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혜진 편집자의 문장 수집
[박혜진 칼럼] 우리가 밤을 무사히 건너가는 방법
저처럼 짧아지는 해가 두렵고, 내일이 오지 않을까 종종 겁먹는 분이 있다면 무언가 주변에 꼭 지켜야 할 약속을 해 보십시오.
글: 박혜진 편집자
2026.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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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민음사 해외문학 편집자 박혜진입니다.

 

저에게는 SNS 비밀 계정이 있습니다. 팔로워가 ‘0’인 계정인데요. 제가 좋아하는 것을 잔뜩 모아 놓았어요. 비 오는 날 막 찐 옥수수, 보라색 아네모네, 외근 (때 마시는) 커피, 귀여운 짤 등. 그중에서도 가장 먼저 올린 것은 멀리서 찍은 인물 사진으로, 저를 의식하지 못한 채 무언가를 하고 있는 친구의 흐릿한 모습입니다.  

 

이건 취향의 영역인데요. 저는 누군가 자기 안에 침잠해 있을 때 사랑스럽습니다. 저에게 눈 마주치며 웃어줄 때 보다요. 오롯이 그 사람 자체인 것 같은. 그래서 다른 무엇도 아닌. 그 모습을 정물처럼 바라보는 것을 좋아해요. 그러다 들키기라도 하면, “나 방금 왔어!!” 하면서 어색한 거짓말을 하고요. 그때부터 그가 저를 의식하며, 저를 위해 보여 주는 모습들은 ‘그’라는 IP의 여러 버전 중의 하나로 느껴지곤 합니다. 

 

카뮈의 스승이자 미학자인 장 그르니에도 저와 비슷한 취향을 가졌던 걸까요. 그의 대표 산문집인 『섬』에는  「고양이 물루」라는 산문이 있습니다. ‘물루’는 그르니에가 태어난 지 한 달 남짓부터 키운 아기 고양이에요. 이 산문에는 고양이를 관찰하는 그르니에의 다정한 시선이 담겨 있어요.


 

“고양이가 다리를 반쯤 편다면 그것은 다리를 펴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고 또 다리를 꼭 반쯤만 펴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희랍 꽃항아리들의 가장 조화로운 윤곽에도 이토록 철저한 필연성은 없다.”


─ 장 그르니에, 


올해 국제 고양이의 날(8월 8일) 민음사 세계문학 캘린더에 수록한 이 문장은 「고양이 물루」의 일부입니다. 고양이가 다리를 반쯤 펴고 있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화자가 감탄하고 있어요. 고양이의 모습이 희랍 꽃항아리보다 조화롭다고 말이지요. 어떤 아름다움은 운명을, 필연을 믿게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필연’은 대상의 아름다움을 찬탄하기 위해 쓴 표현만은 아닙니다. 물루가 아름다운 바로 그 이유이기도 해요. 바로 앞 부분의 맥락을 함께 보실까요?

 

“물루는 행복하다. 세계가 저 혼자 끝없이 벌이는 싸움에 끼어들면서도 그는 제 행동의 동기가 되는 환상을 깨려 들지 않는다. 놀이를 하되 놀고 있는 스스로의 모습을 바라볼 생각은 하지도 않는다. 그를 바라보는 것은 나다. 조그만 빈틈도 없이 정확하게 몸을 놀려 제가 맡은 역할을 다하고 있는 그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황홀해진다. 매 순간 그는 제 행동 속에 흠뻑 몰두해 있다.” (『섬』 중 발췌)

 

고양이는 사람의 눈치를 살피지 않습니다. 그가 욕망하는 대로 움직이지요. 음식을 먹고 싶어서 먹고, 애정이 솟구쳐 파고들어요. 자기 욕망이 옳은지 판단하지 않고, 행동이 적절한지 돌아보지 않습니다. 이 모습을 그르니에는 ‘단순함’이 아니라 욕망과 행동이 일치하는 ‘필연성’으로 보았어요. 그러니까 물루는 이 필연성 때문에 가장 아름다운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한편 이 글에서 그르니에는 개인적인 두려움을 고백합니다. 하루에 세 번, 해가 저물 때, 잠들 때, 잠에서 깰 때 너무 무섭다고요. ‘밤이 다가온다. 밤과 더불어 내게 낯익은 유령들이 깨어난다.’ 저는 이 대목을 읽으면서 작가가 우울감을 느끼고 있는 것은 아닐까 넘겨 짚어 보았습니다. 저도 잠들 때 내일 아침에 깰 수 있을까를 걱정하고, 아침에 깬 뒤에는 비현실감을 느꼈던 시기가 있었거든요. 

