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형의 나를 통과한 여자들
[김선형 칼럼] 파국을 낙관하는 하얀 마녀 ─ 마거릿 애트우드 | 예스24
애트우드는 바로 『시녀 이야기』를 쓰기 위해 제정신을 버리고 위험한 광기 혹은 마술적 영감을 선택한다. 제정신인 여자는 펜을 잡을 수 없던 시절이었다.
글: 김선형
2026.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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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형 번역가가 그린 마거릿 애트우드 초상화 ⓒ 김선형


언젠가의 선거가 절망적인 결과로 끝났을 때 나의 어르신에게 무력감과 공포심을 토로한 적이 있다. 어떡해요,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요. 나라가 망하면 어떡하죠. 나의 어르신은 내 불안을 타박하지도 무시하지도 않고 그저 허허 웃으며 말씀하셨다. “괘안타, 망할끼다.” 그 말들에 훅 끼쳐온 위로의 향기가 어찌나 상쾌한지 단번에 정신이 번쩍 났다. 그 낱말들은 아름다웠다. 비좁고 꽉 막힌 내 속을 훅 틔워주었다. 움츠린 마음의 폐소에 햇빛과 바람을 들여서 초록빛의 무언가를 키울 수 있게 해주었다. 그 말은 단정적이지만 또한 모호하다. 뭐가 괜찮다는 건지, 뭐가 망한다는 건지. 망해서 괜찮다는 건지, 망해도 괜찮다는 건지. 하지만 그 어조와 미소를 합치면, 기묘하게 훅 넓어지는 시야각의 여유는 조롱도 냉소도 회의도 아니고 그저 희망이었다. 그건 내가 어른들에게서 배운 최고의 지혜다. 마거릿 애트우드의 얄궂은 소설들 또한 우리 귀에 대고 웃으며 속삭인다. “괘안타, 망할끼다.” 언제나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럴 테지만, 그래도 괜찮다.


마거릿 애트우드는 한 세계의 파국을 앞두고 환하게 웃으며 태어났다.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두 달 반 전인 1939년 11월 18일, ‘불안 호르몬’으로 가득 찬 어머니의 몸으로부터 세상으로 나왔다.

 

“11월은 캐나다 오타와에서 가장 음침한 달이다. 잎사귀는 다 죽어 떨어졌지만 눈은 아직 내리지 않았다. 빛은 쪼그라들고 있었지만 크리스마스는 오지 않았다. 11월은 죽음, 섹스, 부활의 달이라고, 점성술사들은 말한다. 마지막 두 개는 알약의 쓴맛을 없애려고 집어넣은 게 틀림없다. 11월의 축제는 망자의 날과 현충일이다. 그것도 또 다른 망자의 날이다. 어디를 보나 암울한 어둠뿐이다.” (마거릿 애트우드, 『목숨이 여럿 달린 삶의 책: 이런저런 유의 회고록(Book of Lives: Memoir of Sorts)』, 20쪽)

 

온갖 불길한 징조들을 무릅쓰고 태어난 아기는 명랑하기 그지없었다. 

 

