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예 저 | 허블
비행기에 탈 때부터 거슬렸다. ‘쩍벌’ 자세로 옆자리에 앉은 나를 강제로 공손하게 만드는 거나, 나눠쓰는 게 인지상정인 팔걸이를 양쪽 모두 당연하다는 듯 차지한 것도. 낯선 외국인 남성의 털이 부숭한 팔뚝에 닿지 않기 위해 나는 어쩔 수 없이 비행 내내 팔짱을 낀 채로 잠을 청할 수밖에 없었다. 결정타는, 두통을 잠재우기 위해 껌을 씹는 나를 보고 남자가 던진 한마디. “나도 껌 좀 주라” 마치 맡겨놓기라도 한 듯 내미는 손을 외면하지 못한 내가 껌을 건네자마자 그는 잽싸게 껌 2개를 가져갔다.
그건 여행을 마치고 남은 외국 화폐를 털기 위해 공항에서 무려 7천 원이나 주고 산 껌이었다. 계산하면 개당 1,200원꼴. 남자는 순식간에 내 2,400원을 털어가 놓고 아무렇지 않은 듯 질겅질겅 껌을 씹기 시작했다. 하지만 속으론 그 남자를 향해 온갖 욕을 퍼붓고 있었으면서도, 정작 나는 비행기에서 내려 반대방향으로 멀어지는 순간까지 단 한 마디도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다. 심지어는 껌을 내밀며 싱긋, 친절한 아시아 여성처럼 미소를 지어 보이기까지 했다.
차라리 내가 그 남성만큼 무신경한 사람이었거나 아니면 껌을 내어주며 혹시 그도 두통에 시달리는지 염려할 만큼 심성이 곱거나 했다면 괜찮았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예수도 아니고 그렇다고 악마도 아니라서 속으로는 욕을 퍼붓더라도 겉으로는 그에게 친절하게 껌을 건넸다. 나는 사회생활을 좀 해보았고, 예의범절을 익혔고, 사회상규를 학습했다. 그것들이 나를 ‘억눌렀다’. 겉과 속이 다른 친절함이야말로 사람을 미치게 만든다. 복잡하게 착하기는 늘 어렵고, 차라리 단순하게 나쁘거나 단순하게 착하고 싶은 마음이 솟구친다.
청예의 『오렌지와 빵칼』은 그 욕망에서 탄생하는 소설이다. 만약 당신이 선함과 악함 사이에서 줄타기 하는 데 지쳤다면, 어느 한쪽으로 확, 핸들을 꺾어버리고 싶은 욕망을 숨기고 산다면, 이 소설은 당신의 손목을 쥐고 핸들을 대신 꺾어버린다.
*
주인공 오영아는 잘 웃고, 잘 참고, 잘 배려하는 스물일곱 살 유치원 교사다. 사촌 언니가 조카를 맡기면 며칠이고 돌봐주고, 열악하다 못해 사악할 지경인 근무 환경에도 불만을 티 내지 않는다. 사회복지사인 다정한 남자친구 수원과, 늘 훌륭한 시민의 자세를 일깨우는 친구 민주까지. 어떻게 해도 '악인'이 되기는 어려워 보이는 사람이다.
그런 오영아가 어느 날부터 웃음을 상실한다. 착하지만 사랑하지 않는 남자친구, 선의를 강요하는 친구, 폭력적인 원생을 보며 짜증과 적개심이 치민다.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믿으며 살아왔던 그가 어느 순간부터 동전의 '양면'을 보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증오와 분노가 새겨진 뒷면을 마주할 때마다, 잃어버렸다고 생각했던 웃음이 되돌아온다.
실은 오영아에게 선량함은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라 가까스로 통제한 끝에 발현되는 것이다. "마음 안에 용수철을 꾹 눌러두고 손을 떼지 않는 일." 하지만 그 선량함이 끝내 선량한 결과로 이어지지 않을 때, 오영아는 되묻는다. 그렇다면 미래에 남는 건 뭐지?
“삶은 이런 식으로 노력을 자주 비껴갔다. 단일 선택지가 선량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이 병렬적으로 쌓이면 악행으로 치닫기 쉬웠다(…) 선하고자 하는 도덕적 욕망을 추구하는 일은, 가끔 패배가 정해진 게임에 참여하는 일처럼 불합리했다.”(68쪽)
삶에 질식할 것 같은 우울 끝에 오영아는 전두엽 기능을 조절해 정서에 변화를 줄 수 있다는 시술을 받는다. 효과는 의외의 곳에서 나타난다. 타인의 불행을 볼 때마다 웃음이 터지는 것이다. 샤덴 프로이데. 남의 불행에서 기쁨을 느끼는 감정. 그 순간 오영아는 처음으로 '선량해야 한다'는 통제로부터 해방된다. 시술의 핵심은 ‘통제로부터의 자유’에 있었다.
