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무 살 나는 배를 부여잡고 살았다. 배가 고파서, 배가 아파서(빌어먹을 생리통), 배알이 꼴려서, 뱃살을 가리기 위해서…. 배의 통증과 허기에 휘둘리다 반항하기를 반복했다. 배꼽 아래도, 배꼽 위도 아닌 배 자체가 나라는 인간의 ‘코어’였다.
배에서 늘 통제할 수 없는 소리가 났다. 배가 고팠던 것이다. 먹은 게 없어서 허기진 건지, 먹고 싶은 게 너무 많아서 허기진 건지 알 수 없었다. 가짜 배고픔-진짜 배고픔 판별법을 들여다봐도 판별법이고 나발이고 그 실감 앞에서 나는 어쩔 줄을 몰랐다. 그런데 어쩔 줄 몰라 하는 그 스텝에 나름의 힘과 흥이 실려 있었다는 걸, 이제는 안다.
내가 하루치 식사로 냄비에 넣어 삶으려던 달걀 두 개가 손가락 사이로 빠져 나와 바닥에 떨어져 깨진 것이었다. 더군다나 그 두 개의 달걀은 마지막 남은 것이어서 나는 그것이 가장 잔인한, 내게 일어났던 그 어떤 일보다도 더 끔찍한 사고라고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달걀은 떨어지자마자 그대로 박살이 났다. 나는 그것들이 마루 바닥 위로 번지는 동안 겁에 질려 서 있던 내 모습을 지금까지도 기억하고 있다. (…) 내게는 그 노른자가 너무 엄청난 것, 가치를 헤아릴 수 없는 마지막 지푸라기였기에 그 일이 일어나자 나는 그만 털썩 주저앉아 엉엉 울고 말았다. (『달의 궁전』 중 발췌)
스무 살 나를 가장 놀라게 한 감각은 다름 아닌 ‘허기’였다. 비유와 상징으로서의 허기가 아닌 말 그대로의 허기. 그러고 보니 그전까지는 배고픈 줄을 몰랐더라. 점심에는 중식, 저녁에는 석식이 나오는 ‘학교 안 청소년’의 생활이라는 게 뻔하지 않나. 게다가 원체 취향이랄 게 없던 나는 코다리조림이며 미역줄기볶음도 구시렁대는 법 없이 다 먹곤 했다.
스무 살이 되고 보니 끼니를 챙기기가 참 어려웠다. 우선 식사 시간을 따로 빼놓을 정신이 없었다. 이걸 내가 다 신경 써야 한다는 사실이 당황스럽기도 했다. 무얼 먹을지 매번 결정해야 한다고? 게다가 돈을 주고 사 먹어야 한다고? 음식값을 치르는 게 어찌나 아깝던지.
모든 게 다 돈이었다. 돈을 내고 또 내고 또 내야 했다. 이다음 알바비가 입금되기까지 며칠이 남았는지를 지겹도록 헤아렸다. 남은 돈을 남은 일수로 나누고 그러고 남은 돈을 또 남은 일수로 나누는, 단순 산수의 나날이 이어졌다. 수업과 알바를 종횡무진하다 저물녘 급습한 허기를 달래려 컵라면과 삼각김밥을 사 먹곤 했다. 대강 챙겨 먹으니 당연지사 늘 허기지고 피곤하고 짜증이 났는데 그것조차 참 억울했다. 내가 이렇게나 적극적으로 나서서, 그다지 좋아하지도 않는 나 자신에게 밥을 떠먹이며 계속 살아야 한다니. 이런 일이 벌어질 줄은, 사실은 이게 진짜 중요한 문제일 줄은 전연 몰랐던 것이다.
『달의 궁전』은 1969년 뉴욕을 배경으로 한다. 이야기는 화자 마르코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했던 사람이자 유일한 가족이었던 빅터 삼촌의 죽음에서 시작된다. 빅터 삼촌은 마르코에게 1천 권의 책을 남긴다. 무일푼의 마르코는 삼촌의 책을 허겁지겁 읽고 한 권씩 팔아 치우며 생활비를 마련한다. 책 좀 읽은 청년답게 마르코는 가난을 심각하게 여기지 않는다. 책과 자신의 생각에 의지하며 이런 생활을 ‘흥미로워’하는 여유마저 보인다. 자기연민에 취미 없는 사람 특유의 멋이 있달까. 하지만 그런 그도 하루는 무너진다. 아껴온 달걀 두 알을 냄비에 넣어 삶으려다 바닥에 떨어뜨린 날의 이야기. 어떻게든 달걀을 구제하려다 노른자를 터뜨린 그는 자리에 주저앉아 엉엉 울고 만다. 딸꾹질이 섞인 울음이었을까, 콧물을 계속 삼키게 되는 울음이었을까. ‘성장판 다 닫힌 내게 아직 이런 울음이 남아 있다니!’ 믿기지 않는 그런 울음이었을 것이다.