 

“나는 그를 사랑한다. 물루는, 내가 잠을 깰 때마다 세계와 나 사이에 다시 살아나는 저 거리감을 없애 준다.” (『섬』 중 발췌)

 

세계와의 거리감을 없애 주는 존재. 저는 이보다 확실한 사랑 표현을 알지 못합니다. 자고 일어나면 발치에 느껴지는 물루의 체온을 느끼면서 그는 무사히 밤을 건너왔다는 느낌을 받았겠지요. 밤사이 우주 어딘가로 사라지지 않고, 이렇게 다시 눈을 떴구나! 하고요. 만약 저에게도 그 시절 이런 존재가 있었더라면 세상과 조금 더 편안하게 지낼 수 있었을 텐데요. 오늘이 지나면 내일이 찾아올 거라고, 세계의 연속성을 믿게 하는 존재 말입니다.

 


국제 고양이의 날이 있으면, 국제 강아지의 날도 있겠지요?


지난 3월 23일이 바로 국제 강아지의 날이었어요.

 

그런데 강아지의 날에는 강아지 문장을 넣지 못했어요. 왜냐하면, 제가 뽑은 작품의 제목이 『어느 개의 죽음』이었거든요. 이 역시 장그르니에의 산문인데요. 그르니에가 사랑하는 반려견 타이오의 죽음을 슬퍼하며 써 내려간 애도글입니다. 

 

아무리 그 알맹이가 사랑이라 해도, 강아지의 날에 강아지의 죽음에 대한 문장을 넣는 것은 너무 많은 사람들을 슬프게 할 것 같았어요. 여러 번 고민하다가 결국 뺐어요. 대신 강아지가 제일 좋아하는 제목의 작품으로 혼자 강아지의 날을 축하했답니다. (바로 로베르트 발저의 『산책』!) 

 

벌써 해가 눈에 띄게 짧아지고 있습니다. 햇빛과 함께 제정신을 붙드는 저에게 해가 짧아진다는 것은, 조금 과장을 더해, 마음이 쿵 하는 일입니다. 자꾸만 해가 질 때 손목에 찬 시계를 보게 되어요. ‘밤이 다가온다. 밤과 더불어 내게 낯익은 유령들이 깨어난다.’ 이 기분을 너무 잘 알거든요. 이 계절 변화를 어떻게 아무렇지 않은 척 겪어 낼지 벌써부터 가슴이 답답합니다. 

 

그런데 연재가, 고양이 물루 비슷한 역할을 하는 것 같습니다. 지난 달에 첫 원고를 담당자분께 송고했는데 벌써 오늘이 되었거든요. 한 달에 한 번 연재한다는 약속이 마치 물루처럼, 이번 달이 지나면 다음 달이 올 거야! 하고 찡긋 웃어 보이는 듯합니다.(그것도 생각보다 빨리 올 거야!ㅎㅎ) 저처럼 짧아지는 해가 두렵고, 내일이 오지 않을까 종종 겁먹는 분이 있다면 무언가 주변에 꼭 지켜야 할 약속을 해 보십시오. 내일을 믿게 하는 멋진 일들이, 그런 친구가 함께 하기를 바랍니다.