“이건 환희였다. 고역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삶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나의 삶은 그것들과 완전히 동떨어져 안전하다는 기쁨이, 내 삶은 구질구질한 자들보다 곱절은 더 찬란하다는 안도가, 더러운 것들을 발로 짓뭉갤 때 느껴지는 짜릿함이 폭죽처럼 터졌다.(…)샤덴 프로이데는 새로운 기쁨이었다. 그들의 불행에 나는 아무것도 잘못하지 않았으니 일말의 책임 또한 없었다. 그러니 그들의 불행은, 내게도 내 몫의 자유가 있다는 증명이었다.”(112쪽)
‘잘’ 살아 있다는 믿음을 저버릴 때야말로 살아 있다는 실감을 하게 되는 순간은 없다. 도덕률에서 벗어난 세계를 경험한 영아는 시술 효능이 끝나는 4주 후 다시 “선한 남자를 억지로 사랑하고, 환경을 끔찍이 아끼고, 두려운 짐승에게도 손을 내밀고, 불편한 친구를 곁에 두고, 아동을 사랑하는 체하는” 자신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견디지 못한다. “자유는 낯선 폭력이고 통제는 익숙한 폭력”일 때, 오영아는 자신이 무엇인가 선택을 내려야만 한다는 것을 인지한다.
소설에서 가장 충격적이면서도 놀라운 쾌감을 불러오는 마지막 대목에 이르면 독자는 정확하게 이 소설이 의도했던 질문에 봉착하게 된다. ‘선해 보이는 것’의 얼굴이 실은 무엇인가를 표백한 얼굴이라면, 선한 얼굴의 반대편에 있는 것은 무엇이지? 우리가 믿어온 '선'은 정말 그렇게 단순한 얼굴인가? ‘선한 것’은 무엇이고 ‘악한 것’은 무엇인데? 자문 끝에, 오영아는 ‘빵칼’을 집어 들고 휘두른다. 선과 악, 그 ‘절대적 순수’를 위해.
“균형은 필요 없다. 둘 중 오직 하나만 아는 내가 돼야만 순수한 존재가 된다. 선과 악, 둘 중 하나를 소멸시켜 버린다면 균형은 자연히 사라지고 한쪽만 살아남는다. 그것이 곧 입구이자 출구, 오직 하나의 관념만 남은 절대적 순수가 된다.(17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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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하고자 하는 의지가 필연적으로 실패할 수밖에 없도록 설계된 것 같은 세계에서, 매일 줄 위를 걷는다. 생후 7개월 된 영아를 방임해 숨지게 한 부부, 스토킹 살인 사건, 폭염과 기후위기와 전쟁과 각종 범죄와 소식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이에 질세라 사이사이 강아지와 고양이와 신생아와 자연 풍경과 각종 미담을 모아놓은 영상이 절박하게 끼어든다. 나는 오늘 정기 후원하는 환경 단체에 후원금을 냈지만 텀블러를 깜빡해 편의점에서 플라스틱 생수를 사 마시는 것으로 기후 위기에 일조했다. 무사 태평하게 어느 한쪽만 견고하게 믿으며 사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하고, 조금만 발을 잘못 디뎌도 불신과 무기력의 구덩이에 빠진다. 『오렌지와 빵칼』은 정확히 그 구덩이에서 태어난다. 핸들을 끝까지 악의 방향으로 꺾어봄으로써, 우리가 붙들고 있는 선의의 실체를 되묻기 위해.
소재만큼이나 문장에 매력이 있다. 냉소적이고 예리한, 말 그대로 ‘못된 사상’에 어울리는 ‘못된 문투’. 불편한 쾌감은 독자를 자꾸만 어떤 거울 앞에 데려다 놓는다. 거울 속 얼굴이 묻는다. 솔직히, 너도 공감하잖아?
작가는 책의 말미에 ‘죄송하다’는 사과를 덧붙였다. ‘특수유익(특정 사람들에게 유익함)’과 ‘특수무익(특정 사람들에게는 무익하고 때로는 해로움)’의 경계에 있는 이 소설이 미움받을 것을 예상했다. 2024년도에 첫 출간된 『오렌지와 빵칼』은 독자들의 꾸준한 사랑을 받아 2026년 7월에 개정판이 출간됐다. 청예 작가는 3년 연속 YES24 ‘한국문학의 미래가 될 젊은 작가’ 후보로 선정됐고 올해는 1위에 올랐다. 어쨌거나 이 소설의 수명은 꽤나 질길 것이다. 원래 못된 것들이 그렇다. 웬만한 빵칼로는 절대 잘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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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렌지와 빵칼
출판사 | 허블
한소범(한국일보 기자)
1991년 광주에서 태어났다. 대학에서 국문학과 영상학을 전공했다. 발표된 적 없는 소설과 상영되지 않은 영화를 쓰고 만들었다. 2016년부터 한국일보에서 기자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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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의 수명은 꽤나 질길 것이다. 원래 못된 것들이 그렇다. 웬만한 빵칼로는 절대 잘리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