우리는 공동묘지로 올라가서 누런 풀밭에 앉는다. 주위에 있는 모든 것은 썩어가고 있다. 십자가들, 나무들, 덤불들, 꽃들 모두가. 내 형제가 자신의 지팡이로 땅을 건드리자, 하얀 벌레들이 기어나온다.
내 형제가 말한다.
“모두 다 죽은 건 아니야. 이것들은 살아있어.”
벌레들이 우글거리고 있다. 나는 이것들을 보자마자 구역질이 난다. 내가 말했다.
“생각에 깊이 빠지기 시작하면, 인생을 사랑할 수 없어.”
내 형제가 자기 지팡이로 내 턱을 들어 올린다.
“생각하지마. 저길 바라봐! 저렇게 아름다운 하늘을 본 적이 있어?”
나는 눈을 든다. 해가 서산으로 넘어가고 있다.
“아니, 한 번도. 어디에서도 본 적이 없어.”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 403쪽)
스무 살 내게는 ‘삶’이 부족했다. 내가 가진 삶을 박박 긁어모아 봤자 이십 년이 안 되었으니. 그래서 책을 읽고 글을 썼다. 다른 삶을 들여다보고 다른 삶을 지어내면서 그것까지가 다 내 삶인 양 부풀리고 싶었다. 그렇게 해봤자 삶은 부족했다. 아니, 어째 그런 바람에 내 삶이 더 부족한 것도 같았다. 내 삶을 ‘살아야’ 할 시간에 삶을 지어내고 있으니, 내 삶을 가상의 삶과 계속 맞바꾸는 것일지 몰랐다.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은 국경 근처 작은 마을에서 시작되는 쌍둥이 형제의 이야기이다. 1943년, 전시 상황 속에서 할머니 집에 맡겨진 형제는 폭력적인 할머니의 손에서 전쟁을 견딘다. 이들은 살아남기 위해 감정을 통제하는 법을 익히고 서로를 단련시킨다. 무엇보다 형제는 몸 누일 공간을 마련하듯 노트 한 면 한 면에 기록을 시작한다. 기록은 점차 이야기가 되고, 면은 집이 된다. 엉성한 구조가 기둥처럼 세워지고 초라한 의미가 지붕처럼 얹힌다. 그렇게 완성된 집이, 형제의 이야기가 아름답고 번듯하지 않아 어딘지 북받치는 데가 있다. 마룻바닥이 삐걱대는 형제의 이야기에 머물며 생각했다. 이것까지가 삶이 아니라면 대체 뭐가 삶이겠어.
서른 살이 지나고 보니 어떤 날은 삶이 턱없이 모자라게 느껴진다. 또 어떤 날은 삶이 버겁게 넘쳐흐른다. 그럴 때면 형제의 대화를 떠올리며 시선을 옮긴다. ‘자, 일단 생각을 멈추고 하늘을 보자. 어디에서도 본 적 없고 볼 수 없는, 당장의 하늘을 어서 보자.’ 하지만 계속 턱을 쳐들고 버틸 수는 없는 법. 나는 이내 썩어가는 것들과 땅을 향해 고개를 떨군다. 오동통한 저기 저 벌레를 귀여워해야 할지, 징그러워해야 할지 영 모르겠는 채로.