2025년 발간된 자서전 『목숨이 여럿 달린 삶의 책(Book of Lives: Memoir of Sorts)』에서 애트우드는 암묵적으로 둘러쓰고 있던 마녀의 역할을 본격적으로 자임한다. “Book of Lives”라는 제목부터가 불경하고 방자하다. 묵시록에서 만인을 심판하는 근거가 되는 생명책(Book of Life)과 목숨이 아홉 개 달린 고양이(The Nine Lives of a Cat)를 뒤섞고 있다. 어디까지가 거짓말이고 어디까지가 진실인지도 불분명하다. 그가 살아낸 다른 목숨들, 그가 써낸 소설들을 따라가는 이 삶의 서사는 환상적이다. 그는 곤충학자인 아버지 덕분에 문명과 동떨어진 오지 삼림에서 자라났다. 불빛은 손전등, 촛불, 등유 등으로 벌충했고 난방은 화목 난로로 해결했다. 뱀을 잡으며 놀던 아이들은 경청하는 부모를 관중 삼아 밤마다 괴상한 이야기들을 꾸며내 들려주었다. 곰이 식량을 축내서 이웃의 친절에 기대 한 철을 살기도 했다. 모닥불을 피워놓고 오빠와 “히틀러의 집이 불타서 무너진다”고 노래하며 빙빙 돌고 노는데 벼락이 떨어진 적도 있다. 청소년기에는 뜨개질과 바느질을 배워 자기 옷을 만들어 입었고, 대학교 때는 애완동물로 이구아나를 키웠다. 그의 몸에는 정말로 마녀의 피가 흐른다. 마녀사냥 당시 교수형에 처해졌지만 목이 매달린 채 다음 날까지 살아남아 “목매달리다 만 메리(Half-hanged Mary)”라는 별명을 지녔던 메리 웹스터의 모계 혈통이라는 걸 그는 부커상 수상 경력보다 더 자랑스러워한다. 그가 쉽게 죽지 않고 목매달린 채로 끝까지 싸웠다는 걸 한없이 자랑스러워한다. 그는 일상의 세부에 돼지의 피와 두꺼비의 눈알을 넣어 초록 형광빛으로 빛나는 서사의 수프를 끓여 옜다 대접째 내민다.

 

광적인 마녀사냥의 본거지인 매사추세츠주의 하버드 캠퍼스에서 그는 처음으로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의 쿠데타로 여성혐오적인 신정 독재에 빠져드는 미국의 이야기를 착상했다. 1961년 당시 목제 건물인 여학생 기숙사는 “온갖 변태들을 불러 모으는 등대 불빛” 같았다. “변태들이 복숭아에 달려드는 초파리처럼” 몰려들었고, 창문을 열고 자다가 살해당한 여학생들도 많았고, 화장실에 앉아 있으면 열린 창문으로 손이 쑥 들어오기 일쑤였다. 여자들을 교살하는 연쇄살인마가 보스턴에 횡행하던 시절, 마거릿 애트우드는 바로 그 자리에 펼쳐지는 여자들의 지옥을 상상했다. 소설 속 장소들은 모두 그 하버드 캠퍼스에 실재한다. 시녀들은 브래틀 시어터에서 옷을 배급받았고, 집단 처형된 시체들이 하버드 월에 매달렸고, 파운더스하우스는 『시녀 이야기』 사령관의 집이었고, 비밀 감시 요원 ‘눈’들의 본거지는 와이드너 도서관이다. 하지만 이 발상은 심지어 마거릿 애트우드에게도 “제정신이 아니”라고 느껴졌기에 차마 소설로 쓸 생각을 하지 못했다. 하지만 제2 물결 페미니즘을 거치고 난 1981년, 『시녀 이야기』는 다른 소설을 쓰고 있던 애트우드에게 신병처럼 내렸고 “너는 누구냐?”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왔다. 이 순간은 마거릿 애트우드의 문장 그대로 인용할 가치가 있다. 애트우드는 바로 『시녀 이야기』를 쓰기 위해 제정신을 버리고 위험한 광기 혹은 마술적 영감을 선택한다. 마녀가 되기로 작정한다. 제정신인 여자는 펜을 잡을 수 없던 시절이었다. 

 

예술을 관장하는 그리스 신에는 두 종류가 있다. 조화, 아름다움, 리라 연주에 도움이 필요할 때 부르는 아폴로와, 속임수의 명수, 장난꾼 트릭스터, 도둑들의 수호신, 비밀을 폭로하는 신, 문을 열어주는 신인 헤르메스다. 돌벽에 머리부터 들이받게 될 때 소환해야 할 신은 헤르메스다. 나는 알 하나를 희생물로 바쳤다. 그는 실망시키지 않았다. 숨겨져 있던 문이 안쪽으로 열리고, 수수께끼 안의 신비를 펼쳐 보여주었다. 