 

 


* AI 학습 데이터 활용 금지

5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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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몽자몽

2026.08.27

박혜진 편집자님의 글은 언제나 몽글몽글한 감정이 따스히 마음에 번저나가는 느낌을 받습니다. 글 속에 선함과 따뜻함이 느껴져서 읽을 때마다 기분이 너무 좋아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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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다

2026.08.24

내일을 믿게 하는 멋진 친구=박혜진 편집자님💝 우연히 채널 예스에 들어와, 혜진님의 글을 볼 수 있었다니...!! 늘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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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ja070305

2026.08.22

항상 중간 정도의 평가를 마음에 새겨두신다는 편집자님의 말씀을 들은 뒤로, 저도 의식적으로 조금 더 애정이 담긴 댓글을 남기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ㅎㅎ

저는 혜진 편집자님께서 들려주시는 이야기를 정말 좋아하거든요. 너무 많이 들어서 이제는 거의 외울 정도예요! 이렇게 글을 통해서도 편집자님의 생각과 시선을 접할 수 있어서 정말 기뻐요 🥹 앞으로도 편집자님만의 따뜻한 글을 오래오래 보고 싶어요. 멀리서 늘 응원하고 있습니다! (혜디나 됴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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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 LES ILES

<장 그르니에> 저/<김화영>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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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개의 죽음 Sur la mort d’n chi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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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진 편집자

민음사 해외문학 편집자. 책을 기획, 편집하고 소개하는 일을 합니다. 유튜브 채널 '민음사TV'에서 '세문전 독서클럽'을 진행하고 있으며 SBS 라디오 '책하고 놀자' 속 작은 코너 '박혜진의 클래식은 영원하다'와 팟캐스트 '리딩 케미스트리' 속 작은 코너 '박혜진의 고전 덕질'에 고정 출연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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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그르니에

프랑스의 사상가, 작가, 철학자. 1898년 2월 파리 출생. 부모의 이혼 후 모친을 따라 브르타뉴로 이주, 셍-브리유에서 청소년기를 보냈다. 이곳은 ‘프랑스의 키엘케고르’라 불린 19세기 철학자 쥘 르퀴에가 태어나 죽은 곳으로, 이 인물은 훗날 장 그르니에의 박사 논문 주제가 된다. 1922년 철학교원자격시험에 통과해 교사로서의 이력을 시작, 소르본대학 미학 및 예술학 교수직을 떠나는 1968년까지 약 40년간 아비뇽, 알제, 나폴리, 몽펠리에, 릴, 알렉산드리아, 카이로, 파리 등지를 편력하며 가르쳤다. 고대 지중해, 인도사상에 경도되어 방랑의 철학교수 생활을 보내고, 알제리에서 고등학생이던 알베르 카뮈를 가르쳤으며, 그 사상에 큰 영향을 주었다. 「N.R.F」지에 기고하면서 집필활동을 시작했고, 1927년 “사물의 안쪽”이란 서정적 에세이를 NRF에 기고한 이래 잡지 정기 기고자가 되었고, [철학들], [철학리뷰], [남부수첩], [코뫼디아], [꽁바], [까예 드 라 쁠레이야드], [렉스프레스], [프뢰브] 등 상당수 잡지들에 정기 기고하거나 창간에 관여했다. 1936년 『쥘 르퀴에의 철학』과 유작들을 편집한 『자유』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 논문과 텍스트는 쥘 르퀴에 철학에 대한 표준 입문서로 간주되며, 1952년 펴낸 『쥘 르퀴에 전집』 역시 필수 참고서로 꼽힌다. 까뮈의 스승으로 실존주의의 관심사를 공유했던 그였지만, 그럼에도 실존주의를 비롯한 당대의 철학 운동과 비판적 거리를 유지했고, 전통 형이상학 안에서 인간의 한계와 무한자를 사유한 철학자였다. 1968년 국가에서 수여하는 문학대상을 받았다. 리세 알제의 교수를 거쳐 파리대학교 문과대학교수로 있으면서 미학을 강의하였다. 존재에 대한 기쁨과 절망을 간결하고 깔끔한 문체로 써내려간 그의 작품은 시사성이 풍부하다. 주요 작품으로 「섬」, 「카뮈를 추억하며」, 「어느 개의 죽음」, 「일상적인 삶」, 「지중해 영감」, 「모래톱」 등이 있다. 이외에도 30여 권의 철학서 및 시적 명상과 풍부한 서정으로 가득 찬 에세이집이 있다. 1971년 3월에 사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