 고전문학 번역가는 논외다.
4 딴소리지만 화어권 문학 번역계에 문현선이라는 이름의 번역가가 두 명인데 한 명은 전자에 속하고, 다른 한 명은 후자에 속한다. 가끔 역자 프로필이 잘못 기재될 때가 있는데, 동명이인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5 대학에서 특강을 할 때면 꼭 한두 명씩은 이런 질문을 한다. 어떻게 해야 문학 번역가가 될 수 있고, 문학 번역을 공부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냐고. 상당히 답하기 곤란한 질문이다. 어떻게 해야 소설가가 될 수 있고, 소설 공부를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냐는 질문만큼이나 답하기 어렵다. 보통은 무조건 다독해야 하고, 업계 현황을 잘 파악하고 있어야 하며, 출판사에 번역 기획 제안서를 보내면서 직접 문을 두드릴 만큼 적극적이어야 한다고 답한다. 또 작품을 번역할 때는 누구보다 깊이 읽어야 한다고도. 꿈과 희망을 주는 말을 해주면서도 현실과 어둠이 담긴 이야기도 꼭 해준다. 예를 들어 번역 단가가 얼마인지, 최근에 인공지능이 업계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반중 정서로 인해 중국 작품이 들어오기 어려워진 현실 등등. 흥미로운 건 이러한 질문을 던지는 이가 보통 특강을 듣기로 한 청자가 아니라는 점이다. A 학교의 특강인데 B 학교 학생이 오기도 하고, 일반대학원 중문과 특강인데 통번역대학원 학우가 오기도 한다. 특히 필드에 관련된 정보를 얻기가 어려워 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듯했다.
6 혹은 장르 소설이나 웹소설 번역은 문단 문학 번역과 달라 번역가의 실력 검증이 그다지 필요 없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겠다. 나는 사대부 문학보다는 속문학을 더 좋아하는 사람이라 웹소설 번역에 큰 재미를 느꼈는데 주변 지인들에게서(주로 학계 사람들이다) 문단 번역으로 넘어가야 한다는 조언을 많이 들었다. 특히 19금 BL이나 로맨스를 번역할 때는 꼭 역자 필명을 따로 쓰라고 했다. 사람들이 문단/장르/웹소설을 일종의 계급처럼 더 문학적인 문학, 덜 문학적인 문학으로 나누듯, 문학 번역 분야에서도 비슷한 편견이 있는 듯했다.
7 나만 해도 자신이 없다. 3~6개월 동안 소설 한 권을 번역해서 버는 돈보다 문학 행사에서 통역을 맡거나 산학 협력 프로젝트 혹은 국제 교류 지원 사업에 참여해서 버는 돈이 더 크다.
8 중국의 경우, 중국도서진출구총공사가 번역가를 베이징국제도서전에 초청해 문학 포럼을 열거나 네트워킹 파티를 열어주기는 하지만, 예비 번역가를 양성하는 사업을 정기적으로 하지는 않는다. 또 번역 지원금도 유관기관이 공모로 선정하는 방식이 아니라 내부 추천제인 경우가 많다. (내가 알지 못하는 공개 공모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일단 나는 들어본 적이 없다. 보통은 중국 측에서 번역 지원금을 줄 테니 이 작품을 맡아보겠냐고 역제안했다.) 타이완의 경우, 타이완 문학관에서 ‘번역 공작방’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특강이나 워크샵을 진행하지만 영어 기반이며 체계적인 번역가 양성 시스템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또한 출판 지원 사업을 통해 번역비와 제작비를 지원하지만, 분기별로 열 작품 정도만 뽑기에 경쟁률이 매우 높은 편이다. (언어별로 뽑는 게 아니라 모든 언어권 다 합쳐서 이만큼만 뽑는 거다.) 또한 번역 비용을 번역가에게 직접 주지 않고, 출판사에게 주는 것도 개선해야 할 점이다. 한국의 번역 단가와 타이완의 번역 지원금 단가가 1.5~2배 가까이 차이가 나는데, 기존 방식으로는 번역가가 좀 더 나은 번역 비용을 받기가 어렵다.
지금까지 <김이삭의 중화권 대중문화와 문학> 연재를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 AI 학습 데이터 활용 금지
김이삭
평범한 시민이자 소설가 그리고 번역가. 중화권 장르 소설과 웹소설, 희곡을 번역했으며 한중 작가 대담, 중국희곡 낭독 공연, 한국-타이완 연극 교류 등 국제 문화 교류에 힘쓰고 있다. 저서로는 『한성부, 달 밝은 밤에』, 『감찰무녀전』, 『천지신명은 여자의 말을 듣지 않지』 등이, 역서로는 『여신 뷔페』, 『다시, 몸으로』 등이 있다. 홍콩 영화와 중국 드라마, 타이완 가수를 덕질하다 덕업일치를 위해 대학에 진학했으며 서강대에서 중국문화와 신문방송을, 동 대학원에서는 중국희곡을 전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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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w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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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쓰홍 작가님께서 하고 싶은 말이 굉장히 많으신 것 같았어요. 처음에는 통역을 고려하면서 짧게 말씀하셨는데, 통역이 성공적으로 잘 되는 것 같으니 나중에는 그냥 하고 싶은 말 우다다 다 하시더라고요. '이 정도 길이의 문장은 한국어로 들어도 다 기억 못 할 것 같은데' 라고 생각했는데 번역가님의 퍼포먼스가 정말 놀라웠습니다.
단순히 의미만 전달하는 게 아니라, 뉘앙스와 웃음포인트를 잘 살려서 통역해주셨잖아요. 덕분에 강연이 정말 즐거웠어요.
"중국어와 한국어를 잘한다고 해서 문학의 언어까지 잘하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번역가님은 문학의 언어까지 잘하시는 게 분명합니다. 거기 계신 분들 모두 느끼셨을 거예요.
저는 번역이나 통역 그 자체에 대해서는 무지하지만, 한국어로 번역된 도서들을 많이 읽는 사람으로서 양질의 번역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데 동의합니다. 요새 AI로 번역된 엉터리 고전도서들이 출판되어 논란이 있기도 했죠. 부분부분 내용을 봤을 때 참 암담했습니다. '이런 게 종이책으로 출판되다니. 나무야 미안해.' 싶은 생각이 들었어요. 한국인들이 참 수상작 좋아하잖아요. 저도 책 홍보 문구에 'OO상 수상' 등의 문구가 있으면 관심 있게 보게 됩니다. 매년 노벨문학상 수상작이 발표되면, 그 작품이 바로 베스트셀러 1위에 올라가기도 하고요. 그렇게 읽게 되는 해외작품들이 말 맛을 살린, 잘 번역된 상태라면 작가의 또 다른 작품을 찾아 읽게 되고, 타고타고 흘러서 독서에 흥미를 붙이게 될 수도 있고요. 양질의 해외 문학이 우리나라의 문학적 토양을 더 풍성하게 만들어준다는 말씀에도 역시 동의합니다.
아무튼, 몇 개월 동안 책 한 권 번역하는 것보다 행사에서 통역 한 번 하시는 게 금전적으로 더 낫다는 말을 들으니 씁쓸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상 영업중' 이라고 하시니, 다행인 건가? 싶기도 하고요. 다소 세속적인 표현이지만 돈길을 걸으셨으면 좋겠는데요...
타인의 언어를 옮기는 번역과 통역은 물론, 작가로서의 작품 활동까지 모두 응원합니다.
현준아사랑해
2026.08.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