 

“진심이에요?” 발 빠르고 꿍꿍이가 깊은 신에게 재차 물었다. 

“물어본 건 너잖아,” 그가 애매하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이게 대답이다.”

“사람들이 내가 완전히 미쳤다고 생각하지 않을까요?”

“사람들은 어차피 그렇게 생각해. 너도 아예 그쪽으로 나가보지 그래.” (430쪽)

 

레이건 정부가 발족하고 여자들에게 ‘가정’으로 돌아가라는 압박이 거세질 때, 애트우드는 현실적으로 가능한 최악의 파국을 집요하게 상상했다. 직장도 돈도 있는 여자들을 어떻게 집으로 돌려보낼까. 답은 하나였다. 직장과 돈을 빼앗으면 된다. 『시녀 이야기』에서 전자 계좌들이 삽시간에 동결되는 그 소름끼치는 장면이 그렇게 태어났다. 지옥은 역사 속에 언제나 있었고 애트우드가 살아가는 그 순간에도 지구상 어딘가에 있었다. 매사추세츠주 세일럼에도 있고, 서베를린에 진격한 러시아군의 대량 강간 살인에도 있었고, 폴란드의 나치 수용소에도 있었다. 타이프라이터를 부여잡고 애트우드는 미친 듯이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그 책은 온 세상의 여자들이 대낮에 꾸는 악몽이 되었다. 

 

하지만 이 무섭고 끔찍한 소설을 번역하는 과정은 번역가로서 내게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순수한 희열을 선사해주었다. 이상하지만 이 소설은 아름다웠고…… 또 어떤 면에서 짓궂게 웃기기도 했다. 단 한 여자의 의식을 통해 전례 없는 역사적 참사를 체험하게 하는 이 소설의 문체는 단번에 독자의 멱살을 잡고 붉은 지옥 한가운데로 냅다 내팽개친다. 그 흡입력은 번역자를 춤추게 했다. 그리하여 24년 전 『시녀 이야기』를 거치며 나는 무대 없는 공연자로서 문학을 번역하는 진짜 기쁨을, 처음으로 맛보았다. 문체의 연기로 문학을 공연하고자 하는 나의 야심을, 처음으로 자각했다. 그 희열을 갈구하며 문학번역을 계속할 힘을 얻었다. 이 소설을 번역하면서 한국 작가가 썼다면 오브프레드의 문장이 어떤 느낌이어야 할까, 정말 오래, 깊이, 고민했던 기억이 있다. 민감하고 취약한 문체, 지적이면서도 아프리만큼 감각적인 여자의 문체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었다. 돌이켜보면 소설가 신경숙과 양귀자를 많이 떠올렸던 것 같다. 트릭스터의 신 헤르메스로부터 영감을 받아 마녀가 되기로 작정하고 쓴 이 미친 소설은 설정과 플롯뿐 아니라 문장이 주술을 부렸다. 작업을 하다 보면 몇 시간이 그저 훌쩍 흐르기 일쑤였다. 그 몰입의 시간 자체가 넘치는 보람이었다. 하지만 그가 준 진짜 선물은 따로 있다. 그로부터 18년의 세월이 흐른 후, 『증언들』을 번역하고 나서야 나는 선물의 포장을 끄르고 백마녀의 은혜로운 치유 마법을 받아들였다. 


 

