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If someone tells me one more time "Enjoy your youth", I'm gonna cry.
누군가 나한테 한 번만 더 “젊음을 즐겨라”고 말하면, 확 울어버릴 거야.
─ 올리비아 로드리고의 곡 〈Brutal〉 중
스무 살 적에는 ‘너 참 좋을 때다’라는 말이 싫었다. 좋기는 뭐가 좋나. 교수가 전공 성적에 반영한다고 으름장을 놓은 회계 자격증은 낙방했고, 전 애인의 현 애인은 나보다 훨씬 예쁜데. 눈앞에 겹겹이 쌓인 문들은 뭐 하나 쉽게 열리질 않았다. 등 뒤로는 내 척추를 분쇄할 지옥의 톱날이 돌아가고 있었다. 인생이란, 앞으로 나아가지 않으면 죽음뿐인 삼류 데스 게임 같은 레이스. 그러나 온갖 문을 척척 열고 나아가도 미래는 들판이 아닌 지평이라 머물 수 없었다. 그뿐인가. 나는 두부구이는 안 먹으면서 두부과자는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땀 흘리는 건 질색이라면서 등산은 다녔고, 술자리를 기피하면서도 불러주지 않으면 서운한 티를 냈다. 나란 사람은 참 까탈스러웠다.
제대로 된 아이템도 안 주면서 보스몹을 죽이라고 시도 때도 없이 졸라대는 NPC를 만나면, 곧 그 부당함에 질려 게임을 접고 싶어진다. 어쩌면 나는 내 인생 최악의 NPC였다. 능력치 없이 요구사항만 많은 캐릭터. 그 특징 하나만으로 내가 가진 모든 단점은 강화 효과를 받았다. 욕심과 현실의 괴리를 자각할 때면 자주 회의에 빠졌다. 내가 울적함을 연기하고 있는지, 진실로 울적한지 헷갈리는 날들이 많았다.
하루는 학부 활동을 끝내고 뒤풀이를 가는데 한 선배가 짜증을 냈다.
"넌 왜 자꾸 맨 뒤에서 혼자 폼 잡고 있냐?"
올 거면 오고 말 거면 말지, 먼발치서 울적한 얼굴로 쫄래쫄래 따라오는 게 싫단 뜻이었다. 그럴 만도 했다. 왜냐하면 내가 운영진이었거든. 욕심을 내서 감투를 쓸 거면 야무지게 잘 쓰든가 아니라면 조용히 일원으로 남아야 하는데, 그 시절의 나는 할 수 있는 것에 비해 큰 것을 바라느라 많은 일을 엉터리로 끝냈다.
마음이 오락가락해서 그랬다. 어떤 날은 뭐든지 잘 해내고 싶었다. 동아리에서는 누구보다 쾌활한 사람이 되고 싶었고, 스터디에서 가장 열정 넘치는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었다. 하지만 어떤 날에는 모든 걸 다 그르치고 싶었다. 누워 있고만 싶고, 아무것도 아닌 사람으로 남고 싶었다. 난 정말 너무 오락가락했다. 스스로의 냉철함을 믿었지만 상업 영화를 보면 감독이 손 써놓은 부분에서 대성통곡했다. 애인과 꼭 헤어지겠다고 친구들에게 호언장담한 뒤 막상 만나서는 오늘부터 다시 1일이라고 새끼손가락을 걸었다. 공기업에 취업하겠다고 했다가, 대기업으로 바꿨다가, 레터링 케이크 장사를 다짐했다. 남들의 꿈은 정상적인 나비가 되어가는데 내 꿈은 자고 일어나면 외계 애벌레처럼 희한하게 변태했다.

점잖은 척하며 살았으나 인생은 『반차 쓰고 복수 좀 하고 오겠습니다』의 세계같이 이상한 사건들 투성이었다. 온 지구를 뒤흔들 만큼 엄청난 대재앙은 아닌데, 내 몫의 공간에 평화를 채워넣기에는 영 소란스러운 사건들. ‘내가 좋아하는 거… 잘 모르겠어요, 그런 거 생각 안 한 지 오래되어서.’ 고개를 숙이던 헤이즐의 고백이 이해된다. 나는 불확실함으로 채워진 인간이었으니.