우리는 생겨 먹은 그대로였고, 다른 그 무엇이 되고 싶지 않았다. 우리 모두 대공황으로 고통받는 가족 출신이었으며 대부분 영양 부족이었지만, 크고 튼튼하게 자라났다. 우리 대부분이 가족에게서 별로 사랑을 받지 못했을 것 같긴 하지만, 그래도 어느 누구에게도 사랑이나 친절을 구하지 않았다. 우리는 농담거리였지만, 사람들은 우리 앞에서 비웃지 않도록 주의했다. 마치 우리가 너무 빨리 자라서 어린이로 사는 것에 싫증이 난 것만 같았다. 우리는 어른들에 대한 존경심이 없었다. 우리는 피부병 걸린 호랑이 같았다. (『호밀빵 햄 샌드위치』, 175쪽)
싸우고 싶었다. 그땐, 사랑받지 못하는 게 그다지 상처가 되지 않았고 심지어 어떤 인간에겐 절대 사랑받고 싶지 않았다. 나는 도도했고 싸우고 싶었다. 멋진 적을 두고 싶었다. 나를 무식하게, 무심하게 쥐어박던 사람들을 떠나온 만큼 그럴싸한 적을 두고 싶었다. 내가 약하고 그냥 거기 있어서가 아니라 너무 문제적이고 강력해서, 그런 나를 때리는 적을 만나고 싶었다. 그런 적을 두고 있다면야 나도 좀 멋져지니까. 나의 어떤 부분이 위협이 되는지 그를 통해 짜릿하게 확인하고 싶었다.
다른 그 무엇이 되고 싶지 않으면서도 나 자신이 지겹긴 했다. 아주 새로워지고 싶었다. 그런 의미에서 씻김과 같은 구원이 필요했는데 구원 운운하기엔 지은 죄가 좀 부족했다. 구원은 죄 많은 이가 누리는 특권으로 보였다. 그래서 죄를 짓고 싶었고 또… 싸우고 싶었다. 욕하고 때리고 상처 주고 해치고, 이 짓을 다 하며 넉넉히 죄를 지은 뒤에 시원하게 구원받고 싶었다.
그럼에도 제대로 싸워보질 못했다. 우선 나 같은 걸 상대해 주는 이가 없었다. 작고 어리고 약한 바람에 분하게도 깍두기 취급을 당했다. 근데 뭐, 세상을 둘러보니 제대로 싸울 줄 아는 이가 없었다. 누구와 싸워야 하는지, 무엇과 싸워야 하는지 모르고 우왕좌왕하는 꼴이었다.
에이, 나랑 싸우지, 나는 싸우고 싶은데. 나는 서둘러 싸우고 싶었다. 시간이 더 흐르기 전에. 시간이 흐를수록 싸우기 어려워질 게 분명했다. 내가 더 약해져서가 아니라 당신이 너무 불쌍해져서. 사정 따위를 헤아리는 머리가 자라는 바람에 피차 서로가 가여워져서. 그 전에 어서 싸워야 했다.
『호밀빵 햄 샌드위치』는 문학과 고독을 무기 삼아 세상의 폭력과 위선으로부터 스스로를 지켜내는 소년 헨리 치나스키의 이야기이다. 스포일러! 헨리는 자라 아저씨가 된다. 그리고 이 책은 ‘싸움’ 장면으로 마무리된다. 그가 이겼는지, 졌는지는 말하지 않겠다. 하지만 기억하시라. 어쨌든 그는 끝까지 싸우고 싶어 한다.
스무 살의 ○○에게
06~07년생이라면 최대 20만원! 예스24가 '2026 청년문화예술패스 추가 발급' 사업에 참여해 청년들의 도서·전시·공연 이용을 지원합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시행하는 ‘청년문화예술패스’는 만 19~20세 청년들의 문화예술 향유 기회를 확대하기 위한 사업으로, 올해 하반기에는 도서까지 지원 범위를 확대했습니다.(자세한 신청 안내는 여기!)여러분은 스무 살이라고 하면 어떤 풍경이 떠오르나요? 사랑과 우정, 방황과 불안, 낙관과 비관 등등 스무 살은 다양한 얼굴을 품고 있습니다. 2026 한국문학의 미래가 될 젊은 작가 1위 청예가 스무 살의 변덕을, 스탠드업 코미디언이자 작가인 원소윤이 스무 살의 허기를 떠올리며 책장 앞에서 고른 몇 권의 책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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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소윤
작가이자 스탠드업 코미디언. 한두 문장으로 이루어진 원라이너(One-Liner) 농담을 구사한다. 2025년에는 장편소설 『꽤 낙천적인 아이』를 출간했고 알라딘 ‘올해의 신인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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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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