파국을 상상하는 데엔 나도 남다른 재주가 있었다. 하지만 이 재주를 나는 제대로 갖고 놀 줄 몰랐다. 주체를 못하고 악몽에 휘둘렸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그랬다. 이미 일어났거나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온갖 파국에 나를 집어넣은 영상들이 오감으로 불시에 재생되었다. 기기묘묘하게 무서운 생각들은 머릿속 한 편에 항시 매복했다가 불시에 괴물처럼 튀어나왔다. 2024년 계엄령이 내렸을 때는, 소식을 들은 그 순간부터, 차가운 총구가 가슴을 짓눌러 호흡이 힘겨워지는 감각에, 머리에 자루를 뒤집어쓰고 어딘가 모르는 곳으로 끌려가는 심상에, 꽤 오래 시달렸다. 피폭력을 오감으로 재생하는 불수의적 연상이 전형적인 트라우마 반응이라는 걸 알게 된 지는 오래되지 않았다. 근원은 짚어내기 어렵다. 다만 언젠가 엄마는 내가 아직 아장아장 걷는 아기였을 때 대연각호텔 화재를 목격한 적이 있다고 스쳐가듯 말했다. 9.11 테러 이전까지 세계 최대 규모의 건물 화재로 기록되었고 재난영화 〈타워링〉에 영감을 주었다는 일설이 있는 참사였다. 함께 살던 사촌오빠가 어른들 몰래 나를 데리고 불구경을 하러 갔단다. 엄마는 기겁을 했고 사촌오빠는 혼쭐이 났다지만 어린 내가 보아버린 광경을 지울 수는 없었다. 의식의 표면에는 없지만, 난 파국을 상상한 게 아니라 기억했는지도 모른다. 그랬기에 허상의 공포들 속에서 그토록 무력했을지도 모른다. 문제는 불수의적인 공포의 상상이 생생할수록 엄연히 발 딛고 선 지금 여기가 비현실적으로 흐려진다는 데 있다. 트라우마는 세상에 반응하는 모든 방식에 두려움을 새겨 넣는다. 나는 공포의 순간을 회피하고자 취약성을 제거하는 데 역량과 자원을 총동원하고, 체험하고 연결하고 창조하며 살아갈 에너지를 소진해버렸다. 죽음의 두려움에 휘말려 살아 있는 짧은 순간을 더 이상 허비할 수 없다 느꼈을 때, 오로지 나만이 나를 구할 수 있다는 걸 알았다. 그러려면 파국과 종말의 상상을 세계와 나 사이에 존재하는 놀이의 영역으로, 다른 누구도 아닌 내 힘으로 끌고 들어와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파국을 상상하는 낙관이라면, 마거릿 애트우드만한 스승이 없다. 나는 화가가 아니고 화가가 되려는 생각도 없지만, 작가들의 얼굴을 똑바로 보면서 내 손으로 그리고 싶었던 건 내가 통과해온 텍스트를 해석하는 또 다른 길을 찾기 위해서였다. 마거릿 애트우드의 얼굴을 그리고 싶어졌을 때, 나는 그가 활활 불타는 세계를 바라보며 입술 끝을 일그러뜨리고 웃고 있다는 걸 알았다. 그 웃음에는 조롱도 냉소도 없다. 놀랍게도 사랑이 있다. 시공간의 시야각을 충분히 넓히기만 하면, 파국은 반드시 닥치고 두려워하는 일은 반드시 일어난다. 하지만 괜찮다. 『시녀 이야기』는 오브프레드의 불확실한 앞날에서 끝나지 않는다. 『시녀 이야기』와 『증언들』의 백미는 엄정하게 시적 정의가 실현되는 에필로그, 그 마지막 챕터의 탁 트인 시야각에 있다. 훨씬 자유롭고 합리적인 세계에 살고 있는 먼 미래의 여성 역사학자들이 실없는 농담을 하면서 그들이 상상도 못할 과거의 참상을 여유롭게 논한다. 원래 그런 것이다. 우리의 지금은 오브프레드의 과거이기도 하고 그 역사학자들의 미래이기도 하다. 밤은 엄연히 오겠지만 어둠은 언젠가 걷힌다. 그러므로 괜찮다, 다 괜찮다. 그때까지는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자. 그 날것의 앎에는 자유가, 용기가, 희망이 있다. 