사실 청소년 때부터 그랬다. 똑똑해지고 싶었던 초등생 청예는 도서관에서 오쿠다 히데오의 『공중그네』를 읽었다. 정신과 의사 이라부가 공중곡예사 고헤이의 상처를 치유하는 내용을 11살의 나는…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빌려 읽었다는 사실을 헛되게 하고 싶지 않다는 욕심에 꾸역꾸역 독후감을 썼다. 이런 일들이 하루가 되고 일 년으로 쌓여 나라는 역사가 되었는데 과거를 돌아보면 의아하지 않을 수가. 왜 그런 선택을 했지? 투성이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잡문집』에서 '결혼이라는 것은 좋을 때는 아주 좋습니다.'라고 말했다. 별로일 때가 분명 있기는 하지만, 아무튼 좋을 때는 참 좋다는 것. 비단 결혼만 해당하는 이야기는 아니다. 변덕으로 얼룩졌음에도 내 어림 역시 좋을 때는 아주 좋았다. 공기업 취업을 결심했을 땐 그곳의 정규직이 된 나를 상상하며 몹시 즐거워했다. 최종 면접 자리에서 내가 얻어갈 것이 거마비 10만 원뿐임을 알게 됐을 때는, 역시 나는 레터링 케이크집 사장이 될 운명이라며 상가 계약을 꿈꿨다. 어제까지 천하의 죽일 놈이라 평가했던 애인도 다시 만나면 영혼의 짝으로 보였다. 내 변덕을 간식 삼아 친구와 5분이라도 더 말할 거리가 생겼음에 기뻐했다. 좋을 때는 모든 것이 좋았다.

이제야 그 변덕들이 무엇으로 이뤄졌는지 보인다. 하나. 세상을 사랑하고 싶은 마음. 둘. 세상을 안 사랑하고 싶은 마음. 고작 두 가지 사이에서 끝없이 갈등했던 일이 내 변덕의 전부였다. 성숙이란 지식의 수집이 아니라 그 간극 사이의 방황을 좁혀감이 아닐까. 결국 내가 저지를 변덕을 하나라도 더 줄여, 잔잔한 상태로 나아가는 일. 파도가 청춘이라면, 우리는 바다가 되고 싶다.
그런 의미에서 문학은 성숙에 도움이 된다. 읽기란 타인의 변덕을 보는 일이니. 특히 소설에는 타인의 무수한 바람과, 그로 인해 만들어진 파도들이 담겨 있다. 아니 에르노는 『탐닉』에서 애착을 형성하고 싶은 여성의 욕망을 사랑이라는 거창한 이름으로 환원했다가 초라한 관계로 되돌리기를 반복한다. 끝없이 방황하고, 잘못된 선택을 하고, 후회하면서도 끝내 삶을 찬미한다. 오락가락하는 영혼의 혼란이야말로 말로 세계인의 인류지사다. 타인의 파도가 바다라는 거대한 질서로 흡수되는지, 혹은 역학적 에너지에 굴복하여 안개로 비산하는지, 그 변화를 목격할 때 우리의 고독은 위로받는다.
이제 나는 오쿠다 히데오의 『공중그네』를 이해할 수 있다. 타인의 상처를 목격하는 일도, 치유를 헤아리는 일도 모두 가능하다. 변덕을 거쳐 나는 성숙해 간다. 아마 당신도 그럴 것이다. 자주 삐걱거릴 테지만 좋을 때는 아주 좋다. 거창해질 당신을 기대해도 좋고, 학습된 초라함에 좌절해도 괜찮다. “Enjoy your youth”라는 말은 하지 않겠다만, 어쨌거나 좋을 때는 아주 좋다는 말 정도는 하고 싶다.
스무 살의 ○○에게
06~07년생이라면 최대 20만원! 예스24가 '2026 청년문화예술패스 추가 발급' 사업에 참여해 청년들의 도서·전시·공연 이용을 지원합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시행하는 ‘청년문화예술패스’는 만 19~20세 청년들의 문화예술 향유 기회를 확대하기 위한 사업으로, 올해 하반기에는 도서까지 지원 범위를 확대했습니다.(자세한 신청 안내는 여기!)여러분은 스무 살이라고 하면 어떤 풍경이 떠오르나요? 사랑과 우정, 방황과 불안, 낙관과 비관 등등 스무 살은 다양한 얼굴을 품고 있습니다. 2026 한국문학의 미래가 될 젊은 작가 1위 청예가 스무 살의 변덕을, 스탠드업 코미디언이자 작가인 원소윤이 스무 살의 허기를 떠올리며 책장 앞에서 고른 몇 권의 책을 소개합니다.
* AI 학습 데이터 활용 금지
청예
제9회 교보문고 스토리 공모전 단편 우수상, 제4회 컴투스 글로벌 콘텐츠문학상 최우수상, K-스토리 공모전 최우수상(제1회, 제2회)을 연달아 수상했다. 제6회 한국과학문학상 장편 대상을 받았다. 다수의 영상화 계약을 체결했고, 예스24 ‘2024 한국 문학의 미래가 될 젊은 작가’ 12인에 선정되었으며 2026 한국 문학의 미래가 될 젊은 작가 투표에서 1위에 올랐다. 남몰래 김치를 물에 헹궈 먹는 사람. 점을 보러 가면 겉보다 안이 강하다는 소리를 종종 듣는 사람. 눈이 말똥말똥하여 귀신이 들어올 자리가 없다고 한다. 늘 작가의 말로 변명할 때가 가장 곤욕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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