 

우리의 세계는 트라우마를 유발하고 공포와 절망을 조장하는 수단들을 날마다 새로 발명해내고 있다. 불구경을 일부러 가지 않아도 전 세계의 참사 현장이 우리 눈앞에 날마다 찾아온다. 지금이야말로 암울한 어둠 속에서도 명랑하게 웃는 기술이 우리에게 꼭 필요하다. 우리가 상상도 못 해본 형태로, 혹은 상상한 그대로의 모습으로 밤은 온다. 그때까지는 목이 졸려도 발버둥 치며 명랑하게 살고자 싸우는 게 낫다. 불확실한 이 순간을 움켜쥔 채 약하고 여린 평화와 행복과 안온을 작정하고 붙들고 껄껄 웃는 편이 낫다. 마거릿 애트우드도 우리 모두처럼 불길한 예감을 부인하지 않는다. 그 또한 “부분일식으로 절반의 빛이 비추는 시대에 살고 있다는 느낌을” 떨칠 수 없다고 시인한다. 어스름 속에서 마녀는 또다시 노래한다. 

 

이 어둠, 그 이름을 누가 알까?

어둠은 그저 거기 있다, 별들을 위한

하나의 조건으로. 우리는

모든 게 몰락하고 있어,

라고 말하지는 않았다.

 

대신 이렇게 말했다,

그 동안 우리가 운이 정말 좋았지. (55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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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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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imei

2026.09.15

글이지만 피부로 전달되고 정신을 거쳐 저만의 기억으로 가닿습니다. 마거릿 애트우드의 페넬로피아 읽는 중인데 김선형 선생님이 작업하신 번역서도 모두 읽어보고 싶어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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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녀 이야기

<마거릿 애트우드> 저/<김선형> 역

출판사 | 황금가지

증언들

<마거릿 애트우드> 저/<김선형> 역

출판사 | 황금가지

Book of Lives: A Memoir of Sorts

Atwood, Margaret

출판사 | Vint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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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형

번역가. 영어권 문학을 연구, 강의, 번역한다. 메리 셸리, 수전 손택, 토니 모리슨, 비비언 고닉, 실비아 플라스 등 다양한 작가들의 작품을 번역했으며 2010년 유영번역상을 수상했다. 쓴 책으로 『디어 제인 오스틴: 젊은 소설가의 초상』과 『나만 아는 단어』(공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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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거릿 애트우드

1939년 11월, 캐나다 오타와에서 태어나 온타리오와 퀘벡에서 자랐다. 퀘벡 북부에서 삼림곤충연구소를 운영하는 아버지를 따라 그녀의 가족들은 매년 봄이면 북쪽의 황무지로 갔다가 가을에 도시로 돌아왔다. 이처럼 고립된 생활 속에서 애트우드에게는 책 읽기가 유일한 놀이였다. 여덟 살에 토론토의 정규학교에 입학한 후 뛰어난 적응력으로 또래들을 앞질러 열두 살에 고등학교에 진학했고, 고교 시절의 어느 날 시인이 되겠다고 결심하고 토론토대학교와 하버드대학교에서 영문학을 공부했다. 첫 시집 『서클 게임』으로 캐나다 총리 상을 수상했고, 악명 높은 살인 사건을 다룬 『먹을 수 있는 여자』(1969)를 발표하며 소설가로서 활동 영역을 넓혔다. 이후 남성 중심 사회를 비판하는 소설들을 발표해 페미니즘 작가로서 명성을 얻는 동시에 외교·환경·인권·과학기술 등 다양한 분야를 다루며 문학적 성취를 인정받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학교, 토론토의 요크대학교 등에서 영문학 교수를 역임했으며, 국제사면위원회·캐나다 작가협회·민권운동연합회 등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대표작으로 『시녀 이야기』(1985), 『고양이 눈』(1988), 『도둑 신부』(1993), 『그레이스』(1996), 『오릭스와 크레이크』(2003), 『홍수의 해』(2009), 『미친 아담』(2013) 등이 있다. 2000년 발표한 『눈먼 암살자』로 부커상을 수상했고, 『시녀 이야기』의 후속작인 『증언들』로 2019년 두번째 부커상을 수상했다. 기발하고 지적이며 재치 있는 상상력을 지닌 작가로, 전 세계 독자들의 사랑을 받으며 매년 노벨문학상 유력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